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선종한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가 지난 15일 바티칸 교황청 비오 10세 홀에서 상영됐다. 한국 신부에 관한 다큐가 교황청에서 상영된 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구수환 KBS 피디가 이 뜻깊은 행사에 직접 참석한 뒤 로마 현지에서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말]
<울지마 톤즈> 시사회에는 베르토네 국무원장 등 교황청 주요 인사들과 추기경들이 참석했다.
 <울지마 톤즈> 시사회에는 베르토네 국무원장 등 교황청 주요 인사들과 추기경들이 참석했다.
ⓒ 구수환 피디

관련사진보기


흐느낌, 손수건, 훌쩍거림…….

영화 <울지마 톤즈>가 상영될 때마다 관객들의 반응이 그랬다. 다 컸다고 이젠 눈물 따윈 흘리지 않는다던 청소년도, 이제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던 중년들도, 이 나이에 무슨 감동이 있겠냐던 초로의 어르신들도 어깨를 들썩이고 붉어진 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생명의 무게가 다르지 않듯, 눈물의 무게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2011년 12월 15일 바티칸에서 상영된 <울지마 톤즈>로 이태석 신부의 삶이 다시 한 번 부활했다.

불이 꺼지면 울고, 불이 켜져도 운다

바티칸은 부산했다. 베드로 성당 광장에서는 높이 30m의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있었고 거리는 가톨릭 신자와 관광객들로 넘실댔다. 광장에서 테베레 강으로 쭉 뻗은 바티칸 대로에는 리모델링 된 중세의 건물이 빼곡했다. 대부분 교황청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실이다.

그 길 중간에 5층짜리 노란색 건물이 있다. 1903년부터 1914년까지 재위했던 제257대 교황 비오 10세를 기념하기 위한 비오 10세 홀이다. 12월 15일 이 건물 1층에서는 한국 가톨릭 역사에 남을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영화 <울지마 톤즈>가 바티칸의 심장부에서 상영된 것이다. 시사회는 바티칸 주재 한국대사관이 문화관광부를 통해 KBS에 영화제공을 요청해 이뤄졌다.

12월 15일 비오 10세 홀은 아침부터 부산했다. 전문 극장이 아닌 탓에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이동용 스크린을 놓아야 했고 180개의 간이의자를 반듯하게 배열하는 작업도 수월치 않았다.

지난 15일 바티칸 교황청 비오 10세 홀에서 <울지마 톤즈>가 상영됐다.
 지난 15일 바티칸 교황청 비오 10세 홀에서 <울지마 톤즈>가 상영됐다.
ⓒ 구수환 피디

관련사진보기


오후 5시 반 교황청 성직자와 외교관, 신부, 수녀, 교민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바티칸은 국무성 부를 비롯한 모두 9개의 성부가 있는데 각 성부의 장관은 추기경이 맡는다. 이날 시사회에는 우리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교황청 국무원장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 성인 시성(諡聖)을 담당하는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 기록물관리관장 라파엘 파리나 추기경 등 교황청 고위 성직자와 일본, 콩고 등 12개국의 외교관이 참석했다.

회의장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남자 성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열애'를 열창하고 있는 한국인 사제 이태석 신부의 모습을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신기함이 감동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톤즈에서 한센인을 돌보는 이태석 신부, 상처로 일그러지고 뭉툭해진 한센인의 발과 그 발을 어루만지며 신발을 신겨주는 이태석 신부의 손, 그러나 그 손은 웃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웃고 있는데, 시사회장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좌석 맨 앞줄에 앉아있던 교황청 국무원장 베르토네 추기경의 얼굴에서 눈물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부동반으로 참석한 대사들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탄식과 눈물, 흐느낌, 들썩임, 꺼내든 손수건,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인터뷰와 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모습에서 들리는 건, 흐르는 눈물 소리였다. 바티칸에서도 감동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커다란 박수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신기했다. 얼굴은 웃고 눈은 울고 있었다.

베르토네 추기경 "이태석 신부의 삶을 잊지 말자"

<울지마 톤즈>가 끝나자 눈물을 흘리는 교황청 주재 각국 대사들.
 <울지마 톤즈>가 끝나자 눈물을 흘리는 교황청 주재 각국 대사들.
ⓒ 구수환 피디

관련사진보기

베르토네 추기경이 단상에 올라왔다. 그는 "이 신부의 숭고한 삶을 보면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며 "이 신부의 어머니, 유가족에게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다시 한번 박수소리가 시사회장을 울렸다. 이때였다. 베르토네 추기경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그는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낀 듯 자신의 사제 시절을 이야기하며 이 신부의 고귀한 삶에 경의를 표했다.

"이태석 신부의 해맑은 미소와 가득한 향기는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제 그가 남긴 사랑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뿌린 작은 불씨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크게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 불꽃을 마음속에 지니고 사랑과 자비로움이 항상 우리의 삶 속에서 반짝거림으로 남아있기를 희망합니다."   

5분여 동안 계속된 연설에서 베르토네 추기경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잊지 말자"는 당부의 말로 끝을 맺었다. 한편 이날 시사회에는 유족을 대표해 이태석 신부의 형인 이태영 신부가 참석했다. 그런데 행사를 주관한 한국대사관은 유가족이 초청인사가 아니라며 유가족 인사는 물론 좌석도 배정하지 않아 90분 동안 서서 관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가족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 베르토네 추기경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줘 너무나 부끄러웠고 가슴이 아팠다.

필자는 더 많은 성직자와 신학생에게 이태석 신부의 삶을 알리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바티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1580년 교황청이 세운 우르바노 대학이 있다. 신부, 신학생, 수녀, 일반인이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곳이다. 이곳 학생들은 국적이 모두 달랐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 그러나 영화를 보며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중국에서 온 마리아는 "한국말, 영어를 몰라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화면을 통해 사랑은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해 이뤄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몽골에서 대학을 다니다 온 루시아는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며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런 반응은 신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사회장을 찾았던 이 대학 선교 신학원장 로베르또 빌라 신부는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다"며 "내가 흘렸던 눈물은 슬픔이 기쁨으로 승화 되는 눈물"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불행과 시련, 고통에 대한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이태석 신부의 삶은 말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이 신부를 알게 된 것은 정말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이 신부가 보내준 크리스마스 선물은 '실천·겸손·헌신'

구수환 피디는 최근 펴낸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
 구수환 피디는 최근 펴낸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
ⓒ 비아북

관련사진보기

이태석 신부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다. 우리의 피부와 생각이 다를 순 있지만 우리는 같이 아파할 줄 알고 같이 기뻐할 줄 알고 같이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 더욱 중요한 것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단순한 헌신, 봉사, 위로가 아닌 이태석 신부의 사랑을 사회적으로 승화하고 우리 시대의 에너지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필자가 펴낸 책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비아북)을 통해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거나 군림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필요한 것을 해결 해주려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며 감사해 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정치를 하고, 기업을 운영하고, 사회를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 것이 무리한 욕심일까? 아니다. <울지마 톤즈>를 보고 감동 하고 눈물을 흘린 수 백만 명의 국민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태석 신부는 스스로를 리더라고 말한 적이 없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삶속에 함께하며 섬기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 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 영국, 바티칸에서도 그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며 존경을 표했다. 이것은 이태석 신부가 살았던 사랑의 삶이 한국이라는 국경을 넘어서 세계로 퍼져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울지마 톤즈>의 바티칸 상영이 큰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고위직 누가 참석을 했다며 자랑하거나 이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태석 신부의 뜻이 아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이태석 신부의 뜻은 무엇일까? 말보다는 실천, 교만보다는 겸손, 과시보다는 헌신, 이것이 이태석 신부가 우리에게 보내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살레시안 대학의 부총장과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 구수환 피디가 대학 앞에서 함께 했다. 살레시안 대학은 이태석 신부가 톤즈로 떠나기 전 다니던 곳이다.
 살레시안 대학의 부총장과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 구수환 피디가 대학 앞에서 함께 했다. 살레시안 대학은 이태석 신부가 톤즈로 떠나기 전 다니던 곳이다.
ⓒ 구수환 피디

관련사진보기



태그:#울지마 톤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