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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해 눈물과 콧물을 훔치고 있는 비구님 스님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해 눈물과 콧물을 훔치고 있는 비구님 스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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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딸로 태어나 스님으로 딸로 살아간 한 스님이 있습니다. 묘엄스님입니다. 그 스님의 일생을 어림해 봅니다. 두 번의 총무원장과 종정을 역임했던 아버지 청담스님 때문에 후광도, 부담도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햇살처럼 인연의 디딤돌이 돼 그녀가 성철 스님을 만나게 되는 후광이 돼 줬을 것입니다. 또 피부로만 느낄 수 있는 바람처럼 스님의 수행생활을 후원하는 순풍이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많은 것을 공부하고 더더욱 참아야 하는 부담이 됐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짓이지만, 한겨울 찬바람을 가르며 수백 리 새벽길을 나서는 것은 조금 어색하기도 합니다. 수원 봉녕사에서 봉행되는 묘엄스님의 영결식엘 참석하기 위해 새벽길을 나섭니다.

조등으로 밝힌 연등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조등으로 밝힌 연등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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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전조등이 조는 건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가 조는 건지 뭔가 꾸벅꾸벅 거리는 느낌이 들 때마다 휴게소에 들러 잠깐씩 눈을 붙이며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요했습니다. 오전 5시가 돼서야 봉녕사에 도착했습니다.

찌그러진 큰 대야에 담긴 숯불 난로

봉녕사는 동수원 나들목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정중하게 조화를 사양한다'는 글씨가 써진 선간판이 봉녕사로 접어드는 입구를 안내합니다. 조등으로 내걸린 연등 빛을 따라 들어가니 다비장이 먼저 눈에 띕니다. 주차하고 터벅터벅 걸어 연화대 쪽으로 다가가니 누군가가 저쪽에서 "누구세요?"라며 다가옵니다.  

이래저래서 왔다고 설명하니 "공양을 할 시간이니 먼저 공양부터 하라"고 안내합니다. 어둠을 밝히고 있는 연등을 따라 봉녕사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어둠으로 침묵하고 있는 경내를 두루두루 돌아본 후 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봉녕사 경내는 조용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봉녕사 경내는 조용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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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대야에 담긴 숯불이 새벽의 추위를 녹여 줍니다.
 큰 대야에 담긴 숯불이 새벽의 추위를 녹여 줍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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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반찬, 싱싱한 과일, 맛깔스런 떡들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습니다. 널찍한 접시에 밥도, 반찬도 양껏 가져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탁 여기저기에 맛있어 보이는 삶은 고구마도 있었습니다. 차도 함께 준비돼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국을 끓이고, 밥을 짓는 가마솥 아래 장작불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습니다. 찌그러진 대야에 담긴 숯불이 따뜻해 보입니다. 타고 있는 화덕에서 꺼낸 숯불을 찌그러진 대야에 담아 화로로 활용하고 있는 정겨운 모습입니다.

제물 없는 제단에 산해진미 진수성찬의 추모하는 마음들 차려져

봉녕사 경내를 몇 바퀴 돌았습니다. 대설을 하루 앞둔 한겨울이건만 여기저기서 꽃이 보입니다. 개나리도 보이고, 진달래도 보이고, 국화도 보입니다. 여느 영결식장과는 달리 묘엄스님의 제단에는 제물(祭物)이 차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영정과 위패 그리고 생화만 몇 채반 가지런하게 차려져 있었을 뿐, 사탕 하나 대추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차려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묘엄스님의 제단에는 꽃 외에 어떤 제물도 차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물을 올리지 않는 제단은 전무후무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제물이 없었다고 제물을 올리지 않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회자정리와 생자필멸, 애별이고를 실감해야 하는 제자, 도반 스님들의 애틋한 마음. 이런저런 인연으로 묘엄스님의 원적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향기로운 꽃으로 장식까지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산해진미에 진수성찬의 제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묘염 스님을 다비할 연화대
 묘염 스님을 다비할 연화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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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질을 하고 있습니다.
 가위질을 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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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를 할 연화대가 차려진 곳으로 갔습니다. 얼마 전 안성 석남사에서 정무스님을 다비한 연화대를 갈무리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전에는 통나무를 쌓고 새끼 타래를 두르는 방식으로 연화대를 준비했는데, 묘엄스님을 다비할 연화대는 연꽃으로 장식해 한층 더 장엄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연꽃 장식을 하며 법구를 넣을 입구를 뚫어 놓지 않았는지, 입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관을 밀어 넣도록 만들어진 입구를 칼과 가위로 조심스레 자르더니 너덜거리는 것이 보이지 않도록 바느질까지 합니다. 비구니 스님들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섬세함입니다.  

일곱 빛깔 무지개다리 놓이는 이적 보여

오전 9시가 되니 향하당에 모셨던 묘엄 스님의 법구를 영결식장으로 이운합니다. 사자를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을 상징하는 인로왕번이 제일 앞서고 명정과 삼신불번, 오방번 등이 차례로 섭니다.

스님의 법구를 영결식장으로 이운하고 있는 행렬
 스님의 법구를 영결식장으로 이운하고 있는 행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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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님 스님들이 공부를 하는 승가대학이었기에 종이 번이 가능했을 겁니다.
 비구님 스님들이 공부를 하는 승가대학이었기에 종이 번이 가능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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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으로 이운되고 있는 묘엄 스님의 법구
 영결식장으로 이운되고 있는 묘엄 스님의 법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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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들고 있는 번(幡·깃발)은 종이로 돼 있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의 여성스러움과 승가대학에서의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용하기만 했던 하늘에 무지개다리가 놓이는 이적(異蹟)을 보입니다.

물리적으로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것은 기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적입니다. 묘엄스님의 법구가 이운되는 시간에 봉녕사 주법당인 대적광전 처마 끝에 일곱 빛깔 무지개가 다리를 놓으니, 봉녕사에 머물던 묘엄스님의 영혼과 도를 극락으로 건너게 하는 이적의 다리가 놓인 듯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다양합니다. "어머! 어머!"하며 놀라워하는 사람, 두 손을 모은 채 뭔가를 열심히 중얼거리는 사람, 어디론가 전화를 해 "하늘을 보라"고 알려주는 사람까지….

대적광전 처마에 걸친 일곱빛깔 무지개 다리
 대적광전 처마에 걸친 일곱빛깔 무지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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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궁 앞에 마련된 영결식장에는 어느새 3000여 명의 인파가 모였습니다. 모래밭 위를 흐르는 물처럼 인파를 헤집고 다닌다는 건 참 염치없는 일입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합장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잠시 지나가겠다"는 말을 하는 것 역시 염치없는 일인 줄 압니다. 하지만 추모하는 표정을 담고, 애도하는 마음을 그리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11시가 되었습니다.

범종을 5번 울리는 명종을 시작으로 영결식이 시작

범종을 5번 울리는 명종을 시작으로 영결식이 시작됩니다. 묘엄 스님의 행장(일생동안 걸어온 길)이 소개되고 영결사와 법어, 추도사와 추모사 그리고 조사가 이어집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 회장인 명우스님이 한 영결사에서 묘엄스님은 '후불탱화'로 묘사됐습니다. 또 진제스님이 대독한 종정 법전스님의 법어 속 묘엄스님은 원통자재했던 주인공이었고,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묘엄스님을 '고타미(大愛道 瞿曇彌·부처님의 이모이며 최초의 출가 비구니)'로 추도했습니다.

묘엄 스님 영결식을 가득 메운 3000여 인파
 묘엄 스님 영결식을 가득 메운 3000여 인파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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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엄스님
 묘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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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을 좀 더 샅샅이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영결식장을 한눈에 볼만 한 곳은 비구니 스님들이 초병처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남성 스님들 군기보다 비구니 스님들의 '군기'가 더 세다고 합니다. 봉녕사 행사장이 그랬습니다. 군기인지 학승들의 관념인지 단정 할 수 없지만, 아주 무표정하거나 싸늘한 표정으로 장승박이처럼 서서 조망이 좋은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이해는 됩니다. 사진기가 흔해지고, 너도나도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자칫 행사 진행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행사 진행과는 무관할 것 같은 옆 건물 청운당 통로마저 봉쇄한 것은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영결식이 끝난 뒤에도 청운당 통로를 막은 것은 참 아쉬웠습니다.

상여꾼이 된 비구니 스님 스물네 분

영결식이 끝나고 스님의 법구를 모신 상여가 이운을 시작합니다. 묘엄스님을 모신 상여는 그동안 봐왔던 여느 상여보다 화려했습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화려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섬세함 때문에 그렇게 보였습니다. 비록 조화지만 상여를 장식하고 있는 연꽃과 연잎 등은 떨림까지 표현하는 듯 섬세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묘엄 스님의 법구를 모시고 법당앞으로 향하고 있는 행렬
 묘엄 스님의 법구를 모시고 법당앞으로 향하고 있는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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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를 멘 24분의 비구니 스님
 상여를 멘 24분의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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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을 출발한 상여가 대적광전 앞으로 이운됩니다. 40년 가까이 당신의 기도와 정성, 땀과 수행 이력이 담긴 대적광전에 사별의 참배를 합니다. 스물네 분의 비구니 스님들이 멘 상여가 차분하게 움직이더니, 법당 앞으로 와 지극한 모습으로 인사를 합니다. 꾸벅, 꾸벅, 꾸벅. 스물네 비구니 스님들이 학장스님을 대신해 지극한 모습으로 인사합니다.

여성이 매는 상여는 처음 봅니다. 스물네 분의 비구니 스님이 상여꾼이 되어 멘 상여는 처음 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결식 전 스님의 법구를 영결식장으로 이운하던 스님들 중 유독 스물네 분만 흰색 천을 둘렀습니다. 언뜻 농악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목을 두르고 허리에 질끈 동여매는 오방색 천처럼 목에 두른 흰색 헝겊을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있었습니다.   

섬세해서 화려한 꽃상여, 푸른빛이 돌만큼 박박 깎은 머리의 비구니 스님들, 흔들리는 떨잠처럼 조용조용한 발걸음. 평생을 출가 수행자로 살았지만 묘엄스님이 가시는 길에서 할머니, 어머니, 누나, 여동생, 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장 스님을 대신 해 지극한 마음으로 대적광전에 하직 인사를 올리고 있는 상여꾼이 된 비구니 스님들
 학장 스님을 대신 해 지극한 마음으로 대적광전에 하직 인사를 올리고 있는 상여꾼이 된 비구니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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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행렬 인파
 운구행렬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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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분의 비구니 스님들이 둘러멘 상여가 구부러진 비탈길을 돌아 다비장으로 들어섭니다. 비구니 스님들이 인해전술을 펼치듯 연화대 주변을 둘러쌉니다. 안전을 위해서 그런다고는 하지만 이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연화대 주변에 어정쩡하게 서성이던 기자들까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거화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산 쪽으로 달려갑니다. 

불! 법! 승! 스님, 불 들어갑니다!

나뭇가지가 가리긴 하지만 마음 편하게 다비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숨을 고르다 보니 거화를 합니다. '불·법·승' 구호에 맞춰 거화를 하니 사람들이 목소리 모아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고 외칩니다.

연화대를 장식하고 있던 아름다운 연꽃, 바느질하던 스님의 정성까지 타오르는 불길에 후루룩 타버립니다. 사람들을 따라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연화대가 이미 야트막해졌습니다.   

다비장에 도착한 운구행렬
 다비장에 도착한 운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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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화를 하니 사람들이 '스님 불 들어갑니다.' 하고 외칩니다.
 거화를 하니 사람들이 '스님 불 들어갑니다.' 하고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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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를 둘러싼 사람들
 연화대를 둘러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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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어찌나 좋은지 다비를 하고 있는 현철호(48)씨까지 조금은 당황해 합니다. 수북했던 새끼타래 연화대가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묘엄스님의 법구를 지수화풍으로 돌립니다.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가고, 피와 눈물은 물로 돌아가고, 온몸을 따뜻하게 하던 온기는 불기로 돌아가고, 들숨으로 들이마시고 날숨으로 내쉬던 숨이 공기가 돼 돌아갑니다.  

갈 사람은 가고 떠날 사람은 떠나니, 250여 명이 남았습니다. 120여 명의 불자들과 스님들이 손을 모으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탑돌이를 하듯 연화대를 돕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돌고 또 돌며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고 있지만, 그들은 묘엄스님과의 사별이 인연이 다하면 헤어져야 하는 자연의 가르침과 같다는 것을 압니다.

시퍼렇게 날 서있는 승가대학 위계질서 실감

연화대가 가라앉으니 열기도 식어갑니다. 울타리처럼 둘렀던 생목 등걸을 치우니 차분하게 가라앉은 잿더미 사이로 스님의 흔적이 된 유골들이 희끗희끗 드러납니다. 이제 잿더미를 헤치며 조심스레 유골을 습골할 차례지만 습골은 내일 진행한다고 합니다.

불꽃 속에 드러난 스님의 유골
 불꽃 속에 드러난 스님의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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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외에는 아무것도 차려진 게 없는 묘엄스님의 제단
 꽃 외에는 아무것도 차려진 게 없는 묘엄스님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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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가라앉는 연화대 앞에 합장을 하고 서있는 봉녕사 스님들
 차분하게 가라앉는 연화대 앞에 합장을 하고 서있는 봉녕사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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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엄 스님의 흔적으로 남은 유골
 묘엄 스님의 흔적으로 남은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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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비추더라도 어둠 속에서 습골을 하다 자칫 실수라도 할까 염려된 어른 스님들께서 밝을 때 습골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어른 스님들이 결정했다고 하니 어떤 스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불침번을 서듯 추위에 떨며 밤을 새워야 함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 보며, 묘엄스님께서 벼려놓은 승가대학의 위계질서가 잘 서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연화대를 비추고 있는 달빛
 연화대를 비추고 있는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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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하늘에 달빛이 비춥니다. 해와 달과 도심지의 불빛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니 주변이 컴컴해지며 달빛이 점차 밝아집니다. 일곱 빛깔 무지개다리를 건넌 묘엄스님이 달빛이 돼 쏟아지는 듯합니다. 

쏟아지는 달빛을 마음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니 쏟아지는 달빛 파장이 묘엄스님의 일생과 유훈이 느껴집니다. 묘엄스님의 가르침들을 떠올립니다.

"마음 공부는 상대적으로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자기를 단속해 인천의 사표 되고 생사에 자제하여 중생을 제도하라."

"항상 자신의 몸과 업과 뜻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청정한 본연의 자리에서 마음 씀씀이와 행동거지를 살필 줄 알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며, 스스로 참회할 줄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은 귀한 사람입니다."

저는 흙먼지 뿌옇게 묻은 바짓가랑이를 툭툭 터는 것으로 마음의 프리즘을 접으며 속세를 향해 또다시 종종걸음을 쳤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6일 묘엄스님 영결식에 다녀왔습니다. 취재에 도움을 준 <불교신문> 박부영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묘엄 스님, #봉녕사, #청담 스님, #승가대학, #현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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