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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 오리집 앞 작은 화단 옥수수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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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운영하는 동네 사랑방 같은 사진관 옆에 오리를 화덕에 구워서 파는 집이 있습니다. 북경오리집입니다만 음식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재미있는 게 여름이면 오리집 앞은 자그마한 텃밭으로 변합니다. 옥수수가 자라고 나팔꽃이 줄을 타고 올라가 오리집인지 가정집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입니다.

올여름에는 해바라기도 심었는데 세상에! 저는 그렇게 크게 자라는 해바라기는 처음 보았습니다. 옥수수를 수확(?)하고 나면 배추를 심습니다. 제가 심고 가꾸는 것은 아니지만 그 녀석들이 성큼성큼 자라는 것을 보면 출퇴근길이 즐겁습니다.

옥수수가 얼마나 탐스럽게 열리는지 할머니들은 가던 길을 멈추기 일쑤고 동네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 바래다주다가 "이게 바로 옥수수란다" 하며 아이들에게 자연학습을 시키기도 합니다. 보라색과 빨간색 나팔꽃이 피면 지나던 학생들은 손전화를 꺼내어 사진을 찍고 어떤 스님은 시 한 수 적어놓고 가기도 합니다.

욕심이 과한 할머니들은 나팔꽃 옆에 심어놓은 수국을 뽑아가기도 하는데 어쩐 일인지 오리집 주인은 미간만 찌푸릴 뿐 모른 척하기도합니다. 그리고 늦가을 심어놓은 배추를 첫눈 내릴 때쯤이면 수확을 하는데 일부러 때에 맞추어 오는 손님들도 있습니다. 다른 때와 달리 손님상이 푸짐해지는 까닭을 알기 때문이지요.

작년 늦가을에 찍은 사진입니다. 첫눈이 내렸네요.
▲ 배추를 심었네요. 작년 늦가을에 찍은 사진입니다. 첫눈이 내렸네요.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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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사진 밑에 무엇일까요?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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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우선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바삭하게 구워진 오리 사진입니다. 그리고 사진 밑에, A4용지에 빼곡히 뭔가를 적어서 코팅을 해가지고 붙여놓은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한두 장이 아니고 기둥마다 벽마다 붙어 있습니다.

뭘까? 처음 오는 손님들은 메뉴판보다 그곳으로 눈길이 먼저 가기 마련이지요. 벽에 붙은 글귀를 읽어보고는 주인 얼굴 한번 보고 자기들끼리 마주 보고 하다가 그예 웃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제가 보기에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오리집에 붙어있는 시가 생경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김소월 선생의 시부터 고은 선생의 시, 그리고 섬진강을 사랑하는 김용택 선생과 남해 미조에 사는 오인태 선생의 시까지 전국의 시인들을 다 불러다 놓았습니다.

어떤 날은 달콤한 사랑의 연시가 걸려 있고 또 어떤 날은 자연을 노래한 서정적인 시가 걸려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화해하자며 들어온 부부가 바삭한 오리 껍데기에 소주 한잔을 하고 바로 옆에 걸린 달달한 사랑의 연시에 서로가 미안하다며 손을 꼭 잡고 나가는 일이 이 집에서는 흔한 일이지요.

엄마 아버지랑 함께 온 대학생이 "저는 한시를 좋아하는데 다음에는 한시도 걸어주세요"라며 주문을 하기도 합니다. 며칠 후, 당연히 한시가 걸려 있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보통 술집 하면 간혹 손님들끼리 싸움질도 일어날 법한데 제가 옆에서 10년이 넘도록 봐왔지만 이집에서는 단 한 번의 조그마한 싸움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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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달래꽃 (김소월)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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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 (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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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리집에서 간만에 외식을 하며 주인아저씨와 술을 한잔 했습니다.

"시를 참 좋아하시는군요."

대답도 듣기 전에 손님이 오시어 주인아저씨는 아쉽게 일어나고 대신 주인아주머니가 답을 합니다.

"연애할 적에 아저씨(남편)가 편지에 시 한 수씩은 꼭 지어서 보냈어요. 그때 보내준 편지를 아직까지 모두 보관하고 있어요. 애기 아빠 60이 되는 해에 편지 속에 들어 있는 시를 책으로 묶어서 애들한테 선물하려고 합니다."

참으로 멋진 부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시 한두 수 걸려 있고 멋진 사진 한두 점 걸려 있는 술집은 있겠습니다마는, 이 오리집 사장님이야말로 참으로 시를 사랑하시는 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시를 사랑하고 즐긴다는 것은 바로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물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있다는 뜻이지요. 맛집 소개를 한다고 해놓고서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이제 음식 이야기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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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나무장작에 구운 오리 한 점 하시지요.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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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에 오리를 참나무 장작불로 화덕에 굽는다고 했지요. 북경식이랍니다. 맛이 있습니다. 기름기가 빠져서 담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탕 역시 고춧가루 하나 안 들어가서인지 아주 담백하고, 술 한 잔 뒤에 수저로 떠먹는 국물 맛은 참으로 시원하기 그지없습니다. 음식 자랑에 소홀하지 않느냐 타박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음식보다는 우리 동네에도 이렇게 멋진 분이 계시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태그:#북경오리,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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