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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부당성', '균형성', '진실성', '객관성'.

저널리즘을 통한 사회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의미 있게 하기 위한 언론의 대표적 규범들이다. 언론 본령인 비판과 감시, 견제의 전제 덕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규범·덕목과 대칭에 선 개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려하고 있다. 그건 바로 '정파성'이다. 언론의 정파성이 도를 넘어 '정파언론'으로 활개를 치고 있으니, 불편부당성, 균형성, 진실성, 객관성의 공통 적이 따로 없다. 

언론의 정파성이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주 또는 간부, 종사자들의 정파적 태도가 사실과 사실관계의 보도에 늘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파성과 대칭에 서 있는 개념을 사시로 내세워 정파성을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위장술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일보>가 사시에서 '불편부당'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 신문이 이념적 보수성향이 강한 정파적 신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정의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과 함께 '불편부당'을 사시로 삼고 있다.

<조선일보>와 함께 <동아일보><중앙일보>는 가장 많은 판매부수로 신문시장에서 트리플 과점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념적 성향이 같다. 보수적 이념성향과 보수적 정파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과점신문들이 방송채널을 갖게 된데다 <연합뉴스>와 <매일경제> 등 국가기간통신사와 또 다른 보수성향의 경제일간지도 방송의 날개를 달게 됨으로써 대한민국은 보수 일색의 날개 달린 새들이 전파를 타고 비행하는 형국이 됐다. 고 리영희 선생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란 저서에서 강조했던 말이 다시 생각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리영희 저작집8, 한길사) 책 표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리영희 저작집8, 한길사) 책 표지.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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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 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다."

선생은 생전에 늘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며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식능력과 지식, 사상과 판단력에서 좌·우 균형 잡힌 이상적 인간과 사회를 목표로 삼고 염원하는 표현으로 읽힌다.

그런데 지금 MB정부와 집권여당, 보수언론들은 온통 보수의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가득 메울 셈이다.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가 그 단초를 제공했다고 하지만, 이는 MB정부 출범초기부터 예견된 수순에 불과했다. 정권출범과 정권유지에 기여한 언론사들에게 안겨준 선물이다. 비록 정권출범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던 지상파방송들에게도 친위세력들을 앉혀 정권유지에 기여하도록 한 재주가 탁월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표로 심판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쉽지 않게 됐다. 국내 저널리즘의 진보는 보수에 비해 너무 약해진 상태다. 우선 방송을 보라. 친MB정권 방송이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종편) 모든 진영에 가득 포진됐다. 그나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규제의 철퇴가 언제 내려질지 모르는 초읽기 상황이다. 게다가 상대후보 또는 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으로 얼마든지 마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최근 여당의원 직원이 지난 10·26 보궐선거에서 보여줬다.

신문은 그렇다 치자. 지상파방송을 비롯해 종편까지 현 정권의 낙하산 인사로 득실대고 있고, 특혜와 보은으로 얼룩져 있는 비대칭적인 구도에서 내년 총선과 대선이 얼마나 공정하게 치러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동안 쌓아온 공정성의 노력은 물거품 될 공산이 크다. 결과는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아주 나빠질 수도 있다. 종편 출범이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징조들이다.   

[징조 #1] <조중동매>·종편, 하나같이 '박근혜 찬가' 일색

TV조선은 1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인터뷰 방송 중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자막을 내보냈다. (TV조선 화면 캡처)
 TV조선은 1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인터뷰 방송 중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자막을 내보냈다. (TV조선 화면 캡처)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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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MB정권의 언론장악을 심판하겠다'며 총파업을 선언한 이날, 우리 언론사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네쌍둥이 종편이 동시에 등장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찬가를 목청껏 부르면서 탄생한 양태다. 약속이나 한 듯, 채널A·JTBC·TV조선·MBN 네 종편은 모두가 하나 같이 집권 여당의 다음 유력 대선주자에 스포트라이트를 가했다.

네 종편뿐 아니라 해당 신문들은 개국 첫날 박 전 대표의 얼굴과 함께 인터뷰 기사를 지면과 영상에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이러한 정파적 보도에 대해 2일 <한겨레>는 '보수·선정' 본색 드러낸 종편 첫 방송'이란 사설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TV조선이 박 전 대표 화면에 내보낸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은 낯 뜨거운 '박비어천가'로 한국 언론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매일방송>도 '미소가 아름다운 당신, 당신의 미소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노골적인 칭송 자막을 내보냈다. (줄임) 종편은 첫 방송에서부터 언론으로서의 공적 책임 등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박 의원은 1일 오후 8시 TV조선 <최·박의 시사토크 판>을 시작으로 밤 9시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오후 10시 50분 JTBC <개국인터뷰>, 오후 11시 50분 채널A <박근혜 전 대표와의 특별 인터뷰>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평상시 언론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것과는 대조를 이뤘다. 이를 위해 박 의원은 지난달 29일과 30일 네 종편을 각각 1시간여씩 방문해 인터뷰를 녹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편을 선물로 받은 데 대한 보답 시리즈인가.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조중동매)의 '박근혜 띄우기'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종편들은 개국 첫날 밤 연달아 박 의원 인터뷰를 메인뉴스 시간에 내보낸 데 이어 2일 아침에는 지면에 다시 재탕했다. 해당 신문사들은 1면, 정치면 등에 대대적으로 실었다.

MB정부와 여당이 노린 것은 바로 이런 것일까. 지면과 영상에 파상적으로 자당 의제를 설정케 함으로써 유리한 고지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드러났다. 종편 개국 다음 날인 12월 2일 종편 모기업 신문 1면 제목들에서 더욱 충성스러운 뉘앙스가 읽힌다.

"신당 안해…한나라 재창당 이끌 것" - <조선일보>
'중앙일보·JTBC 공동 인터뷰,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 <중앙일보>
박근혜 전대표, "한나라당 속까지 확 바꿔야...내가 전면에 나설 때 아니다" - <동아일보>
MBN 개국 박근혜 전대표 인터뷰 "조세체계 전면 개편을" - <매일경제>

이들 신문은 1면도 모자라 2~3면 등에서도 박 의원 인터뷰 기사를 비중 있게 실었다. <기자협회보>는 2일 '종편도, 신문도 하나같이 박근혜 전 대표'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 전 대표는 4년여 만의 언론 인터뷰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이라며 종편과 '조중동매'의 집중적인 '박근혜 찬양보도'를 우려했다. 박 의원의 이 같은 언론 인터뷰는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 경선 이후 4년 4개월 만이다.

[징조 #2] 연합뉴스TV 첫 인터뷰도 박근혜, 왜? 

<뉴스Y>의 개국을 맞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일 <뉴스Y> 보도국을 직접 방문했다.
 <뉴스Y>의 개국을 맞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일 <뉴스Y> 보도국을 직접 방문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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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2시 개국한 <연합뉴스> 보도전문채널인 뉴스Y도 첫 인터뷰 대상을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으로 선정했다. 이날 <연합뉴스>와 <기자협회보> 등에 따르면 뉴스Y의 개국을 맞아 1일 오후 2시 10분쯤, 박 의원이 중구 수하동 센터원빌딩 5층 뉴스Y 보도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의원은 보도국 한가운데 서서 이명조 연합뉴스 정치부장, 고승일 뉴스Y 정치부장, 신지홍·김화영 연합뉴스 정치부 기자 등과 40여 분간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의원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박 의원의 인터뷰는 사전에 준비된 듯 했다. 기자들은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보며 의견을 물었고 박 의원은 비교적 여유롭게 대답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박 의원은 기다리고 있던 박정찬 연합뉴스·연합뉴스TV 사장을 비롯해 김창회 연합뉴스TV 전무, 김석진 보도본부장 등과 인사를 나눈 뒤 7층 임원실로 자리를 옮겨 티타임을 가졌다. <기자협회보>는 1일 '연합뉴스TV 첫 인터뷰 박근혜 전 대표'란 제목의 기사에서 "인터뷰를 꺼려온 박 전 대표가 개국 첫날 뉴스Y 보도국까지 찾아오자 뉴스Y 관계자들은 고무된 표정이었다"면서 "인터뷰 직후 '수고했어', '빨리 편집해서 내보내자'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고 전했다.

뉴스Y는 12월 한 달 동안 5시간, 10시간, 18시간 등 단계적으로 방송 시간을 늘린 뒤 내년 1월 1일부터 전일 방송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다른 종편들과는 달리, 각 언론사에 대한 의제파급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난 2003년 제정된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 지정된 연합뉴스는 국내 주요 중앙 일간지, 방송사, 지방 일간지 등과 계약을 체결하고 유료로 뉴스 콘텐츠를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뉴스 의제설정의 파급력은 전파를 통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징조 #3]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앞서...오세훈·나경원 차세대 리더?" 

'MBN이 내보낸 개국특집 여론조사 결과'
 'MBN이 내보낸 개국특집 여론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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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와 MBN이 첫 시도를 했다. 종편 개국을 맞아 내년 총선과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내보낸 것. 1일 보도한 뉴스에서 MBN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는지 물어봤다"며 그 결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29.6%,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25.5%로 접전을 이뤘고, 그 뒤를 문재인과 유시민, 오세훈 등이 이었다"고 전했다.

"양자대결에서는 안철수 교수가 오차범위 내에서 박근혜 전 대표보다 높았고, 박근혜, 문재인 대결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26.4%p 앞섰다"는 내용도 보도했지만 주로 포인트는 박 의원에게 모아졌다. "박근혜 전 대표를 좋아하는 이유로 아버지의 영향과 정치적 경험이 많다는 점이 꼽혔다"는 내용에서 읽힌다. 더욱 이상한 대목은 그 다음이다.

MBN은 개국특집 여론조사 결과를 잇달아 내보냈는데, 3일엔 "우리 국민은 차세대 리더 정치인으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을 꼽았다"는 내용이 아연할 정도다. 기사는 "MBN·매일경제와 한국갤럽이 조사한 '국민이 생각하는 차세대 리더는 누굴까'라는 물음에 대한 조사결과, 전체 응답자의 17.2%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꼽았고, 그 뒤를 나경원 전 의원과 김두관 경남도지사 등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은 무상급식 반대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수많은 논란만큼이나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것으로 풀이된다"며 "나경원 전 한나라당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그 대신 여권 차세대 리더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기사는 또 "나 전 의원은 전체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20대와 30대로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설문조사는 전국의 19세 이상 남녀 102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범위는 ±3.1%포인트"라고 한 기사에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얼마나 더 이런 우스꽝스런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을지 걱정을 자아냈다.

다른 종편들도 이 같은 여론조사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간 선거철만 되면 과열 경쟁했던 해당 신문사들의 보도행태에서 읽힌다. 더 많은 지면과 영상에서 여론조사를 빙자한 정치여론조사 또는 여론왜곡 현상이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독한 정파성 저널리즘, 왜곡된 전파 타고 대한민국 상공 '비행'

"언론의 생명은 공정성과 중립성입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권력과 가까운 사람을 보내면 안 되죠. MB정부는 언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1월 30일 <기자협회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는 종편 개국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지형은 보수신문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데 거기에 방송까지 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여론다양성에 역행하는 것이고 편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시절 언론의 다양성, 지역분권,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신문발전지원법을 만들어 그나마 지역언론 살리기에 주력했던 그가 종편 개국을 앞두고 보수·서울언론의 쏠림현상에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면서 "기본적으로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려는 생각 자체를 갖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MB정권 임기종료 1년여를 앞두고 방송을 시작한 종편 네 곳의 프로그램은 방송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다시 갖게 한다. 종편과 정부가 입이 닳도록 떠들던 방송의 다양성이나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요란한 홍보를 하고도 첫날 시청률이 1%를 간신히 넘는 프로그램이 네 곳을 통틀어 하나뿐인 것은 시청자들의 반응이 차가웠다는 방증이다.

거기에다 우려했던 보수적·정파적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네 곳 모두 내보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상식을 갖춘 언론이라면 공정성과 공공성의 원칙을 잃어선 안 된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에 대한 공세적 질문은 볼 수 없었고, 그의 정치적 포부를 전달하거나 신변잡기성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판사들이 봐도 불평등 조약인 한미FTA 반대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고,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비서가 지난 10월 26일 재보궐선거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야권 서울시장 후보의 누리집을 분산서비스(디도스) 공격한 범인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데도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종편과 해당 신문들이 '박근혜 찬가'에 열중하는 보도태도는 언론의 정파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기록될 만하다. 참으로 지독한 정파성 저널리즘이 왜곡된 전파를 타고 대한민국 상공을 삐딱하게 날고 있는 형국이다. 참담한 결과가 오기 전에 막아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들과 집단지성을 중심으로 한 진보의 날개 힘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정파성, #종편, #조중동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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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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