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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봉 저 <미안해요! 베트남> 겉그림.
 이규봉 저 <미안해요! 베트남> 겉그림.
ⓒ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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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과 임신4개월의 조카며느리를 잃었다. 조카며느리는 한국군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어린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시신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양쪽 다리를 잡아 당겨 찢어져 있었다."

"한국군은 민간인을 학살한 후 노인과 아이들을 잡아 물에 던지기도 했다."

이규봉 교수가 최근 펴낸 <미안해요! 베트남>(푸른역사, 350쪽)에 소개된 일부 구절이다.

수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2010년 1월 베트남으로 향한다. 이 교수는 다른 일행 3명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16일 동안 북베트남 수도였던 하노이에서 남베트남 수도였던 사이공(지금의 호찌민)까지 장장 1798킬로미터를 종주했다.

하루 평균 112킬로미터의 베트남 땅을 달린 이유에 대해 그는 "늘 침략만 당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난 우리 한민족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얼마나 잔인해졌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전거에 몸을 실은 지 오래지 않아 이 교수 일행은 학살의 현장을 접한다. 베트남 중부에 있는 꽝암 성, 꽝응아이성, 빈딘성, 푸옌성, 카인호아성…. 이 교수는 '한국군이 주둔했던 곳마다 어김없이 참혹한 민간인 학살이 뒤따랐음을 확인하고 전율한다.

생존자들을 만나들은 '기관총을 난사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붙태우고, 아이들이 머리를 짓부수거나 목을 자르고, 여자들을 돌아가며 강간한 뒤 살해하고, 임산부의 배를 태아가 빠져나올 때까지 군화발로 짓밟고, 땅굴에 몰아넣고 독가스로 질식사시킨' 한국군의 다양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례를 전한다.

이 교수 일행은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의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일예로 베트남 한 시골마을 여인들이 부르는 자장가 노랫말은 이렇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저들이 36명을 죽여 폭탄 구덩이에 시신이 가득 쌓였구나/ 아가야 쭈옹딘 폭탄 구덩이를 기억하거라...'

한국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마을은 9개의 학살 장소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이 교수 일행들은 마을 언덕에서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는 증오비와 대면하기도 한다.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자전거 일주 (오른쪽이 저자 이규봉)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자전거 일주 (오른쪽이 저자 이규봉)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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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베트남 정부가 최근 내놓은 자료를 근거로 베트남전쟁 기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집단학살은 80여 건에 90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다. 또 '깨끗이 불태우고, 깨끗이 파괴한다, 놓치는 것보다는 오인사살이 낫다, 보이는 것은 모두 베트콩이다, 어린이도 첩자다'는 당시 한국군 전술지침을 소개하며 민간인학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 책은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알리는데 멈추지 않는다. 그보다는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국민보도연맹사건 등 한국전쟁을 전후한 10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 학살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광주 민간인학살로 연결돼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원전 수주를 핑계로 아랍에미리트 군대 파견'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가 베트남 민간인학살지 기행문에 이어  제주 4.3사건 현장 기행문을 비롯해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다룬 까닭이 여기에 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여러 책이 출간됐음에도 이 책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기행문을 통해 베트남 민간인 학살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지리와 역사, 베트남 전쟁, 한국의 크고 작은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한국 민간인학살의 공통점을 찾아내 제시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밖에도 베트남과의 관계를 비롯해 미래를 위한 방향을 깐깐하게 제안하고 있다.

이 책은 박치음 교수가 시를 짓고 곡을 만든 <미안해요! 베트남>의 노랫말로 맺고 있다.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둠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자욱마다/ 어둠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러운 흔적마다/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탄텃 씬로이 베트남'

덧붙이는 글 | 저자인 이규봉 교수는 배재대학교 전산수학과에 재직 중이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대전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전국악단 피리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미안해요! 베트남 -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가다

이규봉 지음, 푸른역사(2011)


태그:#미안해요 베트남, #민간인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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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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