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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사법 주권이 달린 사안이다. (판사의) 침묵이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
"(판사의 정치적 의견표명은) 신중해야 한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과 '생각 없다'는 말은 동의어가 아니다."

한미FTA 강행 처리를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고 있는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사회 일각에서 판사의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판사는) 영혼이 없어야 한다는 도그마에 빠져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법원 내부에서 최 판사는 조용한 판사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오죽했으면 최 판사가 그런 글을 썼을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8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보인 그의 태도도 이른바 '튀는 판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공인이나 "공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은 널리 허용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의 여파)와 관계없이 묵묵하게 판사로서 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미FTA 강행' 비판 뒤 팔로어 30명→2만 7천명

 최은배 부장판사는 28일 인터뷰에서 "공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은 널리 허용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묵묵하게 판사로서 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은배 부장판사는 28일 인터뷰에서 "공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은 널리 허용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묵묵하게 판사로서 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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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인터뷰를 전하기에 앞서 우선 지난 22일로 거슬러 가보자. 한미FTA가 국회에서 강행처리 되던 그날 페이스북에선 어떤 일이 있었을까.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 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

당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이와 유사한, 아니 이보다 훨씬 수위 높은 글들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어쩌면 이 글도 수많은 의견 중 하나로 묻혀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글쓴이가 최 판사라는 사실을 캐낸 뒤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최 판사는 사적인 공간의 성격이 짙은 페이스북 대화를 문제삼는 건 부적절하다면서도 논란의 확산을 우려해 글을 내렸지만, <조선>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들은 '정치적 편향' 운운하며 그의 판사로서의 자질을 문제삼았다. 심지어 <조선>은 사설을 통해 "법관은 실제로 공정하게 재판해야 하지만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싫다면 법복을 벗는 게 정상"이라며 사퇴를 권고하기까지 했다. 

이에 호응하듯 대법원도 29일 공직자윤리위원회를 열어 이번 사건에 대한 논의와 함께 판사들의 SNS 사용 가이드라인 제정 필요성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가공무원법이나 법관윤리강령에는 SNS와 관련된 조항이 없다. 다만 강령에는 법관에 대해 ▲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공개적 논평이나 의견 표명금지 ▲ 직무수행에서 정치적 중립 ▲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 가입 금지 ▲ 선거운동 등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활동 금지 등의 규정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행 규정상 최 판사에게 불이익을 줄 법적 근거는 없지만, 대법원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23일부터 SNS에서는 최 판사와 온라인 친구맺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또한 "(최 판사 때문에) 판사와 법원을 보는 나의 시각을 교정하게 되었다", "소신있는 행동을 지지한다"거나 "판사님 뒤에는 모든 권력의 원천인 시민들이 있습니다, 부당한 권력에 탄압받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는 격려와 지지 의견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뼛속까지 친미", 감정적이지만 전체 맥락 고려해야

재판 업무 때문에 바쁘다는 그와 28일 오후 어렵게 전화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300여 명에 불과하던 페이스북 친구가 800여 명으로 늘어났고, 트위터 팔로어는 30명에서 며칠만에 무려 2만 7천여 명으로 늘었다.(29일 자정 기준) SNS의 효력을 실감할 것 같다. 하루 아침에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럽진 않나. 
"사실 잘 모르겠다. 부담스럽진 않은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트위터는 존재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 22일 올린 글을 보면 '뼛속까지 친미'와 같은 표현이 나온다. 이미 언론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좀 더 문맥을 다듬었어야 했다고 보나, 아니면 그냥 친구에게 편하게 얘기한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까지 고려를 안 한 건가.
"이거 자칫하면 '난 잘못한 게 없다' 이렇게 비칠지도 모르는데.(웃음) 다소 감정적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라. 토론과 소통을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가 민의의 전당에서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저의 소회를 짧은 글로 올린 것이다. 이게 워낙 큰 사안이고 또 함축적으로 쓰다 보면 이 정도의 표현은 공익의 관점에서 볼 때(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은밀한 것을 폭로할 땐, 개인의 명예나 인격을 더 배려해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평가나 비판의 대상이 대통령, 고위 관료와 같이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위치에 오른 공인이라면 이 정도의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도 단지 욕을 먹었다고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쳐다보는 것과 같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표명도 존중해야" 

 <조선일보>가 지난 25일자 1면에서 다룬 최은배 판사 관련 기사.
 <조선일보>가 지난 25일자 1면에서 다룬 최은배 판사 관련 기사.
ⓒ 조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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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판사의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 허용돼야 한다고 보는가.
"(판사의 의견표명이) 신중해야 한다는 데 저도 동의한다. 특히 판사의 판결 자체가 의견표명일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사건 처리나 직무 수행에서 오해 살 수 있는 언행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번 사안만 놓고 보자. 내가 당장 이(한미FTA 관련) 재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또 ISD(투자자 국가소송제도)는 사법 주권 자체에 대한 현안도 포함돼 있다. 우리(판사)가 사법 현안에 대해선 의사표명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상황에 따라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이상할 때도 있지 않나. 이번 건도 그렇다.

일반적인 공무원의 관점에서 보자면 업무 수행에서 정치적 편향성이 나타나지 않는 한 (정치적 의사표현이) 허용되는 게 맞다. 그런데 '정치적 중립성=무색'이라거나, 생각없어야 한다, 영혼이 없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도식은 허상이고 도그마일 수 있다. 예컨대, 정교분리 원칙이 있다고 해서 종교 자유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 만일 페이스북에서 어떤 판사가 최 판사와 반대로 한미FTA를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고 치자. 이런 의견표명도 존중해야 하나?
"엊그제(25일) 이정렬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대한민국과 우리 후손의 미래를 위해 한미 FTA를 통과시키신 국회의원님들과 한미안보의 공고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대통령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더라.(웃음) 물론 역설적인 표현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가치판단을 배제하여) 몰가치적으로 (의견표명을 존중하는 관점으로) 봐야 하지 않겠나."

"반FTA 판사라서 재판 못맡긴다? 사상검증에 불과"

- <조선> 기사를 보니 어느 판사의 말을 인용해 "최은배 판사가 FTA 사건 재판할 수
있겠나"라고 제목을 달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FTA)반대를 표명했기 때문에 FTA 반대론자다, 정권과 반대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현안에 대해선 재판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확대해석하는 건 동의 못한다. 가령 FTA 반대 시위를 하고 온 사람을 당신이 재판할 수 있겠느냐고 했는데 이건 집시법 위반이 쟁점이지 FTA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당신의 생각이 드러났으니까 판단하면 안 된다, 이건 사상검증이나 이념몰이다. 때문에 이건 경계해야 하고 그런 생각에 대해선 반대한다. 다만 FTA 자체가 쟁점이 되었을 때, 재판의 근거 법령이 되고 해석에 관한 문제가 되었을 때, 더 나아가 FTA 위헌 문제, 여기에 관해서는 찬반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 우리법연구회 회원으로서….
"우리법연구회와 이번 일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연관 짓지 말아달라."

- 최근 몇 년간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기자가 보기엔 2009년 촛불 재판 개입 사건 이후에 보수언론 등에서 지속적으로 '색깔론' 공격을 하는 바람에 판사들이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정리한 데서 원인이 있다고 보는데.
"이번에 보수언론이 한 것처럼 그때도 위축효과를 보려고 했다는 게 맞다. 다시 말해 기사화해서 망신줄 테니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더 극단적으론 재판을 못하게 하겠다, 그런 의도가 있었다. 다만 이번에 제 의견표명은 우리법연구회와는 관련이 없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린다."

"거취 표명? 원래 내 일은 재판, 묵묵히 그대로 갈 것"

-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사실은 알고 있나.
"보도가 나와서 (열린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 윤리위 결과에 따라 거취 문제를 고민할 수도 있나.
"이대로 담담하게 그대로 갈 거다. 다른 생각은 없다. 계속 인터넷에서 뭐라고 하는 바람에… 지금 좀 정신이 없지만 원래 제가 하는 일은 재판이다. 이번주 재판 준비도 할 게 많다. 우선 그걸 먼저 해야 한다."

최 판사는 SNS에서의 의견표명으로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SNS에 넘쳐난다. 최 판사는 누리꾼들의 관심에 관계없이 판사로서 본분을 지키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는 27일 트위터 팔로어들에게 "일일이 답글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연대가 무엇인지 새삼스레 느낍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어느새 연대를 떠올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넷을 보니 <조선>이 '정치편향 부장판사 논란 2탄'을 내보냈다. 이번엔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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