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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이 간담회 시간을 갖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이 간담회 시간을 갖고 있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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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났다. 그와 별다른 인연도 없는 나, 길거리에서 스치듯 만난 거냐고? 아니다. 그가 평소 업무를 보는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정식으로 대면했다.

지난 19일 오후 4시, 서울에서 활동하는 풀뿌리·시민사회단체 대표·활동가들이 박 시장과의 간담회를 한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발동해 따라나섰다. 이날 만남은 향후 서울시와 풀뿌리·시민단체들의 건전한 관계설정 방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토요일이었음에도 박 시장은 일정이 빼곡해보였고, 마침 남는 시간이 조금 있다고 해 성사된 만남이었다.

박 시장을 만나러 시장집무실에 들어가며, 개인적으로 한 가지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그는 평소 '마을 만들기', '지역공동체 복원' 등을 자주 강조하곤 했는데, 시장으로서의 '지역'에 대한 의지와 철학을 재차 들어보고 싶었다. 박 시장은 "여러분들과 같은 지역·풀뿌리단체들이 1000개는 돼야 서울이 바로서지 않을까"란 말로 시작해, "(풀뿌리에서 활동하는)여러분들이 없으면 나는 시체야(웃음)"란 농으로 말을 마쳤다.

솔직히 나는 박 시장의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니 적어도 두 가지만큼은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하나는 '일벌레'라는 세간의 평이 말해주듯 일에 대한 열정과 열의가 넘쳐보였다는 것. 더 중요한 건, 현재 제도권에 있는 그 어떤 정치인·관료보다도 '지역'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철학적 지향이 분명해보였다는 점이다.

'중앙정치'와 '중앙이슈'만이 판을 치는 한국사회다. 박 시장이 만약 서울이라는 삭막한 대도시에서 '지역'을 찾아내고 조직하고 되살리는 데 제대로 판을 깔아주는 '첫 번째 시장'이 된다면, 그는 분명 성공한 시장이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지역단체들을 위한 박 시장의 흥미로운 제안... "빈 공간 잘 찾아보세요"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을 방문한 풀뿌리, 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일터를 소개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의 모습.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을 방문한 풀뿌리, 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일터를 소개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의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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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은 "우리가 그동안 전국적인 일을 하느라, 서울이란 '지역'은 놓치고 있었다"며 "앞으로 서울을 터전으로 하는 많은 단체와 활동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그가 당선된 과정만 봐도 '지역이슈' 등은 전혀 부각이 안 되고, '정권심판' 등의 중앙정치의 재판격인 구호가 주를 이루지 않았던가.

유명 중앙정치인들은 총출동했고, 언론의 관심도 'MB와 한나라당 심판이냐 아니냐'에 집중됐다. 한국의 모든 선거는 거의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지역'과 '자치'란 단어는 아직 요원해 보이기만 한 상황에서, 박 시장은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이윽고 박 시장은 첫 번째의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서울시 소유의 빈 공간을 한 번 잘 찾아보세요. 물론 아무나 빌려줄 순 없는 거고, 계획이 좋고 잘 하는 지역단체가 있으면 공간을 마련해줄 방안을 찾아볼 수 있지 않겠어요?"

열악한 풀뿌리·시민사회단체의 현실을 모르면 나올 수 없는 생각이었다. 현대사회에서 깨져버린 만남과 관계를 복원하고자 대안적인 활동들을 조직해보자는 게 풀뿌리·주민단체들의 기본모토인데, 만남의 기본적 토대인 '공간' 마련은 서울에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를 토대로 운영하는 가난한 단체들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만 해도 값비싼 보증금과 월세를 부담할 형편이 못돼, 염치불구하고 다른 단체 사무실에 책상 놓고 '더부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주위에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만 주어져 있어도, 지역에서 많은 대안적인 '작당모의'들이 파생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박 시장은 "지역에서 열심히 '마을 만들기'나 '주민조직'활동 등을 펼치는 단체들이 있다면, 서울시가 해야 할 공익적인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니 공간제공 정도의 멍석을 깔아주는 건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와의 만남을 마친 후, 우리 참석자들은 '놀고 있는 서울시 공유지, 시민들께 돌려드립니다'라는 모토의 사업을 벌여나가 보자는 논의를 해봤다. 보다 계획이 구체화된다면, 실제 실현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결국 주도하는 건 풀뿌리·주민·시민사회가 돼야"

 서울시청 시장집무실 풍경. 시민들이 손수 적은 '시장에게 바라는 점'을 벽에 붙여놓은 모습이다.
 서울시청 시장집무실 풍경. 시민들이 손수 적은 '시장에게 바라는 점'을 벽에 붙여놓은 모습이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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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박 시장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예산이나 인프라지원은 서울시에서 하겠지만, 결국 (실질적인 운영 등에 있어)확실한 주도는 풀뿌리·주민·시민사회가 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그는 "복지도 시에서 일방적으로 주고 끝내는 방식이 아닌, 받는 자에게 굴욕감을 주는 방식이 아닌,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주민들 스스로 돕고, 각자의 가진 것과 재능을 공동체에 투여하며 상부상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와 나의 생각이 완전히 같진 않겠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지역'을 주목하게 된 것도, '국가복지'가 갖는 한계 때문이다. 국가주도의 강력한 재분배정책을 펴는 건, 일견 타당한 면도 있지만 한편에선 주민·대중들의 참여를 배제해고 주체성을 탈각시키는 한계도 상존한다. '중앙 엘리트의 분배'와 '서민대중의 수혜'라는 이중구도를 깨고, 주체적인 참여와 자치를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대면적인 만남과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건 결국 '풀뿌리·지역'공간에서 잉태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의 일상이 '시장에 의해 식민화'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논리가 강력히 지배하고 있기에, 지역에서 '비시장'적인 대안활동을 펴나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결국 예산 혹은 인프라지원, 정보제공 등의 '멍석 깔기'는 (지방)정부에서 적극 장려해야할 필요가 생기는데, 박 시장은 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박 시장은 "핵심은 지역 밑바닥에서 발로 뛰면서 실천할 사람과 단체들인데, 여전히 우리 풀뿌리는 취약한 상황"이라며 "그동안은 행정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었지만 내가 있는 동안은 열심히 노력해볼 테니, 시와 함께 서로 힘 북돋으며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박 시장은 "마을과 지역공동체 만들기를 독려하기 위한 별도의 본부와 중간지원기구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당국과 지역풀뿌리현장을 잇는 중간지원기구를 두고, 여기에 서울시와 풀뿌리·시민단체들이 함께 참여해 민/관 합동기구로 운영하되, '갑을관계'로 흐르지 않도록 '민'이 주도하는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 중간지원기구에서는 마을 만들기 교육부터 전국·국제적 사례공유, 실제 지역에서 실현해보려는 자에 대한 컨설팅 등을 시도해보겠다고 덧붙였다.

박원순을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라, 그를 '활용하는' 건 어떨까

90여 분 동안의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며 머리에 번뜩 든 생각.

'서울에서 풀뿌리 혹은 주민조직, 지역경제 관련 활동을 하거나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앞으로의 3년은 활용여부에 따라 굉장한 기회이자 도전일 수 있겠다.'

박 시장이 알아서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박 시장으로 인해 열린 이전에는 없었던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아직은 황무지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일 박 시장은, 지역과 삶의 현장에서 올라오는 '아이디어'와 '정책제안'에 매우 목말라있어 보였다. 한 참석자는 농담 섞인 어투로 "이제 우리가 '갑'이야. 정책 잘 만들어서 공무원들에게 시켜야 돼'란 말을 던지기도 했다. 지난 10년 간 서울시와 서울지역 풀뿌리단체들이 어떤 소통이나 협력도 없었던 전례에 비추면, 상전벽해다.

그는 우리와 헤어지며 "여러분들 없으면 나는 시체야"란 농을 던졌는데, 그 말속에서 나는 '번듯한' 시청 집무실에 입성한 이면에 가려져 있는 고뇌와 외로움 같은 게 느껴졌다. 그가 '알아서 잘 하겠지'라 여기고 가만히 놔뒀다가는, '뜨거운 기대' 속에 출범해 '차가운 실망'으로 마감한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문득 스쳤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이날 만남이 일회적인 간담회로 끝나지 않고, 박 시장이 내 눈앞에서 밝힌 강한 의지와 초심을 잊지 않고 있으니, 제대로 실현해보라는 '푸시'의 의미가 가득 담겨 있다.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시장을 세웠다'고 만족하며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새로 생긴 공간을 활용해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모아내고 다양한 형태로 개입해고 실천해야 '새로운 서울'을 위한 토대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박 시장도 이를 잘 아는 듯 "(나 혼자서 이룩한다기보다)시민들의 자발적인 풀뿌리·시민사회가 강력히 형성돼야, 정치도 행정도 바로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남은 시간은 3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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