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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일지'(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 설갑수 옮김, 1999)'.
 '광주일지'(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 설갑수 옮김, 1999)'.
"의식 있는 미국인 또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단순히 이 책이 한국 최근대사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만이 아니라, 광주의 비극이 워싱턴과 서울에 의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68) 시카고대학 교수가 <광주일지>(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 설갑수 옮김, 1999)에 쓴 서문 중 일부다. <광주일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기록, 1985)의 영문 번역서다.

실제 이 책은 미국, 캐나다 등 여러 대학에서 한국현대사 강의 교재로 채택돼 사용됐으며, 한국을 이해하기 위한 대표적인 필독서로 꼽혔다. 그러나 더 이상 <광주일지>를 손에 든 미국인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게 됐다. 미국 출판사의 사정으로 책이 절판됐기 때문이다. <죽음을 넘어...>의 실질적인 집필자인 이재의(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55)씨는 지난 8월 광주시에 <광주일지>의  재출판과 안정적인 출판시스템 확립을 위해 공적 기관이 미국 판권을 인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재의씨는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5·18 민주화운동을 삭제하기로 한 것을 보면서 분노를 넘어 자괴감이 든다"며 "오늘날 이런 역사를 지켜내지 못한 황당한 사태는 우연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에 대한 국내외에서의 폄훼와 절판으로 이어지는 참담한 현실의 반영"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와 관련 광주시는 <광주일지> 판권 인수 및 재출판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에 착수했으나, 과거 이와 유사한 사례가 없었고, 5.18기념재단과의 협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재출판에 필요한 예산 확보가 미뤄지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오마이뉴스 단독인터뷰가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신양파크호텔에서 진행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오마이뉴스 단독인터뷰가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신양파크호텔에서 진행됐다.
 지난 2007년 5.18 민주화운동 27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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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읽은 미국 대학생들의 반응은?... "감동"

5·18 민주화운동의 전모를 해외에 본격 소개한 최초의 영문 서적인 <광주일지>가 출판된 것은 지난 199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출판부가 '아시아 태평양 기록 시리즈'(Asian Pacific Monograph Series)의 일환으로 제작한 뒤 북미권에 2000여 권이 판매되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대학 출판부의 한계로 인해 특별한 홍보작업이 없었지만, 미국 내 한국학 연구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대학 교재 등으로 지속적인 판매가 이뤄진 것이다.

<죽음을 넘어...>의 영문 번역서가 출간된 것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려고 했던 재미언론인 설갑수(42)씨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그는 대학원 친구이자 현재 소설가로 활동 중인 닉 마마터스와 함께 미국 현지에서 3년간에 걸쳐 <죽음을 넘어...>를 번역, 재편집했다. 설씨는 물론 함께 작업을 한 사람들은 돈 한 푼 받지 않았다. "광주의 진실을 미국인들의 심장에 새길 수 있는" 영문판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설씨는 책이 출간될 당시 '기적'이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책이 출판된 후 첫 5년 동안 미전역에 퍼져있는 대학생들로부터 '책이 감동적이었다'는 식의 이메일을 꽤 많이 받았다. 불란서어판이나 서반아어판을 내자는 제안도 받았다. 또한 어떤 마케팅 노력이나 '로비'없이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북리뷰가 실린 건 <광주일지>의 가치가 빚어낼 수 있는 기적이었다."

그러나 'UCLA가 존재하는 한 책이 절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출판부 편집장 레슬리 에반스가 은퇴하고, '기록시리즈'에 대한 UCLA의 재정 지원이 끊기면서, 약 1년 뒤인 지난 2007년 책이 절판됐다. 이 책이 절판됐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드물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 번역서인 '광주일지'의 북리뷰가 실린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인터넷 화면 캡쳐)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 번역서인 '광주일지'의 북리뷰가 실린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인터넷 화면 캡쳐)


당시 절판 소식을 접한 설씨는 난감했다. 생활인으로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다시 출판사를 찾아 에이전트를 구하고, 제안문을 작성하고, 편집자와 마케팅담당자를 만나서 프레젠테이션 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5~10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등의 문제는 개인이 짊어지기에는 쉽지 않은 부담이었다. 정작 '광주의 유산'을 외면하는 광주에 대한 서운함도 적지 않았다.  

<광주일지> 절판 4년 만에 설씨가 재출판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극우인사인 지만원(68)씨 덕분이었다. 지씨가 지난해 8월 출간한 <솔로몬 앞에 선 5·18>이라는 책에서 <죽음을 넘어...>와 북한 작가가 서술한 일부 광주 관련 서적에 사실관계가 비슷한 여러 대목이 있다면서 황석영씨의 저작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설씨가 화가 난 것은 지씨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라 그에 대한 광주쪽의 무반응이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 전두환 타도' 외에는 세속의 모든 가치가 무의미해 보이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이제 생활인으로 살다보니, 참 별일이 다 생기더라. 이에 대해 변변히 대응을 못하는 광주의 모습에 대해서도 실망했다. 결국 책을 번역한 저 역시 책임을 느끼게 됐고, 생활인의 틀을 벗어나서 하던 일이라도 마무리하는 게 옳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난 6월 UCLA로부터 판권을 돌려받았지만, 여전히 책을 안정적으로 출판해 줄 곳을 찾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기록, 1985).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기록, 1985).

결국 설갑수씨는 광주의 이재의씨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씨는 강정채, 김성종 등 광주지역 재야인사들과 함께 <광주일지> 판권 인수와 재출판 작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재의씨는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개인들의 노력과 희생에만 의존해서 책을 출판하는 것은 이제 한계가 명확하다"며 "<죽음을 넘어...> 영문판은 국내판과 더불어 5·18 현장에 대한 가장 소중하고 생생한 기록물이기 때문에 어떤 기록물보다 공적인 기관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죽음을 넘어...>는 단지 대한민국 특정 지역, 특정 정치상황 하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처절한 투쟁에 대한 인류사의 보편적인 기록물"이라며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약탈적인 사태를 노정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광주일지>는 결코 절판되어서는 안 될 세계 인류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의 피 묻힌 미국 정책 결정권자들"... '미완의 진실'로 남은 '5·18'

<광주일지>는 <죽음을 넘어...>를 단순 번역만 한 것이 아니다. 우선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장문의 서문을 썼다. 한국 상황에 어두운 외국인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한국의 천안문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전두환 정권의 광주시민 학살에 개입한 미국 정책 결정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나에게 한국전쟁 이후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가장 구역질나는 위선과 기회주의와 인종주의의 표현이었으며 미국이 표방해 왔던 민주주의 이상에 대한 최대의 배신이었다. 미국인들은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 진압 과정에 대한 비판과 달리) 미국이 직접 진압에 관여했던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대부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커밍스 교수는 또 <저널 오브 커머스> 기자였던 팀 셔록이 1996년 정보공개법에 의해 획득한 광주항쟁 관련 비밀해제 문건을 언급하면서 "미국은 최고위 정책 결정 과정에서 명백히 전두환과 그 일당을 지지하기로 했다"며 "광주에서 살해되거나 고문당한 젊은이들 수백 명의 피를 그들 손에 묻혔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광주일지>의 한국어 원본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현장보고서다. '광주전남민주주의청년연합'의 비밀 프로젝트로 1985년 출간됐다. 기독교계로부터 자료 수집 및 출판 비용 일부를 지원 받고, 대표 집필자인 이재의, 조양훈과 보조자 10여명이 참여, 6개월에 걸쳐 비밀리에 작업이 진행됐다. 200여 명의 항쟁 참가자 등의 인터뷰를 비롯해 광주시민들이 참여한 공동의 결과물인 셈이다. 집필 완료된 기록물을 작가 황석영에게 의뢰하여 감수한 뒤, 그의 이름으로 펴냈다.

출판 당시 당국으로부터 '불온서적'으로 지목돼 수차례 압수되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약 1백만 부 이상 읽히는 지하 베스트셀러 서적으로 알려졌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광주항쟁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범국민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1987년 6월 항쟁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이 책은 원본 그대로 1986년 일본의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일어본으로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광주일지> 재출판 제안서 참고)
<광주일지>가 <죽음을 넘어...>와 다른 또 다른 특징은 바로 팀 셔록의 기고문 '워싱턴의 시각'(The view from Washington)이 추가됐다는 점이다. 셔록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 국무성의 비밀문서 '체로키파일'을 집요하게 추적해 미국의 개입 전략을 최초로 알린 인물이다. 특히 셔록은 기고문에서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워싱턴 지하창고'에 묻혀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록 어느 것도 미국 관리들이 특수부대가 광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수부대가 전두환이 자행한 진압에 사용된 것을 카터 행정부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공식입장과 모순된다. 중요한 점은 나의 정보공개 요청을 검토한 미 정부 부처 간 협의체는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광주와 연관된 위컴 주한미사령관과 그 한국 카운터파트와의 회합 내용, 사령관과 미국 정부 간의 통신내용 공개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설갑수씨는 "<광주일지>에 대한 관심이 독립적 연구로 이어져, 미국이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국방성, CIA, DIA(국방부 정보국)의 광주항쟁 자료를 공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미국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역할을 균형적이고, 포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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