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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토는 우리나라 위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 수탉 모양이다. 둥베이 3성 중 랴오닝성(요녕성)의 센양시, 진저우시, 가이조우시를 둘러봤다. 지도 속 원. 원 안에 위치한 바다가 보하이(발해)만.
 중국 영토는 우리나라 위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 수탉 모양이다. 둥베이 3성 중 랴오닝성(요녕성)의 센양시, 진저우시, 가이조우시를 둘러봤다. 지도 속 원. 원 안에 위치한 바다가 보하이(발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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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으로 표시한 센양(심양), 진저우(금주), 가이저우(개주).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데 3시간은 보통이었다.
 원으로 표시한 센양(심양), 진저우(금주), 가이저우(개주).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데 3시간은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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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약 13억4000만 명의 거대한 나라. 23개 성(省)을 비롯해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 2개 특별행정구로 나누어진 나라. 93% 한족을 중심으로 소수 민족만도 53개에 달하는 복잡한 나라. 연 평균 경제성장률 9%를 웃도는 경제대국.

대학생활을 하던 1990년대 초중반, 중어중문학과 학생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면 항상 '대륙의 기상' 운운하며 모였다. 지금 생각하면 '한반도에 갇혀 좁은 사고를 하는 너희들과는 우린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모종의 우월감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한때 고구려가 만주를 호령하며 말 달리던 드넓은 그 땅을 포함하고도 여전히 끝을 모를 광활한 대륙이 바로 중국이라는 우월감.

지난 9월 중순, 말로만 듣던 '그때 그 대륙의 기상 중국'을 직접 몸으로 느꼈다.

"커다란 산이 보이면 진저우시에 다 온 겁니다. 진저우시까지는 산이 없거든요. 약 3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중국 센양(瀋陽·심양) 공항을 벗어나며 일행을 이끌던 안내자가 들려준 말이다.

'3시간? 인천공항에서 센양까지 고작 1시간 20분 정도를 날아왔는데, 숙소에 가는데 3시간씩이나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고? 설마, 3시간이면 KTX로 서울에서 부산을 가고도 남을 시간인데.'

처음에 든 '설마'라는 의심 아닌 바람(?)은 미니버스를 타고 센양을 출발해 숙소가 있는 진저우(錦州·금주)시에 도착하는 데 꼬박 3시간이 넘게 걸리면서 '중국이 넓기는 참 넓구나'라는 한탄(?)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1960년대와 2000년대를 섞어놓은 듯한 진저우시

진저우시내 모습. 자전거와 오토바이, 인력거, 택시, 버스, 승용차, 사람이 엉켜 있다. 오른쪽 위 교회 십자가와 왼쪽 위 거대한 건물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진저우시내 모습. 자전거와 오토바이, 인력거, 택시, 버스, 승용차, 사람이 엉켜 있다. 오른쪽 위 교회 십자가와 왼쪽 위 거대한 건물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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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우 시내로 들어서자 창밖에 비친 진저우시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1960년대와 2000년대를 섞어 놓은 듯했다. 인력거와 삼륜차가 도로 위를 힘겹게 달리는 모습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하지만 벤츠와 베엠베(BMW), 토요타 등 수많은 외제 자동차들 사이를 곡예하듯 넘나들며 제 갈 길을 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대열은 가진 자들을 향한 '소리 없는 아우성'의 물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도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 만큼 높게 고개를 쳐든 빌딩 무리의 도도한 자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직 낯선 도시인 진저우시를 보여주며 '중국이 얼마나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지' 소리 없이 알려주는 듯했다.

진저우시는 인구 470만 명에 달하는 신흥 경제도시로 보하이(渤海·발해)만을 끼고 있다. 보하이만은 중국이 우리 돈으로 무려 61조 원을 쏟아 붓는 국책사업인 '보하이만 특구 사업'을 벌이는 곳이다. 진저우시는 진저우항을 통해 물류를 확보하면서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국내외 투자를 유치해 도시의 면모를 급속도로 바꿔가고 있다.

실제로 진저우 시내에서 진저우항으로 진입하는 고속도로는 수많은 화물차들 때문에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물류가 바탕이 된 다양한 산업은 진저우시의 강력한 생존 무기처럼 보였다. 그래서일까. 진저우항으로 향하는 해안가 곳곳에는 여러 건물들이 자리를 잡았거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외국인들을 위한 별장은 이미 완공이 됐고 새롭게 들어설 주상복합건물과 아파트의 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중국 대륙과 한국, 일본 등을 잇는 새로운 무역길을 만드는 것이 바로 '보하이만 특구 사업'이라는 이야기다.

개발과 성장을 향한 중국의 무한 질주

진저우항에서 본 '필가산'. 오른쪽에 항만 시설이 보인다.
 진저우항에서 본 '필가산'. 오른쪽에 항만 시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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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우항 입구, 바다 쪽에서 본 진저우 시내모습니다. 왼쪽 출입구 상징물에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이곳 랴오닝성은 물론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다.
 진저우항 입구, 바다 쪽에서 본 진저우 시내모습니다. 왼쪽 출입구 상징물에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이곳 랴오닝성은 물론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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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우 시내 중심에서 차로 40여 분을 달려 진저우항에 들어서자 자그마한 '필가산(筆架山)'과 거대한 항만시설이 눈길을 잡아끈다.

필가산은 붓 두 자루가 얽힌 모습에서 이름이 붙여진 곳으로, 썰물 때면 필가산과 항구를 잇는 육로를 연출하며 관광지로 유명해진 곳이란다. 국가급 'AAAA'와 성(省)급 문물로 지정된 '필가산 고건축군' 정상에 오르자, 예의 중국풍 특유의 유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알듯 모를 듯 유불선(儒佛仙)이 한데 어울린 듯 한 각종 조형물들이 진저우항과 보하이만의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필가산에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항만시설을 바라보면서 문득 1987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둘러 본 울산중화학공업단지가 떠올랐다. 진저우항만시설을 하늘과 바다로 구분 짓는 굵은 오염 띠는 개발과 성장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중국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왜 필가산 곳곳에 자리한 조그만 상점의 상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 마스크와 얼굴 가리개를 쓰고 있었는지를….

바다 위의 섬과 같은 산에서조차 공기 오염을 피하려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어쩌면 중국의 숙명은 지구 인구 70억 명(지난 10월 31일 공식으로 70억 명을 돌파했단다)의 2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개발과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거대한 대륙에서 마구 내뿜어대는 환경오염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닐까.

센양과 진저우시, 그리고 보하이만을 사이에 두고 진저우시와 마주보고 있는 가이저우(蓋州·개주)시를 오가며 둘러 본 중국은 개발열풍에 휩싸인 듯보였다. 특히, 진저우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듯한 가이저우시의 도로 옆으로는 폐허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건물들을 방치한 채 새롭게 들어서는 아파트로 이주하거나,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는 모습이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 시골길로 접어들었을 때 텅 비어 있는 구멍가게처럼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중국은 과연 대륙다운 큰 기상을 떨쳐 보일 수 있을까

필가산 정상에서 바라본 진저우항과 항만시설. 바다와 하늘을 구분 짓는 거대한 오염 띠가 개발과 성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필가산 정상에서 바라본 진저우항과 항만시설. 바다와 하늘을 구분 짓는 거대한 오염 띠가 개발과 성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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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저우(개주)시내. 평일 오전 11시 경인데 한산할 뿐더러, 도로 위에 중앙선도 그려져 있지 않다.
 가이저우(개주)시내. 평일 오전 11시 경인데 한산할 뿐더러, 도로 위에 중앙선도 그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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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간 머문 진저우 시내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의아한 것은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잦은 출퇴근길이었다. 교통경찰이 신호등과 함께 버젓이 수신호를 하며 교통 흐름을 통제하지만, 직진 차량과 좌회전 차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람 좋게 차를 몰아 제 갈 길을 재촉했다. 횡단보도 역시 특별히 구분돼 있지 않아서 그냥 건너고 싶을 때, 건너고 싶은 곳에 발길을 들여놓으면 그만이었다.

도로의 중앙선조차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곳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통신호등의 신호를 무시하는 중국인들의 거침없는 질주는 자동차와 인력거, 오토바이, 자전거를 따지지 않았다. 마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먼저 가는 사람이 장땡이라는 듯이.

더욱 신기한 것은,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차량의 경적을 울리거나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고함 한 번 지르지 않는다는 것. 자전거도, 인력거도, 삼륜차도 그랬고 값비싼 벤츠도 그랬다. 어찌 보면 이 역시 대륙의 기상이 아닐까. 뭐가 그리 급하다고, 서두를 일이 뭐가 있냐고. 아니 그러고 보니 이는 중국의 '만만디(慢慢的·만만적)'라는 민족성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개발과 성장을 뜻하는 속도는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중국인들의 오랜 유불선 수련 결과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지간한 성 하나가 한반도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대륙. 그 중 한반도에 접한 둥베이(동북) 3성[헤이룽장성(黑龍江省·흑룡강성), 지린성(吉林省·길림성),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 그 중에서도 랴오닝성의 센양시와 진저우시, 가이저우시를 슬쩍 둘러봤다. 거대한 대륙의 기상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세 도시에서 거대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음은 눈으로 확인했다.

도심으로의 인구 집중, 지역별 생활수준과 물가 차이, 개발과 성장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 등은 중국인 안고 있는, 반드시 풀어내야 할 숙제로 보인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중국의 향이 살짝 얹어진 듯한 기내식을 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속도는 더 이상 성장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개발은 정말 지속가능할까. 벤츠와 인력거가 서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도로를 가진 나라. 개발을 들먹일수록 빈부 격차는 계속 커져가겠지만 그래도 앞만 보고 쭉쭉 뻗어갈 중국의 앞날은 과연 우리나라와 얼마나 다를까? 21세기 중국은 과연 대륙다운 큰 기상을 세계에 떨쳐 보일 수 있을까.'

고속도로 휴게소 곳곳에는 초속(과속)을 경고하는 안내판과 실제 사고 차량이 전시돼 있다(왼쪽, 과속으로 두 사람이 죽었다는 경고). 자전거 수레를 타고 가는 시민 뒤로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개발과 성장, 삶의 질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고속도로 휴게소 곳곳에는 초속(과속)을 경고하는 안내판과 실제 사고 차량이 전시돼 있다(왼쪽, 과속으로 두 사람이 죽었다는 경고). 자전거 수레를 타고 가는 시민 뒤로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개발과 성장, 삶의 질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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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19일부터 24일까지 4박 5일간 중국 랴오닝성에서 체류했던 이야기들 전합니다. 오늘은 1편으로 중국 답사기가 되겠고, 2편은 중국 진저우시내에 있는 보하이(발해)대학교 탐방기와 총장 인터뷰, 3편은 중국 가이저우시 고구려성 답사와 조선족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태그:#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금주시, #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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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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