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원> 영화 포스터 ⓒ 씨너스 엔터테인먼트
파란 하늘이 보여, 하얀 구름도. 그 빛이 낮을 축복하고, 그 어둠이 밤을 신성케 해.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를,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세계 최대의 영화시장 발리우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화 '청원(Guzaarish)'에 나오는 What a Wonderful World! 노래 가사의 일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이튼(리틱 로샨 분)이 법정에 가기 위해 14년만의 외출 때 음악이 아니라 풍경으로 이 노래 가사의 장면으로 화면을 채운다. 뿐만 아니라 이튼의 어머니 장례식 때에는 이튼 스스로 이 노래를 부른다. 슬픔과 기쁨, 고통과 쾌락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어쩌면 그 모두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영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구속과 자유잉글랜드의 전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 중 아서왕의 마법사인 '멀린'의 이름을 딴 대회에서 우승하여 '멀린'이 된 당대 최고의 마술사 이튼은 그의 마술연기 중 사고를 당해 목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되어 버린다. 그 뒤 14년 동안 그는 모든 것을 그의 간호사 소피아(아이쉬와라 라이 분)에게 의존한다. 그런 그가 14년 동안의 모든 노력을 뒤로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접어버리고자 하는 결심을 한다. 이튼은 그의 변호사 데비아니(쉐나즈 파텔 분)에게 이것, 즉 안락사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국가에 청원할 것을 요구한다.
스스로 죽음에 이르겠다는 결정을 내릴 정도로 이튼은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이튼에게 없다는 것이다. 그는 14년 동안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라디오 방송으로, 책으로, 또 강연으로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본인은 희망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인간으로서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고 동시에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극한의 상황은 누구도 그 상황을 예측 혹은 예단 할 수 없다.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그런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구속'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절망이다. 따라서 구속은 곧 절망이다.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비록 죽음이라 해도 구속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도 인간적인 선택이다.
한편으로 이튼의 안락사에 대한 결정은 지극히 이기주의적 발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죽음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을 단절시키는 것 외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과도 동시에 가져 온다. 바로 이점에서 영화 초반부, 간호사인 소피아의 섭섭함이 있다. 14년의 보살핌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튼의 급작스런 죽음의 결정이 소피아 본인에게는 견디고 정리해야 할 감정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튼은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종결되지만 소피아는 이튼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결국 소피아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하지만 이튼이 결정한 안락사로 얻어지는 '구속'으로부터 해방이 누구에게나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 이기적이라는 표현도 그렇게 무리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튼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는데 이것은 주인공이 죽음을 결정하는 과정이 오직 고통을 견디지 못함에서 오는 비겁한 회피가 아니라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오는 인간 본연의 자유를 찾고자 하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감성과 인도적 감성이튼은 자신의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려 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관계를 화해와 용서로 복원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독교적 감성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감독은 몇 개의 장치(이튼의 집 앞에 있는 예수 상을 자주 보여준다거나 신부를 등장시키는 등)를 통해 이야기 하다가도 또 안락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독교적인 감성에 대비되는 자세를 주인공의 멋진 대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도라는 독특한 문화 환경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도는 인류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사상들의 고향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상의 생성과 변화는 범인류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안락사에 대한 이튼의 생각은 바로 이런 인도적 생각, 즉 특정의 종교 이전의 인간의 궁극적 자유에 대한 감독의 견해인 듯하다. 그가 블랙에서 보여 준 것 역시 인간 내면의 소통이었는데 이는 종교적 감성 이전의 인간 본성에 대한 것이었다.
나약함, 강인함물방울 하나도 피하지 못하는 나약한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다. 그 나약한 모습으로부터 주인공은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강인함까지 가지고 있는데 이 또한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죽음은 주인공에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의 회피가 아니라 그것들과 맞서 싸우겠다는 가장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죽겠다', '죽는다'는 표현을 쓰지만 역설적으로 죽기 싫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의 결정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이며 강인함이다.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의 표현들이 가끔은 감성에 호소하여 본질을 흐리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주인공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는 결코 감성적이지 않다. 간호사 소피아의 삶 역시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강인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결국 이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 앞에, 고통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려 하고 마침내 주인공의 큰 웃음으로 극복하는 인간의 강인함이 아닐까 싶다.
마침내 주인공의 마지막 만찬에서 각자의 나약한 인간 군상들이 슬픔을 극복하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강인함을 넘어서는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는 인간의 삶이란 죽음이라는 절대 진리로 하여 What a Wonderful World!의 노래 가사처럼 아름다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