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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현지 시간) 총파업에 참여한 수천 명의 '오클랜드 점령' 시위대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항구를 점령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지난 2일(현지 시간) 총파업에 참여한 수천 명의 '오클랜드 점령' 시위대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항구를 점령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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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안 단독처리가 예상됐던 3일 오후 3시께 수천 명의 노동자, 학생, 시민들이 경찰의 물대포를 뚫으며 여의도로 향했다. 이 보다 3~4시간 앞선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미국에서 5번째로 규모가 큰 오클랜드 항구. 최루탄과 고무총, 섬광탄 등으로 무장한 미국 경찰이 시위대를 막아섰지만, 그들은 끝내 항구를 '점령'했다.

시위대에 의해 대형 항구가 봉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특히 노동자, 시민, 학생들로 구성된 수천 명의 시위대가 이날 시위를 위해 모든 업무와 학업을 중단한 채 총파업을 실시했다는 점은 극히 상징적인 일이다. 금융자본의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하기 위해 뉴욕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대륙 반대편으로 넘어와 '총파업'으로 확산되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날 시위대가 월스트리트와 긴밀한 협력 관계인 미국의 다국적 농산물업체에 저항하기 위해 오클랜드 항구를 점령했다는 점에서 한미 FTA와도 전혀 무관치 않다. 오클랜드 항은 미국의 아시아 교역 물동량의 59%를 차지한다.

참전군인, 경찰 최루탄에 머리 골절상

공장 노동자만 작업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원은 출근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는 상점의 문을 닫는다. 교사는 수업을 하지 않는다. 학생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지 않는다. 소비자는 돈을 쓰지 않는다. 지난 2일 오클랜드에서 벌어진 이른바 '도시 총파업(general strike)'의 모습이다. 한 시민은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의 연대 파업이라는 점에서 가장 가공할 위력을 지닌 반자본주의 파업"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일(현지 시간) 총파업에 참여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점령' 시위대가 '웰스 파고(Wells Fargo)' 은행 앞에서 금융자본가의 탐욕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2일(현지 시간) 총파업에 참여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점령' 시위대가 '웰스 파고(Wells Fargo)' 은행 앞에서 금융자본가의 탐욕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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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플린트 오클랜드학교연합 대변인은 "전체 오클랜드 교사 중 18%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시위에 나선 교사들은 "우리는 교사다. 우리는 가르친다. 우리는 99%"라고 외쳤다.

또한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오클랜드 대학, UC 버클리 대학 학생들도 동맹휴업을 하고 이날 총파업에 참여했다. 특히 레스토랑, 피자, 구두, 생활용품 판매점 등 많은 상점들이 총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영업 활동을 중지했다. 반면 일부 은행은 시위대의 공격을 우려해 문을 닫아야 했다.

이날 총파업에 참여한 수천 여명의 시위대로 인해 오클랜드 항구가 잠정 폐쇄됐다. 이날 오후 5시쯤 오클랜드 도심으로부터 행진한 시위대와 버스를 타고 항구에 모인 시위대 등 5000명은 오클랜드 항구에서 경찰의 강제진압과 경제적 양극화, 금융자본의 탐욕 등을 비판하며 시위를 벌였다.

항구에서 약 5시간 동안 농성을 한 시위대는 확성기를 통해 "항구는 폐쇄됐다"며 승리를 선언한 뒤, 항구에서 빠져 나갔다. 다시 시청 광장으로 돌아온 시위대는 꽃으로 장식한 즉석 제단에 '자본주의의 죽음을 축하한다'고 쓴 조의문을 내걸고, 흥겨운 음악을 즐겼다.

지난 2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의 강제진압과 양극화,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하기 위해 총파업 운동을 벌였다.
 지난 2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의 강제진압과 양극화,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하기 위해 총파업 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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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체이스, 씨티은행,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 은행을 상대로 도심에서 벌어진 시위 역시 격렬했다. 대부분의 시위대는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지만 일부 시위대는 대형은행 건물의 유리창을 깨는 등 과격양상을 띠기도 했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 등 일반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시위대는 한 때 1만 여명에 달하기도 했다.

이날 총파업은 지난달 25일 발생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촉발됐다. 경찰이 시청 앞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오클랜드 점령'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라크전 참전 예비역 해병대원 스콧 올센(24)이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동참하는 참전용사들이 늘어나면서 오클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 장소로 떠올랐다. 처음엔 책임을 회피했던 진 콴 오클랜드 시장이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해 사과 성명까지 냈지만, 분노한 시위대는 도시 총파업을 결정,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날 시위대의 주된 구호는 "우리는 모두 스콧 올센이다"였다.

오클랜드의 자동차노동자연합(UAW) 지부 조합원인 토드 크레쳔은 최근 <소셜리스트 워커>에 기고한 글에서 "'오클랜드를 점거하라' 총회는 스캇 올센에게 중상을 입힌 잔인한 경찰 폭력에 항의해 오클랜드를 마비시키자며 노동자와 학생들에게 총파업을 벌이자고 호소했다"며 "'우리는 99퍼센트다'라는 구호는 오클랜드 상황을 매우 잘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위기 발생 후 3년 동안 오클랜드 주민 수만 명이 자기 집에서 쫓겨났고, 정부의 공식 실업률은 15퍼센트이지만, 실질 청년 실업률은 거의 50퍼센트에 달한다"며 "공립대학 수업료는 2배 이상 뛴 반면, 많은 공립학교가 폐교됐고 교사 임금은 동결됐다"고 전했다.

"'오클랜드를 점거하라'를 통해 노동운동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신세대 활동가들이 노조에서 오래 활동한 베테랑 급진 활동가들과 함께하게 됐다. 이런 결합 덕분에 올센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자 즉각 총파업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뉴욕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점령 운동 참가자들도 지역별로 유사한 형태의 총파업을 논의하고 있다. 각 지역의 점령 운동에 동참한 활동가들은 내년 5월 15일을 목표로 전 세계적인 총파업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미국에서 총파업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오클랜드는 지난 1946년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이 같은 형태의 총파업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당시 파업을 촉발시켰던 계기 역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었다. 노동자들은 10년간의 대공황과 6년간의 전시 배급제도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은 백화점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공격했고, 이는 10만 여명이 참여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파업 물결을 만들었다.

그러나 크레쳔은 "1946년 파업은 그 뒤로 25년 동안 지속된 호황의 문턱에서 발생한 것이었다"며 "오늘날의 투쟁은 끝날 줄을 모르고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경제 위기의 한복판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클랜드 트위터 @USGeneralStrike는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는 경찰이 시청 앞 광장에서 농성을 계속해 온 1000여 명의 '오클랜드 점령'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총 등을 발사하면서 강제해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스캇 올센이 머리에 부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는 경찰이 시청 앞 광장에서 농성을 계속해 온 1000여 명의 '오클랜드 점령'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총 등을 발사하면서 강제해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스캇 올센이 머리에 부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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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이동 봉쇄하기 위해 항구 점령"... 한미 FTA 반대 시위?

이날 시위대가 점령한 오클랜드 항구는 미국의 아시아 교역 물동량의 59%를 차지한다. 물량 중 55%는 쌀, 과일, 포도주 등 수출용 캘리포니아 농산물이다. 수입물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오는 전자, 의류 및 제조장비다. 토요타, 혼다, 현대 등 아시아 국가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도 주요한 수입품목이다. 시위대는 "자본의 이동을 봉쇄하기 위해 항구를 점령했다"고 말했다.

특히 '오클랜드 점령' 측은 이번 총파업과 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가 항구를 봉쇄하는 것은 총파업 당일 자본의 흐름을 봉쇄하는 것뿐만 아니라, 'Bunge LTD'와 맞서 싸우고 있는 항만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농업 관련 산업 및 식품 다국적 기업인 'Bunge LTD'는 지난해 24억 달러의 순이익을 냈고, 월스트리트와 강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5일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참여한 미주 진보한인청년단체 노둣돌 회원 10여 명은 'NO FTA'라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노둣돌 활동가인 홍석종씨는 "FTA로 인해 얻는 수익은 모두 대기업으로 가고, 일반 노동자나 시민들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5일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참여한 미주 진보한인청년단체 노둣돌 회원 10여 명은 'NO FTA'라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노둣돌 활동가인 홍석종씨는 "FTA로 인해 얻는 수익은 모두 대기업으로 가고, 일반 노동자나 시민들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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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농기업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항만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가족농연합회(National Family Farm Coalition)는 지난해 연말 발표한 성명에서 "한미FTA 재협상의 승자는 금융업자와 해외투자자들이며 자동차제조업자들이고, 패자는 미국의 제조업자, 노동자, 농민들, 그리고 소비자들"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형식의 무역정책을 가져온 한미FTA는 실패한 무역 정책으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NAFTA는 미국, 멕시코, 그리고 캐나다의 농민들을 쫓아내고 수탈해왔으며, 농촌의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일자리를 사라지게 했으며, 미국의 농민들, 노동자들, 그리고 소비자들을 대가로 농기업들을 강화시켜 왔다."

이들은 "만약 미국의회가 미국의 농촌경제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그리고 한국정부가 진정으로 한국의 농촌 경제를 걱정한다면 NAFTA에 (문제점들에) 기반한 새로운 무역정책을 만들 것이 아니라 지난 무역 협정을 재협상하는데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서 NAFTA 방식의 무역정책을 영구적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곳이 농업 분야라는 점에서 이번 시위대의 오클랜드 항구 점거와 한미 FTA가 결코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한 처리로 최대 갈등을 겪고 있는 시점에 미국에서는 점령 시위대가 다국적 농업 관련 기업에 대한 저항을 표시한 셈이 됐다.


태그:#오클랜드 , #오클랜드 총파업, #오클랜드 점령 시위, #한미 FTA, #월스트리트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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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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