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시작은 언제나 분주하고 정신없는 5일장 같다. "출발!" 소리와 함께 전 세계에서 모여든 157명의 전사들이 우루루 뛰쳐나간다. 하지만 이내 대열은 점으로 이어지고 선두권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얼마를 가지 않았지만 예상보다 아침부터 더웠다. 이 상태로 가면 첫날부터 탈락자가 발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니 한국인 참가자 한 명이 위경련으로 캠프로 후송됐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탈락자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첫날부터 산을 돌리는데 더운 날씨와 더불어 아주 사람 진을 빼놓는다.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다 올라왔나 싶으면 또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중간중간 여러 명의 탈락자들이 보인다. 가끔 보이는 의료차량은 포기한 선수들을 실어 나르기 바쁘다. 이 상태로 간다면 나 조차도 완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간다. 호주 아웃백에서 560km 달리고 그간의 업무에 시달려 나름 휴식을 취하러 왔는데 이거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정신차려야겠다는 긴장감이 팍 생겼다.

 매일 아침 출발할 때는 힘이 넘친다.

매일 아침 출발할 때는 힘이 넘친다. ⓒ 유지성


 위험천만 가파른 산길을 가는 참가자들 모습

위험천만 가파른 산길을 가는 참가자들 모습 ⓒ 유지성


예상보다 어렵게 첫날을 마치고 이틀째 아침이 찾아왔다. 그런데 뭔놈의 날씨가 그리 추운지 밤새 덜덜 떨다가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별과 몇시간 전만 해도 더워서 윗통을 벗고들 있었는데 새벽에 영상 2도까지 내려가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선수들이 동요를 일으켰다. 특히나 우리 텐트는 3명 빼고 전부 첫 번째 오지레이스 참가자들이었는데 난리가 났다. 이럴 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상시 이미지와 다르게 참 침착하고 여유가 있다. 서양애들은 어찌나 오도방정인지 내가 한 마디 할 정도였다.

혹시 영화 <미스트>를 아시는지? 어느날 들이닥친 정체 불명의 안개가 온 도시를 뒤덮으면서 생겨나는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꼭 우리가 그런 일을 당했다. 새벽부터 몰려온 안개는 한낮이 되어서까지 캠프와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결국 안전 문제로 정상적인 진행이 어렵다 판단한 주최측에서 둘째날 코스를 반으로 줄였다.

"이게 웬 횡재?"

첫날 험한 코스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참가자들은 만세를 부른다. 이렇게 좀 의외의 변수가 생겨서 살 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게 오지레이스의 묘미다. 원래의 둘째날 코스는 정말로 어려웠던 산악 구간이었다. 만약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었다면 첫날 상황을 봤을 때 역대 최대의 탈락자가 나온 대회가 될 수 있었다. '신은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했는데 여기에 한가지 더 특별 이벤트로 가끔은 아주 통 크게 그냥 시련을 건너 뛰기도 해주시는 것 같다.

 넓은 협곡을 건너는 코스

넓은 협곡을 건너는 코스 ⓒ 유지성


 갈 길이 멀기에 힘이 있을 때는 달려야 한다.

갈 길이 멀기에 힘이 있을 때는 달려야 한다. ⓒ 유지성


이번 고비 대회 때는 많은 한국 참가자들이 갔기에 비상용으로 일부러 음식을 엄청 챙겼다. 하지만 반비례로 배낭 무게는 일생의 대회 중 가장 무거웠다. 원래 계획은 3일 이후부터 식량을 푸는 것이었는데 도저히 무거워서 못 견디겠다. 그래서 먹을 식량은 그냥 놔두고 간식과 행동식을 위주로 첫날과 둘째날 우리 텐트에서 연속으로 파티를 벌였다. 그렇게 하니 순식간에 짐 무게가 줄어들어서 대회 3일째부터는 정상적인 배낭 무게로 돌아왔다. 아마 거의 40% 정도는 빼낸 것 같았다. 코스에서 남에게 좋은 일 하려다 내가 먼저 골로 갈뻔했다.

대회 2일째 줄어든 코스는 노면 상태까지 좋아서 비포장길과 일부는 포장된 도로까지 달렸다. 물론 강을 건너는 코스도 있었지만 주변으로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높다란 산들을 안 올라도 된다는 안도감은 편안한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대회 3일째는 전체 코스의 25% 정도 강을 건너야 했다. 천산산맥 빙하가 녹아서 흘러 내리는 물은 세차기도 하지만 수온이 거의 0도에 가깝다. 그렇게 차가운 물속에서 조금이라도 오랜 시간을 지체하면서 비를 맞는다면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강을 벗어나자마자 더위가 몰아쳤다. 도대체가 이놈의 사막은 예측이 안 된다.

 협곡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참가자들

협곡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참가자들 ⓒ 유지성


 정신없이 달리는 참가자들

정신없이 달리는 참가자들 ⓒ 유지성


 협곡을 흐르는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참가자들

협곡을 흐르는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참가자들 ⓒ 유지성


 세차게 흐르는 강물은 얼음 같이 차갑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은 얼음 같이 차갑다. ⓒ 유지성


한없이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을 오른다. 나는 오르막에서는 너무나도 힘을 못쓰는 타입이다. 속도, 경쟁 다 포기하고 천천히 길을 가니 그동안 잘 못 봤던 한국, 외국 참가자들을 죄다 만난다. 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모두 힘들다고 한마디씩 한다.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고비사막, 원래 이런데…"

나는 유난히 오르막에 약하고 내리막에 강한 사람인데, 기나긴 오르막을 오르고 마지막 골인 지점까지의 내리막 거의 20km 이상을 정말로 원없이 달렸다. 나는 기본적으로 오지레이서 이전에 마라토너이다. 그 마라토너의 심장을 느껴보는 시간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의 탄생을 마주하는 순간과 같다.

3일이 지나니 점점 고비사막에 적응이 되어 가는 나의 몸을 발견한다. 아주 좋은 징조다. 이런 자연 속을 달릴 때는 개인의 능력과 더불어 현장 적응이 제일 중요하다. 적응만 잘되면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는 게 사람이다. 특별히 주최측에선 현지 위구르족 마을에 캠프를 차렸다. 덕분에 편안한 잠자리에서 휴식을 취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만나게 될 진짜 고비사막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대회 3일때는 마운틴데이로 2000미터 이상의 산을 넘었다.

대회 3일때는 마운틴데이로 2000미터 이상의 산을 넘었다. ⓒ 유지성


 코스 중간에 있는 체크포인트

코스 중간에 있는 체크포인트 ⓒ 유지성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웃도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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