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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집회'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그 중 하나는 물대포일 것이다. 그 이후부터 물대포는 시위 해산 도구로서 단골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회망버스와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등장할 때마다 과잉진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경찰은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물대포'를 사용하겠단다.

지난 21일 '도로 점거 등 불법행위 대응 법 집행력 강화 방안'이란 이름의 가이드라인에서 경찰청은 "도로 점거 등 불법행위를 계속하면서 폴리스라인을 침범할 경우 별도의 해산 절차 없이 물대포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해산 절차를 생략하겠다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상 이 가이드라인은 이후 물대포가 더욱 전면에서 사용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일선에서 물대포 사용을 꺼리고 있어 법조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라고 주문한 것"이라는 경찰청 관계자 인터뷰(경향신문)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심지어 "거리 시위가 예상되는 주요 지점에는 물대포를 사전에 배치해, 전 차로를 점거할 경우 지체 없이 물대포를 사용하겠다"고 한다. 미리 설치해 놓고 근처에만 오면 쏘겠다는 것이다. 이제 곧 한겨울인데 천정부지로 치솟은 등록금 좀 내려달라는 학생들에게, 부당한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시민들에게 '과감하게' 쏘아질 물대포 생각을 하니 섬뜩하다. 그래서 살펴봤다. 물대포. 결론은 확실하다. 이렇게 물대포를 사용할 어떤 명분이나 근거도 없다.

유래 없는 평화집회 시기, 경찰은 왜?

물대포를 보다 전면에 배치할 만큼 집회·시위가 극렬해지고 있는 걸까? 아주 '공신력' 있는 경찰청 통계를 살펴보자. (직접 보기)

경찰이 분류한 불법·폭력 시위라는 게 논쟁적이지만, 어쨌든 그 항목의 숫자는 유례없이 줄어들고 있다. 2009년 야간집회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보수언론과 경찰은 당장 큰 혼란이라도 생길 듯이 떠들었지만, 실제 야간집회가 허용된 2010년의 수치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이버경찰청에 나와 있는 시위 통계 현황
 사이버경찰청에 나와 있는 시위 통계 현황
ⓒ 사이버경찰청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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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비 2010년 불법·폭력시위는 26.7%(45건에서 33건으로), 경찰부상자는 96.5%(510명에서 18명) 감소했다. 경찰 부상자로만 따져보면 2010년도의 18명은 역대 정부(노태우~참여정부) 시기 평균 1940명의 1/100(0.9%)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경찰청은 이러면 변화가 경찰이 합법집회를 촉진하고 불법집회를 엄벌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잘못된 진단이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비폭력'이라는 가치가 시민사회 운동속에서 깊게 자리를 잡았다. 이에 대해서 '타협적이다'라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기존의 저항문화를 폭넓고 활기차게 바꾼 측면이 훨씬 더 크다.

이제 집회현장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수대'보단 밝게 웃으며 촛불과 피켓을 들고 권력을 비판하는 문화가 보편화됐다. 전투적 노동운동으로 단련된 김진숙 민주노동 부산본부 지도위원조차 85호 크레인 위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비폭력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시위문화는 진화하고 있다. 이 앞에서 경찰은 보다 과감한 물대포를 사용하겠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희망버스 향해 물대포 쏘겠다는 꼼수

유례없는 평화집회의 시기에 왜 경찰은 물대포의 과감한 사용을 공언했을까? 이는 실제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물대포는 사용 전에 3차례 구두경고가 진행되는데, 이때 시위대가 다른 곳으로 옮겨 또 도로를 점거하면 도로 점거 상태가 길어진다고 한다. 때문에 처음 한 번만 경고방송을 하고 이후에는 경고조치 없이 바로 물대포를 쏘겠다는 말이다.

경고 없이 해산절차에 돌입하는 게 법적으로 타당한가도 논란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배경이다. 이 지침은 사실상 반값등록금 집회용 대응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반값등록금 집회는 학생운동 단체들이 주축이 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행진 도중 경찰에 가로막히면 해산경고를 듣다가, 마지막에 다른 곳으로 '조직적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예상해 보면, 이제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면 그 주변에는 모두 폴리스라인이 쳐질 것이다. 경고방송 이후에 해산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는 것이 되고, 곧장 물대포가 터져 나올 것이다. 물대포로 가두어놓고 해산을 강제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방식이 효과를 거둔다면, 희망버스 역시 사방을 폴리스라인과 물대포로 둘러쌓을 것이다.

 29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사거리에서 반값등록금 국민대회를 마친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과 대학교육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도로 점거시위를 벌이자, 경찰들이 물대포(살수차)를 발사하며 학생들을 강제해산 시키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사거리에서 반값등록금 국민대회를 마친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과 대학교육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도로 점거시위를 벌이자, 경찰들이 물대포(살수차)를 발사하며 학생들을 강제해산 시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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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와 같은 위험 장비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경찰장비의사용기준등에관한규정>(대통령령 제21842호)에 명시된 내용이다. "인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경찰장비"(1조)는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3조) 사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특히 물포(물대포)의 경우에는 제13조에 "타인 또는 경찰관의 생명·신체의 위해와 재산·공공시설의 위험을 억제하기 위한 부득이한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차선을 점거해 교통체증이 생긴다고 마구 쏠 수 있는 물대포가 아니다.

이러한 물대포를 유례없는 평화집회의 시기에, 그것도 반값등록금이나 희망버스와 같은 국민적 공감대가 크고 당사자들의 절박함이 담겨있는 사안을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교통체증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집회나 시위와 같은 직접행동에서 그러한 사회적 영향은 일정부분 불가피하다. 또한 합법·불법의 잣대로만 볼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철저히 외면 받아왔고, 또 절박하기에 거리로 나온 것이다.

가장 엄격해야 할 사용지침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라니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이는 언론의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지키는 핵심적 권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온전하게 향유해본 적이 없다. 이 권리는 법률로서만 제한될 수 있지만(법률로서도 그 본질적 영역은 제한할 수 없다), 지금까지 경찰은 자의적인 기준으로 집회와 시위를 허가하거나 불허했다. 폭력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자의적 근거로 집회금지를 통고하거나, 그 거리나 허용차선도 임의로 결정했다.

 2008년 6월 1일 새벽 서울 효자동 청와대 입구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요구하며 밤샘시위를 벌인 시민, 학생들을 경찰이 살수차(물대포)를 동원해서 강제해산시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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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그것도 모자라서 엄격한 조건 하에서만 사용해야 할 물대포의 사용기준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라고 한다. <경찰장비관리규칙> 제97조는 물대포를 "사람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장비"라 분류해놓고 있다. 가장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할 장비사용지침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겠다는 것은 사람의 신체를 가지고 장난치겠다는 것이다.

사실 물대포의 사용기준은 2008년 촛불집회 시기부터 논란이 되었다. 이 시기 <경찰장비관리규칙>에는 물대포를 20m 이내 근거리에서는 시위대를 향해 직접 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당시 물대포는 바로 앞 시민들을 한 명 한 명 조준 사격했다.

항의가 빗발치자 경찰청은 그해 12월, 규칙 자체를 슬그머니 바꾼다. 안전규칙을 준수하라고 요구하니, 그 규칙 자체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쏘아야 한다는 기준이 사라지고 "시위대의 거리와 수압 등은 제반 현장 상황을 고려하여 집회시위관리에 필요한 최소한도"로 해야 한다는 모호한 문구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이 항목은 사용의 한계를 규정해주는 것이기에 결코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는 <경찰장비관리규칙> 제97조에서 물포와 함께 규정된 특수진압차와 가스차의 경우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특수진압차는 최루탄 발사대의 각도를 15도 이상으로 해야하고, 가스차 다연발탄의 경우 시위대의 상공으로만 발사하여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 물대포 역시 20m 이내 근접에서는 직사 금지가 명문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촛불집회 이후 물대포에만 그 규정을 모호하게 바꾸고, 대부분을 '물포운용지침'으로 넘겨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 2010년 3월 국가인권위는 물대포를 이용할 때 "압력이나 최근 거리 등 구체적인 사용기준을 명시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는 권고를 했다. 인권위는 당시 경찰청에 "물포 운용이 국민의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경찰청 내부 지침이 아닌 부령 이상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현오 청장, '경찰수사 신뢰 토론회' 참석 조현오 경찰청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수사 신뢰 제고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지난 3월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수사 신뢰 제고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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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물대포 사용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때

그러나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바로 더욱 과감한 물대포의 사용이다. 그리고 이제 이 물대포의 과감한 사용을 한겨울의 반값등록금 집회와 희망버스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모든 운동에는 때가 있다. 바로 이 기회에 경찰의 '꽃놀이패'가 된 물대포를 엄격한 가이드라인으로 묶어둘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의 개입이 가능한 방식으로, 법적 근거를 가진 가이드라인으로 말이다.

쌍용차 파업 당시 폭력진압을 진두지휘하셨던 분이 경찰청장이라서 그런지 물대포를 비롯해 다양한 강경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조현오 청장은 연일 "조폭 인권 고려말고 과감히 총기 사용하라"고 하신다. 굳이 인권단체까지 갈 필요도 없이, 경찰 일선에서도 그러다 사람이 죽기다로 하면 누가 책임지냐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사실 수많은 장비로 무장하고 훈련한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 그렇게 '못할 것'이 없기에 그 정도와 원칙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 말씀드리자면, 강경 진압은 강경 대응으로 돌아온다. 사회운동의 기본이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반값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20대들에게 쏟아지는 물대포를 "법치"라 생각할 사람들도 많지 않다. 물대포는 이명박 정권시기 강경진압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제발 정권말기에 그 상징을 전면에 내건 경찰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물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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