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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부자정당.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로 굳어진 한나라당 이미지다. 한나라당은 서울에서도 강남 지역당으로, 노인들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이번에도 강남3구의 위력에 기대를 걸었지만 강남3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다른 지역의 지지율이 빠지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오세훈 전시장은 강남 3구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지만, 2011년 나경원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더 높아졌다. 그러나 비강남 지역에서 나경원 후보에 대한 지지는 하락 중이다. 한나라당은 강남정당이 이미지가 강조될 수록 비강남지역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 2010년 오세훈 후보의 구별 지지율과 2011년 나경원 후보의 구별 지지율 2010년, 오세훈 전시장은 강남 3구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지만, 2011년 나경원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더 높아졌다. 그러나 비강남 지역에서 나경원 후보에 대한 지지는 하락 중이다. 한나라당은 강남정당이 이미지가 강조될 수록 비강남지역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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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오세훈 후보의 득표율과 이번 나경원 후보의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이런 추세는 분명하게 확인된다. 나경원 후보는 서초구와 강남구에서 오세훈 후보보다 더 많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중구와 용산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세훈 전 시장의 득표비율보다 떨어졌다. 강남의 한나라당에 대한 충성도가 더 강화되는 반면, 비강남 지역에서는 일종의 반강남 정서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에게는 서울지역의 모든 표를 합산하는 서울시장 선거보다 지역구가 나눠지는 총선에서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신호다. 여기에 50대 이상의 유권자만 지지하는 노쇠한 정당이라는 이미지 역시 더욱 강화됐다.

청와대와 국회를 장악한 한국 최대 정당이 투표율이 낮기만을 기원하고 있는 현실. 한나라당의 2011년 10월 26일은 그렇게 잔인하게 흘러갔다. 

한국 최대정당 '한나라당'의 초라함

이제 한나라당은 본격적인 레임덕을 감내해야 함은 물론, 친이계와 친박계의 오랜 대립도 겪어야만 한다. 난데없는 안철수 바람으로 박근혜 대세론이 타격을 입었지만, 실질적인 책임이 친이계에 있는 만큼 어느 누구도 확실한 명분을 쥐고 있지 못하다. 오세훈 전 시장을 필두로 한 신당 창당론 또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홍준표 대표는 "서울을 제외한 지자체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지난 주민투표에 대해 "사실상 승리'라고 규정한 것만큼이나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된 서울의 대패는 홍 대표의 해석과 상관없이 내년 총선과 대선의 예고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런 일련의 흐름과 추세를 자신이 주도해 뒤집을 만한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 최대 정당이 야당의 자충수만 목 빠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다.

'민주당화'에 머무른 박원순 선거전략

박원순 서울시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를 찾아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들과 함께 손을 들어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를 찾아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들과 함께 손을 들어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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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원순 시장에게 부여된 과제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은 경선 패배 이후, 손학규 대표의 사퇴와 번복이라는 홍역을 겪으면서도 박원순 후보를 '민주당 후보'로 규정하며 선거운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손학규 대표가 직접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이인영 최고위원이 상임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곧 박원순 후보의 선거 캠페인은 전통적인 민주당 색깔인 연두색으로 도배되었고, 일각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끌어내기 위해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이런 선거기조는 박원순 후보의 가장 큰 장점인 '새로움'과 '참신함'을 오히려 거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안철수 바람의 의미는 '한나라당은 밉지만 민주당보다는 좀 더 나은 대안'을 바라는 열망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박원순 후보의 지지세는 야당의 조직력에 '새로움과 참신함'이 덧붙여져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신의 조직력을 과시하는 형태로 선거 전략를 짰고, 이는 곧 선거캠프에 결합한 시민단체와 다른 야당의 불만과 불협화음을 낳았다. 민주노동당은 선거 캠프에서 나와 독자적인 선거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복귀했고, 야권 경선을 이끌던 시민단체 핵심 인사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나경원 후보의 공세에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이 주춤했던 이유가 단지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원순 후보의 선거운동에서 대중이 안철수에게 기대했던 참신함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 내내 민주당과 안철수만 보이고, 막상 박원순은 보이지 않았다.

정당 조직력을 압도한 유권자의 열망

그럼에도 폭발적인 지지율로, 과반이 넘는 압도적 지지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된 것은 추상적이거나 모호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새로움의 열망이 결합된 것이다. 이는 서울지역 다른 선거의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양천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38.54%의 득표율에 머물렀고, 야권단일화가 무산된 동대문 시의원 선거의 경우 33.56%만 득표했다. 반면, 야권단일화를 이룬 노원구 시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는 52.17%를 득표했고, 민주노동당 구의원 후보는 53.76%를 득표했다. 박원순 후보의 득표율과 엇비슷한 결과다. 이는 박원순 후보의 득표율 역시 민주당의 조직력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조직력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결합된 결과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한편, 단일화가 무산된 지역에서는 민주당 이외의 야당에 대한 지지율이 비교적 높았다. 이 역시 새로움에 대한 열망을 다른 야당들이 어느 정도 흡수해낸 결과다. 박원순의 지지표에는 '묻지마 반MB'를 넘어서는 어떤 측면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박원순 시장 체제의 성패는 선거 과정에서 부각시키지 못한 자신의 새로운 철학과 정책을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부각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반MB 전략기조에 의존하거나 기성정당의 정치문화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MB도, 구태의연한 정치문화도 넘어서는 대안을 현실에서 보여줘야만 한다.

시험대에 오른 민주당의 리더십

이번 선거를 진두지휘한 민주당도 겉으로는 웃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야권연대에 기반 한 서울시장 선거는 승리했지만, 자력으로 임한 선거에서는 대부분 패배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결과의 상당 부분은 민주당이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의 야권연대 전략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단일정당론에 힘을 실으면서도 민주당 중심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배제하는 '포섭과 배제전략'을 추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략은 강원도 인제와 서울 동대문 시의원 선거에서 경직된 단일화 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의 경우, 지난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다음 선거는 민주노동당에게 후보를 양보하기로 구두합의가 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선거를 앞두고 번복해 민주노동당의 강원도 공동정부의 파기선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서울 동대문 시의원 선거의 경우에도 이미 서울시의회에서 확고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고, 다른 야당 의석이 전무한 상황에서도 양보가 없었다.

물론 정당의 입장에서는 패배하더라도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지역 당원들이 선택해야 할 사안을 중앙이 통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 합의에 의한 단일화가 이루어졌는데도 민주당 중앙과 서울시당 차원에서 단일화에 반대한 노원구의 사례는 민주당의 진짜 의도가 야당 길들이기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을 살 만하다(노원구에서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단일화가 성사되었다).

이런 과정은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리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협상 대상의 한 주체일 뿐이라는 이미지만 남겼다. 야권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민주당의 판단은 강원도 인제군수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시의원선거에서, 제주도 도의원 선거에서의 패배로 반박되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이번 재보선에 총 10명의 후보가 출마해 1명을 당선시키고, 평균 25.19%를 득표하는 성과를 남겼다. 진보대통합 무산 등 여러 악재 속에서도 민주노동당이 정당 지지율을 훨씬 넘어서는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진보정당이 선거경쟁체제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이루지 못한 지역에서 민주당이 모두 낙선해, 확실한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성과라 할 만하다. 어쨌거나 '민주노동당 없이도 당선할 수 있다'던 민주당의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역시 자신에 대한 지지를 안정적인 기반 확대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는 '반MB, 비민주', 그리고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정당, 새로운 인물에게 옮겨 갈 수 있는 유동적인 지지다.

안개 속의 향후 시나리오

지난 24일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의 캠프를 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 후보와 손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24일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의 캠프를 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 후보와 손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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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향후 정국을 둘러싼 이런 저런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주당 중심의 단일정당통합론에서부터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제3정당론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모두 실현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달려 있다. 민주당 중심의 단일정당론은 혁신과 통합 등에서 본격 추진할 태세지만, 다른 야당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다. 더구나 이번 재보궐선거를 둘러싼 야권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이 지나치게 일방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신뢰 관계가 상당 부분 허물어져 있다는 상황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간의 복잡한 통합논의도 일단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올해 안에 통합을 완료한다는 목표로 추진되는 야권단일정당론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3정당 창당론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시나리오지만, 아직 '추측' 이상의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니다.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3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안철수 현상을 넘어서는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안철수 원장의 행보 자체가 불투명한 시점이다.

새롭게 출현한 유권자, 정치문화 혁신 없다면 이탈도 가능

수많은 돌발변수가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향후 정국에서도 변치 않는 상수라 할 수 있는 것은 변화를 바라는 민심뿐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의 승리는 전통적인 야당 지지기반에, 정치 무관심층에서 적극 투표층으로 입장을 선회한 이들의 지지가 합쳐진 결과다. 

이들의 특징은 아직 여전히 모호하고 막연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에 덧붙여 새로운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지 친서민적인, 진보적인 정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정치 문화 자체의 근본적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싫다 하더라도, 굳이 기성 야당을 지지해야 할 뚜렷한 이유 따위는 없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폭발적 투표율과 지지는, 야권에게는 '불안한 지지'일 수밖에 없다. 언제든지 다시 정치 무관심층으로 돌아서거나, 새로운 인물이나 정당으로 지지가 옮겨갈 수 있는 유동층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 야당들은 반MB정서의 확대라는 유리한 조건에 안주하지 않고 얼마나 자기를 혁신해 내느냐 따라 회오리치는 내년 정국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출현한 유권자들이 참으로 적절한 시점에 던져준 과제다.


태그:#박원순, #안철수, #재보선,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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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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