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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라는 단어만 보면, '어렵다'는 생각에 '경직' 되십니까. 은행에서 적금이나 예금을 들 때, 보험회사 직원과 마주할 때, '도대체 뭘 들어야 하는 거야'란 생각에 머리가 아프십니까. 하지만 이젠 걱정하시 마세요. '똑똑한 생활경제'가 당신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거니까요. 오마이뉴스에선 앞으로 매주 '똑똑한 생활경제'라는 타이틀로 '생활경제' 전반에 대해서 다룹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저희는 정말 꼭 필요한 곳에만 지출합니다. 쓸데없는 물건을 사거나 과소비한 적이 없어요. 가계부도 꼬박꼬박 쓰고 매월 말 지출결산도 꼭 합니다. 그런데도 왜 항상 돈이 이렇게 부족할까요? 물가가 너무 올라서 그런가요? 아니면 저희 수입이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기엔 너무 적은 건가요? 결국 돈을 더 벌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요?"

소득의 차이에 관계없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 이렇게 이야기한다. 월 100만 원 수입이건 월 500만 원 수입이건 애로사항은 똑같다. 다들 맘껏 써본 적도 없는데 항상 돈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벌지 않으면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 과연 문제가 무엇일까.

꼭 필요한 곳에 지출... 그런데 왜 돈이 없을까

ⓒ 박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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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이지현(가명, 33세, 미혼)씨가 현재 매월 납부하는 핸드폰 요금은 7만 원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변경하면서 5만5000원짜리 정액요금제를 선택하면 핸드폰 기기 할부금을 대폭 낮출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에는 평균 4~5만 원 정도의 요금을 납부했다. 어차피 5만 원 정도 지출했으니 비슷한 요금제로 갈아타면서 스마트폰 할부도 가능하니 어렵지 않게 바꾼 거였다. 그러나 한달 평균 2만 원 가량이면 일년에 통신비로 24만 원을 추가 지출하는 셈이다. 뭘 특별히 더 샀다거나 지출한 게 아니라 그저 조금 더 편리하고 좋은 서비스로 갈아탔을 뿐인데 비용만 증가했다. 그래도 지현씨는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누리는 비용이니 그리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사례2> 주부 이소영(가명, 37세, 기혼)씨는 올해 초 37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자녀 둘이 남매지간이라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에게 자기 방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추가 대출을 받지 않았고, 새 가전제품을 구입하지 않았는데도 매월 관리비가 4~5만 원 이상 추가 지출되고 있다. 28평형 아파트에서 살 때보다 특별히 뭘 더 하지 않더라도, 넒은 집에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추가 비용인 셈이다. 그래도 소영씨에겐 좀 더 쾌적한 삶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용이다.

사례3> 황사가 심해지는 봄이면 알러지성 비염으로 고생하는 중학생 딸 때문에 공기청정기를 들여놓게 된 주미라(가명, 43세, 기혼)씨는 요즘 비싼 필터 교체 비용이 무척 아깝단 생각이 든다. 공기청정기 덕분인지 아이 비염 증세는 많이 호전되었고, 그렇게 생각하면 공기청정기 구입비는 아깝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6개월 주기로 꾸준히 교체해야 하는 필터값이 만만치 않다는 게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이미 사놓은 공기청정기를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두자니 그게 더 손해 같다. 결국 필터비용은 어쩔 수 없는 가계 고정 비용으로 자리잡았다.

사례4> 아이 둘을 키우느라 넘치는 가사일에 정신이 없는 권희경(가명, 34세, 기혼)씨는 남편을 졸라 식기세척기를 구매했다. 아이 둘 해먹이다 보면 음식 만들고 설거지만 하다가 하루 해가 다 가는 것만 같아서다. 마침 김치냉장고도 더불어 함께 사게 되었는데, 둘다 꼼꼼히 체크해서 에너지소비효율등급 1등급 상품으로 골랐다. 주위 사람들이 전기요금이 제일 큰 비용이니 항상 절전 상품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귀띔해 줬다. 그러나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 든 희경씨는 깜짝 놀랐다. 추가 예상 전기요금으로 예시된 바에 의하면 많아야 고작 1~2만 원 정도가 추가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4만 원 정도가 추가됐다. 전기요금 체계가 '누진세'임을 고려하지 않은 비용산정 예시였다는 걸 알고 속상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 사고 마는 '지출'보다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더 무서운 세상이다. 이는 특별히 사치품을 과소비한 결과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필요'에 덧붙여진 추가 비용이다. 이런 '고정비용'들은 초기 몇 번은 우리를 신경쓰이게 하다가 결국엔 자동이체로 늘상 빠져나가는 '고정비용'으로 우리 머리에 각인된다. '고정비용'이란 맘 먹고 줄일 수 있는 비용이 아니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정해진 지출이다. 

사람들은 빠듯한 가정경제에서 부족한 '저축'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손쉽게는 '덜 먹겠다'는 결심으로 당장 식비를 줄인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는 삶의 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므로 적정 생활비 미만으로 예산을 삭감하게 되면 '무슨 대단한 영광을 보겠다고 이러고 사나'하는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유심히 째려봐야 하는 곳은 '고정지출' 항목이다. 어쩔 수 없이 빠져나가게 마련인 비용이 아니라 '편리함'을 대가로 너무도 쉽게 내 통장에 빨대 꽂아 쪽쪽 돈을 빨아가는 지출항목. 이 지출항목이 정말 필요한지 따져보고 과감히 구조조정하지 않는 한 한정된 수입에서 부족한 저축 여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고정지출 항목... 지갑 빨아 먹는 '흡혈귀'

누구도 스스로 불필요한 곳에 돈을 함부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각종 편리한 혜택을 누리고 사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어디까지 누리고 살 참인가.

미래에 꼭 써야 할 돈을 저축할 여력도 없이 현재 누리는 편리함 탓에 쓰는 비용은 이미 '필요'의 영역을 넘어선 지 오래다.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TV 등등 온갖 기본(?) 전자제품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이미 다들 갖고 있다.

그러면 기업은 A/S만 하고 추가 생산량은 훨씬 적게 조절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지만 기업은 그런 곳이 아니다. 생산 공장이 있고 고용된 노동자가 있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생산해 판매해야 한다. 정작 지금 문제는 너무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데 있다.

꼭 양문형 냉장고여야 할 이유가 없고, 홈바가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터보냉각 방식이든 냉기커튼 방식이든, 어쨌건 시원하게 음식만 보관해주면 된다. 냉장고에 김치냉장고, 냉동고. 이렇게 3대 이상씩 있어도 이상하게 저장 공간은 항상 부족하다. 생산 공장에서 계속 만드는 다양한 기능의 냉장고들은 디자인의 차별성으로, 아주 미세한 기능상의 차별성으로 계속 우리 집으로 떠밀려 들어온다. 냉장고가 3개 이상이면 20평형대 아파트 주방이 좁아지는 건 당연하고, '어쩔 수 없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 누가 냉장고 같은 필수 소비재를 사치소비라고 할 것인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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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부족한 이유는, 삶의 편리성을 대가로 나의 소중한 돈이 쓰는 것 같지도 않게 줄줄 쓰여지는 구조적 소비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카카오톡으로 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스마트폰 사용을 '강요하는' 사회 현실.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폰 사용 여부는 이미 나만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통신 인프라가 한 번 구축되면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을 권리는 힘겨운 싸움이 된다. 핸드폰 사용을 전제된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통신사를 이용할 것인가, 어떤 회사의 핸드폰을 사용할 것인가의 선택만 주어진 셈이다. 더불어 살게 마련인 우리는 어쩌면 핸드폰 사용을 거부할 자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계속 심장이 뛰어야 사는 사람처럼, 엔진이 돌아가야 생존하는 기업들은 생산 공정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필요'를 계속 생산한다. 또 고도로 발전된 마케팅을 통해 아주 미세한 차이를 계급적, 감각적 차이인 양 포장해 '새로운 필요'에 대한 욕망을 부추긴다. 그러면 사람들은 '사소한 차이'를 마땅히 누리기 위해 소비한다.

만약 가진 돈이 없다면 아무리 욕망의 노예가 된다 한들 더 이상 구매하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발전된 '신용'이라는 이름의 할부 금융은 돈이 부족해 지금 누리지 못하는 구질구질함 따위는 잊으라고 한다. 지금 살 돈 없는 가정에도 성공적으로 잉여 생산품들을 쏟아 넣으며 '새로운 필요'를 교육하고, 사람들은 현대 생활에 마땅히 누려야 할 '혜택'처럼 이들을 넙죽넙죽 받아들인다.

지금 당신이 누리는 최소한의 편리함이 미래에 꼭 필요한 곳에 쓸 돈을 계속 당겨쓰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히 점검해봐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박미정님은 현재 (사)여성의 일과 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편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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