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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교육계를 휩쓸고 있다. 다들 서울시장 보궐선거라는 진보와 보수가 벌이는 일대 혈전을 앞두고 사회 세력들의 모든 역량이 그 전선에 치중되어 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교육과정을 두고 대판 싸움이 날 뻔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교육과정에서 벌어지는 혈투는 눈에 보이는 서울시장 선거전으로 나타나는 사회구조의 밑바닥에서 은근히, 치열하게 그리고 더욱 무섭게 전개되고 있다.

이 전투는 지난 8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교과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교육과정 최종안에 있던 '4·19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민주주의의 발전을 설명한다'는 문구를 '1960년대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성장 과정을 이해한다'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핵심은 용어가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새 교과서 마련을 위해 구성된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위원 절반가량이 항의의 표시로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교육과학기술부 국감장에서 이와 관련한 문제로 파행을 겪고, 언론사도 이와 관련한 사설과 기사를 쓰면서 교육과정을 둘러싸고 자유민주주의 편과 민주주의 편 갈려서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톡 까놓고 말하자면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자유민주주의 편이고 한경오와 민주당이 민주주의 편이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든 민주주의든 모든 언어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되어 있다. 기표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 표시라면, 기의란 그 어떤 것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고 해보자. 여기서는 자유롭고 평등하며 잘 살고 행복한 나라,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그런 나라가 기의가 된다. 문제는 그런 나라를 가리키는 기표로 무엇을 사용할 것이냐가 이번 논쟁에 골자가 될 것이다. 보수세력은 그 기표를 '자유민주주의'라 주장하고 진보세력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 논쟁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기표가 가리키는 기의에 대해서 두 세력은 첨예한 해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 하시라"라는 발언을 하였고,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친일파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자들을 미화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용어"라고 받아쳤다.

국회의원들이야 정치적 헤게모니 장악을 위하여 과장된 표현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둘 다 상대방의 승복을 받아낼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백번을 양보해도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일방적으로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고 친북인사로 모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물론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한다고 해서 친일파와 독재자로 모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자유민주주의가 주장하는 내용 자체가 그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진보세력의 일원으로서 그 말의 진의는 이해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의무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대방과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자유민주주의나 민주주의는 나쁜 말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분석을 시작해보자. 둘 다 좋은 말이다. 그러니 이런 좋은 말을 쓰는 것을 반대하는 상대방에 대한 의심을 시작하게 된다. 더구나 평소에 사이도 안 좋고 서로의 사상을 의심하던 차에 스스로가 보기에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용어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으니 싸움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좋은 말을 두고 서로 얼마나 더 좋으니 하는 싸움에 논쟁에 끝이 있을까? 적어도 이에 대하여 필자는 부정적으로 본다. <조선일보>의 어떤 기자는 "자유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학적 논쟁으로 심화되지 않고, 저잣거리 다툼처럼 감정싸움으로 진행되는 점"을 아쉽다고 표현했는데, 원래 민주주의와 관련한 용어가 저잣거리 다툼처럼 감정싸움을 비롯해 온갖 학술 다툼까지 해가면서 완성해 가는 개념들이다.

그런 용어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어 왔고 어떻게 완성되어 왔는지 살펴보라. 지나간 역사는 미화되기 마련이라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저잣거리 다툼'을 치열하게 전개하며 그 역사를 살았을 것이다. 또한 학적 논쟁으로 이것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고, <조선일보>조차도 그렇게 점잖게 이 논쟁을 끌고 가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술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정확히 개념 정의를 하자면, 자유민주주의나 민주주의나 부정확한 개념이라는 측면에서는 오십보백보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가 수식어가 붙어 있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보다는 협의의 개념인 것은 분명하지만,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여도 현존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적대적인 이념들까지 수용하면서 오늘날 여기까지 발전해 왔다. 이를 발전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아울러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대되는 개념이라 여겨졌던 사회민주주의도 자유민주주의가 그 장점을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를 그냥 써주면 될 것 아니냐는 반론을 꺼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개념은 역사 속에서 형성이 되는 것이다. 어느 날 권위 있는 학자가 혹은 공권력을 가진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란 이렇게 좋은 뜻이니 이대로 받아들이자고 하면 그걸로 게임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 보수 세력도 인정하듯이 자유민주주의가 독재 권력에 의해서 독재를 미화하고 반민주적 행위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원래 뜻은 좋은 것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이 용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하면 그렇게 되는 것인가? 미안하지만 그렇게 세상은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곳이 아니다. 역사적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있으니 반대 세력으로부터 반민주세력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이다.

이번에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절차를 무시하였다는 것은 보수 언론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더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위원들이 만들어낸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엄연히 존재하였던 대한민국 역사에서 독재정권의 존재와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축소하려고 하였다. 그것이 오죽했으면 조선일보조차 사설에서 '독재 정권의 폐해와 문제점에 대한 서술이 사라졌다'고 비판을 했겠는가? 이런 비판 때문에 독재라는 표현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편향된 생각을 강조한다는 의구심은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든 민주주의든 중요한 것은 상대주의의 바탕을 둔 상호 존중이다. 그래서 과정과 절차가 중시된다. 자유민주주의로의 변경 과정도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였고 옹호하는 역사적 시각에서도 맥락 배제적 태도가 엿보이는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어떤가? 보수 세력이 걱정하는 것은 이 용어가 인민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민주주의에 인민민주주의가 포괄되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민주주의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쓰면 안 된다는 말인가?

나는 아무리 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한국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의라는 개념 때문에 오도될 걱정이 들지 않는다. 뭐 노파심까지 발휘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정말로 한국 사회에서 쓰는 민주주의가 그렇게 헷갈리는 문제일까? 아마도 이 질문에 보수 세력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마 내가 인민민주주의자이거나 그것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얼마나 나를, 그리고 내가 속한 세력을 못 믿으면 저렇게까지 나올까 싶다.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교과서에서 무리 없이 써 온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제7차 교육과정까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 이전의 정부에서 고시되어 왔다. 거기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제6차 교육과정이었고 민주주의와 함께 사용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좌파정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삭제했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이고, 민주주의라는 말이 한나라당이 말하는 좌파세력의 전유물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 땅의 제 사회세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사회에서 합의가 되어 온 중립적인 표현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개념들은 역사 속에서 새롭게 규정되고 발전한다. 이 땅에서 적어도 절반 가까이의 지분을 가진 보수 세력들이 민주주의라는 말에 대하여 시비를 거는 바람에 우리는 공유할 수 있는 개념 하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것이 언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낭비가 될 것인지를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공유하는 언어 하나가 있다고 해서 사회의 제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기로 합의가 되어도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기 위하여 사회 세력들은 끊임없이 다투고 나름대로 투쟁을 해 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민주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형식적인 기표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자존심 싸움 정도는 건너뛸 수가 있다. 그런데 보수 세력들이 민주주의를 흠집 내버리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민주주의라는 표현에서부터 우리는 지난한 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 세력은 무리수를 써가면서까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들 나름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투쟁이다. 보수 세력이 정확히 짚고 있는 사실 포인트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역사 교육 현장은 한국 사회와 달리 보수 세력이 소수자라는 점이다. 비근한 예로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그 뉴라이트는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반면에, 현장의 역사 교사들은 민족주의 의식이 투철하다. 분단보다는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 성장보다는 독재 권력에 대한 비판적 성향이 강하다.

현 사태의 많은 부분에 책임이 있는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서울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하면서 "1980년대에 좌편향 역사관을 지닌 제자들을 내보낸 데 회한이 많다"고 말하였다. 그 제자들이 좌편향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현실이 답답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고 나서야 겨우 깨달은 것 같다. 그들이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역사 교육의 문제는 정권이 아니었다. 교육과정은 정권 차원의 일이 아니라 학계 차원의 문제였고, 실제적인 교육 내용 역시 정권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교사의 가르치는 실제적인 내용의 문제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공권력을 통하여 교육 내용을 제어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고 그것이 과정과 절차를 무시한 교육과정 개편으로 나타나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결국에 교육과정전투에서 자유민주주와 민주주의의 휴전선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서 형성되었다. 자유민주주의 편에서 헌법에도 있다고 주장하였더니, 민주주의 편에서는 그런 것 없다고 싸웠다. 찾아보니 헌법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있었는데, 이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의견에서 이것은 그것이라는 의견까지 별 말꼬투리 잡기 식 소규모 전투가 또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냥 헌법에 나온 대로 써버린 것이다. 헌법 문구 가지고야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이쯤에서 보수 세력에게 진지한 충고를 하자면 역사 교육에서 마음에 안 드는 역사 교수나 교사를 솎아내는 작업은 말 그대로 학술적으로 그리고 긴 역사적 호흡으로 전개해 나가라는 것이다. 설혹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다고 해서 현장 교사의 생각을 바꾸거나 아니면 학생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보수 세력들이 그렇게 미워하는 386 역사 교수나 교사들은 모두 독재정권 치하에 만든 교과서를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다. 교육은 꽤 많은 것을 하는 것 같아도 때로는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기도 한다.

자칫 논리와 설득으로 안 되니 권력으로 일을 단칼에 해결하려는 독재정권의 습성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비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의구심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정권 차원에서 찍어내기 식으로 일을 벌이다 혹시라도 내년에 정권이 바뀌면 또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할 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자면 몇 안 되는 합의된 용어는 서로 간에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다. 현장 교사로 이제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기도 두렵게 되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인민민주주의로 오해될 수 있다고 했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합의가 어려운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기표마저 쓰지 못하게 만든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합의하고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자유민주의의 장점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에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배제하는 모습은 그 본뜻과는 다르게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이념의 정당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적어도 자유민주주의란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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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