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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까치산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10.26 서울시장 선거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까치산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10.26 서울시장 선거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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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은 벗어나기 어렵다. 중력보다 관성을 극복하는 것이 더 힘들다. 몸에 배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정치적 위기상황이나 선거 때 보이는 한나라당의 모습이 딱 그렇다. 평소에는 이념의 시대는 갔고 실용으로, 생활정치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조금만 여의치 않으면 결국 색깔론에 기댄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습관성 이념 마려움증'이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박원순 야권단일후보와 혼전양상에 들어가자 이념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당 주변 인사들이 한두 마디씩 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의 간판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 20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아름다운재단의 회계보고서를 보면 100억 원에 가까운 돈이 좌파단체로 갔다"고 주장했다.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한 시민단체들 중에 촛불시위 참여 단체가 있다는 정도를 갖고, '좌파단체'에 대한 성격규정이나 구체적인 지원 내용에 대한 근거 없이 이렇게 말했다. 

수위가 높아진 한나라당의 색깔 공격

같은 날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친박근혜(친박)계 핵심인 유승민 최고위원이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할 때 박원순 후보는 국가보안법 철폐에 앞장 선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민간항공사 기장과 심지어 병무청 공무원 등이 인터넷에 친북, 종북 성향의 게시물을 올리는 것을 보면 굉장히 우려할 만하다"며 "친북·종북주의자들이 인터넷에서 설치는 상황에서 국보법 철폐에 앞장섰던 박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는 공동체안보"라며 서민정책에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 왔지만, 이런 문제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홍문표 최고위원도 "박 후보는 2009년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서도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이해할 수 없는 식순을 진행했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인한 것인지, 호국영령을 무시하는 것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21일에는 김기현 당 대변인이 홍 대표의 주장을 이어받아 "박원순 후보가 설립하여 주도해온 아름다운재단은 알고 보니 '좌파의 저수지'였음이 밝혀지고 있다"는 공식논평을 냈다.

한나라당 인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수위의 발언을 한 것은 차명진 전략기획본부장이다. 그는 "박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 민주주의·사회주의 공존 등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종북 조종사·공무원이 도처에 널렸는데, 종북 시장까지 허락하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1일  국회 대정부질문 자리에서 그의 발언은 정점이었다.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서울광장은 허구한 날 반FTA 투쟁,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국정원 철폐 투쟁, 반미 투쟁으로 끊이지 않을 것이다. 좌파의 체제 전복을 위한 대중투쟁기지가 될 것이다."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한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가 4월 27일 오후 최문순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춘천시 선거사무실을 찾아 선거운동원들을 위로한 뒤 "패배를 인정하고, 최문순 당선자가 강원도정을 잘 이끌어가길 바란다. 강원도 발전을 위해 어디서든 힘을 보태겠다"고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눈물 글썽이는 엄기영 후보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한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가 4월 27일 오후 최문순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춘천시 선거사무실을 찾아 선거운동원들을 위로한 뒤 "패배를 인정하고, 최문순 당선자가 강원도정을 잘 이끌어가길 바란다. 강원도 발전을 위해 어디서든 힘을 보태겠다"고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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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박원순씨는 대한민국 체제의 전복을 행동강령으로 삼거나 북한을 편드는 자들을 옹호하고 함께 행동하고 있다"며 "시민사회라는 탈을 쓴 그들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는 급진사회주의자였던 과거의 저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고도 했다. '종북 시장' '좌파의 대중투쟁기지' '급진사회주의' 등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표현을 쏟아낸 것이다.

김장수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천안함 사태는 남북 모두의 책임이라고 하더니, 점차 남측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북한 노동당) 평양시당위원장이 북한 군부를 옹호하고 면죄부를 부여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때 한나라당의 최대무기는 '천안함 사건'을 앞세운 북풍이었다. 그러나 참패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제 "북풍은 시효가 다 됐다"는 반성이 컸지만 올해 4월 27일 강원지사 보궐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거의 분수령이 된 TV토론마다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는 "최문순 후보가 강원도지사가 되면 도의 통합방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될 텐데 군과 함께 휴전선에 방문해서도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할 것이냐,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북한을 두둔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져 안타깝다"는 말을 반복했다. 

'펜션 콜센터'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최문순 후보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국민 정서와 너무 동 떨어진 발언을 해 화가 난 분들이, 나를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해 자원봉사로 나선 것"이라는 '개그성 발언'을 했다. 

"색깔론, 강원도에서도 안 통해... 다른 곳은 더 안 먹혀"

강원도가 대북접경지대이고, 최문순 지사가 자기 의원실 차원에서 배를 빌려 백령도 조사에 나설 정도로 천안함 사건 의혹을 파헤쳤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선거이슈로 삼는 것은 한나라당과 엄 후보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4.27 재보선 개표결과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강원도지사 당선이 확정되자 최 후보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손을 맞잡고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4.27 재보선 개표결과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강원도지사 당선이 확정되자 최 후보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손을 맞잡고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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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과는 완패였다. 최 지사는 같은 당 이광재 전 지사도 패배했던 '군사지역' 화천, 인제, 양구에서도 엄 후보를 이겼고, 그가 엄 후보에게 진 고성(4.4%p)과 철원(3.4%p)도 이 전 지사 때(고성 15.4%p, 철원 14.4%p 차이로 패배)에 비해 격차가 확 줄어들었다.

나경원 후보도 엄기영 후보와 별 차이가 없다. 공개토론에서 박 후보에게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느냐"고 사상검증식의 질문을 하는가 하면 "(박 후보가 당선되면) 서울시 모든 행사에서 애국가와 태극기가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색깔론의 효과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강원도에서 안 통하면 다른 곳은 더욱 안 먹힌다. 그런 시대가 끝났다는 걸 강원도민이 분명히 보여줬다."

4.27 선거 승리 직후 최문순 지사가 한 말이다. 나 후보와 한나라당 지도부가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모든 신경이 표에만 쏠려 잘 들리지는 않겠지만.


태그:#서울시장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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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1 10.26 재보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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