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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3일 열린 '6.2지방선거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 당시 시장에게 나경원 의원이 선거운동복을 입혀주며 축하하고 있다.
 지난해 5월3일 열린 '6.2지방선거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 당시 시장에게 나경원 의원이 선거운동복을 입혀주며 축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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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민 영어보조교사 95개 초등학교 배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500개 학교 지원, 스쿨존 금연구역, 고령친화도시, 데이케어센터 200개 인증, 만 3~4세 정부에 표준보육비 인상 건의, 5세 아동 무상보육 실시, 안심보육과 안심급식, 영세상인 카드 수수료 인하 건의, 수도권 정책협력을 통해 메갈로폴리스 시너지 극대화, 5대 핵심 전략지구 새로운 일자리 창출 공간 조성, 휴먼타운 지속 추진, 노인복지센터 18개소 건립, 주택 바우처 지원….

이들의 공통점을 아는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정책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더 있다. 이들 정책은 오세훈 시장 시절 검토돼 이미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거나 오세훈 전 시장이 민선5기 추진과제로 계획하고 있던 정책들이기도 하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단순히 비슷한 취지의 공약을 내걸었다는 뜻이 아니다. 정책공약의 제목과 구체적 내용이 거의 완전히 일치하는 공약들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미 서울시가 시행 중인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것은 사실상 '사기 공약'에 해당한다. 공약이라는 것은 시장 당선 후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는 약속인데, 이미 시행 중인 정책은 계승이나 재검토의 대상일 뿐이지 후보자의 공약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금자리 주택사업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데, 다음 대선에 나서는 사람이 '보금자리 주택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이미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를 95개 초등학교에 배치했으며 향후 210개까지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서울시는 이미 500개 학교에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도 지원하고 있다. 스쿨존 금연구역이나 고령친화도시는 이미 서울시 조례로 제정되어 추진되고 있다.

이는 나 후보 공약이 깊은 고민과 체계적인 검토를 거쳐 나왔다기보다는 오 전 시장 정책을 기초로 해 가짓수만 잔뜩 늘어놓은 '화장발 공약'임을 방증한다. 이 같은 사정을 모르는 유권자들에게 '나 후보가 생각보다 많은 정책적 준비를 했구나' 하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유권자 기만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까치산시장을 찾아 지원유세에 나선 구상찬 의원과 함께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까치산시장을 찾아 지원유세에 나선 구상찬 의원과 함께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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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후보를 돕는 '오바타 6인방'의 존재

어찌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나 후보 선거 캠프에는 오 전 시장 시절의 권영진, 조은희, 서장은 등 전 '정무부시장 3인방'이 포진해 있고, 이밖에 강철원 전 정무조정실장, 황정일 전 시민소통특보, 류창수 정책보좌관, 이종현 전 대변인, 김태완 시민불편개선단, 강명 전 민원비서관 등 오세훈 전 시장의 핵심 측근인 이른바 '오바타 6인방'이 합류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로서는 오 전 시장의 정치적 생명과 나 후보의 당선이 탯줄처럼 연결돼 있기에 적극적으로 도울 이유가 있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질 경우 오 전 시장의 실정이 야권에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정치적 패배를 불러온 데 대한 당내 비난의 화살이 오 전 시장에게 쏟아질 것임도 명약관화하다. 물론 이에 더해 오 전 시장의 '셀프 탄핵'으로 갑자기 밥줄이 끊어진 이들의 실업대책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오바타 6인방' 가운데 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활동하는 것은 이 전 대변인(캠프 공보특보)뿐이다. 오 전 시장 측근들이 선거 전면에 나서면 이명박, 오세훈 심판론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6인방은 캠프 내에서 오 전 시장 시절의 축적된 경험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나 후보를 지원하는 핵심 인력이라는 게 기자들의 전언이다. 이 가운데 특히 류창수 전 보좌관은 오세훈의 서울시장 초선 도전 시절부터 정책공약 실무를 담당했던 핵심 브레인에 속한다.

이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만든 공약이니 기존 서울시 사업이나 오 전 시장의 계획과 싱크로율이 높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이미 발표된 내용들을 표현까지 똑같이 베끼며 재탕 삼탕하는 후보를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충분한 검토도 없이 베껴낸 공약들을 가지고 잔뜩 가짓수를 벌려 놓고 마치 다양한 공약을 준비한 것처럼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만약 나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돼 이런 공약들을 그대로 추진하게 된다면 나후보가 '오바타 시장'이 됨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나후보는 '나세훈'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물은 많으나 물은 썩고, 물고기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한강입니다. 이런 한강에 한강 르네상스처럼 겉포장만 한다고 한강이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많으나 물은 썩고, 물고기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한강입니다. 이런 한강에 한강 르네상스처럼 겉포장만 한다고 한강이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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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해줄게' 공약, '표 먹기' 공약 남발

이처럼 기존 정책이나 계획을 베낀 것을 제외하고도 나 후보 공약은 오 전 시장이 추진한 사업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로 지적돼온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경우에도 나 후보는 수상호텔 등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뱃길사업, 한강예술섬, 한강변 초고층 재건축사업 등을 거의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오세훈 전 시장이 무리하게 추진해 숱한 문제점이 드러나거나 여론의 거부감이 강한 사업인데도 이를 수정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나경원 후보는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들처럼 각종 토건사업 위주의 정책공약들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더구나 겉으로는 문화나 복지, 환경 등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토건사업에 가까운 정책공약들이 적지 않다.

'오세이돈'이라는 말을 낳은 올해의 물난리 직후 오 시장은 5조 원을 들여 하수관거 확충 사업을 벌이겠다고 한 바 있는데, 나 후보는 이를 똑같이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전역의 학교와 공공기관, 아파트 등에 소규모 빗물저류시스템을 만들면 막대한 세금을 쓰지 않고도 빗물을 생활용수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환경도 보호하고 세금도 아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친환경 해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경원 후보는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토건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나경원 후보는 우리 아이들 밥 먹이는 사업은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온갖 선심성 정책들을 전방위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강북 지역 주민들의 박탈감을 자극하기 위해 '강남북 균형발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추진한 뉴타운 사업과 똑같은 구호를 내걸고 강북 재건축 연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 정책은 이미 오세훈 전 시장 재임 중인 올해 초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 현행 서울시 조례대로 유지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도 나 후보가 재건축 연한 완화를 들먹이는 것은 대상 아파트들이 많은 노원구와 도봉구의 아파트 주민들의 집값 상승 기대감에 영합해 환심을 사려는 공약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공약은 재건축 가능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게 해 가뜩이나 심각한 전세난을 키울 공산이 커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부추기는 정책이다.

한편으로 그는 저소득층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임대료를 깎아준다거나 주거바우처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그는 한쪽으로는 서민 주거 불안을 부추기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서민 주거를 돕는 데 돈을 쓰겠다고 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전방위적 선심성 공약들을 내놓다 보니 생기는 엇박자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뭐든지 해줄게' 공약, '표 먹기 공약'인 셈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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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아바타'에 대한 거부로 MB정권 심판해야

나 후보는 연간 회비 1억 원을 내야 다닐 수 있는 피부관리센터에 다닌 탓인지 정책공약에서도 겉만 번지르르한 화장발 공약이 넘쳐난다. 앞에서도 본 것처럼 기존의 전시성 토건사업은 지속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그는 '예산절약기획단'이라는 것을 내세워 2, 3억짜리 전시성 행사를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줄이겠다는 예산액이 50억 원. 650억 원이 들어간 한강 수상콜택시나 실제로 1조 원이 넘게 들어가게 돼 있는 한강 뱃길사업과 같은 전시성 사업만 하지 않아도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을 아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대규모 토건사업들을 통해 시민 세금을 낭비하면서, 이런 사업을 통해 마치 세금을 아껴 쓰고 있다는 이미지 만들기에 이용하기 딱 좋은 사업일 뿐이다. 이 같은 기획단의 운영비만 몇 억은 들 텐데 이야말로 이 기획단이 없애겠다고 하는 '전시성 사업'의 대상이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나후보가 오 전 시장의 정책을 베끼기만 했으면 다행이다. 오히려 당초 오 전 시장 시절 서울시 목표보다 뒷걸음질 친 정책도 많다. 대표적인 게 서울시 부채를 4조 원 감축하겠다는 공약. 서울시는 2010년 9월 발표한 '서울시 민선5기 재정건전성 강화대책'에서 서울시의 부채를 6조8278억 원까지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목표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서울시는 민선 5기 임기 동안 순환재개발용 주택을 2650호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나 후보는 이 목표치를 1150호로 줄였다. 서울시는 또 같은 주택바우처 지원을 3만1980세대까지 늘리겠다고 했으나, 나 후보는 이를 1만2000세대로 절반 이하로 줄여버렸다. 서울시 부채를 해결할 의지나 주택정책 목표가 크게 후퇴한 것이다.

나 후보는 TV 토론에서 오세훈 전 시장의 실정을 비판하는 박원순 후보에게 '나는 오세훈이 아니니 지난 시정보다 미래를 얘기하자'는 취지로 반격한 바 있다. 하지만 나 후보가 내놓은 정책 공약들을 보면 나 후보는 오 전 시장의 정책방향을 계승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아예 베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나 후보는 오 전 시장에 대한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그리는 미래가 오 전 시장 시정방향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보자. 이번 선거는 한강르네상스 등 각종 화장발 포퓰리즘 사업에는 수천억씩 퍼부으면서 우리 아이들 밥 먹이는 데 쓰는 700억 원을 두고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떠들었던 전임 시장 때문에 치르는 선거다. 따라서 지난 5년 동안 서울시를 빚더미에 올려놓고 서울시민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트린 오세훈 전 시장과 한나라당,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심판은 '오세훈 아바타'인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거부임이 분명하다.


태그:#서울시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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