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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군산 부윤관사'를 둘러봤다. 군산시장 관사(官舍)로 사용되던 1970년대에 드나들던 건물이어서 감회가 밀려왔다. 돌 반지, 은수저 등을 배달하러 다녔는데, 그때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작은 궁전과 같은 곳이었다.

측면에서 바라본 군산 부윤관사. 외양은 대체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입구 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안타까웠습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군산 부윤관사. 외양은 대체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입구 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안타까웠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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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음식냄새가 진동해서 마음이 아팠다. 하루빨리 복원해서 그동안 군산시 행정을 관장했던 부윤과 시장 사진은 물론 군산시 관련 서류들을 진열해놓으면 현장감 넘치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외지인들이 군산을 돌아보는 중에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는 '부윤관사'를 보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소감이다. 

1996년 개보수를 해서 음식점으로 사용된다고 군산시청 홈피에 나와 있었지만, 겉모습만 보면 그리 잘 보존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군산시든, 식당 사장님이든 좀 더 관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연두패패)
이 근처에 군산 부윤관사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하게는 몰랐는데, 지나가면서 돌이 쌓인 기단을 보면서 왠지 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클라라)

1930년대 지어진 관사 건물 구조

'전북 군산시 월명동 22-2번지'는 일제강점기 군산부(群山府) 행정을 총괄하던 부윤(府尹) 관사(官舍) 주소이다. 부윤은 지금의 시장(市長)에 해당하는 관료 명칭. 관사는 지상 2층에 대지면적 1023㎡, 건축면적 200.331㎡ 넓이의 중간 규모 정도의 주택이다.

안채 복도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옛날 목제가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안채 복도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옛날 목제가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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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객실 내부. 도코노마(미술품 등을 보관하는 공간)와 오시이레(벽장)가 있던 자리에 술 상자와 음식상을 쌓아놓았습니다.
 2층 객실 내부. 도코노마(미술품 등을 보관하는 공간)와 오시이레(벽장)가 있던 자리에 술 상자와 음식상을 쌓아놓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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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는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었다가 1996년 개보수를 거쳐 현재는 일반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일부가 중축되었고, 벽체와 창호, 지붕, 내부 마감 등이 대부분 교체되었으나 전체적인 구조는 초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30년대 건물로 알려지는 부윤 관사는 벽체를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고, 박공지붕에 아스팔트 싱글과 기와를 얹었다. 요철이 많은 평면의 건물 뒤편에는 석등, 석탑, 연못 등이 갖추어진 넓은 정원을 조성해놓았다.

방과 부엌은 복도로 이어졌으며, 목조 계단을 통해 2층의 방들과 연결된다. 각 방에는 도코노마(床の間)와 오시이레(押し入れ) 등이 설치되었던 자리가 남아 있고, 다다미를 깔아놓았던 흔적도 보여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정원의 고목과 안채의 기둥, 목조계단, 창틀, 복도 등 건물 구조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관사는 일제수탈의 아픔은 물론 권위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윤 관사, 해방 후에는 1990년대 초까지 시장 관사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

일제의 관사문화는 대한민국 건국(1948년) 후에도 199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다. 그래서 1970년~19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산에는 시청을 비롯한 군청, 법원, 경찰서, 형무소, 세무서,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에 지은 관공서 관사가 많이 남아 있었다.

"기억의 저장고로, 청소년의 교육현장으로 거듭나야"

정원에 세워진 석물 모음. 건물 신축 당시부터 있었던 것인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인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원에 세워진 석물 모음. 건물 신축 당시부터 있었던 것인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인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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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부윤관사는 얘깃거리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인사 전보와 승진 발령을 앞두고 아무개 계장이 봉투를 들고 찾아갔다가 사모님에게 퇴짜 맞은 얘기부터 맨손으로 찾아가 어려운 처지를 솔직하게 설명하고 원하는 지역으로 발령받은 케이스 등. 

권위주의 정부 시절 새 시장이 군산에 부임하면 만찬장이 되기도 했다. 집들이 하면서 시내 유명 중국음식점에서 해삼탕, 양장피 등 술과 고급요리를 불러 먹었기 때문. 그때 죽어나는 사람은 시청의 하급 직원들이었다. 무엇을 주문해올지 몰라 퇴근도 못하고 전화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꿈 같은 얘기다.

60대 이상으로 군산시청에 근무했던 분들은 관사에 얽힌 에피소드를 적어도 하나씩은 간직하거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다. 100년이 넘는 군산시 행정의 뒷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부윤관사는 더 망가지기 전에 복원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아픔을 증언해줄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신세대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망각하며,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캐릭터에 젖어가는 현실에서 군산 부윤관사는 살아 있는 표상으로 기억의 저장고로 혹은 청소년의 교육현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얘기다.

'부윤관사'는 군산시 건축사 연구에 대표적인 건물

안채 2층에서 내려다본 마당과 정원. 모서리에 추녀가 없는 박공지붕이 눈에 띄었습니다.
 안채 2층에서 내려다본 마당과 정원. 모서리에 추녀가 없는 박공지붕이 눈에 띄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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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의회 박정희 의원(중앙·월명·삼학·신풍동)은 "우리는 경관 조성사업을 하면서 일본식 건물만을 복원하는 게 아니고 190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군산시 건축사를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부윤관사는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말했다. 

"부윤관사는 전형적인 일본식 사찰 '동국사'와 일본 무사들이 사는 집의 형태로 지은 '히로쓰 가옥'과는 건축 방식과 의미가 다릅니다. 건물 세 개를 놓고 보면 각자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요. 또한, 연립주택 식으로 나란히 지어진(나가야) 주택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일제강점기 일반 주택과 관용 건물 방식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박 의원은 "지역마다 특색에 맞는 개발을 하고 있는데 군산의 원도심 지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콘텐츠를 유지 보유하고 있다"면서 "역사적으로 시청에 버금가는 중요한 건물이니 더 훼손되기 전에 복원해서 건축 연구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군산시 문화체육과 문화정책 주현노(52) 계장은 "국가 지정 등록문화재 등록 신청에서 탈락한 비지정 문화유산이어서 조금 밀려나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시기를 정확히 약속드리기는 어렵지만, 군산시 지정 향토 문화재 등록부터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 건물에 대한 자료는 2008년도에 발행된 <근대문화의 도시 군산>(김중규 편저)을 참고했습니다.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부윤관사,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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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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