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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북쪽 지방 핑구(平谷)는 풍성한 과일의 땅이다. 베이징, 텐진, 허베이 성 경계에 있는 핑구는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곳이기도 하다. 큰 호수이자 관광지인 진하이후(金海湖) 가는 길에는 가을답게 과일이 쏟아져 나왔다.

핑구에는 수많은 과일이 재배된다. '핑구의 스얼궈(平谷12果)'는 자랑할만한 과일이 12개라는 이야기이다. '제 철 과일'이 있듯 가을에 익는 과일이 갖가지 색깔로 도로 한 켠에 나란히 나섰다.

베이징에서 징핑(京平)고속도로를 달려 핑구 시내를 지난 후 순핑루(顺平路)를 거쳐 핑지루(平蓟路)를 달린다. 도로 양 옆으로 과일을 파는 사람들이 거의 2~30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있다. 국경절 연휴를 맞아 핑구의 진하이후나 경동대협곡(京东大峡谷) 등으로 가고 오는 사람들이 고객이다. 현지의 싱싱한 과일이니 가격도 저렴하고 싱싱하다. 당연히 먹음직스럽다.

베이징에서 핑구를 잇는 도로에 나온 과일 좌판
 베이징에서 핑구를 잇는 도로에 나온 과일 좌판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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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구의 12과일은 복숭아(다타오, 大桃), 대추(다자오, 大棗), 살구(홍싱, 紅杏), 아가위(홍궈, 紅果), 포도(푸타오, 葡萄), 호두(허타오, 核桃), 앵두(잉타오, 櫻桃), 사과(핑궈, 苹果), 감(스즈, 柿子), 자두(리즈, 李子), 밤(리즈, 栗子), 배(리, 梨)이다. 모두 핑구를 대표하는 과일들인데 '제 철'을 맞아 도로로 나온 과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배이다. 사실 중국 배는 우리 배에 비해 당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종류는 다양한 편이다. 동그랗고 조그만 배는 징바이리(京白梨)라 부른다. 핑구는 물론 허베이 지방에서 결실을 맺는 배입니다. 이 징바이리는 다른 중국 배에 비해 약간 당도가 높아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징바이리보다는 약간 더 백색에 가까운 배가 있는데 쉬에화리(雪花梨)라고 한다. '눈꽃배'라는 시원한 이름이지만 맛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다. 당도는 떨어져도 기침 등 호흡기에 좋고 감기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이 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베이징을 비롯 허베이 사람들은 포도주와 꿀을 넣고 1주일 가량 삭혀서 먹기도 한다. 이것을 홍쥬미리(紅酒蜜梨)라고 부른다. 작년 10월 허베이의 한 지방도시에서 먹었던 와인 빛깔을 담은 달콤한 배 요리가 떠오른다. 약간 밋밋한 배 맛을 포도주와 꿀 맛으로 범벅을 했다. 베이징에서도 두이추(都一處) 등 전통식당에 가면 간혹 맛볼 수 있다.

호두보다 큰 대추
 호두보다 큰 대추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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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핑구의 대표적인 가을 과일은 대추이다. 과장이 심한 중국 사람답게 다자오(大棗)라고 부른다. 손으로 먼지만 털어내고 먹어도 맛 있다. 싱싱하고 달콤한 맛으로 몇 개 먹으면 배가 부를 정도로 무지 크다.

거리에서 무게를 달아서 즉석에서 판다. 신식 구식 저울 다 나왔다.  1근(500g) 5위엔(약800원)에 팝니다. 한 사람이 2~3개씩 집어먹어도 좋다. 연신 맛 보라며 권한다. 반근 정도는 우리 일행 5명이 그 자리에서 해치웠다. 그래도 여유만만 무게를 달고 있는 할아버지는 신났다.

옆에 있던 호두와 비교해 보니 정말 크다. 손바닥 위에 호두와 함께 올려놓으니 정말 실감난다. 한 주먹에 많아야 5개 집을 수 있을 정도. 이 대추는 핑구의 명물로 알려져 있는데 대추 축제를 할 정도로 특산물이다.

우리말로는 아가위라 부르는 좀 자그마한 과일도 있다. 붉은 색이라 홍궈라고도 부르지만 보통 산자(山楂)라고 한다. 산에서 나는 조그만 사과 같지만 맛은 신 편입니다. 약재로도 쓰이는데 항암효과가 있다고 하며 탕으로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한다.

징바이리(왼쪽), 산자(오른쪽 위), 호두(오른쪽 아래)
 징바이리(왼쪽), 산자(오른쪽 위), 호두(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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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나무의 사랑(山楂樹之戀)>이라는 영화가 있다. 장이머우(張藝謀)감독 2010년 작품으로 문화대혁명 시기 한 여고생이 농촌활동을 하러 간 곳에서 젊은 오빠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산자나무가 있는데 영화 속 애절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그저 평범한 나무처럼 보이지만 가을이 되면 사랑이 이뤄지듯 붉은 산자열매가 열린다. 아주 슬픈 영화이면서 서정적인 장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붉은수수밭>으로 대표되는 장이머우의 초기작품 스타일에 맞는 진솔한 인간미가 담겨 있는 영화이다. 산자를 보니 이 영화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호두도 있다. 한 바구니 담아두니 먹음직스럽다. 몇 개 까서 먹으니 정말 싱싱하고 고소하다. 건과류를 대표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창셔우궈(長壽果) 또는 완수이즈(萬歲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건강식품이다.

우리가 호두(胡桃)라고 부르는 것은 유럽에서 중국 서북지방을 통해 들어온 것이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닐까? '오랑캐 복숭아(또는 열매)'이니 말이다. 호두는 잣처럼 껍질을 두 번 벗겨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허타오(核桃)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이 호두껍질을 둘러싼 껍질이 또 있다.

사과도 핑구를 대표하는 과일이다.  핑구 사과는 열매가 작아서 한 손아귀에 딱 쥘 수 있다. 옆자리에 칼이 있어서 하나 깎아 먹었더니 생각보다 맛 있습니다. 3근 샀다. 3근에 10위엔.

길거리에 나온 해바라기와 호박
 길거리에 나온 해바라기와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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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과일에는 속하지 않지만 해바라기와 호박도 길가에 나왔다. 지름이 30센티미터가 넘어 보이는 해바라기 하나가 10위엔이다. 몇 알 빼내서 먹었더니 그런대로 고소하다. 가격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호박도 10위엔이면 하나 살 수 있을 것이다.

좌판 맨 앞에 깔려 있는 감도 핑구 12대 과일 중 하나이다. 이미 익어 홍시가 됐다. 1개에 1위엔 내라고 해서 하나 사서 먹었다. 달고 맛 있다.

한참 과일과 향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서둘러 진하이후 호수로 향했다. 날씨가 약간 흐려 아쉽긴 해도 바다 같은 호수를 보니 가슴이 후련하다. 햇살에 반사된 호수 물결이 반짝거린다. 그 위로 호수를 가로지르며 보트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낙하산을 타는 사람도 있다. 모터보트가 이끄는 대로 하늘로 솟아올라 비상한다.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흔히 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이다.

핑구 진하이후 호수에서 낙하산 수상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핑구 진하이후 호수에서 낙하산 수상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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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이후 호수에서 결혼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신혼부부
 진하이후 호수에서 결혼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신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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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이후는 1679년 대지진으로 형성된 협곡을 막아 만들어진 호수이다. 베이징에서 3번째로 큰 저수지이기도 하다. 호수 앞에서 신혼부부가 결혼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갈대 숲에서 달콤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서서히 단풍 빛깔을 띠고 있는 잎사귀도 주변에 많다.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장쥔관(將軍關) 장성으로 향했다.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시작된 명나라 장성의 베이징 초입이다. 그런데 이 장성은 얕은 개울과 마을 옆으로 뚫린 도로로 인해 단절돼 있다. 장성이 지나던 자리 옆에는 쓰레기장이 있고 벽돌은 허물어져 간다. 산속에 남은 장성은 자태를 유지하지만 마을이 된 자리는 황폐하다. 도로공사로 이미 사라져간 장성 벽돌은 어디로 갔을까?

'무릇 장성을 오르는 사람은 산에 오를 때 화기 휴대를 엄금한다. 불 나면 각자 책임이다"라는 삼림방화지휘부의 문구가 장쥔관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걸려 있다. 삼림방화 책임부서만 있고 장성관리 책임부서는 어디로 갔는가? 끊어진 장성, 작살난 장성은 누구 책임인가 묻고 싶어진다.

베이징 초입 장성에 걸린 삼림방화 주의 표지판
 베이징 초입 장성에 걸린 삼림방화 주의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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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초입 장성 앞 개울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
 베이징 초입 장성 앞 개울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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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을 따라 양떼가 놀고 있다. 도로를 질주하는 화물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뜯고 있다. 양치기는 먼산, 장성을 향해 시선을 하고 느긋하게 앉아있다. 개울 옆으로 작은 호수도 있다. 사람들이 호수에 낚시 대를 드리우고 있긴 해도 오히려 장성보다 더 멋진 분위기가 난다. 피고 지는 꽃이 있고 자연 그대로 펼쳐진 잔잔한 호수가 마음에 든다. 마을 대문 사이로 익어가는 감나무, 그 사이로 보이는 가파른 장성 계단도 볼만하기는 하다.

산골마을 옆 뒷동산으로 올랐다. 과일나무들이 온통 가을햇살을 받으며 뻗어있다. 여름 밤과 가을 감이 한꺼번에 주렁주렁 달렸다. 밤과 감 사이의 계절인 셈이다. 아직은 산골마다 매달린 과일을 사람들이 따 먹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온 사방이 과일천지이기도 하지만 현지 가격도 너무 싼 편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눈치 빠른 사람들만 도로로 나온 것이다.

베이징 초입 장성 마을 마당에 자란 감나무. 멀리 장쥔관의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베이징 초입 장성 마을 마당에 자란 감나무. 멀리 장쥔관의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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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과 밤이 함께 자라는 계절(왼쪽), 사과와 배를 젓붙인 과일(오른쪽)
 감과 밤이 함께 자라는 계절(왼쪽), 사과와 배를 젓붙인 과일(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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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배를 접붙인 과일도 있다. 등산을 하게 되면 자주 만나게 되는 핑궈리'(苹果梨)이다. 이 핑궈리는 중국 북방지방인 동북, 화북, 서북지방 산천에서 재배된다. 그 원산지가 지린(吉林)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라 하는데 사실 1920년대에 북한 함경남도에서 종자를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봤을 때는 붉은 빛의 사과와 잔 점이 박힌 배의 모습이었는데 아직은 설 익었는지 얼핏 보면 그냥 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맛을 봤더니 아직은 시큼하다. 하나 따서 주머니에 넣어 와서 책상 앞에 놓았다. 북한에서 넘어온 녀석이라니 왠지 정겨웠기 때문이다. 덜 익어 아무 맛도 없지만 녹색 자연을 눈 앞에 두고 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싸고 맛 있으며 나름대로 재미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핑구 12과일". 한 철에 다 보고 맛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가을은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은 과일이 등장하는 계절이니 마음도 풍성해진다.

덧붙이는 글 | 13억과의대화 www.youyue.co.kr에도 실립니다!



태그:#베이징, #장성, #진하이후,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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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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