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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낫드 타고르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5월 7일 그의 탄생일을 맞아 서울 대학로에서는 양국 고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흉상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왜 외국 시인의 흉상이 서울에 제막되었는가. 그것은 일제 강점기 노벨상 수상작가인 타고르가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위로를 드러낸 두 편의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 두 편의 시를 함께 읽고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아 독자의 이해를 도울 필요가 있다.

필자는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이란 시는 잘 알고 있으나 한국에 대해 썼다는 <패자의 노래>는 읽은 적이 없다. 그 내용이 몹시 궁금하여 인터넷을 다각도로 검토하여 그 작품이 쓰여진 경위와 영어 원본을 찾을 수 있었다.  타고르는 인도 동북부 콜카타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인도는 물론 전 세계로부터 시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동양인 최초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써, 같은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가 쓴 우리나라에 대한 두 편의 시가 있어서 우리는 한결 친밀하게 느끼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 두 편의 시를 소개하고 몇 가지 잘못 알려진 사실을 짚어보기로 하겠다. 시기상으로 먼저 발표된 '패자의 노래'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번역본과 원문 시를 읽어보기로 한다.

패자의 노래

주主께서 날다려 하시는 말슴
외따른 길가에 홀로 서 있어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라시다.

대개 그는 남모르게 우리 님께서
짝 삼고자 하는 신부일세니라.

검은 낯가림[面紗]으로 가리었는데
가슴에 찬 구슬이 불빛과 같이
캄캄한 어둔 밤에 빛이 나도다.

낮(晝)이 그를 버리매 하나님께서
밤을 차지하고 기다리시니
등이란 등에는 불이 켜졌고
꽃이란 꽃에는 이슬이 매쳤네.

고개를 숙이고 잠잠할 적에
두고 떠난 정다운 집 가으로서
바람 곁에 통곡하는 소리 들리네.

그러나 별들은 그를 향하여
영원한 사랑의 노래 부르니
괴롭고 부끄러워 낯붉히도다.

고요한 동방의 문 열리며
오라고 부르는 소리 들리니
만날 일 생각하매 마음이 조려
어둡던 그 가슴이 자조 뛰도다.

당시 최남선이 발간하던 <청춘>에 실려 있는 번역시다. 누구의 번역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일본에 유학중이던 진학문(秦學文, 1894~1974) 이라는 사람의 변역이라는 자료가 있다. 원래 이 시는 이렇게 연 구분이 되고 율격이 있는 정형시가 아니다. 원문을 보면 그냥 산문체로 쓰여진 시라는 걸 알 수 있다.

타고르가 한국에 대해 쓴 두 편 중 영문으로 된 <패자의 노래>가 남가주대학교 도서실 한국 관련 자료실에 있다.
▲ <패자의 노래> 타고르가 한국에 대해 쓴 두 편 중 영문으로 된 <패자의 노래>가 남가주대학교 도서실 한국 관련 자료실에 있다.
ⓒ 최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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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미국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도서실에 보관되어 있
는 한국관련 기록문(문서번호: kada-m7921) 중 하나다. 이 자료에 보면 산문시로 되어있고 시 아랫부분에 최남선의 요청으로 쓰여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남선이 발행하던 잡지 <청춘>에 실렸기 때문에 그렇게 적었을 개연성이 높다.

<동아일보>의 관련 자료를 보기로 한다.

그(진학문)는 또 동경 유학 중이던 1916년 일본을 방문한 타고르를 동료 일본인 학생들과 함께 만나 '새 생활을 추구하는 조선 청년들을 위한 시 한편을 써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이듬해 최남선이 하던 잡지 '청춘'(1917년 11월호)에 '패자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실어 타고르를 조선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 진학문, '舊友回顧室', 동우(東友) 1963년 9월호 11~12쪽

그럼 진학문이 누구이며 어떻게 타고르에게 시를 하나 써주도록 부탁을 하게 된 것일까. 진학문은 유학생으로 일본에 갔으나 중도하차 하고 여러 신문사의 기자로 있다가 나중엔 동아일보 창간 멤버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1916년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학생들과 함께 타고르를 만나 시 한 편 써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번역시는 옛 문체로 쓰여져 이해하기가 오히려 까다롭다. 필자가 원문 그대로 산문체로 이해하기 쉽게 번역을 해 보았다. 원문과 함께 읽어보자.

The Song of Defeated

My Master has asked of me to stand at the roadside of retreat and sing the song of the defeated.
For she is the bride whom he woos in secret.
She has put on the dark veil, hiding her face from the crowd, the jewel glowing in her breast in the dark.
She is forsaken of the day, and God's night is waiting for her with its lamps lighted and flowers wet with dew.
She is silent with her eyes downcast; she has left her home behind her, from where come the wailing in the wind.
But the stars are singing the love song of the eternal to her whose face is sweet with shame and suffering.
The door has been opened in lovely chamber, the call has come; And the heart of the darkness throbs with the awe of expectant tryst.

패자의 노래

임께서 내게 피난의 길가에 서서 패배자의 노래를 부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녀는 임이 비밀리에 구혼하는 신부입니다.
그녀는 검은 면사포를 쓰고 사람들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그녀 가슴에 꽂힌 보석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낮에 버림 받고 불 켜진 램프와 이슬 젖은 꽃을 들고 있는 성스러운 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눈을 내리뜨고 고요히 침묵 속에 머무릅니다; 그녀의 고향에선 바람 따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별들은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고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고달픔으로 상기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방의 문이 열리고 임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둠의 심장이 이제 곧 다가올 임과의 만날 약속에 경외심에 떨려 두근거립니다.

이제 그 의미가 확연해졌을 것이다. 어둠은 바로 식민지배하에 있는 한국이고 임은 바로 해방의 그날이 아니겠는가. 이 시에서 신부는 바로 한국인데 무척 아름답고 신비에 가득한 동양적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타고르는 한국의 해방을 열렬하게 갈망하는 시를 써서 유학생 진학문에게 주었고 이 시는 이듬해인 1917년 <청춘>에 실렸던 것이다.

다음은 '동방의 등불'이 쓰여진 경위를 알아보자. 타고르는 일본을 세 번 방문했는데 1916.1917, 1929년이다. 1929년 캐나다 방문길에 잠깐 일본에 들렀을 때 <동아일보>의 도쿄 지국장 이태로의 부탁을 받고 쓰여졌다고 한다. 시를 읽기로 한다.
         
일즉이 아세아(亞細亞)의
황금 시기(黃金時期)에
빛나든 등촉(燈燭)의
하나인 조선(朝鮮)
그 등(燈)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東方)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이 시는 1929년 3월 28일에 쓰여졌는데  당시 편집국장이던 주요한의 번역으로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다. 원래는 제목이 없었으나 나중에 제목을 붙이고 새로 번역된 시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럼 원문과 새로 번역된 시를 함께 읽어보자.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그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가 쓴 것은 위의 시 단 네 줄 뿐이었는데 나중에 기탄잘리의 35번째 시를 뒤를 붙여 잘못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 기탄잘리 35번째 시를 보기로 한다.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뜻으로 1912년 타고르가 쓴 시집이다 이 시집으로 1913년 타고르는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기탄잘리는 시에 일련번호가 붙여진 연작시로 35번째 시다. 이 시는 한국과 직접 관련 있는 것이 아니고 한국을 위해 쓴 시가 아니기 때문에 <동방의 등불>에 붙여서 쓰거나 읽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인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 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 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이여 깨어 나소서!
- 기탄잘리 35째 시

지금까지 타고르가 한국과 관련하여 쓴 시 두 편을 살펴보았다. 이 두 시 중에 필자는 패자의 노래가 더 시적이며 타고르의 문체와 사상이 더 잘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본다. 노벨상 수상작인 기탄잘리를 쓸 무렵과 시기적으로 가까운 때에 쓰여졌고 그 내용도 기탄잘리의 한 대목처럼 고도의 상징성을 띄고 있다. <동방의 등불>이 간단한 메시지의 전달 형식이라면 <패자의 노래>는 완벽한 한 편의 시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타고르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 한 위대한 시인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깊은 애정을 그의 두 시편을 통해 살펴보았다.


태그:#타고르, #최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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