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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상록수>의 저자 심훈의 3남 심재호씨(76)
 소설 <상록수>의 저자 심훈의 3남 심재호씨(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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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긴 육필원고를 당진군에 다 드리고 갑니다. <상록수>의 주인공도, 친필원고의 주인도 여러분입니다. 자랑스럽게 지켜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난 8일, 충남 당진 상록문화제 행사장(대덕수청 도시개발 사업지구)에 모인 수천여 명의 주민들에게 심훈의 3남 심재호(76)씨는 연단에 올라 두 번 세 번 상록수의 '주인공'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지난해 큰 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다 가까스로 깨어났다. 몸을 추스르자마자 다시 아버지 심훈(1901~1936)의 뜻을 정돈하는 일에 몰두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그는 지난 8월 말 아버지 육필원고를 모두 싸들고 몰래(?) 당진을 찾았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최근까지 그가 당진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지난 8일과 9일 심씨를 당진 상록문화제 행사장에서 만나 그간의 경과를 들어 보았다.

"지난 8월 말에 상록문화제집행위원회의 도움으로 아버지 유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왔어요. 오기 전에 유품 정리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일체 제가 당진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진읍내 숙소 겸 사무실에서 한 달 내내 유품원고 정리 작업만 했어요."

"육필원고 1000매가 아닌 4500매..."

심훈의 육필원고. 상록문화제 행사장에서 '심훈 육필원고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심훈의 육필원고. 상록문화제 행사장에서 '심훈 육필원고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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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은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겸 영화인, 언론인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상록수> 등 소설과 시를 남겼다. 직접 영화를 원작·각색·감독하기도 했다.

석 달을 예상하고 시작한 일은 한 달 만에 마무리됐다. 주변 분들이 종일 심씨의 일을 물심양면 거들었기 때문이다. 일을 마친 그는 "온몸에 진이 빠진 듯하다"고 말했다.
 
"정확히 28일 만에 원고정리가 끝났어요. 아버지의 육필원고를 모두 기록하고 목록을 만들고 빠짐없이 한 장 한 장씩 사진 촬영했습니다. 완벽하게 정리했습니다."

정리가 끝나자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1000여 매로 알았던 심훈 선생의 육필원고가 4500매에 이른 것이다. 심씨는 물론 이를 전해들은 주변 사람들도 상기됐다.

"놀랄 수밖에요. 육필원고가 1000매라 하더라도 한국 근대작가 중 유례가 없는 분량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3배 이상 많은 4500매나 됐으니까요. 정리를 하면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시집을 찾은 데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원고가 더해져 늘어났습니다."

당진군민은 물론 관련 문학계를 놀라게 할 일은 또 있었다. 육필원고 4500매에 대한 사진 전체를 연구와 전시를 위해 조건 없이 당진 땅에 넘겨드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지난 8일 상록문화제 행사 무대에 올라 "아버지가 남긴 (사진 촬영된) 친필원고 4500장 전체를 당진에 다 드리고 갑니다"고 선언했다.

'빨간 펜' 일제 검열기록은 일제 탄압 입증자료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일제 검열기록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일제 검열기록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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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일이지만 심훈의 육필원고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먼저 가치를 인정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는 선생의 시를 번역했다. 일본 도쿄대와 미국 시카고대 등이 한동안 선생의 유고를 사겠다며 백지수표를 건넸다.

심훈의 육필원고를 탐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심훈의 원고에만 있는 한 가지를 꼽자면 일제의 검열기록이다. '빨간 펜'으로 원고를 난자질한 흔적과 함께 선명한 '검열' 도장이 찍혀 있다. 일제가 한국인의 말과 글을 어떻게 통제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입증자료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서도 유가족들은 '백지수표'를 거절했다. 이어 육필원고를 직접 정리했고, 이를 학술연구와 전시를 위해 기꺼이 내놓은 것이다.

"전날(7일) 이철환 당진군수와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50년 가까이 쫓아다니며 찾아 정리해 사진으로 촬영해 놓은 친필원고를 당진 땅에 남기고 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군수께서는 당진군민들이 상록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심훈기념관(문학관)을 조성하고 이를 잘 관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이 잘 지켜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육필원고를 기록한 사진을 건네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심훈기념관 건립 및 유품전시계획, 유품활용계획 등이 마무리된 이후 당진군민들이 꼭 필요하다고 요구해온다면 육필원고 원본 또한 당진의 품에 맡기겠다"고 강조했다. 유품의 당진 이전은 당진이야말로 작품 속 <상록수> 주인공들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당진 사람들이라는 유가족들의 생각과도 이어져 있다.

"상록수 정신은 주인의식... 상록수의 주인공은 여러분!"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당진 대덕수청도시개발 사업지구에서 열린 제 35회 상록문화제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당진 대덕수청도시개발 사업지구에서 열린 제 35회 상록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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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는 '상록문화제' 행사장에 마련된 '심훈육필원고 특별전시관'에 행사기간(10월 7일~9일) 내내 상주하며 관람객들과 만났다. 심훈 정신을 주제로 한 상록문화제도 지켜보았다.

"상록문화제는 올해로 세 번 참석했습니다. 볼 때마다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심훈 정신을 키우고 심훈기념관을 운영하는데 큰 모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팔순이 멀지 않은 그의 바람은 언제나 한결같다.

"아버지의 문학의 산실이었던 '필경사'(筆耕舍,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 충남 당진 송악면 부곡리)가 정비되고, 아버지에 대한 유품 등이 전시될 심훈 기념관이 잘 조성돼 아버지 뜻과 정신이 잘 계승됐으면 합니다."

당진군민들에 대한 바람 또한 한결같다.

"'내가 상록수의 주인공이다. 아버지 원고는 내 것이다'는 주인의식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주인의식이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씨는 며칠 후면 거주지인 미국으로 떠난다.

"몸도 좋지 않아 언제 또 오게 될지 기약할 수 없어요. 당진에서 한 달여 동안 아버지 육필원고를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고단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너무도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홀가분합니다."


태그:#심훈, #심재호, #상록수, #상록문화제,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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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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