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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징어튀김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분식집에서 오징어튀김을 주문했을 때, 오징어는 쏙 빠지고 밀가루만 나오면 아주 화가 납니다. 저는 우리의 삶이 오징어가 빠진 오징어튀김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먹는 것보다 겉모습을 치장하는 데만 주력합니다. 먹는 것은 삶입니다. 우리는 속 빈 강정이 돼서는 안 됩니다."

어리지만 당찬 목소리가 대회장에 쩌렁쩌렁 울린다. 슬로푸드 실천을 촉구하는 청소년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듣는 어른들을 숙연하게 한다. 지난 2일 남양주 체육문화센터 슬로푸드 마당에서는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라는 주제로 '2011 슬로푸드 청소년포럼'이 열렸다.

제17차 세계유기농대회와 함께 열린 '2011 슬로푸드대회' 마지막 행사인 청소년포럼에는 남양주시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여섯 명의 청소년이 연사로 나서 자신이 겪은 슬로푸드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2일 남양주 체육문화센터 슬로푸드 마당에서 열린 '2011 슬로푸드 청소년포럼'
 2일 남양주 체육문화센터 슬로푸드 마당에서 열린 '2011 슬로푸드 청소년포럼'
ⓒ 슬로푸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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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연사이자 포럼의 막내인 오남중학교 1학년 권하은 학생은 편식이 아주 심했고 특히 채소를 먹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고백'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급식 문제로 어머니가 매번 학교를 찾아갔을 정도로 편식이 심했던 권 양은 학교에서 실시한 슬로푸드 교육과 이번 청소년 포럼을 계기로 식습관이 많이 바뀌었다. 권양의 고민을 알게 된 교육 담당자가 '매 끼니 세 가지씩 채소 반찬 먹기'라는 3주간의 과제를 내주었고, 권양은 이 과제를 지키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해야 했던 것.

"지금까지 숨겨온 편식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이 왠지 불안하고 창피했습니다. 집에서나 급식에서도 먹지 않던 채소를 먹기도 너무 힘들었고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의 과제를 알고 있는 친한 친구가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조금씩 채소를 먹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깻잎의 맛과 채소의 향을 알게 되었어요. 모든 음식에는 그 음식만의 맛이 있고, 그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이번 포럼을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편식이 심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합니다"

호평중학교 2학년 장유진 학생은 학교에서 텃밭 가꾸기와 슬로푸드 요리교실을 통해 지난 몇 달간 슬로푸드 교육을 받았다. 장양은 텃밭의 싱싱한 녹색 채소들과 이름 모를 꽃들 사이에서 행복했던 시간과, 처음 접해본 우리 전통음식의 맛이 어땠는지 들려주며 "어쩌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슬로푸드를 학교에서 배우면서 공동체의 배려, 협동, 존중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호평중학교 2학년 장유진 학생의 발표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
 호평중학교 2학년 장유진 학생의 발표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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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은 또 "요즘 중고생들은 방과 후에도 학원을 전전하며 너무나 바쁘게 산다. 슬로푸드 수업을 듣고 싶어도 성적이 떨어져서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었다"며 "아직 어린 나이인 우리가 이렇게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우리 세상이 좀 더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닮아갔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부모님을 따라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온 산타 모니카는 금곡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피부색과 생김새는 조금 다르지만, 유창한 한국말과 한국식 식습관은 여느 평범한 고등학교 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 산타가 활동 중인 학교 슬로푸드 동아리에서는 텃밭에서 농사지은 배추로 가을에 김장을 해서 주변 노인들께 나눠드릴 계획을 갖고 있다.

산타는 "땅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방글라데시 노래 가사를 들려주며, 이것이 한국의 '신토불이'와 같은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구는 정말 아름다운데, 우리가 지구에 살면서 이곳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앞으로 크게는 못하더라도 주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슬로푸드 실천을 열심히 할 생각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잃어버린 우리 문화와 우리의 건강을 슬로푸드를 통해 다시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2011 슬로푸드 청소년포럼 연사로 나선 남양주시 금곡고등학교 2학년 산타 모니카
 2011 슬로푸드 청소년포럼 연사로 나선 남양주시 금곡고등학교 2학년 산타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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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생활과 나쁜 식습관, 현대인은 병들고 있습니다"

금곡고등학교 3학년 김형준 학생은 "슬로푸드 운동은 사회 계몽운동이며 현대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김군은 "사람들은 더더욱 바빠지고 패스트푸드는 호황을 누리지만, 바쁜 생활과 나쁜 식습관의 악순환에 지쳐 현대인들은 육체적, 정신으로 병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느리더라도 제 속도로 살아가는 달팽이처럼 빠름에 중독된 현대인에게 누군가 느림과 여유를 선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누군가는 코웃음칠 것입니다. 왜 편한 것이 있는데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느냐고.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온갖 가공식품과 유전자 변형식품, 그리고 패스트푸드가 우리 사회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힘들고 귀찮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 자신과 우리 사회를 위해서 슬로푸드 운동을 널리 알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금곡고등학교 3학년 김형준 학생의 발표
 금곡고등학교 3학년 김형준 학생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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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또 김성훈 환경정의 이사장(전 농림부장관)이 청소년들의 멘토로 초청돼 어린 시절의 경험담과 함께 애정 어린 조언을 들려주어 의미를 더했다.

김 이사장은 먹을 것이 없어 들판에 나가 삘기며 송기, 칡을 캐먹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우리가 먹던 것들이 모두 요즘엔 건강식이라고 특별히 찾는 것들이다"고 말했다.

"낮에 배가 고프면 바닷가에 가서 낙지를 잡아요. 갯벌에 나가면 낙지 할아버지, 낙지 할머니, 아빠, 손자 이렇게 다 올라와있어요. 뻘 속을 팔로 한번 쭉 훑으면 낙지가 팔에 다 붙거든요. 그걸 쭉 훑어서 기절하게 만들어가지고 그 자리에서 먹었어요. 너무 배가 고프니까 집에 가져갈 시간이 없지요……."

포럼에 참가한 청소년 연사들, 그들의 친구들……. 앞자리에 쪼르르 모여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에는 그들을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김 이사장은 "서양에서는 '좋은 음식이 좋은 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우리나라의 식의동원과 같은 말"이라면서 "가난한 아버지를 두어서 고기 한번 못 먹고 거친 음식만 먹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건강한 것 같다"고 자연에서 얻은 음식의 힘을 강조했다.

김성훈 환경정의 이사장의 특강. 진심이 담긴 애정어린 강연으로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김성훈 환경정의 이사장의 특강. 진심이 담긴 애정어린 강연으로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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삘기, 송기, 칡……, 가난해서 먹던 것들이 요즘엔 건강식

이날 포럼의 연사인 장유진 학생이 다니는 학교인 호평중학교 강범식 교장은 "학교 앞 400평의 공터를 힘들게 가꾸며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만든 텃밭이 학생, 학부모, 지역 주민이 모두 하나 되는 텃밭 공동체, 마음의 텃밭이 되었다"면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지만, 저는 이번 기회에 하늘은 스스로 교육적으로 돕는 자를 교육적으로 돕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강 교장은 "어른들은 잘 못 먹어도, 자라는 아이들은 좀 잘 먹이자는 것이 제 생각"이라면서 "임기 4년 동안 유기농 급식을 실천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야외에 마련된 대회장에 내리쬐는 햇볕은 초가을 날씨답게 따스했고, 대회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면서도 활기가 넘쳤다. 학부모와 교사, 일부 청중들 가운데는 아이들의 당차고 감동적인 연설에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내 자신의 식습관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청소년들의 감동적인 연설로 인해 슬로푸드 교육을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태그:#청소년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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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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