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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그게 문제다'라는 말이 있다. '다 좋은데'는 차치하고, '그게 문제다'라는 코드에서부터 걸린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얘기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우선 서울시장을 왜 다시 뽑느냐 하는 데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서울시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왜 서울시장을 그만둬야 했는가? 복지정책의 다른 목소리가 그 원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의견이 다른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무상급식을 놓고 벌인 한판의 배틀에서 졌다. 다르게 말하면, 오 전 시장은 민의의 대변인들인 서울시의회와는 다른 신념을 가졌다. 그 신념을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 서울시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단순화시킬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다른 의견을 제시해도 그 범주에서 그리 벗어나지 못한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민의 소리를 대변한다. 이를 부인하면 대의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다. 서울시민은 강남에만 사는 게 아니고 강북이나 변두리에도 산다.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면서 서울시장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경원, '엄친 딸'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남 대통령', '강부자 정권'이란 말이 회자했고, 서울시장을 일컬어서는 '강남 소통령', '강부자 소통령'이란 말도 생겨났다. 이런 말들이 긍정적 의미가 아니란 건 이 말을 듣는 당사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놓고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을 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개천'을 생각하고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에 더 많은 국민이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여전히 부자들을 향한 그리움이 철철 넘친다. '부자 감세'란 단어가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탈 이명박'으로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건 곧 전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세훈 전 시장은 '개천'과 '용'의 배틀에서 '용'의 편에 섰고, '개천'의 호된 맛을 봤다. 나경원 후보는 달라야 성공한다.

 

그런데 '개천의 용'인 이명박 정부도 못하고 있는 '부자들의 리그' 탈피를 나경원이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개천의 용'도 아니다. '용궁의 용'이다. 나경원 후보는 학창 시절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서울 토박이다. 그는 판사, 변호사, 정치인으로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나경원 후보의 남편은 현직 판사다. 부친은 화곡중·고교를 비롯하여 홍신학원 등 6개 법인, 17개 학교의 이사장 또는 감사다. 즉 나 후보에게는 '사학 재벌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나 후보는 판사 출신 재선의원으로 지난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정책특보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에도 그의 행로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들어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서 당선되어 재선의원이 되었다. 한나라당 대변인에 이어 지난해와 올해 전당대회에서 선출직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한나라당에서 경선도 거치지 않은 채 서울시장 후보가 되었다. 거칠 것이 없다. 그는 그야말로 주류 사회의 인물로, '엄친 딸'이다.

 

'서민행보'가 '서민복지'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걸 의식해서 그런지 요즘 행보가 꽤나 '서민적'이다. 22일 서강대를 방문해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서민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오전 강서구 개화동의 버스공영차고지를 찾아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승객의 "복지가 가장 이슈인데 시민이 뭘 원하는지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기도 했다.

 

26일 장애아동 시설을 찾아가 빨래를 하고 음식수발을 하는 등의 '서민행보'도 매스컴을 타고 있다. 인터넷에 오른 봉사하는 나 후보 사진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 두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복지의 사각지대를 이해하고 좋은 복지정책을 쓸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통령 후보나 시장, 도지사 후보가 그런 소위 '서민행보'를 안 했던 이가 있던가.

 

그는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야당과의 '성전'이라고 표현했다. 심지어는 오 전 시장을 '계백장군'이라고 부를 정도로 강경한 주장을 가지고 있는 우파 정치인이다. 일련의 서민행보로 그의 복지에 대한 가치가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 없다.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엄친 딸'로서의 '서민행보'에 대해 <국민일보>는 이렇게 썼다.

 

"학생 때부터 사회생활까지 모범생으로서 '주류' 행보를 이어온 셈이다. 동시에 그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18)을 키우는 '여성' 정치인이다.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두 사회적 소수그룹, 비주류의 교집합에 '주류 모범생'이 자리한 셈이다."

 

이런 긍정적 논평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중성('엄친 딸' vs. 복지혜택을 원하는 딸을 둔 엄마)이 서울시민 각계각층을 어우르는 자산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중에게는 친숙한 이미지, 여성, 그것도 빼어난 외모, 장애아를 둔 엄마, 이런 것들이 강점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상충된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 둘의 어울림보다는 둘의 현격한 분리로 가기 쉽다. 이미지가 정치나 행정은 아니다.

 

지난 23일 출마선언에서 '한 남자의 아내, 두 자녀의 엄마'로 자신을 소개하고 '세심하고 부드러운 힘', '알뜰한 엄마의 손길'로 서울을 이끌겠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사학재단의 이사장의 '엄친 딸'임이 부담된 나 후보의 의도된 발언으로 읽힌다.

 

나경원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의 관전 포인트는 '서민행보'나 따뜻한 엄마로서의 발언이 아니라, 복지 비전, 복지 스탠스다. 그의 복지TF를 바라보는 눈이 많다. 그는 복지정책으로 오세훈 전 시장을 넘고, '엄친 딸'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개천'이 아닌 '용궁'에서 낳지만, '개천'을 볼 줄 안다면 성공할 것이다.


태그:#나경원, #서울시장, #보궐선거,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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