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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전'이 열리는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 입구
 '이경미전'이 열리는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 입구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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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에서 판화와 회화를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경미 작가의 개인전이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에서 10월 14일까지 열린다. 대형회화작품 15점 및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부제가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You don't own me)'이다. 시대의 정신을 꿰뚫어보는 작가답게 자신의 정체성을 활발히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가 작가의 눈빛이 유난히 맑다. 눈빛이 맑다는 건 또한 그만큼 이 세상을 예리하게 본다는 뜻도 된다.

나는 물질이나 문명의 소유물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You don't own me)' Variable sizes 2011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You don't own me)' Variable size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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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의 제목은 부제와 같다.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를 다시 풀어보면 '나는 물질이나 문명의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가야하는 작가의 몸짓인가. 주변에 흔한 오브제인 잼통과 와인병에 앙증맞은 동물로 형상화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나에게 그림이란 소중한 순간을 수집하는 것이고 사소하고 작은 것이 다 비슷하게 보이나 감동을 주는 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사람이나 사물, 사소한 것이나 대단한 것이나 다 그 나름의 정체성이 있다는 뜻이리라.

평탄치 않았던 성장기

'두 신과 우주비행사(Two Gods and Astronaut I)' 캔버스에 유화 153×153cm 2011. 두 신과 우주비행사는 부모와 작가자신을 뜻한다
 '두 신과 우주비행사(Two Gods and Astronaut I)' 캔버스에 유화 153×153cm 2011. 두 신과 우주비행사는 부모와 작가자신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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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란 얼마나 극악하고 끔찍하고 눈물겹고 애잔한 단어 아니던가" 작가의 고백이다.

이경미 작가의 성장기는 평탄치 않았다. 서너 살 때 어머니는 가출을 해 작가는 친척집을 떠돌아야 했다. 그 나이에 각인된 첫 감정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단칸방에서 한복일로 생계를 꾸렸다. 위 작품 속 교회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기도하러 다니던 교회를 말한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하루에도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를 뛰어다니면서 쪽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작가는 그 때 밉기만 하던 아버지를 연민의 눈길로 보게 되면서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그의 화폭에 '나나'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고양이는 작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절실한 친구다. 아니 작가의 분신이다. 그래서 '고양이 작가'라는 이름도 생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부터 친구가 되었다. 고양이 눈빛은 하도 생생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우주비행사 이경미(Kyoung Mi as Astronaut)' 90×90cm 2011
 '우주비행사 이경미(Kyoung Mi as Astronaut)' 90×90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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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작가는 위에서 보듯 누구보다 힘든 환경 속에서 생존위협에 치이며 살아왔다. 거기서 맛본 말 못할 고립감과 소외감도 컸으리라. 그런 와중에 자신이 우주비행사처럼 넓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미아로 생각한 모양이다. 일종의 자화상인데 그가 문명사를 거리를 두고 관망할 수 있는 시선을 갖춘 건 이런 상상력에서 나온 것 같다.

2009년 미국유학,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달에 갔다 온 후 어디로 갈 겁니까(Where do you go after you've been to the Moon? )' 자작나무에 유화 120×240cm 2011
 '달에 갔다 온 후 어디로 갈 겁니까(Where do you go after you've been to the Moon? )' 자작나무에 유화 120×240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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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작가는 학부에서 판화와 회화를 공부하고 대학원까지 마치느라 무려 11년이 걸렸다. 그만큼 기초가 튼튼한 작가다.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화가라기보다 수도승 같다. 집중력이 낳은 놀라운 결과물이다.

대학원까지 마친 이경미 작가는 200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차 대전 이후 최대강국이 된 미국의 풍요를 기대했지만 금융위기로 사람들 표정은 안 좋았고 을씨년스러웠다고 작가는 말한다. 위 가운데 빌딩 위에 쓰여 있는 문구는 사무실 임대광고인데 부동산시장이 그만큼 얼어붙어있음을 뜻한다.

여기 위압적 빌딩은 아버지를, 시원한 바닷물은 어머니를 상징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또 빌딩은 문명을 바닷물은 자연을 상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본과 기술이 합쳐져 만든 자동차와 버스와 작가자신인 우주인과 그의 친구 고양이도 같이 등장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를 실감나게 묘사한 멋진 풍속화다.

문명화된 위험사회 책상 위에 올려놓다

'책상 위에 월스트리트(Wall Street on the table)' 자작나무에 유화 120×120cm 2010
 '책상 위에 월스트리트(Wall Street on the table)' 자작나무에 유화 120×120c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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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작가는 '문명사'가 그 주제다. 미국유학 후에 생긴 것 같다. 어린 시절 작가가 경주 읍에 살 때 본 자연의 혜택을 통해 얻은 때 묻지 않은 시선이 오히려 문명을 더 날카롭게 보게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주사위는 던져진 인간의 운명을 뜻하리라.

여기 월스트리트가 바닷물에 잠겨 있는 걸 보니 갑자기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 Beck 1944~)이 쓴 <위험사회>라는 책이 생각난다. 거기서 그가 지적한 근대화와 산업화의 패러다임을 밀어붙일수록 더 많은 위험을 안고 살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림에 책이 많이 나오는 건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거기에 있다는 뜻인가. 작가는 책을 이 세상을 관망하고 문명사를 이해하는 통로로 보고 있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칼 세이건 등 책을 많이 읽었고 여기 그려진 책이 그림의 주제와 관련이 많단다.

작가가 장난을 치듯 인류의 운명과 문명의 흥망성쇠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관망하는 점이 재미있다. 작가에게 문명에 대해서 물었더니 "문명이 대단하면서도 한편 쓸데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대답한다. 문명은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담긴 것 같다.

비전의 제시와 희망의 노래

'어디를 갈지 몰라도 가라(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자작나무에 유화 220×220×72cm 2011
 '어디를 갈지 몰라도 가라(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자작나무에 유화 220×220×72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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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이경미 작가는 늘 긍정적인 가치를 수집하며 살아왔다. 위 제목 '어디를 갈지 몰라도 가라_문 시리즈'는 과거의 상처와 현실의 고단함도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것에 장애가 될 수 없음을 회회가 아닌 가상적인 설치미술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것을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을 하고픈 작가의 강한 욕망이 엿보인다. 그래서 가상과 현실, 환영과 실제, 텍스트와 콘텍스트, 바다와 파도 같은 자연과 건축과 빌딩이라는 문명을 넘어 또 다른 이상향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삶의 차원 높은 긍정 '그럼에도'

'지옥 같은 곳(Inferno)' 유화와 패널 265×265cm 2011. 여기 들어간 영어문장.I have no genius, no mission to fulfill [...] However in spite of it, I desire some sort of recompens.
 '지옥 같은 곳(Inferno)' 유화와 패널 265×265cm 2011. 여기 들어간 영어문장.I have no genius, no mission to fulfill [...] However in spite of it, I desire some sort of recomp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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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이는 작가의 삶에 대한 차원 높은 긍정 즉 현실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는 사랑을 뜻한다. 여기 풍선은 아버지를 말한다. 술꾼아버지가 가스풍선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뜻하기도 한다. 그는 이렇듯 고통은 언젠가는 지나가버린다고 믿는다.

이를 좀 더 확대해석하면 인간만큼 모순적인 존재도 없지만 인간만큼 아름다운 존재가 없고, 인생만큼 허무한 것도 없지만 또한 그만큼 살 가치가 있는 것도 없다는 관점 말이다.

상차림 방식과 융합의 미학

'책상 위에 월스트리트' 2010. 감상하는 관객들과 반부조로 된 작품들
 '책상 위에 월스트리트' 2010. 감상하는 관객들과 반부조로 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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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론을 내보자. 그는 화폭에 일종의 상차림 방식으로 개인의 아픔, 사회의 어둠, 문명의 모순 등을 다 올려놓는다. 그리고 2차원 회화에 3차원 저부조 원주를 결합시키고 거기다 판화형식까지 가미하여 종합세트 같은 융합의 미를 뽐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큰 장점은 세잔의 화풍처럼 말이 안 되는 구조를 통해 보이지 않던 이면을 보게 한 점이다.

작가는 이런 실험으로 성장기에 경험한 시련과 미국경험을 통해서 문명사에 대한 명암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도 이런 것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고 또한 인류가 진정 공존하며 행복할 수 있는 비전이 뭔지를 같이 모색해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카이스 갤러리: 강남구 청담동 97-16번지 02)511-0668 작가정보 www.caisgallery.com



태그:#이경미, #카이스갤러리, #고양이 작가, #YOU DON'T OW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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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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