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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우리가 꿈꾸던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지난 글에서는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학부모들 사이에 들려오는 괴담 또는 오해 첫 번째 글로 '혁신학교는 공부는 안 하나요?'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괴담 또는 오해에 대한 결론은 혁신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생각하고 있는 '옛날식' 공부가 아닌 어린이들의 발달단계에 맞는 몸으로 체험하는 즐거운 공부를 그 어느 학교보다 제대로 많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혁신학교는 공부는 안 하나요?' 다음으로 많은 혁신학교 학부모님들 사이에 많이 떠도는 괴담 또는 오해는 '혁신학교는 시험을 안 보나요?'입니다.

혁신학교도 시험 봅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시험은 안 봅니다

우리 학교 학부모님들도 '시험 안 보나요?'하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여기에 대한 제 대답은 '우리 학교 시험 봅니다'입니다. 실제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혁신학교들 역시 '시험을 봅니다.' 그런데 왜 학부모들은 '시험 안 보느냐?'고 자꾸 물으면서 혁신학교가 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 학교를 비롯한 혁신학교들이 보는 시험과 학부모가 생각하고 있는 시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혁신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있는데도 학부모들은 여전히 '시험을 안 본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혁신학교의 시험과 학부모가 생각하는 시험이 어떻게 다르기에 그런 것일까요?
우리 학교는 아이들을 잘 하고 못하고로 나누거나,  점수로 줄세우지 않고, 사지선다형 지필평가로 보는 이런 모습의 일제고사를 지양합니다.
▲ 시험을 보고 있는 아이 우리 학교는 아이들을 잘 하고 못하고로 나누거나, 점수로 줄세우지 않고, 사지선다형 지필평가로 보는 이런 모습의 일제고사를 지양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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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학부모들게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시험'이 무엇인지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시험은 학부모들이 학창시절에 해왔던, 특정한 날짜를 정해놓고, 전 교생이나 전 학년이 똑같은 시험 문제지로 시험을 보는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일제고사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보는 방법도 100점 만점의 사지선다형 지필고사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시험보기 전에 학교에서 미리 날짜를 알려 주면, 가정과 학원에서는 시험대비 문제집 풀이공부를 하느라 시험을 앞두고는 놀이터에 노는 아이가 없게 되는 그런 '시험' 말입니다.

또 시험본 결과를 숫자로 알 수 있어서 금방 옆집 아이와 비교할 수 있고, 시험 점수가 높으면 선물을 사 준다, 파티를 해준다 난리를 치고, 점수가 나쁘면 아이를 혼내고 닦달해서 아이와 부모관계가 멀어지는 그런 '시험'을 말하고 계셨습니다. 학부모들이 옛날부터 학교에서 해 온 이런 모습을 보고 '시험'이라고 한다면 학부모들 말대로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는 '시험을 보지 않는'것이 맞습니다.

혁신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도와주는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혁신학교에서는 보는 시험은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그런 시험이 아닙니다.  원래 교육과정으로 진행하는 '시험'이라고 말하는 '평가'는 어린이의 배움을 도와주기 위해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학창시절에 봐왔고, 지금도 여전히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사지선다형 지필평가 위주의 일제고사 형태로 보는, 점수로 나타내기 위주의 '시험'은 아이들의 배움을 도와주기는커녕 아이들을 시험점수로 규정해서 줄 세우기하고, 점수의 노예로 만드는 것같이 실제 평가 목적으로 벗어나 부작용이 많습니다.

 푸름잔치 때 2학년 어린이들이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이의 배움과 성장을 도와주는 학습활동이면서 동시에 평가활동입니다.
▲ 2학년 어린이들의 푸름잔치 모습 푸름잔치 때 2학년 어린이들이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이의 배움과 성장을 도와주는 학습활동이면서 동시에 평가활동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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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험'이 진정으로 아이들의 배움을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학교 교사들은 어린이들에게 피해만 주는 예전의 시험방법을 그대로 치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의 진정한 배움을 도와주고 성장하게 하는 평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새롭게 세웠습니다.

첫째, 결과중심의 '평가'가 아닌, 배움을 북돋울 수 있는 과정 중심의 관찰평가를 하자.
둘째, 평가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고, 점수와 등수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똑같은 문제지로 같은 날 보는 일제고사식 시험을 되도록 하지 말자.
셋째, 학습 활동 내용의 극히 일부분만 평가할 수 있고, 어린이들의 학습내용을 평가할 수 없는 사지선다형 지필평가 위주의 평가를 하지 말고, 행동과 표현, 어린이들 사이의 상호관계, 과제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관찰을 통한 평가를 하자. 
넷째, 어린이들을 현재 잘 하고 못하는 것으로 줄 세우기식 평가를 하지 말고, 그 아이의 특징을 살펴보는 평가를 하자.

이런 평가 원칙을 나름대로 세워놓고 보니, 학교마다 학년마다 학급마다 시험을 보는 방식과 일정이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 기존 방식의 사지선다형 지필평가를 보기도 하는데, 예전 시험과 다른 것은 한번 보는 지필평가 결과가 곧 그 아이의 '평가결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필평가를 보되 다양한 평가 방식의 하나로 실시하고, 결과 역시 아이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해 참고자료로 쓰일 뿐이어서 점수에 그리 연연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이 시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마도 시험 그 자체보다 시험 본 결과 즉, 점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학부모들에게 '우리 아이가 반에서 몇등이냐?'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현재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아이들의 결과를 점수나 등수로 표시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에 대해서 가장 많이 물어오시는 말씀이 '우리 아이는 반에서 어느 정도냐?'를 자주 물어 오십니다. 또 부모님이 아이를 한번에 알 수 있게 '정확하게' 평가해 줄 것을 요구하십니다.

혁신학교 통지표, 시험 결과 통지하는 것 아닌 소통하는 통지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신이라도 한 사람을 정확하게 평가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날마다 변화무쌍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평가한 내용에 대해서는 부모님과 소통해야 하므로, 우리 학교는 부모님께 평가를 통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오래 협의를 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우고 있습니다.

첫째, 단지 평가 결과를 통지하는 것이 아닌 소통하는 통지가 되도록 하자.
둘째, 통지하는 방법도 잘 하고 못하고를 규정하는 단계형 평가보다는, 교사가 관찰한 아이의 생활모습을 글로 써 주자.
셋째, 통지표도 일 년에 두 번 보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니, 일 년에 네 번 통지를 하자.
넷째, 이 원칙에 따라 학년별, 계절학기별 통지 방법을 교사들과 협의해서 달리 할 수 있다. 

이 결과 우리 학교 통지표는 학년마다 계절학기마다 다 다르게 통지됩니다. 우리 학교 교사들은 아이의 점수와 등수에 관심이 없고, 아이를 숫자로 표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아이 그 자체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학부모들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런 평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이 낯설게 여겨져서 혁신학교의 '시험'과 '교육'에 대해 오해를 하고 계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학년마다 다른 우리 학교 봄학기 통지표 양식.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돕기 위해 여름학기 통지표가 다르고,  가을 학기 통지표는 또 달리 나갈 것입니다.
 학년마다 다른 우리 학교 봄학기 통지표 양식.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돕기 위해 여름학기 통지표가 다르고, 가을 학기 통지표는 또 달리 나갈 것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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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평가를 위한 평가가 아닌 아이의 성장을 도와주는 평가를 하면서 교육의 과정으로 평가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평가방법에 만족하지 않고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바람직한 평가방법을 더 생각하기 위해 교사회 안에 별도로 평가 TF팀을 꾸려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연구와 연수도 계속하고 하고 있습니다.

점수로 규정하는 평가보다 배움·성장 풍부히 해주는 학습활동에 더 신경써야

평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서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새로운  평가방법연구에 골몰하거나 별도의 시간을 내서 평가를 하는 대신에, 평가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평소 진행하는 교수학습활동이 아이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활동에 대한 연구가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0월 초에 댄스 동아리가 주최할, 우리 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댄스 강습에 대해서 열심히 의논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할 일을 의논하여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많이 배우고 성장합니다. 얼만큼 잘 했는지 굳이 점수로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 우리 학교 댄스 동아리 활동 모습 10월 초에 댄스 동아리가 주최할, 우리 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댄스 강습에 대해서 열심히 의논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할 일을 의논하여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많이 배우고 성장합니다. 얼만큼 잘 했는지 굳이 점수로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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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동안 초등교사로서 오랜 초등교육 경험으로 볼 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평가가 오히려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방해하고, 잘못된 지식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래서 평가 때문에 아이들이 불행래지는 원인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평가가 바로 대다수 학부모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지선다형 지필고사 중심의 일제고사식 평가와 점수와 등수로 나타내는 평가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부모들이나 교사들이 초등학생들에게 '시험'과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험'이나 '평가'에 신경을 쓰는 대신에 배움이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을 아이들과 더 많이 더 충분히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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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울형혁신학교, #서울강명초등학교, #시험, #평가,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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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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