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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방법원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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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관련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에 민간조사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언론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및 '정보통신법위반'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에 대한 2차 공판이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24호 법정에서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는 천안함 실종자 수색팀의 현장 지휘관이었던 최아무개 소령과 신승섭 작전사 작전처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루어졌다. 변호인측 증인신문의 핵심은 두가지였다.

첫째는 '고 한주호 준위가 함수를 수색하다 의식을 잃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군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제3의 장소인 용트림 바위 앞에서 모종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했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었고, 둘째는 군 당국은 왜 사고 다음날 오후 1시 30분까지 떠 있었던 함수가 가라앉기 전에 부표 등을 설치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변호인측은 첫 번째 증인으로 나선 최아무개 소령에 대한 신문에서 고 한 준위의 사망 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특히 변호인측은 KBS가 지난해 4월 한 준위와 공동으로 수색작업을 진행한 UDT동지회 회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한 뉴스를 의혹제기의 근거로 들었다.

당시 KBS는 "UDT 동지회 회원들은 제3의 부표 아래에 있던 대형구조물이 천안함 함수인 줄 알고 작업했으나, 실제 제3의 부표는 함수가 가라앉은 지점과는 1.8km떨어진 용트림 바위 앞에 있었다", "4월 3일 이들 UDT동지회는 제3의 부표가 떠 있는 용트림 바위 앞에 떠 있는 제3의 부표를 한주호 준위의 사망장소로 특정한 후 추모제까지 지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관련 KBS 동영상 http://blog.daum.net/jkh5886/11050883)

이와 관련 신상철 대표는 '고 한 준위가 천안함 함수부분에서 실종자 수색도중 사망했다는 국방부 발표와는 달리 미군과 관련한 사고와 관련해 무리한 구조작업을 펼친 것은 아닌가한다'는 의혹을 제기한바 있다.

3월 27일 오전 10시 항공기 편으로 백령도에 도착 한 후 3월 28일부터 여단 특임대 소속으로 70여명 남짓의 대원들과 함께 실종자 수색팀을 현장 지휘했다는 최아무개 소령은 "한주호 준위는 3월 28일 19시 40분경 함수위치를 추정한 후 위치 부이 설치를 위해 최초로 투입되었다"며, 한 준위가 수색팀에 합류한 것과 관련해 "계급이 가장 높고 경험도 많은 한 준위가 본인이 하겠다고 자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29일 오전에 내부진입을 위한 인도색이 설치되었으며 한 준위가 사망하던 30일 오후까지도 이 작업은 계속되었다"며 "파도는 높지 않았지만 수중시야는 30c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좋지 않았다, 작업은 2인 1조로 편성된 4개조가 투입되었다, 작업시간은 25분 이었다"고 말했다.

최 소령은 함수 절단면 사진을 최초로 본 소감을 묻는 검찰측 질문에 "내부 폭발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재 같은 경우는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고 답했다.

 KBS화면 캡쳐. 이날 공판에서 꼭지점에 설치된 용트림바위 앞에 설치된 부표에 대해 최 소령은  '위치부이'라고 명명 했고  변호인측은 '제3의 부표'라고 명명한 후 날선 진실공방을 이어갔다.
 KBS화면 캡쳐. 이날 공판에서 꼭지점에 설치된 용트림바위 앞에 설치된 부표에 대해 최 소령은 '위치부이'라고 명명 했고 변호인측은 '제3의 부표'라고 명명한 후 날선 진실공방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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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측이 제3의 부표라고 칭하는 용트림 바위 앞에 설치된 부표에 대해 묻자 그는 "수색작업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전 함수 부위 침몰을 목격한 해병대원의 진술을 토대로 함수부위가 침몰한 지점을 특정한 후 기준점을 삼기 위해 '위치부이'를 설치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이 지점의 수심은 15m에 불과했고 어떤 다른 대형 물체도 핸드 쏘나를 통해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름띠가 형성된 곳을 역추적해 함수가 가라 앉은 곳을 찾아 낼 수 있었다"고 답했다.

반대신문에 나선 변호인측은 '한주호 준위의 사망 지점과 사고 다음날 까지 해상에 떠 있었던 함수 부위를 왜 조기에 확보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최 소령은 "27일 한 준위는 백령도에 없었다, 28일 오후에 권아무개 중령 등 30여명과 함께 항공기를 타고 올라왔다"며 "28일 오후 7시 40분경 함수 침몰지점에 들어가 위치 표시를 한 후 7시 52분경 물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UDT동지회가 한주호 준위의 사망지점으로 특정한 용트림 바위 앞 부표지점과 관련해서는 "똑같은 크기와 색깔의 부표 때문에 그분들이 오해를 했을 것이다, UDT전우회가 작업한 것은 30일 오전 뿐이다, 한 준위는 UDT전우회와 함께 수색작업을 했던 것이 아니고 UDT전우회가 오전에 수색작업을 했고 우리 수색팀은 오후에 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과정에서 한 준위는 의식을 잃고 나와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증언했다. 

이어 변호인 측은 천안함 함수가 사고 다음날인 27일 오후 1시 30분까지 떠 있었음에도 왜 군 당국은 식별부이를 설치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증인신문을 했다. 특히 함수가 완전히 가라앉은 다음에야 엉뚱한 곳을 수색했느냐는 의혹에 대해 물었다.

최 소령은 "28일 오전 현장에 투입되었기에 함수가 27일 오후까지 떠 있던 것과 관련해서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침몰된 함수부분 수색을 명 받고 작전에 들어간 것은 28일 오후 부터였기에 그 전날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변호인측이 "사고 다음날 까지도 떠 있던 함수부위가 가라 앉을 것에 대비해 닻부표등 식별장치를 설치했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의견를 묻자, 최 소령은 "언제 가라 앉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접근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인 측이 "최 소령은 검찰측 증인신문을 통해 27일 오전 10시경 백령도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최 소령과 대원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장천항은 함수가 떠 있던 용트림 바위와는 불과 2km 떨어져있고 해경 함정이 떠 있어서 함수가 떠 있는 상황을 지켜 봤을 것 같은데 보고를 받은 사실이나 직접 본 기억이 있느냐"고 묻자, "모른다"며 비켜갔다.

 KBS화면 캡쳐. 당시 UDT전우회는 용트림 바위 앞을 한 준위 사망장소로 특정했다. 이에 대해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재판장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UDT전우회 회원을 증인으로 신청하라고 변호인측에 주문했다.
 KBS화면 캡쳐. 당시 UDT전우회는 용트림 바위 앞을 한 준위 사망장소로 특정했다. 이에 대해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재판장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UDT전우회 회원을 증인으로 신청하라고 변호인측에 주문했다.
ⓒ 블로그 '느티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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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측은 KBS의 4월 7일 보도를 근거로 UDT전우회 대원들이 목격했다는 구조물의 모습과 최 소령이 알고 있는 천안함 함수 부위와의 차이점을 물었다. 보도에 따르면 UDT전우회 회원은 "함수에 접근하자 국기게양대와 같은 긴 봉이 있었다, 5m쯤 들어가자 해치문이 열려 있었고 소방호수가 보였다"고 했다.

이와관련 피고인 신상철 대표는 "고 한 준위가 수색작업 한 해역에는 천안함이 아닌 '미국잠수함 내지는 이스라엘잠수함'이 사고로 가라 앉아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 소령은 "천안함 함수 포신 2m 쯤 뒤쪽에 사각형 문이 있다, 선상 추락을 방지 하기 위한 3단 보호난간이 있는데 그분들이 이것을 국기게양대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한다, 소방호수는 사각문 앞쪽과 안쪽에도 널려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한 사고 해역에는 "한국구조함 3척과 미국 구조함인 살보함 1척 등 총 4척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펼쳤다, 미국 살보함의 임무는 모르겠다, 4월 7일날 KBS보도가 나간다고 해 보도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고 KBS에 직접 전화 했는데도 방송이 그대로 나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최 소령에 이어 오후 4시 10분경 부터 진행된 신승섭 작전사 작전처장에 대한 증인신문과 관련해서 변호인단은, "신 처장이 '최초 작전사에 함장이 보고한 시각은 오후 9시 15분이다. 최초에 보고된 사고 원인은 '좌초'로 보고된 게 맞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판과 관련해 신상철 대표는 "군 수색대는 27일 오후 1시 30분에 처음 물에 들어가고 그 전까지 떠 있던 함수는 7분 후인 1시 37분에 가라 앉았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지적한 후, 이후 진행된 상황과 관련해 "생존자가 있을지 모르기에 최대한 신속하게 수색을 실시해야만 함에도 군 당국은 함수 수색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또 "원태제 국방부 대변인은 함수가 떠 있던 것과 관련해 가라 앉아 있다가 아침에 잠시 떠올랐다고 말했었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함수는 사고 다음부터 뒤집힌 채 에어포켓에 의지해 떠 있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한편 다음 재판은 10월 17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이뤄지며, 원태제 국방부 대변인 등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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