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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클락 알지?"

"예."

"내가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좀 복잡해진다."

"저도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컬럼비아 강의 남쪽 언덕을 따라난 84번 주간 고속도로를 달리며, 아들에게 루이스와 클락에 대한 내 심경을 얘기했다. 루이스와 클락은 미국 식민역사에서 사실상 '영웅'으로 취급되는 사람들이다.

 

"그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루이스이고, 클락이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서부 침탈의 앞잡이이기도 했지. 그렇게 보면 미워할 수밖에 없어."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1800년대 초반, 루이스와 클락은 오늘날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 근처에서 태평양 어귀까지 탐사대를 이끈 사람들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길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강을 건너고, 대평원을 가로지르고, 험준한 로키산맥 등을 넘는, 아마도 왕복 1만km는 족히 되는 루트를 섭렵한 인물들이다.

 

햇수로 3년에 걸친 이들의 여정은 상상만해도 가슴을 뛰게 한다. 인공의 때가 묻지 않았던, 200여년 전 대평원과 로키산맥, 그 속에 사는 갖은 짐승과 새들, 특히 많은 원주민 부족들과의 조우는 더할 나위 없는 짜릿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닦아놓은 길이 당시만해도 대략 중서부 지역에 머물던 미합중국의 서쪽 경계를 이후 급속히 태평양까지 확장시킨 초석이 되었으니, 침략의 전위대 역할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루이스와 클락에 대한 이런 내 이중적인 감정을 아들은 정확히 잡아내고 있었다. 윤의가 아비를 제법 파악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들과 나는 시카고를 떠난 뒤 일주일 넘게 주로 루이스와 클락이 밟았던 길을 상당 부분 따라왔다. 특히 컬럼비아 강의 본류와 평행하게 동서로 달리는 84번 주간 고속도로는 그 자체가 루이스와 클락이 최초로 개척한 루트나 다름없다. 84번 주간 고속도로 변에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루이스와 클락 트레일' 표지판이 이 같은 사실을 일깨워주곤 했다.

컬럼비아 강은, 내 생각에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길이다. 미주리나 미시시피 강보다는 길이가 한참 짧은데, 밋밋한 흐름을 보이는 곳은 하류 말고는 거의 없다. 로키와 캐스케이드, 남북 방향으로 달리는 이들 2개의 거대한 산맥을 동서로 가로 질러, 태평양을 향해 강물을 쏟아내기 때문에 컬럼비아 강물의 여정은 시종일관 극적이다. 사람으로 치면 온갖 풍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헤쳐온 파란만장한 삶에 비유할 만 하다. 유장한 미시시피와는 전혀 딴판이다. 드라마처럼 흐르는 컬럼비아 강물을 보면, 미국 정부가 이 강 일대를 국가풍치지구(National Scenic Area)로 지정한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컬럼비아의 물은 시종일관 하나로 푸르지만, 물길을 만들어 준 강 주변의 땅덩어리들은 참으로 다채롭다. 그러나 그 다채로움 속에도 일정한 흐름이 있다. 본류의 상류 쪽은 풀들로 뒤덮인 구릉들이다. 그러다 중간쯤에 이르면 풀과 나무가 섞인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윽고 하류에 이르면 울창한 숲이 강을 에워싸는 형국이다. 구간구간 나눠보면 단속적이지만, 누런 풀에서 푸른 숲까지의 변화는 연속적이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을까.

 

강물로 친다면, 나는 중류쯤을 벗어나고 있는 하나의 물방울일 것이다. 아들은 상류의 거센 소용돌이를 아직 못 벗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저 바다에서는 틀림없이 한 덩어리로 어울릴 게다.


태그:#컬럼비아, #드라마,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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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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