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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내도 줄지 않는 행복의 마법, 헌혈
 덜어내도 줄지 않는 행복의 마법, 헌혈
ⓒ 한국환자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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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은 세상에 없는 공식이다. 나에게서 내 것을 덜어내는데도 오히려 행복이 더해진다. 단순한 사칙연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마법이다. 나의 몸을 빠져나간 피가 타인에게 전달돼 새로운 삶을 탄생시키는 헌혈의 마법은 작은 나눔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행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 것을 덜어내더라도 아무것도 줄지 않는다.' 이 거짓말 같은 공식은 헌혈사업 전반을 지탱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헌혈자에게서 나온 피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데 온전히 쓰이지만, 헌혈자의 몸은 빠져나간 만큼을 금세 새로운 피로 채운다. 그래서 헌혈은 아무것도 줄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생명의 화수분이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헌혈의 공식이 오류를 일으켰다.

선의의 나눔이 불의의 사망으로

지난 6월 9일, 충북 청주에 있는 충북대 헌혈의집에서는 나눔을 실천한 헌혈자를 끝내 사망에 이르게 만든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한 헌혈자는 이전에도 몇 번이나 나눔을 실천했던 다회 헌혈자였다. 그는 평상시처럼 헌혈을 하고 헌혈증서를 받아 나가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직접적인 사인은 쓰러진 후 바닥과의 충돌로 일어난 뇌진탕이었다.

헌혈자는 사고 후 즉시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뇌사상태에 빠졌고, 가족들의 뜻에 따라 '세계 헌혈자의 날'인 6월 14일 장기기증으로 총 다섯 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하지만 비록 그 뜻은 아름다울지라도, 선의로 행한 나눔이 불의의 사망으로 이어진 점은 매우 안타깝다. 결국 사망한 헌혈자는 타인의 삶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잃어야 했기 때문이다.

헌혈자 사망사고가 일어난 충북대 헌혈의집
 헌혈자 사망사고가 일어난 충북대 헌혈의집
ⓒ 한국환자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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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지 않고 나누는 헌혈의 공식이 이렇듯 오류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 28일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은 최근 3년간 발생한 헌혈사고 현황에 관해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헌혈사고는 6500건을 넘어섰다. 이중 45.6%가 헌혈 후 현기증 증상을 보였다.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받은 경우는 400명에 달한다.

그중 4분의 1이 충북대 헌혈의집 사망사고처럼 현기증으로 쓰러져 머리, 턱 등을 다치는 '2차 충격'을 겪었다. 당연히, 헌혈 후 실신과 그로 인한 2차 충격에 대비하는 것이 혈액사업자의 기본 의무다. 그러나 대한적십자사는 이번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이에 대한 대비를 소홀해왔다.

이번 사고의 경우, 헌혈 기본 매뉴얼에 따르면 헌혈자는 채혈 후 최소 10분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사망한 헌혈자의 휴식시간은 고작 5분 남짓에 불과했다. 게다가 헌혈자가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힌 충북대 헌혈의집 바닥재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재질이 아니었다. 대한적십자사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사후 조치를 취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쿠션이 들어간 소재로 바닥재를 교체하고 있다"며 "10월 말 정도에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고의 책임을 물어 당시 혈액사업 수장 격이었던 박규은 혈액관리본부장과 민혁기 혈액안전국장 등에게도 문책성 인사조치를 취했다. 여태 꾸준히 있어왔던 각종 헌혈사고에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공론화된 뒤에야 사후수습에 급급한 모습은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사업 운영원칙과 능력을 의심케 한다.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
ⓒ 김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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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혈액사업을 민간에 맡기는 것이 정당한가이다. 대한적십자사는 7월 22일 보건복지부 혈액관리위원회에 충북대 헌혈의집 사망사고 정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해당 보고서에서 대한적십자사는 장기적인 헌혈의집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정원 및 재원확보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명시된 부분에 관해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채혈인력 보강 등에 필요한 재정적 비용이 혈액수가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사실상 정원 부분을 우리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공공기관선진화 방안에 따라 내려온 지침을 따를 뿐", "재정적인 부분과 관련해 종합적으로 협의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헌혈사업자는 대한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 두 곳이다. 모두 민간사업자다. 사고에 대한 대한적십자사 입장처럼 민간사업체가 자체적으로 혈액사업에 필요한 기본 매뉴얼을 지킬 수 없다면 "과연 민간사업체의 능력만으로 전국적 혈액사업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사고혈액을 환자들에게 수혈한 부산혈액원

현재 국내 혈액사업은 대한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국내 혈액사업은 대한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이 주도하고 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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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 헌혈의집 헌혈자 사망사고는 혈액사업의 가장 첫 단계인 채혈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다. 그런데 국내 혈액사업체들의 사업적합성에 대한 의문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어 소개할 사건은 혈액사업의 중간단계인 혈액보관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다.

지난 7월 5일 대한적십자사 부산혈액원은 내부 전기공사를 시행했다. 그런데 공사 과정에서 혈액원이 보관하던 혈액 일부가 기준온도를 벗어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혈액의 보관온도는 혈액을 구성하는 세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혈액이 기준온도를 벗어날 경우 혈액 내 세포들이 손상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손상된 세포들이 응고되면 자칫 수혈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사고 당시 부산혈액원이 보관하던 농축적혈구는 보존온도가 영하 6.5도까지 내려가는 냉해를 입었다. 정상적인 농축적혈구 보존온도는 영상 1도에서 6도 사이다. 무려 최저 보존온도보다 7.5도나 낮은 상태로 보관된 셈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냉해를 입은 혈액들이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의료기관으로 출고되었다는 사실이다. 사고 발생 당시 담당자들은 혈액 출고를 지시한 후 뒤늦게 의무관리실장에게 보고했고, 출고된 혈액의 상당수가 환자들에게 수혈됐다.

대한적십자사는 7월 13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혈액보관시설 이상으로 기준온도를 일탈한 혈액이 의료기관에 공급"되었으나 "모니터링 결과 현재로서는 안전에 이상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결국 결과적으로는 아무 이상 없으니 안심하라는 의미다. 사고 후 후속조치에 관해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끝냈다"며 "해당 직원에 대해 문책이 있었다"고 답했다. 관련 지침 보강과 관련해서는 "시설관리 공사와 관련된 지침에 보강이 있었다"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혈액사업에 관한 대한적십자사의 원칙과 능력 부족은 이 외에도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일으켰다. 대한적십자사 전북혈액원의 경우 지난 7월 유통기한이 지난 적혈구 세척용액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결국 채혈에서 시작해 수혈에 이르기까지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의 전 과정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민의 건강권을 명시한 헌법 제34조
 국민의 건강권을 명시한 헌법 제34조
ⓒ 김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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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건강권, 이대로 민간사업체에 맡겨야 하나

대한민국헌법 제34조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사업은 전반적 영역에서 위험을 안고 있다. 혈액사업이 전 국민의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된 사업이라는 점에서, 국가는 혈액사업 내에 존재하는 위험요소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여태 있어온 일련의 사고들에 관해 대한적십자사는 해외 사례를 종합적으로 참고해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해외 사례와 비교해) 국내 사고율이 결코 높지 않다"며 "한국의 혈액사업이 세계 어느 선진 혈액사업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충북대 사고 이후 헌혈자가 많이 줄었다"며 오히려 사고의 여파 때문에 "혈액재고가 많이 부족해 경계상황까지 와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확률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사업이 품고 있는 위험요소는 언제든 불행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헌혈자야 자발적 의지로 헌혈에 참여한다지만, 수혈자의 경우 사고를 당하면 자발적 의지와 상관없이 혈액을 수혈받는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 미흡한 혈액사업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아름다운 나눔의 실천인 헌혈이 사업주체의 원칙과 능력 부재로 위험에 빠져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헌혈의지를 꺾고 헌혈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정체된 헌혈문화를 더욱 부진하게 만들 수 있다. 국가는 지금이라도 위험을 내재한 혈액사업의 현실을 돌아보고 민간혈액사업에 대한 전반적 검토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민간 혈액사업자의 재정, 인사 등 사업 전반을 총괄할 수 있도록 국가적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위험을 내재한 혈액사업에 국민들의 건강을 내맡길 순 없다. 이는 국가의 무책임이다. 아름다운 나눔인 헌혈이 다시금 생명의 화수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혈액사업 안전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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