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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누구에게나 5년이란 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여기, 그 5년을 고스란히 '민주노조 사수'와 '국민건강권 쟁취'에 바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간부들이다.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는 2006년 영남대의료원 측의 일방적인 팀제 도입에 맞서 파업투쟁을 전개한 이후 병원 측의 극심한 노조탄압을 받으며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다.

 

현재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는 영남학원의 실질적 책임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영남대의료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영남학원은 영남대학교, 영남이공대학교, 영남대의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대학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4년에 청구대학교와 대구대학교를 통합해 설립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1980년 4월부터 11월까지 영남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뒤 1989년 2월까지 수 차례에 걸쳐 이사를 맡은 바 있다. 1989년 학내 민주화 요구와 부정입학 사건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물러난 후 영남학원은 1989년 2월부터 2008년까지 20년 간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2009년 영남학원재단 정상화 과정에서 영남학원 정이사 7명 중 4명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추천으로 선임됐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20년 만에 사실상 재단에 복귀한 것이다. 영남학원에 구재단이 들어오면서 총장, 학장, 의료원장을 선출직에서 임명직으로 바꾸고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영남대의료원을 포함한 영남학원 산하 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박근혜'를 상대로 투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투쟁이 아니다. 특히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상대로 대구에서 투쟁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김없이 오늘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때문에 서울에 전셋방까지 얻은 두 사람

 

현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송영숙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이 서울에 올라와 아예 전셋방를 구하고 서울에 거점을 잡아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8일 국회 앞 1인시위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

 

"어떻게 서울에 전세를 구할 생각까지 했냐"는 질문에 박문진 지도위원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상대로 투쟁하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야 하는데, 그동안 그렇게 서울과 대구를 왔다갔다 해 보니 교통비, 숙박비 등 경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짧은 호흡만을 가지고 가기보다는 긴 호흡도 함께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현재 개인적이든 조직적이든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서울에 거점을 잡고 투쟁하자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박 지도위원은 "지금 우리가 묵고 있는 집이 반지하예요. 반지하다 보니 공기도 안 좋고 곰팡이도 많고 습하고 냄새도 많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냄새에 예민해서 처음에는 서글프기도 하고 어떻게 생활하나 걱정도 됐어요. 그런데 그 방 상태가 우리 노동조합 상황처럼 다가오더라고요. '여기서 우리가 다시 결의를 세우지 않으면 우리 노동조합이 이 방처럼 되겠구나'라는 생각….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결기를 세우는 계기가 됐죠"라며 웃는다.

 

조합원들 가운데 이 두 사람이 '싱글'이라 서울로 올라와 투쟁하는 사람으로 선택됐다는 것. 집에서는 현재 상황을 알까?

 

"집에 잘 얘기 안 하는데…. 서울 갔다 오면, 하루이틀 갔다 오는 것이 아니니깐 집에서 많이 궁금해해요. 걱정되시니깐 혼자 가는지, 뭐 하러 가는지 계속 물어보시죠. 하루는 '니 뭐 하러 서울 가나?' 물어보시는데 '…피케팅'이라고 조용히 얘기했더니 엄마가 소개팅으로 알아 들어 무사히(?) 서울에 온 적도 있어요."

 

송영숙 부지부장의 말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9월 5일, 낮 12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복직과 노사관계 정상화 위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나설 것을 촉구하며 투쟁을 본격화했다. 박문진 지도위원과 송영숙 부지부장은 국회 앞,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자택 앞, 서울역 앞 등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를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점심시간 때 국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박 지도위원과 송 부지부장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즐겁게 얘기했다.

 

"다들 많이 알다시피 한진중공업 투쟁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과 희망버스를 통해 대중적인 힘으로 만들어오고 있는 투쟁이잖아요. 우리도 그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싶고 또 같은 노동자로서 그들이 잘되면 우리도 잘되는 거라 1인시위 하면서 피켓 앞면에는 한진중공업 관련 내용을 담아 1인시위를 함께 진행했어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같이 1인시위 하고 지하철 의자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우리가 병원에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부부관계가 문제가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등 하기 힘든 얘기들도 서로 털어놓고 얘기했어요. 진심으로 서로에게 힘이 됐죠."

 

 

어둠 속에 보이던 용역깡패의 흰 장갑

 

실제로 영남대의료원 측은 상상을 초월하는 노조탄압이 진행됐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2006년 4일간의 부분파업'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로 10명 해고(법적 소송을 통해 7명 복직), 50억 원 손해배상 청구, 노조 통장 가압류, CCTV 설치로 노조활동 감시, 전국 최초로 단체협약 2번 해지, 같은 건으로 세 번씩이나 간부 징계, 노조 강제 탈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압을 자행했다. 이러한 영남대의료원 측의 탄압으로 2006년 당시 950명이었던 조합원이 지금은 74명만이 남아 있다.

 

박문진 지도위원과 송영숙 부지부장은 "아무래도 노조간부 중 여성들이 많은데 병원 내 로비농성장에 구사대가 수시로 침탈해와 폭력을 가했어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했던 간부들도 많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2007년도에 임신 6개월이었던 임산부 간부를 밀쳐 벽에 부딪히며 바닥에 넘어진 일이 있었어요. 당시 그 여성간부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구토증세가 보여 급히 응급실로 후송됐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정말 치가 떨렸어요. 당시 경련 증세와 함께 혈압이 높이 오르고 태동이 고르게 뛰지 않아 정말 걱정을 많이 했었죠. 그리고 병원 내 샤워기도 노조간부들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샤워기 '꼭다리'를 없애버렸어요. 그렇게 기본적인 것에 대해 무시당했을 때 참 힘들었죠"라고 말한다.

 

송영숙 부지부장은 "구사대가 침탈할 때 보통 새벽에 침탈해요. 새벽에 병원이 완전 어두운데 여성들이 자고 있는 로비농성장에 몇십 명의 구사대가 살금살금 들어와서 우리를 쳐다보면 어둠 속에서 흰 눈과 흰 장갑만 보여서 정말 공포스러워요. 처음에는 말도 안 나왔고 정말 한참 힘들었어요. 저는 악몽을 거의 안 꾸는데 3년 정도 악몽 꾸고 가위 눌리고 그래서 병원에 상담도 받으러 갔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지난 투쟁에서 삭발을 했었던 송영숙 부지부장은 "나는 한다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때 삭발투쟁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했어요. 그 다음 날 시장 가서 2만 원짜리 가발을 샀어요. 그런데 가발 쓰면 정말 답답해요. 그래서 집에서는 방에 들어가면 일단 가발을 벗고 또 거실에 나올 때면 가발을 쓰는… 쓰고 벗는 일을 반복했죠. 가족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깐 내 방문도 잠궜어요. 그 습관이 지금까지 계속 돼 지금도 방문을 잠궈요. 그런데 어느 날 가발을 벗고 방에 있었는데 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았는지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너 무슨 일 있냐, 일이 안 되니깐 절로 들어가려고 하냐' 그러면서 엄마가 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도 들킨 게 좋았던 건, 그때부터 가발을 벗고 시원하게 다닐 수 있었다는 거예요" 라고 웃으며 말했다.

 

보통 병원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아 여성사업장이라고 흔히들 부른다. 그런데 그런 여성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은 너무 참담하다고 말하는 그들.

 

"정말 일하다 보면 화장실 갈 틈이 없어요. 정말 바쁘게 돌아다니거든요. 화장실을 못 가서 생리대도 못 갈아요. 생리혈이 스며나오는데도 갈 수가 없어요. 정말 그런 경험 안 해 본 사람이 없어요. 요즘에는 병원 평가가 중요해서 평가 준비 때문에 정말 할 게 많아요. 보통 사람들은 간호사들이 3교대로 딱딱 움직이는 거 같지만 일 끝나고 바로 집에 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죠. 이런 것들이 누적되면서 사람을 고치는 병원이 아니라 사람을 병들게 하는 병원이 되고 있는 거예요. 간호사들은 불면증, 변비, 디스크, 유산 등을 달고 살아요. 간호사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말 빨리 하고, 밥 빨리 먹고, 빨리 걷고!"

 

추석, 해고 노동자에게는 반갑지만은 않은 날

 

추석 연휴가 10일부터 시작됐다. 1년 중 가장 풍성한 날인 한가위가 이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큰집에 잘 안 가요. 병원에 있을 때는 추석 때 친척들 만나면 대부분 그렇듯이 결혼은 언제 할 거냐를 가장 많이 물어봤어요. 그런데 해고되고 나서는 좋지 않은 얘기만 들으니깐 스스로 차단하게 돼요. 솔직히 명절이 반갑지 않죠. 왠지 나 스스로가 위축돼요. 그래도 쉴 수 있어서 좀 좋아요.(웃음)"

 

송영숙 부지부장의 말에 박문진 지도위원은 "우리 송 부지부장이 34살이니깐 아무래도 부모님들은 걱정이 될 거예요. 언제 결혼할지, 또 언제 복직될지…. 사실 안정적으로 사는 건 누구나 원하지 않겠어요? 해고됐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삶이 불안하죠. 다 가족들이 함께 안고 있는 짐이에요"라고 말한다.

 

송 부지부장은 "처음 해고통지를 받았을 때 집에서 알면 어떻게 될까 걱정했는데, 이미 해고통지서가 등기로 집에도 갔더라고요. 당시 노조 사무장이었고 투쟁도 하고 있어서 거의 노조 사무실에서 살았어요. 빨래하러 집에 갔는데 처음으로 엄마가 머리를 싸매고 누워 계신 모습을 봤어요. 형사들이 고소고발 건으로 집에도 두 번이나 찾아가고 그러니깐 너무 놀란 거예요. 엄마가 몸이 안 좋아 거의 '종합병원'인데…."

 

'간호사'라는 안정적인 직업도 포기하고, 가족들의 걱정을 안고서 5년이란 시간 동안 이들을 투쟁에 나서게 한 것은 무엇일까.

 

"노조가 요구해온 것들이 다 정당하고 당연한 일인데 왜 탄압받고 해고까지 당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불합리한 현실을 놔두고 내가 다른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다시 현장에 돌아가서 우리가 정당하고, 우리가 승리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현재 조합원들도 간부들에게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는데 우리가 현장에 돌아가야 그들의 부채의식을 씻어줄 수 있잖아요"라는 송영숙 부지부장.

 

박문진 지도위원은 "우리 노조가 1995년에 50일 간 파업을 진행했어요. 맨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거의 80%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했어요. 파업투쟁하면서 노조가 무너지다가도 다시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역시 조합원들은 햇살 같고 안개 같고 태풍 같구나 싶었죠.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노조가 탄압받으면서 950명이었던 조합원들이 74명이 됐어요. 몇백 명의 조합원들이 탈퇴했는데 왜 상처가 안 되겠어요. 절망스러웠죠. '우리도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까'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아까 얘기했듯이 노조는 무너지다가도 다시 세워져요. 조합원들의 생명력을 믿어요"라고 말했다.

 

이 투쟁에서 승리하면 무엇이 하고 싶을까?

 

"우리 조합원들이랑 영화관 통째로 빌려서 영화도 보고, 역사기행도 가고 그러고 싶어요. 그런 걸 이전에는 참 많이 했었거든요. 그리고 여행 가기! 악기 배우기! 초콜릿 쿠키 만들기! 해외봉사활동!"

 

그들의 소망은 소박했다.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낼 거냐는 질문에 송영숙 부지부장은 "추석 전날은 여느 집처럼 음식 만들고 잠도 자고 영화도 보고… 쉼을 만끽하고 싶어요. 몸과 마음을 충전해서 올라오려고요"라고 말하고, 박문진 지도위원은 "절에 가서 쉬었다가 추석 전날 부산 한진중공업에 가서 동지들과 보름달을 볼 거예요"라고 한다.

 

이번엔 달님이 이들의 소원을 들어줘 내년에는 가족들과 당당한 추석을 맞이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박미경 기자는 보건의료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 #박근혜 , #해고자, #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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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부터 노원에 살고, 20살 때부터 함께 사는 세상과 마을을 위해 글쓰고 말하고 행동하고 음악도 하는 활동가 박미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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