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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자 조선일보 1면
 8일자 조선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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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걸리셨어요?"

어제(7일) 화제가 됐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한 마디입니다. 여론 조사 결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지지도가 박 전 대표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잖아요. 그래서 이와 관련한 의견을 묻는 취재진에게 박 전 대표가 "병 걸리셨어요? 여기서는 정치 얘기는 그만하고 중요한 고용과 복지 얘기를 좀 하죠"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뭐, 발언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인간적으로'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일단 문제의 발언이 나왔던 '여기서'는 인천 중부고용노동청 인천교육센터였고, 또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이미 기자들의 비슷한 질문에 박 전 대표가 "이런 상황을 우리 정치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으니까요. (8일 박근혜 전 대표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유감을 표했습니다.)

게다가 2007년 대선 이후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2위로 내려앉았는데, 박 전 대표로서는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짜증이 날 수도 있었겠죠. 어쨌든 본의 아니게 좋은 '기삿거리' 제공한 셈입니다. 거의 모든 매체가 박 전 대표가 안풍(安風)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식으로 썼더군요.

"병 걸리셨어요?"와 "병 걸렸냐"의 차이

7일 16시 40분 <조선닷컴>의 첫 번째 수정 보도
 7일 16시 40분 <조선닷컴>의 첫 번째 수정 보도
ⓒ 조선닷컴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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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특히 '예민하게' 반응한 곳이 있었는데요. 조선일보 인터넷신문 <조선닷컴>이 그랬습니다. 일단 기사를 세 차례나 고쳤더군요. 첫 보도(10시 11분 입력)는 박 전 대표가 국회에서 한 오전 발언을 '드라이하게' 쓴 것이었습니다. 박근혜다운 대답이라 생각하며 '고소하게' 읽었지요.

그랬는데 오후 5시쯤인가요? <네이버> 첫 화면 '톱뉴스'에 '떡'하니 이런 제목의 기사가 보이는 거에요. "'병 걸렸냐' 민감한 반응 보인 박근혜". 이건 또 뭔 말이야, 클릭하니 <조선닷컴> 아까 그 기사더군요. 인천발 발언을 보강해서 수정했더라고요. 수정 시간 16시 40분, 당시 원문입니다.

하지만 이날 오후 2시 박 전 대표가 인천 중부고용노동청 인천교육센터를 방문했을 때, 박 대표는 신경질적인 반응과 함께 힘 빠진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대선 지지율과 관련된 취재진의 질문이 나오자 "'여기까지 와선 그런 질문은…"이라며 무안을 준 뒤, "병 걸렸냐. 정말 중요한 복지에 대한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제목에서부터 '신경질적인 반응', '힘 빠진 답변', '무안을 준 뒤'란 표현 등 … 다른 매체 보도와 비교하니 차이가 두드러지더군요. <동아닷컴>만 해도 '병 걸리셨어요? 그 얘긴 …'이란 제목으로 "병 걸리셨어요? 여기서는 정치 얘기는 그만하고 중요한 고용과 복지 얘기를 좀 하죠"라고 당시 상황을 '공손하게' 전달했거든요.

'힘 빠진'과 '힘 빠지게 만드는'의 차이

당초 <조선닷컴> '몫'이었던 '박근혜 발언' 네이버 톱뉴스. <조선> 기사가 사라지면서 <한국일보>가 '총대'를 멥니다
 당초 <조선닷컴> '몫'이었던 '박근혜 발언' 네이버 톱뉴스. <조선> 기사가 사라지면서 <한국일보>가 '총대'를 멥니다
ⓒ 네이버 뉴스캐스트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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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시 뒤 <조선닷컴>에 다시 가보니 제목이 바뀌었더군요. "병 걸리셨어요. 복지 질문이나…"로. 수정 시간은 17시 43분, 다시 5분 뒤 기사 본문 역시 <동아닷컴>식으로 수정하더군요.

하지만 이날 오후 2시 박 전 대표가 인천 중부고용노동청 인천교육센터를 방문했을 때, 박 대표는 신경질적인 반응과 함께 힘 빠진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대선 지지율과 관련된 취재진의 질문이 나오자 "'여기까지 와선 그런 질문은…"이라며 무안을 준 뒤, "병 걸리셨어요? 오늘은 복지센터에 왔으니까 복지 쪽 얘기를 하자"고 했다. (수정 본문 17시 48분)

그러나 <조선닷컴>의 민감함이 더욱 드러나는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이처럼 거듭된 수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불만이 드러난 표현만큼은 한사코 고치지 않는 모습을 주목하셨으면 합니다. 특히 '힘 빠진 답변', 여타 매체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표현입니다. 기사만으로는 어디를 봐서 '힘 빠진 답변'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지 않나요?

그래서 오히려 '힘 빠지게 만드는 답변'으로 읽힙니다. 비록 몇 글자 차이지만, 그럼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지잖아요. 힘 빠진 것은 '박근혜'가 아니라 <조선닷컴>이 되니까요. 같은 날짜 <조선일보> 사설을 읽어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국외자처럼 처신하지 말라고 아침에 그렇게 강하게 주문했는데, 여전히 '한가하게 복지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빠지겠습니까. 

대세를 흔드는 바람이 불면 나타나는... "병 걸리셨어요?"

그래요, 신경질도 날 만 합니다. <조선닷컴> 기사에서 나타나는 모양새가 딱 그러합니다. 아무래도 '박근혜'보다는 <조선일보>나 <조선닷컴>이 훨씬 더 안풍(安風)에 민감한 듯 합니다. 그러니 박 전 대표가 만약 <조선> 기자에게 "병 걸리셨냐?"고 물었다면 정확한 '진단'을 내린 셈입니다.

그, 왜, 있지 않습니까. <조선>이 오랫동안 앓고 있는 '불치병'. 대세를 흔드는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예민해지고, 몸이 달아오르고, 신경질이 늘어나고, 여기에 '할 말은 한다'는 착각까지 일으킨다는 무서운 병, '밤의 대통령 증후군' 말입니다.

이틀 연속 사설에, 1면에 … <조선일보> 참 민감하네

<조선닷컴> 기사보다 훨씬 '톤다운' 된 8일자 <조선일보> 기사
 <조선닷컴> 기사보다 훨씬 '톤다운' 된 8일자 <조선일보> 기사
ⓒ PDF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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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자각 증상'이 있었나요? 아침에 <조선일보>를 보니까, 다소 '진정 모드'로 돌아섰더군요. '문제의 기사'는 다른 기자의 것으로 대체됐고, 그 결과 "신경질적인 반응", "힘 빠진 답변", "무안을 준 뒤" 등의 표현도 싹 빠졌습니다.

그 대신 아주 '고급스럽게', '<조선>스럽게' 민감함을 표현했는데요. 1면에 '바람에 흔들리는 박근혜'란 제목에, 이와 딱 맞아떨어지는 사진을 큼직하게 실었습니다. 정치부장의 분석 기사였는데요.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문제는 대세론 그 자체다. 대세론의 최대 적은 내부에 있다. 후보와 그 주변이 대세론에 갇히는 순간 세상과 담을 쌓게 된다. 대세론에 갇힌 정치는 국민에게 '오만과 불통'으로 비친다. 정치권 안팎에서 박 전 대표에게 변화와 쇄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 이상 국외자처럼 처신하지 말라는 전날 사설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히지 않습니까. 연 이틀 사설에, 1면에 … 비록 '정치권 안팎'이라 표현했지만, 그 누구보다 변화와 쇄신을 강하게 주문하는 이가 바로 <조선>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밤의 대통령 증후군', 무섭긴 무섭네요.



태그:#조선일보, #밤의 대통령, #박근혜, #안철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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