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소금> 포스터 영화 <푸른소금>은 평범하게 살기 위해 은퇴한 전직 조직폭력배(송강호)와 그를 암살하려는 소녀 킬러(신세경)가 서로 호감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액션멜로 작품이다. 송강호 신세경 이외에 김민준, 윤여정, 천정명, 이경영, 오달수 등이 출연한다. 영화는 9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 <푸른소금> 포스터 영화 <푸른소금> 포스터 ⓒ CJ E&M

1992년 <그대 안의 블루>로 데뷔해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1995)와 <시월애>(2000) 등으로 존재감을 알려온 이현승 감독. 그는 로맨스와 드라마가 결합한 영화에 강점을 보이면서 나름의 영상미학을 선보이는 중견 감독이다. 앞의 두 영화는 일과 사랑이 병립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물으며, <시월애>는 시간을 넘나드는 사랑을 다루고 있다.

사회문제나 인간의식 혹은 역사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은 그의 영화와 무관하다. 반면에 소소하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그늘이나 그림자를 탁월하게 잡아내고, 고도의 상상력으로 상큼한 사랑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는 적잖게 성공한다. 그런 작업의 배후에는 언제나 그 나름의 영상미가 동행한다. 그곳이 도회지 한복판이든 외딴 바닷가든.

인생에는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인생에 중요한 세 가지 금이 무엇인가." 소금과 황금(혹은 백금)은 금방 떠올릴 수 있다. 마지막 남은 '금'은 무엇인가. <퀴즈 대한민국>에 익숙한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술렁댄다. 나름대로 해답을 찾느라 영화관이 잠시 소란해진다. 하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금방 나오지 않는다.

나는 '손금'이라고 혼잣말한다.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운명을 가늠하는 손금만큼 소중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사주팔자나 관상 혹은 족상이라고 주장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비슷한 맥락이고 친척관계다. 해답은 영화관에서 직접 찾아보시기 바란다. <푸른 소금>은 이런 뜬금없는 가벼운 질문과 엉뚱한 답으로 객석을 웃긴다.

영화가 버무린 여러 요소는 더러 강렬하게 충돌하고 더러는 어설프게 화해한다. 복합적인 조직폭력배의 거물이자 후계자가 될 사람이 요리학원에 다니는 설정도 특이하다. 더욱이 그는 감상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인물이다.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서 온종일 고독을 씹거나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과 쓸쓸한 표정으로 어디 먼 곳을 응시한다. 멋지다!

복잡한 내면풍경의 사내를 감시하면서 밥값을 챙기는 여자. 그녀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격 선수였다는 사실 말고는 우리가 가진 정보는 없다. 친구인 은정과 함께 돈 때문에 부산 조폭 해운대파에게 꼼짝달싹 못하게 묶인 신세라는 것을 빼고는. 오토바이에 가죽재킷과 헬맷을 장착한 '차도녀'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이미지는 너무 가냘프다.

요리를 배우는 조직폭력배

중년사내가 요리학원에서 열심히 강습을 받는다. 폭력조직 칠각파를 결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며, 보스가 세상을 뜨자 후계자로 급부상한 두헌(송강호)이다. 뭔가 앞뒤가 어긋난다는 느낌이다. 조폭의 전직 중간보스가 요리를 배우고 식당을 차려 평범한 삶을 살아보리라는 설정이 생뚱맞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두헌 옆에서 날렵한 솜씨로 칼질을 해대고 맛나게 북어국을 끓여내는 청순한 여인 세빈(신세경). 언제나 표정 없는 얼굴과 밋밋한 목소리로 두헌을 대하는 세빈. 감정개입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의도적인 몸짓과 표정이 선연하다. 세빈은 두헌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기록하여 해운대파에게 넘긴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한다.

'그가 전설적인 조폭이었다고?!'

성기게 엮인 두헌과 세빈이 어떤 관계를 이어나가는가 하는 문제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본 얼개다. 따라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관계와 사회적 관계가 얼마나 필연성과 설득력을 가지는가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관객이 최소한도로 동의한다면 제작비 건지기도 어려울 것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가 많다면 흥행작이 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가 맺는 관계의 변화다. 조폭세계라는 큰 틀에서 보면 두헌이 강자인데, 그런 두헌을 세빈이 감시함으로써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약자가 강자를 감시하고, 그들 관계는 <레옹>(1994)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두헌의 부하인 애꾸(천정명)는 그걸 가리켜 '원조교제'라 부른다.

송강호-신세경 "난 니가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송강호와 신세경이 영화 <푸른소금>에서 멜로 호흡을 맞췄다.

▲ 송강호-신세경 "난 니가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송강호와 신세경이 영화 <푸른소금>에서 멜로 호흡을 맞췄다. ⓒ 스튜디오 블루


혼란스러운 공간과 영상

황혼 무렵 바닷가 염전에 남녀가 마주 서 있다. 네모꼴로 잘 다듬어진 염전이 사뭇 정갈하다. 충격과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두헌과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서있는 세빈. 하얗다 못해 푸르른 색깔을 내보이는 염전의 서늘한 풍경이 그들과 동행한다. 두헌은 세빈이 자신을 향해 총을 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맺은 관계의 깊이 때문이다.

이윽고 울려 퍼지는 총소리. 그리고 다시 한 번 허공을 가르며 들려오는 총성. 두헌의 건장한 육신이 푸른색 염전 속으로 그림처럼 푹, 쓰러진다. 멀리서 그들을 겨누는 장총. 거기에는 망원렌즈가 달려 있다. 장총을 향해 혹은 슬프고 혹은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세빈. 그녀는 소음기도 없는 권총을 염전 속으로 힘껏 던져버린다.

<푸른 소금>의 영상미학은 이렇게 전달된다. 영화는 서울과 부산의 최신식 고층건물과 광안대교 같은 첨단건축물이 발하는 도회의 모습을 다각도로 잡는다. 거기서 발원하는 인물들의 중첩된 관계도 어김없이 카메라앵글은 포착한다. 킬러 K(김민준)와 세빈, 두헌과 킬러들의 대결이나 조폭 내부의 싸움도 도시의 서늘한 풍경을 재연하는 데 일조한다.

세빈이 찾는 바닷가 술집은 이채롭다. 2만 원이면 갖은 해물을 맘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공간. 거센 파도가 몰아치면서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곳. 화려한 네온사인과 도회지 풍광이 완전히 바래버린 전근대의 공간. 흰머리 노파가 지배하는 낡은 공간. 이런 공간을 배회하는 세빈과 두헌. 공간과 영상에서도 영화는 적잖게 혼란스러움을 재연한다.   

오토바이와 권총에 눌려버린 신세경

영화를 보면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밀라 요요비치와 <툼 레이더> 연작에 나오는 안젤리나 졸리, <레옹>에서 마틸다로 나오는 나탈리 포트만이 떠올랐다. <푸른 소금>의 신세경은 누구와 닮았을까. 차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성장할 거라고 신문에서 특필하는 그녀가 과연 그런 바람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관객들은 송강호의 툭툭 던지는 대사 하나하나에 이내 웃음으로 반응한다.

"아저씨, 나 좋아하지?"
"니가 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
"왜 은정이 죽였어?"
"난 여자는 안 죽여."

신세경의 대사는 무겁고 어눌하며 끊긴다. 감칠맛 없이 배역과 대사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낯선 의상과 오토바이와 권총에 눌려버린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서다. 어쩐지 불안하고 어색한 까닭은. 객석의 반응은 자연스럽지도 흔쾌하지도 않다. 텔레비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2009) 분위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배우 신세경이 거기 있다.

반면에 송강호는 여유만만 희희낙락이다. 파면당한 국정원 요원 이한규를 연기한 <의형제>(2010)나 애욕 때문에 파멸하는 신부로 등장한 <박쥐>(2009)의 주연배우 송강호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푸른 소금>에서 한 호흡 쉬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달착지근한 멜로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2004)에서 최민식이 잠시 쉬어갔던 것처럼.

공감 얻기 어려운 '원조교제' 같은 영화 

송강호와 신세경의 호흡은 그런대로 잘 맞아 보인다. 묵직하고 든든한 송강호가 뒤를 받쳐줌으로써 어설프지만 풋풋한 신세경의 연기가 새삼 살아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 이런 배우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자 힘이다. 기실 <푸른 소금>이 내세울 만한 것은 별로 없다. 노련한 배우와 예쁜 여배우, 아름다운 영상과 약간의 액션이 동반된 영화.

하지만 오늘도 적잖은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현승의 영화가 아니라, 신세대 스타 신세경과 영원한 배우 송강호를 보기 위해서다. 이런 스타시스템이 흥행에서는 분명 유효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애꾸가 말하는 것처럼 '원조교제'는 공감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막힌 영상미학이나 걸출한 배우만으로 좋은 영화는 나오지 않는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이와 따뜻한 시선을 담은 영화가 우리를 찾아왔으면 좋겠다. 여전히 우리는 허다한 인생과 시간과 공간과 사건을 다채롭게 이야기하는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드라마든, 멜로든, 에스에프(SF)든, 역사물이든, 만화영화든 간에.

푸른 소금 차도녀 조폭 원조교제 영상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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