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한다. 100여 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결합하여 수화를 통해 어떤 의사표현을 하는지 알아본 실험에서 침팬지가 맨 처음으로 한 말은 "Let me out(나를 놓아줘)"이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적으로 98.4퍼센트가 똑같으며 약 500만 년 전에 공통 조상에서 분리되어 독자적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추정된다. 이것은 얼룩말과 말의 유전적 차이보다도 작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은 차이의 결과는 실로 엄청나다.

어린 시절 토요일, 일요일이면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밤늦게까지 기다려 MBC의 <주말의 명화>나 KBS의 <명화극장>에서 방영했던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혹성탈출> 역시 그 때 보았던 많은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영화 <벤허>의 주인공이었던 찰턴 헤스턴이 유인원이 지배하는 혹성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결국 그 곳이 지구였음을 깨닫고는 "맙소사 돌아왔어. 내 고향이야. 여긴 지구였어. 정말 전쟁을 일으켰군. 이 미친놈들, 결국 지구를 날렸어! 저주한다! 모두 지옥으로 꺼져!"라고 했던 마지막 반전대사가 아주 인상적이었던 영화다.

최근 개봉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은 프랑크 J. 샤프너 감독의 1968년 작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을 비롯한 7편 시리즈의 프리퀄(원작 이전의 일을 다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찰턴 헤스턴의 <혹성탈출>이 인류의 멸망원인으로 핵무기를 얘기했다면 최근작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인간의 면역체계를 교란시키는 바이러스의 감염을 다루고 있다.

몇 편의 단편을 거쳐 <탈옥자(Escapist)>로 데뷔한 신예감독 루퍼트 와이어트가 메가폰을 잡았다. <아바타>, <반지의 제왕> 등을 탄생시킨 웨타 디지털의 특수효과와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 <킹콩>에서 '킹콩'으로 생생한 모션 캡처 연기를 보여주었던 앤디 서키스의 뛰어난 표정연기가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다.

인간에겐 무슨 권리가 있는가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포스터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전작들에서 유인원이 어떻게 지구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인간이 아닌 침팬지 시저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열대의 울창한 밀림 속에서 평화롭던 침팬지 무리 앞에 총으로 무장한 일군의 사냥꾼들이 나타난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던 침팬지의 일부가 사냥꾼들이 놓은 덫에 걸린다. 그리고 그들은 쇠창살 우리에 실려 바다를 건너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소름이 돋는다. 인간은 누구로부터 어떤 권리를 부여받았기에 다른 생명체에 대해 저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비단 동물뿐이겠는가. 과거 오랫동안 인간은 같은 인간을 저렇게 포획하여 사고팔지 않았던가.

잡혀온 침팬지들은 제약회사의 임상실험 대상이 된다. 알츠하이머 치료약 개발에 침팬지를 이용하던 도중 소동이 일어나고 실험실에 있던 모든 침팬지들은 안락사 당한다. 그러나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새끼 침팬지 시저(앤디 서키스)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키우게 된다.

<논어> '안연' 편에서 공자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 하였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의미다. 비단 이 구절이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말 못하는 짐승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인가. 인간의 질병을 고친다는 명목 하에 제약회사는 수많은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들을 억압하고 죽인다.

그러나 본질은 돈벌이다. 돈벌이를 위해 자연에서 평화롭게 살던 동물들을 동물원의 좁은 우리로 몰아넣고, 돈벌이를 위해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가한다. 또 돈벌이를 위해 개발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으로 곳곳에서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누가 그런 권리를 인간에게 주었단 말인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안 돼!

치매인 윌의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이웃을 공격한 시저는 결국 유인원 보호소로 보내진다. 시저는 그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한다. 사람의 집에서 사람과 같이 밥을 먹고, 사람의 옷을 입고 살았지만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억압받는 유인원들의 처지에 분노한다.

시저와 유인원 무리는 보호소를 탈출하여 유인원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던 제약회사를 공격한다. 그러나 시저의 목표는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잔인한 인간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안식처를 찾는 것이었다. 금문교 위에서 인간들은 유인원들을 한쪽으로 몰아서 모두 죽이려고 했지만, 시저는 인간을 죽이려는 무리를 막아선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을 시저는 보여주었다.

무리를 이끌고 시저가 향하는 곳은 금문교 너머에 있는 삼나무 숲이다. 바다 건너로 인간의 도시가 보이는 숲. 집으로 가자는 윌에게 시저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시저의 집은 여기야"이다. 수의사이자 윌의 아내인 캐롤라인이 윌에게 했던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안 돼"라는 말의 의미를 시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저는 늘 그랬듯이 삼나무 꼭대기에 올라 금문교 너머에 있는 인간의 도시를 바라다본다. 인간의 세계로부터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과 동물,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멋진 장면이다.

결국 인류의 멸망은 시저와 같은 지능이 발달된 유인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잘못,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진 결과다. 엔딩 크레딧에 지구 전체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항공노선을 따라 바이러스의 이동경로가 나타난다. 마치 몇 년 전 사스 바이러스나 신종플루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처럼...

부디 지구를, 자연을, 동물을 괴롭히지 말자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몇 달 전 영국에서 의약품 개발을 위해 생체실험에 동원되는 토끼들의 참상이 폭로돼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영국 생체실험 반대연합(BUAV)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잔인한 동물실험에 반대해 왔다. 그리고 유럽의회는 지난해 9월 동물실험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동물복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의회가 승인한 법안에 따르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을 이용한 실험은 사실상 전면 금지되며 그 이외의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도 암, 알츠하이머 등 질병 연구와 기초과학 등으로 엄격히 제한되고, 동물실험이 불가피할 때도 그로 말미암아 동물이 겪을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껏 인간이 지구에서 한 일은 자연을 소비하고 파괴하는 것이었다. 인도양의 모리셔스섬에 살았던 도도새는 인간이 섬에 발을 들여놓은 지 7년 만인 1693년에 멸종했다. 남아프리카 남서부 케이프에 살았던 파란영양은 희귀한 파란 색의 모피 때문에 사냥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살육당한 결과 1800년에 멸종했다. 영국의 환경학자 노만 마이어스는 1990년대 초에 인간 때문에 멸종하는 동식물의 수가 일주일에 600종이라고 주장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인간의 탐욕이 불러올 재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침팬지의 진화가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빌미는 인간에게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스스로 욕심을 제어하고 무분별한 자연파괴 등을 일삼지 않는다면 영화는 영화에서 끝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먼 훗날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인간들이여. 부디 지구를, 자연을, 동물을 괴롭히지 말고 그대로 두자.

혹성탈출 멸종 동물 생체실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