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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겉그림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겉그림
ⓒ 북스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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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간'과 '누'란 용어는 일반인들에게 낯설지만, 의료인들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다. 자간은 임신중독증의 일종이고, 누는 난산 혹은 사산 때문에 방광과 요도에 구멍이 생기거나 질 등에 입은 상처를 말한다.

출산 시 진통이 지나치게 오래 계속되거나 아이나 산모 둘 중 하나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제왕절개나 겸자분만 등으로 출산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구의 모든 여성들이 이와 같은 적절한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병원 시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가난한 나라의 여성 대부분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출산을 하며,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하기도 한다. 

에티오피아 여성들도 그들 중 하나. 차로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에티오피아의 지형은 여성들이 출산 시 병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출산 때문에 목숨을 잃는 에티오피아 여성들은 연간 대략 53만 명. 누 환자는 정확한 수치를 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조혼과 억압이 부른 비극

"에티오피아의 오지에서 난산을 겪게 되면 의료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산모는 엄청난 고통에 처하게 된다. 임산부는 때로는 며칠째 자기 오두막 바닥에 웅크리고 앉거나 얇게 짚을 깐 바닥에 누워 아기가 나오게 하려고 힘을 준다. 5분 마다 자궁수축으로 가해지는 압력을 태아는 이틀 이상 견디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태반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태아에게 혈액 공급이 차단되어 태아는 죽게 된다. 태아가 죽고 나면 태아의 체액이 흡수되는 침용 과정이 일어나 두개골이 작아지면서 함몰된다. 그러면 산모는 마침내 사산아를 적출하게 된다.

그쯤 되면 임산부는 닷새에서 엿새 동안 산통을 겪지만, 산모의 불행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태아의 압력이 산모의 방광으로 가는 혈액공급을 차단해 섬유조직이 죽는다. 불쌍한 산모는 방광과 질 사이에 구멍이 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직장에도 구멍이 생긴다. 그러면 방광과 직장의 내용물이 질을 통해 계속 새어나오게 된다. 몸에 냄새가 나기 때문에 그녀는 대체로 남편한테 버림받고 마을 사람들한테 따돌림을 당한다. 그녀는 외롭고 수치스러운 삶을 선고 받는다." - <지구에서 하나뿐인 병원> 중에서

14살 에나타네시도 이와 같은 고통을 겪는 수많은 에티오피아 여성 중 하나다. 그녀는 결혼 1년 만에 임신을 했는데 3일 동안 출산의 고통을 겪다가 아이가 자궁 속에서 죽으면서 '누'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

21살의 시메쉬 세가예도 위와 같은 여성 중 하나. 19살에 결혼한 그녀는 얼마전에 출산했는데 에나타네사처럼 아이가 자궁 속에서 죽으며 그녀의 방광과 요도 사이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말았다. 그 때문에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 받았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이 경우 마을 외딴 집으로 쫓겨나 사람들의 따돌림 속에 어둠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그녀는 부모와 함께 치료 받을 수 있다는 병원을 찾아 버스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버스에 타자 승객들은 흥분하며 화를 냈고 운전수는 그녀를 도중에 내리게 했다.

남편에게 버림받았듯 그녀가 세상에 또 한 번 버림받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녀의 부모는 그녀 혼자 탈 수 있는 버스비를 마련하고자 가족의 전 재산이랄 수 있는 가축들을 모두 팔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가 아디스아바바의 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에나타네쉬 역시 죄인처럼 웅크리고 살다가 자신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병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친척에게 버스비를 얻어 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나았다. 둘 다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그녀들을 치료해 새 생명을 준 의사는 캐서린 햄린 박사. 

그녀들이 무료로 치료를 받은 아디스아바바 누 병원은 오스트레일리아인인 캐서린 햄린 박사와 남편 레그 햄린 박사가 사재를 모두 털어 1974년에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세운 누 치료 전문병원이다.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북스넛 펴냄)은 캐서린 햄린 부부의 의료일기다. 캐서린 햄린 박사와 함께 수많은 에티오피아 여성을 치료하는데 일생을 바친 남편 레그 햄린 박사는 에티오피아가 내전을 끝내고 독립을 선언한 1993년에 에티오피아에서 사망했다.

책은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체하이 공주 기념병원에서 조산원 학교를 개설한다'는 광고를 본 부부가 학생들 가르치는 것을 자청해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누 환자와의 만남과 치료, 누 환자 치료를 위한 병원 건립 과정 등을 잔잔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햄린 부부의 노벨상 감 의료일기

여기까지 읽는 동안 '누를 왜 줄일 수 없나' '에티오피아 여자들이 출산 때문에 왜 그리 많이 희생 되는가' 의아해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에티오피아인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조혼과, 결혼이라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노예처럼 팔려가는 어린 소녀들이 겪어야 하는 강간 때문이다.

"여자 아이들은 8살이나 9살에 약혼을 하기도 한다. 두 집안 간에 흥정을 벌여 돈과 재산을 주고 젊은 신부를 팔고 산다. 당사자인 불행한 여자아이는 당나귀 등에 타고 오빠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남편이 될 젊은 남자의 마을로 간다. 그 마을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살림도 배우고 신랑도 알아가게 된다. 사람은 14살 정도면 임신이 가능해 지는데, 영양도 부족하고 키가 작은 에티오피아 소녀들은 사춘기가 늦게 찾아와 14살 전에 임신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 <세상에 하나뿐인 병원> 중에서.

에티오피아에선 딸을 반기지 않는다. 때문에 한 사람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면 아들을 보내고 딸은 아들을 위해 집안일이나 가축 돌보는 일을 하다가 부모의 명령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된다. 여자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도록 배우기 때문에 시집을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대부분 무조건 따른다.   

미성숙한 여성의 임신은 난산을 초래하기 쉽다. 캐서린 햄린 박사는 "조혼이 없어지면 출산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훨씬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기관인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조혼을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신부들이 젊은 여자들의 정절을 지키는 수단으로 조혼을 장려한다. 여자는 순종적이고 정절을 잘 지켜야 하며 아이를 잘 낳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캐서린 햄린 부부가 에티오피아에서 진료를 하기 전까지 난산으로 끔찍한 상처를 가진 에티오피아의 누 환자들은 천대받고 버림받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수많은 누 환자가 적절한 보살핌 없이 비참하고 쓸쓸하게 죽어갔다. 

캐서린 햄린 부부의 열정어린 헌신 덕분에 새 생명을 얻은 에티오피아 여성은 3만2000여  명. 400여 페이지의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성들의 현실과 가장 숭고한 사람의 헌신적인 삶, 그리고 반드시 없어져야 할 사회제도와 풍습, 국민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국가의 태만, 남성들의 모순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국 BBC는 'Walking Back to Happiness'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캐서린 햄린 박사의 의료 활동과 인생을 소개한 바 있다. 노벨상을 수여해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조혼이 계속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에티오피아 여성의 참혹한 현실과 일생을 바쳐 그들을 돕는, 현재진행형의 생생한 감동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캐서린 햄린 씀. 이병렬 옮김.북스넛 2009년 펴냄.13000원)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북스넛(2009)


태그:#누 환자, #아디스아바바 누 병원, #임신과 출산, #캐서린 햄린, #북스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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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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