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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 바른 기슭 반반한 땅에 역사 깊은 우리학교 높이 솟았네…"

 

학창시절 주야장천으로 불러댔던 초등학교 교가의 일부분이다. "마래산 기슭에 우뚝 솟은 보금자리…"로 시작했던 중학교 교가와 함께 아침조회의 후광 효과인지 지금도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중이다.

 

OO산 정기 받고 이어받은 터전에

OO강 푸른 물결 바라보면서

반만년 높이 솟은 우리의 기상

자유와 진리로 우뚝 솟아

아~ 아~ 영원히 길이 빛나리

 

이 가사는 특정 학교의 교가 일부분이 아니다. 마을 주변의 유명한 지형과 경관을 망라하여 기상과 정기를 강조했던 OO산, OO강, 정기, 터전, 기상, 역사, 자유 등의 획일적이고 특징적인 단어만 대충 나열해본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한 번쯤 불러봤을 그럴싸한 교가 가사가 만들어졌다. 멜로디는 또 어떤가. 정말 어느 학교 교가 일부분만 어떻게 이어 붙여도 노래가 된다.

 

4분의 4박자에 후렴, 행진곡풍, 작사 작곡가는 유명음악가?

 

혹시 당신은 지금 중고교 시절의 교가를 머릿속으로 따라 부르지는 않았나? 만일 1, 2절이 뒤섞여서 기억난다면 그리 뛰어난 우등생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해도 걱정 마시라. 악보를 보거나 들으면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또 교가 아니겠는가. 학교는 도심 개발에 밀려 사라졌지만 교가만은 음정까지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의 학창시절,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교가 첫머리에 3음절의 'OO산'이 들어가지 않은 교가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3음절의 시작 음이 너무나 똑같다는 것이다. 4분의 4박자에 행진곡풍은 기본, 작사 작곡가는 자랑스럽게도 교과서에도 있는 유명한 음악가가 대부분이다. 가사는 대부분 2절까지며 대부분 후렴을 두는 것도 특징이다.

 

교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학교의 교육목표나 건학정신, 교풍, 지역의 정서 등이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가를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모든 산들이 학교한테 정기를 빼앗기고 만다. 한 사람이 작사 작곡한 것도 아닌데, 표절도 아닌 것이 너무나 획일적이다. 게다가 중저음의 성악가가 부른 녹음 버전의 교가는 왜 이리도 비슷한지….

 

이윽고 대학에 들어가니, 역시 교가가 빠지지 않았다. 입학식을 한 시간 정도 앞두고 오리엔테이션 때 교가를 배우는 순서가 등장했다. 멋진 성악과 선배가 나와 대강당에서 친절하게 한 소절 한 소절을 가르쳤다.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 10분 만에 교가를 모두 외워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졸업식 때까지 한 번도 부를 일이 없었음에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왜 대부분 학교의 교가는 이렇게 획일적이고, 특색이 없을까. 다양한 선율과 아름다운 가사로 오래 간직하고 싶고, 또 부르고 싶은 교가는 없는가, 왜 모든 교가는 군가 같은가. 어떤 학교는 군국주의 일본 군가를 그대로 가져다 (가사만 다른) 쓴 교가까지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학교 측은 그동안 써오던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겠지만, 학교의 개성과 특색이 반영되고 학생들의 성향을 반영하는 교가로 바꾸는 것이 그리 어려울 일만은 아니다. 실제로 최근에 몇몇 학교들이 참신하고 부르기 좋은 교가를 정해서 부르고 있다.

 

가수 김현철이 만든 금반초등학교의 예쁜 교가

 

 가수 김현철이 만든 금반초등학교의 예쁜 교가. 동요처럼 가사가 아름답다.

 

지난 2008년, 한 방송프로그램의 '교가변신프로젝트'에서 전교생이 24명인 금반초등학교의 교가를 가수 김현철이 작곡했다. KBS창원방송총국에서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1000여 곡이 넘는 교가들을 분석, 천편일률적인 교가의 문제점과 일본군 군가가 교가로 불리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실제 지리산 산골 금반초등학교 전교생 24명이 직접 만든 가사에 작곡가 김현철이 곡을 붙여 새 교가를 만들고 전국 동요제까지 출전했다.

 

우리들의 푸르른 꿈이 자라나고

나무들의 이야기 소곤소곤 들려오는

간질간질 국화향기처럼 번지는 웃음과

내 마음을 지나가는 친구들의 노랫소리

나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남을 배려함으로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하루들이 빛나고 있는

초록산과들을 사랑하고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금반초등학교

언제나 행복해

(중략)

 

아, 가사만 봐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교가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뒷산이 나오고 민족의 정기를 반드시(?) 이어받아야 인정 받았던 우리 시절의 교가와는 다르다. 마음에 남는, 추억이 살아 있는 그런 교가, 이렇게 교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난 2006년에 개교한 청심국제중고등학교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교가가 있다. 이 학교만의 특별한 교가는 'SKY BLUE DREAM'이라는 곡으로 일반 가요와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멜로디도 일반적인 교가와 달리 팝에 가깝다.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에 빠져든다. 교가를 녹음할 때도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독특하고 특별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작곡도 밴드부를 담당하는 배지환 교사가, 작사는 원어민교사로 재직했던 칼튼 존슨(Carlton Johnson) 교사가 직접 참여했다. 

 

대안교육 현장의 주제가인 간디학교 교가를 아시나요?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리 알고 있네 우리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 '꿈꾸지 않으면' 양희창 작사, 장혜선 작곡, 신지현 노래 중 1절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의 교가다. 가사를 차근차근 음미하다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 온다. 아이와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학교,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더 많은 이들이 꿈을 꾸는 교육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학교에서도 부르고, 거리로 쫓겨난 교사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도 이 부른다. 대안 교육 현장에서는 이 노래를 '교가'처럼 즐겨 부른다.

 

 윤종신이 작곡한 신라대학교의 교가 <신라인의 노래(부제 : 꿈 그리고 한 가지)>. 막상 멜로디를 들으면 이 곡이 정말 교가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신라대학교 홈페이지 캡쳐

2004년, 신라대학교 개교 50주년을 맞아 가수 윤종신씨는 새로운 교가의 작사·작곡을 의뢰받았다. 학교 측에서는 유명 작곡가에게 의뢰할 수도 있었지만 신선한 교가를 만들어 달라는 취지에서 파격적인 결정을 했다. 그는 마침내 '꿈, 그리고 한 가지'라는 부제를 장착한 '신라인의 노래'라는 제목의 교가를 만들어냈다.

 

내가 이루려 하는 그 꿈이 보이는 듯 하루하루가 소중한 나의 스물 즈음에

나의 작은 가방에 채우려 하는 건 책과 사랑 그리고 또 한 가지

밝게 빛나 보이는 화려한 세상 속에 가끔씩 그리워지는 힘겨운 그림자

미로 같은 어둠이 오면 모두의 눈 밝혀줄 귀한 배려를 잊지 않았으면

*바다를 건너기 위한 건 푸르름을 가로질러 꿈이 닿을 때까지

이제 시작인 내 젊음은 모든 걸 이룰 수 있어. 신라인은 커다란 사람*

 

- '신라인의 노래'(부제 : 꿈 그리고 한 가지) 작사·작곡 : 윤종신, 노래 : 김연우 중 1절

 

위엄과 전통이 느껴지는 전형적인 멜로디의 기존 대학 교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개성 있는 캠퍼스 송이 탄생한 것이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젊음을 무기로 모든 것을 이루자'는 교훈적인 메시지의 이 곡은, 교가인 것 같으면서도 막상 멜로디를 들으면 이 곡이 정말 교가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천편일률적인 군가식 교가, 이제는 바꿀 때

 

무게감 있고 다소 권위적이었지만 수십 년 전 '국민학교'의 교가는 우리들의 성장기에 큰 영향을 주고도 남았다. 애교심을 불러 일으키고 긍지를 갖게 한 교가의 역할에 누가 반문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많은 학교의 교가가 너무 천편일률적인 것 또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다. 우리 아이들에게 참신하고 아름답고 부르기 쉽고 미래 지향적인 교가를 선물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기존의 교가를 바꾸기 어렵다면, 새롭게 편곡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기존의 딱딱하고 천편일률적인 교가에서 벗어나 친근하고 재밌게 탈바꿈할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란다.

 

전교생을 운동장 땡볕에 줄 맞춰 꼿꼿하게 세워놓고 군가 같은 교가를 부르게 하는 것,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리라.

 

작사가가 바뀐 교가 30여 년 전 '국민학교'의 교가는 우리들의 성장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에는 교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한 학년이 15반까지 한 반에 70명에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공부하여 이른바 '콩나물교실'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한 학년에 1천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6학년까지 약 6천명 정도였다. 그래서 교가를 "여기서 자라나는 5천의 동무~“라고 불렀는데, 졸업 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찾아보니 "여기서 자라나는 1천의 동무~”라고 슬며시 바뀌어 있다. 그런데, 교가의 가사가 일부 바뀐 건 이해한다 하더라도, 교가 작사자까지 바뀐 것은 왜일까? 
(사진 위)1981년2월 졸업앨범 촬영 (사진 아래)2011년 학교홈페이지 캡쳐

태그:#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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