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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우리가 꿈꾸던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우리 학교가 서울형 혁신학교로 문을 연 지 6개월째가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 학교는 치열했던 봄·여름학기를 마무리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니 마치 6년 세월을 보낸 것처럼 수많은 일이 있었고, 그만큼 감회도 새롭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의미를 거둔 것도 있지만, 돌아보면 더 채워야 할 부족한 부분이 더 많습니다. 교사들은 더 나은 2학기 교육활동을 위해 방학 동안 부족한 부분을 채우느라 힘쓰고 있습니다.

한 학기를 보내면서 교사들만큼 감회가 남다른 분들이 바로 학부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희망해서 혁신학교에 아이를 보낸 게 아니라,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모른 채 새 학교 주변 아파트에 입주하다 보니 저절로 혁신학교에 아이를 보내게 됐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걱정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혁신학교에 대한 좋은 이야기 말고, 학부모들의 걱정스런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학교와 혁신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다져보려고 합니다.

다음은 우리 학교만이 아닌, 서울과 지방의 모든 혁신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의 공통된 이야기입니다. 이름하여 '혁신학교괴담 또는 오해'입니다.

혁신학교는 공부 안 하나요?

야콘을 직접 심어 물을 주면서 가꾸는 공부는, 책상 앞에서 책으로 절대 배울 수 없는 아주 크고 소중한 진짜 공부입니다.
▲ 자신이 심은 야콘에 물을 주는 아이 야콘을 직접 심어 물을 주면서 가꾸는 공부는, 책상 앞에서 책으로 절대 배울 수 없는 아주 크고 소중한 진짜 공부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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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를 시작한 뒤로 학부모님 사이에 가장 많이 떠도는 첫 번째 '괴담 또는 오해'는 뭐니뭐니해도 "혁신학교는 놀기만 하고 공부는 안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 역시 학부모들에게 이 말을 듣기 시작했는데, 학부모들의 '딴지'가 걱정되기보다 반대로 '우리가 잘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안심이라니 참 이상하지요?

이 말의 뜻을 잘 새겨보면, 그만큼 우리 학교가 아이들에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면서도 공부한다는 생각을 안 하고 하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은 공부가 어디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가 정말로 아이들 공부는 안 시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학교는 공교육으로 법정 수업시수를 정확히 잘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만큼 공부시간에 공부만 하는 학교도 그리 많지 않다고 자부합니다.

'드디어' 수업시간에 수업만 합니다

흙을 만지면서 직접 키워보는 것이야말로 어린이 시기에 필요한 진짜 공부입니다.
▲ 모내기 하는 모습 흙을 만지면서 직접 키워보는 것이야말로 어린이 시기에 필요한 진짜 공부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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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대부분의 일반학교는 교사들의 잡무가 많아서 "수업하는 틈틈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틈틈이 수업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업에 집중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 경험을 보더라도 일 처리하는 틈틈이 수업을 한 일도 많고, 수업을 하면서도 업무가 머릿속에 가득해서 마음이 급해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했을 뿐더러, 급히 교육청에 보고할 업무 때문에 자습을 시킨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교실 상황은 대부분의 교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들이 이런 일을 모두가 겪어왔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수업시간에 수업만 하기'를 약속하고, 교사가 수업시간에 수업만 할 수 있도록 잡무와 실적을 위한 행사를 많이 없애고 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 교사들은 "교직경력 이십여 년 만에 수업시간에 오직 아이들만 생각하고 수업 해보기는 처음이다"고 고백할 정도로 수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오직 수업만 생각하니, 예전에는 진도 나가기 위주의 교사주도형으로 아이들을 끌고가는 일제식 수업을 주로 했던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더 의미있는 교육방법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 교사 주도형으로 수업을 끌고나갈 때는 공부가 지겹고 재미없었는데, 아이들 중심인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아이들이 공부가 지겹지 않고 재미있게 느껴질 수밖에요. 교사들도 공부가 느린 아이들을 타박하기보다는 특징이라 여겨주고 기다려주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거나 따라가지 못해도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들도 올해 혁신학교를 운영하면서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잡무 줄이기, 민주적인 교사회 운영을 통한 업무 시간 단축하기, 행사를 위한 행사 없애기 등)을 만들고 보니 수업에 전념하게 되고, 교사가 끌고가는 수업이 아닌 아이들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관계도 저절로 좋아졌다고 합니다.

더 나은 수업방법과 내용을 찾아보고 연구하기 위해 교사들끼리 수업공개를 하고 있습니다.
▲ 수업 공개 모습 더 나은 수업방법과 내용을 찾아보고 연구하기 위해 교사들끼리 수업공개를 하고 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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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력이 부족한 아이는 기다려주고 도와주면서 공부를 못한다고 따돌리거나 구박하는 일이 없으니 공부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공부'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저절로 사라지게 된 것이지요.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는 배우는 것이 즐겁고,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수업방법을 고민하고 교육과정을 운영하려고 합니다. 아이들한테 공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공부를 지겨운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의 작전이 성공한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 안 해요?"하는 학부모들의 딴지가 외려 매우 기쁘게 다가옵니다.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공부'란?

학부모들은 그 어느 학교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공부를 안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일까요? 아마도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공부'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를 강조하는 학부모들은 '공부한다'는 의미를 당신들이 어렸을 때처럼,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빨간줄 쳐 가면서 달달 외우고, 문제집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푸는 것을 여기는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위에 말한 공부가 진짜 어린이 시기에 해야할 공부로 맞을까요? 아닙니다. 일찍이 이오덕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어린이 시기에 어린이들이 해야할 공부는 책상 앞에서 책과 문제집으로 지겹게 하면 안 되고, 온몸으로 세상을 직접 경험하면서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공부가 어린이들이 해야할 진짜 공부입니다. 공부란 말을 일부러 하지 않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도 어린이들에게 알맞은 살아있는 공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따져보면 우리 학교가 다른 학교보다 공부를 덜하고 노는 시간을 더 많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이 아이들이 놀 권리를 충분히 주기 위해 '아침자습'이란 이름으로 아침부터 아이들을 책상에 묶어두지 않고 1교시 시작 전을 아이들 시간으로 주고 있다거나, 80분 1블럭이 끝난 뒤에 노는 시간을 몰아서 30분을 주고 있을 뿐입니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을 시간마다 10분씩 주고 있는데, 이 시간에 아이들은 화장실 갔다오고 교과서를 바꾸면 끝입니다. 40분 수업도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보면 실제 수업시간은 20~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80분 블록 수업을 운영하고 한 블록이 끝난 뒤 노는 시간이 30분입니다. 이 시간에 아이들은 충분히 놀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 때 가장 많이 세상을 배우고 깨우칩니다. 충분히 논 아이들은 건강하고, 건강한 아이들은 또 잘 놉니다. 수업 시간에 집중력도 뛰어납니다. 지난 1학기 수업을 해 본 경험으로 볼 때, 우리 학교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와 집중도가 그동안의 어느 학교보다도 높았습니다.

배우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진짜 공부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게 감성을 키워주기 위한 전문강사를 불러와서 목공, 조소, 창의음악, 수공예를 모든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에 나오는 활동을 몸으로 익힐 수 있게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토요일이면 각 교과의 경계를 넘어 체험하면서 배우는 교과통합체험학습 프로그램인 '가람빛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목공수업은 나무를 느껴보고, 나무를 알고, 도구 사용법을 배워서 친구들과 협력해서 톱으로 직접 잘라보고 망치로 못을 박아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 목공수업 장면 목공수업은 나무를 느껴보고, 나무를 알고, 도구 사용법을 배워서 친구들과 협력해서 톱으로 직접 잘라보고 망치로 못을 박아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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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도 아이들의 선호도를 조사해서 아이들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계절학기가 끝날 때 쯤이면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발표하는 잔치를 엽니다. 봄학이에는 새싹잔치를 하고 여름학기에는 푸름잔치를 했는데, 재주 있고 기능이 뛰어난 몇 아이를 위한 발표회가 아니라, 모든 아이가 다 참여해서 배운 것을 펼쳐 보이는 그야말로 잔치입니다.

여름학기 동안 배운 것을 발표하고 다른 아이들이 발표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 어느 공부보다도 더 중요한 진짜 공부입니다.
▲ 여름학기 마무리 '푸름잔치' 모습 여름학기 동안 배운 것을 발표하고 다른 아이들이 발표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 어느 공부보다도 더 중요한 진짜 공부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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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 잔치를 통해서 서로에게서 더 많이 배우면서 공부를 합니다. 공부시간에 교과서를 가지고 하는 것을 공부, 선생님 말을 잘 듣고 그대로 따라 적으면서 외우는 걸 '공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오랜 옛날적 '공부'입니다.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는 지금 아이들 스스로 배움이 일어나는 공부, 세상에서 몸으로 겪으면서 배우는 진짜 공부, 서로에게 배우는 공부, 배우는 것이 지겹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공부, 진짜 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셈입니다. 

조금씩 방법은 다르지만, 혁신학교는 바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진짜 공부를 지향하는 학교입니다. 이래도 우리 학교가, 혁신학교들이 '공부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태그:#서울형혁신학교, #혁신학교, #공부, #초등교육,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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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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