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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아홉 번째로 강애심 법환마을 해녀회장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물질 28년, 아직 해녀 중군이지만 해녀회장을 세 번씩이나 맡고 있을 정도로 해녀들의 신임이 두터운 강애심 회장.
 물질 28년, 아직 해녀 중군이지만 해녀회장을 세 번씩이나 맡고 있을 정도로 해녀들의 신임이 두터운 강애심 회장.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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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끊어질 정도까지 참았다가 내뱉는 숨소리, 제주 해녀들은 이를 '숨비소리'라 한다. 해녀들이 숨을 죽이고 물속으로 들어가 전복이며 소라를 캐는 시간은 보통 1분 20초. 얕게 들어가면 수심 4m, 물질 좀 한다는 해녀들은 수심 15m까지 거뜬히 들어간다. 심지어 수심 18m까지 들어가는 해녀도 있다.

강애심 법환마을 해녀회장은 물질한 지 28년 됐다. 열아홉 살에 시집올 때만 하더라도 시댁은 알아주는 부잣집이었다. 그러나 시집온 지 10년 만에 가세는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섬이라 일할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도회지 같으면 건설현장에 일용노동을 나가거나 공장에 잡일을 거들어주는 임시직원으로 갈 수 있으련만 여기는 변변한 공장 하나 들어서지 않는 섬. 어려서부터 바닷가에 살아서 헤엄 조금 칠 줄 안다는 이유 하나로 시어머니를 따라 그때부터 물질을 시작했다.

"매일 보는 바다라 놀러도 가지 않은 곳이었어요. 바다에서 물질하며 작업할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근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두 아이가 그때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이었는데 곧 중학교 가야하니 학비도 벌어야 하고 또 먹고 살아야 되고…. 일본 가면 돈 많이 번다고 해서 남편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없었죠.

시어머니는 남편도 일본으로 가버리니까 며느리 도망갈 줄 알고 아침마다 나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다로 데려갔어요. 시커멓게 얼굴 타고, 몸도 망가지고, 가기 싫고…. 근데 자식들 생각하면서 바다로 들어갔지요."

참았던 서러움을 숨비소리에 섞어 토해냈다

제주바다 험한 조류가 시련에 든 삶처럼 그의 몸을 흔들어댔다. 바다 속 한가운데서 서러움이 북받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쌀 살 돈이 없어 이웃집을 가면 꿔줄 돈이 없다고 그러고, 친척 집을 가면 쌀이 없다고 그래요. 다들 힘들 때니까요. '내 팔자가 왜 이러나, 부모 잘 만났으면 학교 다니며 공부해서 편하게 살았을 텐데…' 서러워 눈물이 나고, 그러다 자식들 생각에 더 서러워 눈물이 나고….

컨디션이 안 좋아 물건(전복, 해삼, 소라 등을 일컫는 말-기자 주)이 눈에 전혀 안 띄는 날이 있어요. 내 몸과 바다가 안 맞는 날이죠. 그러면 '꼭 이걸 해야 하나, 난 왜 이렇게 못사나' 하는 너무 속상한 마음에 참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오만가지 서러움에 눈물이 북받칠 때면 '호오오우우~~~' 통곡 같은 숨비소리를 내지르며 울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참았던 서러움을 숨비소리에 섞어 토해냈다. 한 어미로서 인내해야 했던 세월을 숨비소리에 모아 바다보다 시퍼런 제주하늘에 뿌렸다. 허면 조금 살 것 같았다. 그제야 조금 숨 쉬는 것 같았다.

"참 신기한 것은 바다 속에서 서러운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도 나요. 전복이라도 많이 따는 날엔 '우리 아이들 먹일 쌀 살 돈 벌었구나, 우리 자식 학비 생겼구나'... 기쁨에서 차서 눈물이 나요. 물속 기어 다니다가 산호 사이에서 큰 전복이라도 발견할라치면 그때는 '용왕님, 고맙습니다' 저절로 감격해서 눈물이 나고요."

보상금 받고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한 강정마을 해녀회

서러운 눈물 다 빼는 바다가 지겹진 않을까. 크게 주는 것 없으면서 인심 쓰는 척 하는 바다가 야속하진 않았을까.

"여자가 시집을 와버리면 친정어머니한테 돈 좀 달라고 할 수가 없어요, 창피스러워서. 아무리 힘들어도 말 못해요. 친정엄마한테는 더요. 그런데 바다는 어려울 때 우리를 살게 만들어줘요. 어디 가서 돈 한 푼 꾸어올 데 없는 사람도, 아무 것도 없이 혼자 사는 분도 바다는 다 먹고 살게 해줘요.

누구나 바다 속에 들어가면 자기 벌이는 해올 수 있어요. 어려운 사람들이 위기 당했을 때 친정어머니 품속같이, 친정집 같이 편안함을 주는 곳이 바다예요. 어느 땐 밉기도 하지만 두렵지는 않아요. 매일 봐도 좋고, 매일 들어가도 좋고."

그래서 그는 강정마을 해녀회가 해군기지 찬성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해녀에게 바다는 친정엄마인데 그 바다를 버린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헛소문이길 바랐다. 그러나 소문이 아니었다. 강정마을 해녀회가 약간의 보상금을 받고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한 것이다.

그는 143명 법환마을 해녀들을 모아 강정마을 해녀 몫까지 싸웠다. 도지사에게 항의하러 도청 가서 싸우고, 팔짱 끼고 구경하는 국회의원들 혼내러 서울 국회의원 회관까지 쳐들어갔다. 강정바다가 법환바다였고, 법환바다가 강정바다였기 때문이다. 두 마을은 범섬을 사이에 두고 제주바다에 함께 사는 이웃이었다. 그러니 '우리 바다, 너희 바다' 할 것이 없었다. 바다에 선이 있나, 담이 있나!

"정답게 이야기 나누던 사이가 지금은 원수 보듯 한다"

강애심 해녀회장은 "어떻게 해녀가 친정엄마 같은 바다를 버릴 수 있나"며 해군기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강애심 해녀회장은 "어떻게 해녀가 친정엄마 같은 바다를 버릴 수 있나"며 해군기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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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안타까웠던 것이 강정마을 해녀 한 사람이 '내 바다 내가 팔아먹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따질 때였어요. 이 바다가 어떻게 내 바다고 누구 바다입니까. 힘없는 사람도 함께 벌어먹고 살다가 잘 지켜서 자손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이 바다예요.

세상 어느 해녀가 그런 바다를 앞장서서 팔아넘긴다는 말입니까. 바다를 포기한다는 것은 해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에요. 해녀가 바다에 애착이 얼마나 심한데… 해녀가 바다를 버린다는 것은 지 목숨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바다를 판 해녀는 해녀 자격이 없어요. 아무리 돈이 귀중하다고 영원히 바다를 버린다는 것이 용서가 안 됩니다. 보통 물질하는 사람도 1, 2년이면 정부가 준 보상금 정도는 버는 데 왜 굳이 바다를 팔면서까지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제주 해녀들이 그렇지만 강정해녀들과 법환해녀들은 '한 바당(바다의 제주도말)에 살고 있다'는 마음에 유대가 남달랐다. 돌아가면서 밥도 사고 그의 표현처럼 "이웃마을 사는 형제처럼 참 재미있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진 후 두 마을 해녀들은 길에서 봐도, 버스에서 만나도 서로 먼저 말 건네는 사람이 없다. "형제간 만난 것처럼 기뻐서 어쩔 줄 몰라 두 손 꼬옥 붙들고 정답게 이야기 나누던 사이가 지금은 원수 보듯 하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바다는 갈라지지 않았는데 바다 속에 사는 사람들은 갈렸다. 바다를 사는 자리돔, 뱅에돔, 전복, 소라는 담을 치지 않고 여전히 강정바다 법환바다를 오가는데 사람들만은 담을 치고 남남이 되었다.

"7대 경관 도전한다며 해군기지 건설? 말이 되나"

해녀들은 수심 십 미터가 넘는 바다 속, 다른 해녀들과 백 미터 이상 떨어져 물질을 하지만 혼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깊은 바다 어디, 함께 물질 나온 해녀가 필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도 잡히고, 잡히지 않아도 보인다. 해녀란 본시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

물질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한다"고 했겠는가. 죽음보다 지독한 삶의 고통을  '테왁'(해녀들이 부력을 이용하여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도구) 밑에 깔고, 얼기설기 엮은 망사리(해녀들이 딴 해산물을 담는 자루)엔 소라 담듯 한 가닥 삶의 희망을 채워가며 살아온 이들이다.

그들은 또 음력 이월이면 외눈배기섬에서 왔다는 심술궂은 '영등 할망(할머니의 제주도말)'을 달래는 영등굿을 함께 치렀다.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바다에서, 친정엄마 넓은 치맛자락 같은 바다에서 뭇생명들과 함께 살게 해주고, 우리의 물질로 가족과 마을이 함께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바다의 신앙을 함께 모시고 바다의 의례를 함께 치렀던 이들이 남이 되었다.

"강정해녀들에게 가기 전에 해군의 송 대령이란 사람이 우리 법환해녀들에게도 왔었어요. 보상금 많이 줄 테니 해군기지 찬성해달라는 거예요. 그리고 해군이 들어와야 학교도 세워지고, 인구도 늘어나서 먹고살기 좋아진다고 사탕발림을 해요. 바로 내쫓아버렸죠.

아니 지금도 서울에 있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못가서 전국이 난린데 또 좋은 교육과정은 전부 서울에 있다고 전국의 자식 있는 사람들은 전부 자식들을 서울로 보내는 판에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이 섬 촌구석에 애들 데려와 교육시키겠습니까? 자식 해군시키려고 여기서 교육시킨다면 모를까...

세계 7대 경관 도전한다면서 제주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곳에 해군기지 짓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아무리 눈 가리고 아웅 해도 유분수지 앞뒤도 안 맞고, 사리에 맞지도 않는 소리를 함부로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여든 살이든 아흔 살이든 건강만 허락한다면 물질 계속 하고 싶다"

그는 우근민 제주도지사와 제주지역 세 명의 국회의원들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우 지사에겐 화가 치민다고 했다. "도지사 되기 전엔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가 포함된) 올레 7코스를 걸으며 주민들에게 해군기지 안 받아들일 것처럼 말하다가 도지사가 되자마자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제주도에 오면 해군기지 반대한다고 하고, 국회에 가면 찬성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 세 명이 맘만 굳게 먹어도 해군기지는 절대 제주도에 들어오지 못 하는데 이 난리가 벌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해녀들은 물질하는 수준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뉜다. 어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녀들 스스로가 평가를 통해 결정한다. 그만큼 해녀들은 스스로 엄격한 잣대와 규율을 가지고 있다. 물질 28년이지만 그는 아직도 중군이다.

"딱히 상군 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여든 살이든 아흔 살이든 건강만 허락한다면 물질을 계속 하고 싶은 것이 제 소망이에요.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바다는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큰 아들이 지금은 그만뒀지만 시청 공무원이었어요. 자기가 공무원인데 엄마가 해녀들 모아 앞장서서 시청에서 데모하고, 도청에서 데모하고 하니까 윗사람들이 눈치라도 주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엄마 데모 그만하면 안 돼요?'하고 말 한 마디 안했어요. 아들도 뻔히 아는 거죠. 바다에서 물질해서 저 서울로 공부시키고, 바다에서 물질해서 우리 식구 먹고 살았다는 것을요. 엄마는 바다고 바다가 엄마인데 어떻게 하지 말라 말할 수 있었겠어요."

바다의 딸로 태어난 그는 이제 바다의 어미가 되어 또 다른 바다의 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 좋은 시절, 범섬 앞에 뛰노는 돌고래 등에서 환히 웃고 있는 그를 우리는 바다라 할 것이고 또 어머니라 부를 것이다.

"제 이름이 부르기엔 좀 그런데 뜻풀이를 하면 참 좋아요. 편안할 강, 사랑 애, 마음 심... 편안하게 사랑해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뜻인데 세상살이가 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평화 아닌가요?"

제주해녀들이 '친정엄마'라고 부르는 제주바다. 어쩌면 그들은 바다의 어미이자 딸이고 이미 바다 그 자체인지 모른다. 어머니라는 바다....
 제주해녀들이 '친정엄마'라고 부르는 제주바다. 어쩌면 그들은 바다의 어미이자 딸이고 이미 바다 그 자체인지 모른다. 어머니라는 바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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