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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트라키아 산맥으로 가는 길

식당 내부 인테리어
 식당 내부 인테리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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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관광을 하기에는 아주 쾌적한 날씨다 아침에 일어나 워터파크를 산책했다. 낮에 그렇게나 붐비던 곳인데 아침에는 더 없이 조용하다. 물놀이기구나 수영장 등이 낮에 올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놀이기구나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주변의 숲에서는 새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이곳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는 아침식사를 하러 간다.

식당에 가니 음식도 잘 차려져 있지만 식당의 인테리어가 토속적이면서도 우아하다. 또 식당 바깥 테라스에는 꽃들이 있어 분위기도 아주 좋다. 서양 사람들은 아침에 바깥 테라스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식사를 하는데, 이곳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또 한쪽 홈바의 진열장에서는 포도주 등 전통주가 가득하다. 탁자 위에는 꽃꽂이된 수반이 놓여있고, 벽에는 표현주의 풍의 그림이 걸려있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생활수준과 예술 감각을 알 수 있는 모습이다.

구름에 덮인 카르파티아 산맥
 구름에 덮인 카르파티아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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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끝내고 8시에 우리는 루마니아 북쪽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향한다. 그곳에 있는 펠레쉬성과 브란성을 보기 위해서다. 펠레쉬성은 카롤 1세의 여름궁전이고, 브란성은 중세 때 만들어진 방어성이다. 펠레쉬성은 시나이아라는 조그만 도시에 있고, 브란성은 브란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성은 직선거리로는 아주 가까운 편이다. 카르파티아 산맥의 대표적인 산 부체지산(Mt Buzegi: 2505m)의 이쪽과 저쪽에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는 부메랑처럼 이어진 카르파티아 산맥을 중심으로 세 지역으로 나뉜다. 카르파티아 산맥 남동쪽의 왈라키아, 산맥 너머 서쪽의 트란실바니아, 산맥 동북쪽의 몰다비아가 그것이다. 루마니아의 토대는 왈라키아이며, 국력에 따라 헝가리와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놓고 싸웠고, 러시아와 몰다비아를 놓고 싸웠다. 우리가 오늘 방문하려고 하는 펠레쉬성은 왈라키아 지역에 있고, 브란성은 카르파티아 산맥의 북쪽 트란실바니아 지역에 있다. 그래서 두 성의 양식과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플로이에슈티 근교
 플로이에슈티 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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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아 가는 길은 부쿠레슈티에서 북쪽으로 난 1번 고속도로를 타고 플로이에슈티까지 이어진다. 플로이에슈티는 유전이 있고, 발전소가 있는 공업도시로 인구가 23만이나 된다. 이곳 플로이에슈티에서 고속도로는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부네슈티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부터 산악지대가 시작되고, 프라호바강과 루마니아 국영 철도(CFR)가 나란히 이어진다. 평지에서 산악지역으로 들어서자 자연풍경이 달라지고 공기도 더 쾌적해진다.

프라호바강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경치는 가히 일품이다. 또 루마니아 국영철도는 영국 런던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오리엔트 특급(Orient Express)의 동쪽 노선으로 유명하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1883년 개통되었다. 루마니아의 브란성과 펠레쉬성은 특급열차의 중간기착지로 과거 유럽의 사회적 지도층과 부유층이 많이 찾았다. 사실 그런 이유로 1897년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가 나왔고, 그 후 브란성은 드라큘라 성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시나이아 숲속의 여름궁전 펠레쉬성

펠레쉬성 가는 길
 펠레쉬성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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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쿠레슈티를 떠난 지 두 시간 반쯤 지나 버스는 시나이아에 도착한다. 시나이아 부체지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수도원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펠레쉬성 앞에 이르게 된다. 이곳 시나이아와 부쉬테니에서는 산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가 있어 2000m나 되는 산 정상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가 산 정상이 아니고 카롤1세의 여름궁전인 펠레쉬성이기 때문에 차를 내려 성으로 향한다.

그런데 길가 곳곳에 짚더미가 세워져 있다. 목축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 도시에 짚더미라니? 연유를 알아보니 오후에 이곳 시나이아에서 자동차 경주가 열릴 예정이란다.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다 길을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펜스로 짚더미를 곳곳에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오후부터는 시나이아 시내로 들어오는 차량을 통제할 것이라고 한다. 오전에 이곳에 오길 잘했지, 오후에 왔으면 펠레쉬성 구경을 못할 뻔했다.

펠레쉬성
 펠레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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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쉬성 안으로 들어서니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우리를 반긴다. 이 성은 1873년에서 1914년 사이 카롤 1세의 여름궁전으로 지어졌고 1883년부터 사용되었다. 바이에른 왕국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모방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성 내부를 관광한다. 이곳에서는 내부 사진을 찍으려면 입장료 외에 부가요금을 내야 한다. 가격이 싼 건 아니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부 사진을 안 찍을 수도 없다.

성 내부는 거실, 침실, 예배당, 서재, 복도 등 모두 168개의 방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중 1층과 2층에 있는 35개의 방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창과 칼 등 무기류와 갑옷이 벽에 걸려 있다. 이곳에는 이런 전쟁기구가 무려 4,000점이나 있다고 한다. 복도와 방으로 들어가 가구와 조형물 그리고 내부 장식을 보니 바로크풍이 많다. 이 성은 19세기말에 지어져서 그런지 과거 건축과 조형양식을 다양하게 채택하고 있다.

거울방의 모습
 거울방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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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그림, 생활용품 등의 예술성도 뛰어나다. 그 중 재미있는 곳은 서재다. 서재의 책장에 책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런데 한쪽면의 책장에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만일의 사태 때 비상 탈출하는 문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또 한곳에는 하프와 피아노 등 악기가 완전하게 갖춰져 있다. 악기방이다. 옛날 유럽의 왕들이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유리방이나 주방 등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유리는 베네치아의 무라노섬에서 생산된 것으로 지금도 이그러짐 하나 없이 완벽하다. 주방도 넓고 화려해 왕족들의 식사나 연회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식탁 위에 켜진 샹들리에 역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떤 방에는 루이14세와 그의 부인 마리-테레제의 흉상도 있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초상도 보인다. 유럽에서는 이들이 이상적인 왕과 왕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윗 조각상
 다윗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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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길을 끄는 조각은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각상이다. 다윗상은 전신상으로,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발로 밟고 있다. 금박을 입힌 화려한 모습이다. 이에 비해 카이사르는 흉상으로 재질이 대리석으로 보인다. 얼굴부분은 하얀 대리석이고, 몸통부분은 무늬가 있는 대리석이어서 더 인상적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또 왕실 전용극장도 있다. 무대와 객석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50개 정도의 객석이 있고, 무대에는 이중으로 막이 쳐져 있다. 막 뒤에는 분장실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옛날 왕의 궁전은 삶과 예술, 취미와 오락, 문학과 공부 등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우리는 궁전의 중정을 살펴본다. 계단과 문, 조각이 화려하게 잘 어울린다. 펠레슈성은 궁전으로 사용되는 성과 장원 그리고 사냥
터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궁전 내부 중정: 계단과 창문, 조각이 잘 어울린다.
 궁전 내부 중정: 계단과 창문, 조각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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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 1세와 엘라자베타 왕비 이야기

궁전을 나와 우리는 궁전의 외관과 정원을 자세히 살펴본다. 겉에서 보니 1층과 2층은 석재를 사용하고, 3층과 4층 일부는 나무로 기둥과 뼈대를 만들고 거기에 벽체를 붙인 독일식 성이다. 궁전과 주택의 장점을 살린 건축으로 친근감이 든다. 그리고 궁전의 사방 모서리에는 뾰족한 첨탑을 만들어 고딕식 느낌도 나게 만들었다. 궁전 앞과 정원에는 이 궁전에서 산 두 사람 카롤 1세와 엘리자베타 왕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만년의 엘리자베타 왕비
 만년의 엘리자베타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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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앞 정면에 제복을 입은 카롤 1세의 입상이 서 있고, 정원에는 의자에 앉아있는 엘리자베타 왕비의 좌상이 놓여 있다. 엘리자베타 왕비는 1843년 독일의 비트 공국의 공주로 노이비트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1861년 베를린에서 장래 남편이 될 카롤을 처음 만났고, 1869년 노이비트에서 그와 결혼했다. 그들 사이에는 1874년 딸 마리아가 태어났는데, 1874년에 죽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정원에 있는 엘리자베타 왕비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다.

그녀는 카롤 1세와 함께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것은 평생 동안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터키 전쟁동안 부상한 병사들의 치료를 위해 애썼을 뿐 아니라, 전후에도 엘리자베타 재단을 만들어 봉사를 계속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교육을 지원했고, 자선활동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또한 음악, 미술, 문학 등에도 재능을 보여주었다.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타 왕비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타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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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시, 민요, 발라드의 형태로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루마니아 농부들 사이에서 그녀에 관한 수많은 전설이 회자되고 있다. 그녀는 자식이 없어 1881년 조카인 페르디난트를 왕세자로 정하면서 그의 배필로 엘레나 부쿠레스쿠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헌법에 따라 루마니아 여자는 왕비가 될 수 없었다. 결국 페르디난트는 에딘버러의 공주 마리와 결혼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엘리자베타는 몽상가 또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왕실과 국가의 제도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서 왕정에 반대하고 공화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귀족들의 무능과 부패를 생각할 때 사회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 소시민들은 평등을 원한다. 공화제 정부형태가 바람직하다. 우리에게 참을 것을 강요하는 그 바보 같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간 여인 엘리자베타는 지금도 펠레쉬성 정원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시나이아 풍경

자동차 경주를 준비하는 차들
 자동차 경주를 준비하는 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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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나이아 시내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른들은 분수 옆에서 그 아이들을 바라본다. 공원 주변 도로에서는 자동차 경주에 대비해 연습을 하는지 자동차의 굉음도 들린다. 조용한 시나이가 자동차 경주로 인해 시끄러워지고 있다. 시나이아는 인구가 만 오천 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펠레쉬성으로 인해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이제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브란성으로 갈 차례다. 그런데 부체지산이 너무 높아 바로 산을 넘을 수는 없고, 브라쇼브로 해서 돌아가야 한다. 브라쇼브는 트란실자니아의 가장 동쪽에 있는 도시로, 과거 유럽 사람들이 터키 세력을 막기 위한 전략적 요충이었다. 현재는 브라쇼브 카운티의 중심도시로 28만 명이 살고 있다. 브란성은 브라쇼브 외곽에 있는 차단성이자 방어성이다.


태그:#카르파티아 산맥, #펠레쉬성, #시나이아, #카롤1세, #엘리자베타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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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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