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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법정 모습
▲ 국민참여재판 법정 모습
ⓒ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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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법정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기자는 '그림자배심원'으로서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장장 12시간에 걸친 재판이었다.

그림자배심원제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방청객을 가장하고 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본 후, 실제 배심원과 똑같이 평의·평결 절차를 거쳐 결론을 도출해내는 모의 배심원 제도다. 무작위로 추첨되는 정식 배심원단과는 달리 자율적인 지원을 받아 구성되며, 법정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림자배심원은 대법원 전자민원센터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쉽게 신청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국민참여재판 일정에 따라 개인이 원하는 지방법원을 선택해 이름, 연락처, 생년월일 등 몇 가지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면 된다. 다만, 개인 신청은 각 지방법원별로 7~10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전날 기자에게 온 문자 한 통
 전날 기자에게 온 문자 한 통
ⓒ 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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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그림자배심원들은 국민참여재판 시작 한 시간 전에 모여 공소사실 및 재판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을 간단히 들은 후 법정으로 이동했다. 참여한 사람은 단체 신청까지 포함해 13명이었다.

법정에 들어서니 마침 국민 배심원 선정이 끝나 재판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국민 배심원은 무작위로 추첨한 국민들 가운데 법정에 출석한 이들 중 일부가 선발된다. 이날도 20여 명의 배심원 후보자 가운데 9명의 배심원이 결정됐다.

이날 재판은 우울증을 앓아온 피고인이 지난해에 우울증 치료약 두 달 치를 다량 복용한 후 자살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딸(4세)을 목 졸라 죽이고 아들(8세) 역시 목 졸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다. 검찰은 피고인을 살인 및 살인미수죄로 기소했고, 피고인 측에서는 공소사실을 인정했으나 약으로 인한 심신상실을 주장해 '심신미약이냐', '심신상실이냐'를 두고 양측의 주장이 이어졌다.

방치되는 그림자배심원, 무작정 판사 기다릴 수밖에 없어

"먼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서, 양형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검사는 모두진술에서 국민 배심원에게 심신미약과 심신상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재판의 핵심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유·무죄 판단과 양형(법원이 제반정황을 고려해 가중·감경 등 구체적으로 선고할 형)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배심원의 동정심보다 냉철한 법적 판단이 앞서야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재판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약물의 영향력이었다. 검사는 당시 약 기운으로 피고인이 정신적으로 상당히 약해져있었지만 분명히 의식은 있었기에 '심신미약'이라고 주장했고, 변호인은 피고인이 일시에 다량 복용한 만큼 사물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정신을 잃은 '심신상실'이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자살 후 남겨질 아이는 어떻게 하나"란 생각에 우발적 범행이었다며 "피고인이 만성 우울증과 모친의 갑작스런 병환, 죽음에 따른 정신적 충격 등 최악의 상황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며 당시 피고인의 상황 설명에 집중했다.

법 공부에 도움되고자 그림자배심원에 참가했다는 김석현씨는 "사실 오늘 소송은 이미 공소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첨예하게 법적으로 대립한다기보다, 양형을 둔 논쟁"이라며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특이성과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점을 고려해, 법관이 변호인에게 법정에서 할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충분히 주고 최대한 들어주려는 노력이 보였다"고 말했다.

늦은 오후에는 검찰과 피고인 측에서 제시한 증인들의 심문이 오랜 시간동안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피고인 심문과 진술에 이어 양측의 마무리 변론이 진행됐다.

검찰은 최종적으로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아동)였다는 점과 피해자가 2명이라는 점 등의 이유를 들어 12년 구형을 요청했고, 변호인은 남겨진 가족에게 피고인이 필요하고 남편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5년에서 1/2 감경한 2년 6개월을 요청했다(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배심원단의 평의·평결을 위해 재판은 일단 휴정상태가 됐고, 그림자배심원은 최종적으로 세 명이 남은 상태였다. 기자와 남은 두 명의 그림자배심원은 법정 밖에서 담당 판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판사는 감감무소식이었고, 남겨진 사람들은 방치된 기분으로 어떻게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바로 전날에는 새벽 2시까지 재판이 이어졌고 평의평결도 잘 이뤄졌다는데, 오늘은 사람이 적게 남아서인지 몰라도 아무 말도 없이 마무리 관리가 안 된 것. 중앙대 법학과에 다니는 홍사빈(28․여)씨는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중간에 사람들이 다 가고 마무리가 너무 허술해 용두사미 꼴"이라며 "그림자배심원끼리 하는 평의ㆍ평결을 가장 기대했고, 직접 판사님과도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애매모호하게 방치됐다"며 그림자배심원제도의 체계적인 관리를 요구했다.

그림자배심원제가 국민참여재판 이해하는데 도움

그림자배심원 참가신청 밑줄을 보면 추상적인 시간으로 써져 있다
▲ 그림자배심원 참가신청 밑줄을 보면 추상적인 시간으로 써져 있다
ⓒ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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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판사가 오기만 법정 앞에서 목 빼고 기다려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앞선 오리엔테이션에서 휴정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이 없었고, 따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앞선 두 번의 식사 휴정에도 담당판사가 그림자배심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위해 데리러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다).

홍사빈씨는 장시간 소요되는 재판 시간이 공판 중심과 집중심리 제도 등의 이유 때문이라는 점을 상세히 설명해 그림자배심원의 이해를 높인다든지, 과거 사례를 들어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미리 통지해준다든지 하는 배려책을 제시했다. 그림자배심원 신청시 홈페이지에는 재판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만 추상적으로 써져있기 때문이다. 생각외로 시간이 길어 그림자배심원들이 중간 이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기자도 그림자배심원을 신청한 후 지법에서 받은 전화에서 "재판이 길어질 수 있는데 참여할 수 있느냐" 정도로 들었을 뿐, 12시간(오리엔테이션까지 13시간)이나 걸릴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법정 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차에, 다행히 채 1시간이 안 돼 생각보다 법정이 빠르게 재개됐다. 오후 11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방청석에는 피고인의 가족을 비롯해 거의 10여 명 안팎의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 측은 심신상실을 주장했고 약물의 혈중농도가 높은 만큼 심신상태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고 정신병이 없는 우울증으로 인정, 심신상실로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배심원들은 피고인을 유죄로 만장일치 결정했고, 양형은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며 재판부 역시 "유죄로 인정, 양형으로 징역 5년에 처하고 치료감호 시설치료를 판결한다"고 선고했다.

재판이 끝난 후, 남은 그림자배심원들은 "징역 5년 판결은 적절한 것 같다"고 동의했다. 홍사빈씨는 "공개재판도 있지만 잘 안 오게 되는데, 그림자배심원은 배심원이라는 이름이 있어 더 책임감을 갖고 진지하게 재판을 보게 했다"며 "아쉬운 면이 있지만, 그림자배심원제가 국민참여재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석현씨도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 역할이 독립적이지만 판결이 귀속되지 않으니 딱 절충적"이라며 "재판부가 일반 국민들의 법 감정과 상식을 고려한 판결을 적절히 내림으로써 공정성이 더욱 인정되고 사법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또한, "법정 판결을 바깥에서 보면 양형이 낮다고 쉽게들 말하게 되는데, 실제로 직접 와보니 판사 판결에 수긍할 수 있는 면이 있다"며 "몇 줄의 판결에 의한 단편적인 판단이 아니라, 전반 사항을 이해하면서 생겨나는 법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용어 설명]
*국민참여재판 : 만 20세 이상의 국민들이 배심원 또는 예비배심원으로서 참여하는 형사재판. 특히 배심원으로 선정된 국민은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하여 평결을 내리고, 유죄 평결이 내려진 피고인에게 선고할 적정한 형벌을 토의하는 등 재판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법률은 배심원의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이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다만 법원은 배심원이 법정 공방을 지켜보고 토론을 거쳐 내린 평결과 양형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한다.

*집중심리제 : 공판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실시해 재판 일정을 단축해서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는 제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웹진 <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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