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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7.30) 일어나 목적지를 향해 출발. 정확히 오전 8시 50분에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에 있는 거제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 일을 어쩌랴. 이미 표는 매진되었다고 했다. 당일 오전 9시부터 매표한다고 해서 집에서 나름대로 일찍 출발해 8시 50분에 도착했건만, 새벽4시부터 먼저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았고 먼저 온 사람들에게 이미 다 자리가 돌아간 뒤였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려야 했다.

 

어디로 간담?! 학동 해수욕장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오토캠핑장이라는 곳에 가보았지만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뜨거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공터에 나무평상 위에 몇 개의 텐트가 쳐 있을 뿐이었고 해양사라는 곳도 가보았지만 물이 없어서 야영하기엔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거제자연휴양림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휴양림 안에서 야영은 할 수 없을지라도 숲 속에 자리를 깔고 앉아 쉬며 점심이라도 먹고 다음 장소를 물색해 볼 요량이었다.

 

숲 속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은 남편은 가져온 압력밥솥에다 삼계탕을 끓였다. 압력밥솥 꼭지가 쉭쉭 돌아가면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한참동안 끓여서 만든 삼계탕을 숲속에 앉아 맛있게 먹었고 커피를 마신 뒤 잠시 쉬었다.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숲속에서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상쾌했지만 계곡은 있되 물이 없는 마른 계곡, 그래서일까. 왠지 그늘진 숲조차 덥게 느껴졌다.

 

내가 119를 부를 일이 생길 줄이야!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앉아 휴식하는데 남편은 노자산을 등산하자고 했다. 여기 오면서부터 노자산을 등산할 계획이었던 것은 알았지만 나는 내키지 않았다. 예전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산인데다가 다시 가고 싶다고 생각되는 산도 아닌데 이 무더운 날에 무슨 산행이람. 나는 사양했다. 웬만하면 그동안엔 남편을 따라 다녔지만 몸도 마음도 말을 듣지 않은데다가 땡볕이라 올라가기 싫었다. 그러나 남편은 혼자 가기 싫은지 자꾸만 동행할 것을 재촉하고 요구하고 간청하는 것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따라 나섰다. 날은 덥고 시간은 이미 한낮. 햇살이 뜨거운 시간이다. 남편 뒤를 따라가면서도 끌려가듯 내 걸음은 무거워서 점점 뒤로 처졌다.

 

거제자연휴양림에서 노자산을 등산하는 코스는 주차장에서 가까운 1코스와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서 관리사무실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2코스로 크게 나뉜다. 우리는 1코스를 택했다. 1코스로 올라가서 2코스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산행코스라고 했기 때문이다. 진입로에 들어서자 그늘진 숲속 경사로가 눈앞에 엎드려 있었다. 조용한 숲길을 한참 걸어올라 갔지만 우리 두 사람 뿐 아무도 없었다. 지리산처럼 어디서든 등산하는 사람들을 맞닥뜨릴 수 있는 그런 산도 아니고 이 무더운 여름날 필경 등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없어 나는 자꾸만 걸음을 멈췄다. 그러든가 말든가 남편은 힐끗 힐끗 나를 가끔 돌아볼 뿐 모르는 척 걸음을 계속했다. 점점 간격이 벌어졌다. 한적한 산을 둘만 걷기엔 나는 너무 겁이 많았다.

 

도무지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 나는 한 걸음씩 걸어올라 가다 말고 남편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나 못가겠어요. 안 갈래요. 혼자 갔다 오세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남편은 "예~그래요. 내려가요~!"하고 말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와 버렸다. 내가 그냥 돌아가자고 해도 남편은 분명 포기하지 않고 올라가려고 할 것 이 분명했기 때문에 물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목소리가 내내 마음에 남아 메아리처럼 울렸다. 측은한 목소리로, 짐짓 포기한 듯이, 혹은 제발 가지 말고 함께 가자는 듯이 "예~내려가요~"하고 여운을 남기 듯한목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혹시 정말로 아무도 없는 산이라면 혼자 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고. 혼자서도 잘 갔다  올 거야. 가다가 동행이라도 있으면 더 좋을 것이고. 나는 괜한 걱정을 몰아냈다.

 

나는 내려와서 차 있는 곳으로 갔다. 아차, 디카랑 지갑이 있던 가방에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열쇠 꾸러미가 없었다. 차 안 가방 속에 있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어쩌지. 그동안 숲속에 자리를 깔고 앉아 책이라도 읽고 있으려고 했는데. 책도 없고 적당히 앉아 쉬고 있을 만한 곳도 없이 어디서 몇 시간을 배회한단 말인가. 휴양림 내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가족과 함께 왔고 또 휴양림에서 텐트치고 텐트 안팎에서 둘, 셋, 넷, 여러 명이 모여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 혼자서 오갈 데 없는 불청객처럼 이리저리 배회하고 다녀야 했다.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딜 가도 혼자 앉아 있을 만한 장소는 없었고 나무 그늘 아래 길 가 쪽에 앉아 있노라니 오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렸다. 또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을 걸어 다니는 것도 오래 하기엔 어색했다. 어쨌든 시간을 때워야 했다. 나는 이리 저리 안 가본 곳을 걸어보았다. 에고 에고 시간은 또 왜 이리 더디 가는지, 기다리는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책이라도 손에 쥐고 있었다면 이토록 방황하진 않았을 텐데...나는 휴양림 안에 혼자 버려진 고아처럼 쓸쓸히 배회하고 방황하였다.

 

 

노자산 산행은 넉넉잡아 2시간, 조금 늦으면 2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는데 두 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감감 무소식. 어찌된 일일까. 늦게 시작한 산행(오후 1시 30분)이고 또 해는 지고 있는데 아직 소식도 없으니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행이라도 있었다면 안심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더 걱정이됐다. 해가 지고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마음은 더 착잡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 경우에 내가 너무 늦게 대처해서 더 일이 커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나는 관리사무실로 향했다. 마침 관리사무실 직원 한 사람이 밖에 서 있었다. 나는 남편이 혼자 등산한다고 산에 올라갔는데 아직도 안 내려오고 있다고, 어떻게 여기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었고 직원은 고개를 저으면서 없다고 말했다. 나는 2코스 진입로로 올라가 보았다. 아무도 없는 산길은 이미 어둑어둑했고 인적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남편을 불렀다. "여보~여보!~ 여보~~" 귀를 기울여 보아도 아무 소리가 없었다. 남편이 내려와 있기를 바라면서 다시 차 있는 곳으로 내려 가 보았다. 남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곧 어둠이 찾아들면...만약의 경우! 어두워지도록 못 내려온다면 찾아나서도 날이 어두워진다면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관리사무실로 다시 찾아갔다. 사무실 안에 있는 직원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사무실직원은 바빠서 올라가 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방법이 없겠냐고 재차 물었고 직원은 119에 전화해 주었다. 119대원과 얘기를 나누던 직원은 전화를 끊고 '차가 밀려서 출동이 조금 늦어지겠다고 합니다만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오겠다고 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나는 직원이 묻는 대로 남편이름과 내 이름, 집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차량번호까지 적어주고 차가 있는 곳으로 다시 와서 기다렸다. 가끔 티비나 뉴스에서 119를 부르고 한 이야기는 더러 들어봤어도 내가 119를 부를 일이 생길 줄이야,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살다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

 

나는 집 잃은 아이처럼 혼자 엉엉 울며 우리 차 주변을 맴돌았다. 더럭 겁이 났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밖에 없었다. 119대원을 기다리고 있기엔 날이 어두워져서일까. 사무실 직원 두 사람이 1코스와 2코스로 나눠서 곧바로 생수통을 들고 쏜살같이 산으로 올라갔다면서 걱정하지 말고 있으라고 다른 직원이 말해주었다.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사무실 직원이 올라간 뒤 몇 분 안돼서 119대원 두 사람이 도착했다. 사무실 직원과 몇 마디 나눈 후 남편의 인상착의와 키 등을 묻고 임도로 해서 찾으러 올라갔다.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선 분들 가슴 뭉클했다.

 

마음 한구석에선 남편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내려올 것이라는 생각과 혹시 무슨 일이? 하는 염려가 교차했다. 아무 일 없이 즐겁게 등산하고 내려온다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또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이렇게 발 벗고 나선 분들이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남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나예요. 내려오다가 119대원을 만났어요. 미안해요. 지금 내려가요 이따 얘기해요!" 하고 말했다. 남의 휴대폰이라 간단히 통화했다. 언제 내가 울었지? 싶을 정도로 내 얼굴엔 금방 화색이 돌고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임도를 따라 내려온 남편은 119대원 두 사람과 함께 동행 한 중년남자와 함께였다. 119대원 두 사람한테 수고를 끼쳐서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분들은 또 '괜찮습니다. 무사하니 다행입니다. 일 년에 적어도 30여 번은 이런저런 일로 출동합니다'하고 말했다. 특히 노자산과 망산에서 사고가 많다고 했다. 두 사람한테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했고 그들은 돌아갔다.

 

알고 보니, 남편은 내가 산에서 중도에 내려간 후 혼자 앉아 있다가 도로 내려왔고, 산행을 그냥 포기하기엔 아까운데다 혼자 내려가 버린 내가 얄미워서 곧바로 오지 않고 휴양림 안을 어슬렁거리며 한 시간 정도 돌아다녔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있는 쪽으로 오려고 발걸음을 돌렸는데 이제 막 산으로 올라갈 요량으로 길을 찾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고 이분과 함께 룰루랄라~ 뒤늦게 등산길에 올랐던 것이다. 즐거이 산행을 마치고 여유 있게 내려오고 있는 길에 119대원들을 만난 남편. 참 대단하다 대단해! 나 혼자서 괜히 속만 태웠다.  어쨌든 남편은 그토록 노래 부르던 노자산까지 갔다 왔고 무사히, 그것도 즐거이 다녀왔으니 다행이었다. 그것도 고마운 일이지 뭐.

 

남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산에 올라간 두 직원은 쏜살같이 내려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 정말 죄송스러웠다. 그래도 직원들은 자신들의 할 일이고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팀장이라는 분의 말에 의하면 작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온 대학생 한 명이 물도 없이 산에 올랐다가 탈진해서 쓰러졌고 무사히 구출했었다고 했고 이번 경우에도 혹시나 탈진한 게 아닌가싶어 물을 갖고 올라갔노라고. 그는 온 몸과 얼굴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괜히 직원들이랑 119대원들한테 수고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겨우 땀을 식힌 후 그는  "갑시다. 오늘 야영 하실거죠?"하고 물었다. 일찍 온다고 왔지만 표가 매진되어버려서 못하게 되었다고 했더니 팀장은 "그래요? 자리가 하나 있을 겁니다. 사무실로 가시죠. 이것도 인연인데"하고 우리를 안내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다른 직원들도 인사하며 다행이라고 한 마디씩 했고 한 분은 또 '좋으시겠습니다. 액땜하고 좋은 일 생기네요!"하고 말했다. 고마웠다. 우리가 머물 장소는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20호. 여기서 머물게 되었다.

 

 

하루온종일 여러 가지 일로 피곤했지만, 남편은 아무 일 없이 동행한 분과 함께 즐겁게 산행하고 목적달성해서 감사하고(아내야 혼자서 걱정하든가 말든가 천하태평~), 119대원들이 늦겠다고 했지만 신속히 와 주어서 고맙고, 휴양림직원들이 솔선해서 어려움에 처한 날 위해 이 무더운 날 수고해 줘서 정말 고맙고,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저녁,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하지 못한 우리에게 머물 수 있는 야영데크까지 내주어서 고맙고...감사가 넘치는 저녁이었다. 어두워오는 시간, 우리는 얼른 장막을 치고 늦은 저녁식사를 라면으로 때운 뒤,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저물었다.

덧붙이는 글 | 거제자연휴양림: 경남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 산 103번지 
관리사무소: 055) 639-8115
http://www. geojehuyang.or.kr


태그:#거제자연휴양림,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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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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