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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장맛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다. 계획했던 아침 시간에 서울 서초동의 집을 출발했다. 아내, 딸과 함께 여행가방 2개를 끌고 아파트 앞의 공항버스 정류장 앞까지 걸어갔다.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여행 첫 단추가 잘 꿰어지는 느낌이다.

버스는 올림픽대로를 신나게 달렸다. 비가 개기 시작하면서 운무에 싸인 북한산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넘치는 황토빛 강물은 한강이라는 수조에 가득 찬 듯 바로 내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이제 장마가 그치면 서울에는 무더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행기 이륙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인천공항의 이 가게 저 가게를 구경했다. 31번 출구를 찾아가다보니 디지털 카메라 할인행사를 하는 전자제품 가게를 우연찮게 만났다. 딸 신영이가 노래를 부르던 붉은색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샀다. 나는 자주 경험하기 힘든 유럽여행 속에서 신영이가 많은 내용을 카메라에 담아오기를 바랬다.

비행기는 여름휴가를 떠나는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서서히 활주로로 이동했다. 비행기는 차츰 발동을 걸더니 강한 엔진소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이내 급상승하며 창공으로 박차고 올랐다. 비행기의 박력 있는 이 이륙의 순간. 내가 여행 중에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마치 어떤 순간같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인천에서 런던까지의 여정이 표시되어 있다.
▲ 비행기 모니터. 인천에서 런던까지의 여정이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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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여행준비를 하던 방금 전까지의 시간에서 벗어나 나는 책을 읽으며 여유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평온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항공사의 음료수 서빙 시간에 아내는 평소와 달리 화이트와인을 주문했다. 술이 약한 아내는 화이트와인과 땅콩을 함께 먹었고 잠시 후에 체한 것 같다며 머리를 숙였다.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하여 받은 소화제를 먹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음료수용 플라스틱 컵과 함께 헤드폰을 쌌던 비닐봉지를 대령했다. 아내는 비닐봉지에 방금 먹었던 것을 모두 토하고 다시 머리를 숙였다. 평소 멀미가 있던 아내가 움직이는 기내에서 평소에 약하던 술을 먹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아내가 토한 비닐봉지를 들고 화장실을 찾았다. 토한 용액이 흐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하필이면 화장실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내가 서 있는 화장실 앞의 줄은 줄어들지를 않았다. 내 뒤에 줄을 섰던 사람들은 뒤편의 화장실로 줄을 옮겼다가 이미 볼일을 보고 제 자리로 갔다. 나는 아내를 걱정하면서 화장실 앞에서 한참 동안을 비닐봉지를 들고 처량하게 서 있었다.

냉장고가 가동되는 소리 같은 윙하는 소리가 기내에 가득하다. 비행기가 천 미터 상공을 날아가는 소리이다. 그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힘차게 앞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나는 이 큰 비행기가 11시간 넘게 하늘 위를 난다는 사실이 다시금 신기했다.

하지만 좌석 앞 모니터에서 영화를 보고 준비한 책을 모두 보아도 런던까지 날아갈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어두운 기내에서 오랜 시간 앉아 있으려니 몸이 너무 답답하다. 과거의 유럽행 비행기에서는 유럽에 간다는 희망에 들떠 있어서 피곤한 줄도 몰랐었는데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식사시간 중에 제트기류를 만난 비행기의 동체가 몇 차례 출렁거렸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비행기의 움직임에 여기저기서 여자 어린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약간 긴장하면서도 그 비명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어느덧 좌석 앞 모니터는 런던이 거의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비행기는 런던 위의 구름을 위 아래로 여러 번 통과하더니 드디어 런던의 하늘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가지런하게 줄을 지어 늘어선 영국의 주택들이 한적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공항이다.
▲ 히드로 공항.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공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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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로 공항은 예전에 보던 모습에 비해 많이 허름해져 있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첨단을 자랑하던 히드로 공항은 세월의 무게 앞에 평범함으로 전락해 있었다. 현재 세계 최고공항이라는 인천공항이 개항 당시에 런던의 히드로 공항을 보고 따랐지만 이제는 히드로 공항이 인천공항을 배우러 온다고 한다.

히드로 공항은 원래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다. 여권에 바로 입국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꼭 몇 가지 질문사항을 입국자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답변에 의심이 가는 사람들에게는 집중심문이 이어진다. 영국에 넘쳐나는 불법 체류자들을 막기 위함이다.

대학생 때의 유럽 배낭여행 당시에도 유럽 입국은 이곳 런던 히드로 공항을 통해 이뤄졌다. 당시 나에 대한 질문은 영국 다음에 어디로 가고 언제 출국할 것인가, 영국에서는 어디를 여행할 것인가 등이었다. 내가 윈저성, 런던타워, 타워 브릿지 등을 갈 것이라고 했더니 입국심사관이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나를 놀라게 했던 일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입국심사를 하던 한 입국심사관이 나를 찾아온 일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함께 비행기에 탔던 한국 대학생들에게 입국후 거류지로 내가 아는 유스호스텔 주소를 알려주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 친구들이 입국심사관의 질문에 머뭇거리자 거류지 주소를 누구에게서 받았느냐고 물어봤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불려갔고 나는 그들의 질문에 다시 답변을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하여튼 나와 그 친구들은 무사히 런던에 입국하여 여행을 시작했었다.

그 당시의 기억 때문에 나는 아주 약간 긴장했다. 입국 대기줄에 서 있으면서 아내와 딸에게는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입국심사대 앞에 섰다. 그러나 입국심사관의 질문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한 것이었다. 그가 물어본 것은 이미 입국서류에 적은 체류기간과 여행목적 뿐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 이제는 불법 체류할 청년으로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붉은색 원이 그려진 런던의 지하철 표지판을 따라간다.
▲ 지하철 찾아가기. 붉은색 원이 그려진 런던의 지하철 표지판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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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과 함께 히드로 공항에 표시된 노란 색의 언더그라운드 표지판을 따라 계속 땅속으로 이동했다. 런던 지하철 피카딜리 라인(Piccadilly Line)의 공항터미널 역에 도착했다. 사전에 인터넷 블로그에서 찾아본 정보대로 티켓 자판기에서 해머스미스(Hammersmith)까지 가는 티켓 3장을 구매했다. 직접 해보니 어른 외에 어린이 표는 별도로 팔고 있었다.

내가 티켓을 사서 가족에게 가는데 한 인도계 역무원이 어느 역을 가느냐고 묻는다. 내가 해머스미스 역에 간다고 하였더니 가는 방법을 아느냐고 묻는다. 해머스미스 역은 피카딜리 라인을 이용하면 환승하지 않고 열두 정거장만 가면 나오는 역이었다. 내가 가는 방법을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했더니 별안간 그가 씩 웃는 게 아닌가?

해머스미스 역까지 가는 구간 중간에 공사 중인 역이 있다며 그는 굴착기로 도로 파는 시범을 해 보인다. 런던에서는 매일 운항이 중지된 지하철 노선을 확인해보고 타야 한다고 하더니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고장 난 지하철 노선을 만난 것이다. 내년에 개최될 런던 올림픽 때문에 런던 시내는 여기저기가 공사 중이라고 한다. 사람 목숨도 하늘에 달렸지만 완벽하게 준비한 여행일정도 그대로 진행될지는 하늘에 달린 법이다.

그는 보스턴 매너(Boston Manor) 역에서 버스 C로 갈아타고 해머스미스 역까지 가라고 친절하게 지하철 노선도에 표시까지 해준다. 2개의 큰 여행 가방을 끌고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이 예상되었지만 그의 친절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히드로 공항과 런던 시내를 연결하는 피카딜리 라인이 왕복한다.
▲ 히드로 공항역. 히드로 공항과 런던 시내를 연결하는 피카딜리 라인이 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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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출발하는 지하철 한대는 놓쳤다. 런던이 초행인 아내에게 어느 영국 아주머니가 길을 물었기 때문이다. 거미줄 같은 지하철의 도시답게 다음 지하철은 바로 도착했고 우리는 편하게 자리에 앉아 지하철 안을 둘러보았다. 지하철 안은 아내 말대로 덩치 큰 남자가 앉으면 서로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좌석 사이의 통로가 좁았다. 런던 지하철 이름인 튜브(tube) 같이 지하철의 천장은 둥글고, 작지만 운치가 있다.

영국 지하철의 천정은 둥글고 통로는 아주 좁다.
▲ 피카딜리 라인. 영국 지하철의 천정은 둥글고 통로는 아주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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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역에서 인도네시아계로 보이는 동남아 사람들이 가득 탔다. 일요일 날 어디선가 모임을 하고 함께 탄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늙고 약해 보이는 동남아계 할머니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는다. 나와 아내는 순간 자리를 양보해 주자며 눈이 맞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생의 세파에 찌든 듯한 이 할머니들은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를 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나와 신영이는 지하철 안에서 피카딜리 라인의 노선도를 계속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히드로 공항에서 6번째 역인 보스턴 매너 역에서 하차해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보스턴 매너 역은 버스를 갈아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일요일 오후에 한가하게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갈 것이라던 나의 예상은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피카딜리 라인의 고장으로 예정에 없이 내리게 된 역이다.
▲ 보스턴 매너역. 피카딜리 라인의 고장으로 예정에 없이 내리게 된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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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퇴근길 지하철 교대역과 같은 인파의 물결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여행 가방을 밀고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눈 앞에는 우리가 올라야 할 철길 횡단 육교가 떠억 하니 버티고 있었다. 짐을 밀고 가던 순간 한 역무원이 눈에 들어왔다. 자유여행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현지 사람에게 묻고 다시 확인하라는 것임을 믿고 있는 나는 그에게 이 역사 내에 리프트가 없느냐고 괜히 물어보았다. 역시나 리프트가 없다고 대답한 역무원은 갑자기 나의 여행가방 한쪽과 아내의 여행가방 한쪽을 들어주었다. 그는 육교를 건너 계단 아래까지 이동하는 동안 계속 동행해 주었다. 아니, 영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해져 있었나?

역에서 버스로 갈아탄 수많은 사람들로 혼잡하다.
▲ 해머스미스행 버스. 역에서 버스로 갈아탄 수많은 사람들로 혼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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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메이어 역 앞의 버스 정류장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 여행가방을 들고 한참 기다렸다가 버스에서도 선 채로 해머스미스 역까지 이동해야 하나?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답답했다. 아, 그런데 다행히 교통요원들이 오더니 커다란 여행가방을 든 사람들과 유모차를 가져온 아주머니들은 따로 줄을 만들어 가장 먼저 버스에 타게 해 주었다. 지하철 운행 중단이 수없이 계속되는 런던에서는 지하철 대행 교통수단 서비스를 확실히 보장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2층 버스의 가장 뒤편에 앉아 런던 도착이라는 여행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버스가 지나는 시 외곽에는 승용차 판매장과 연립 주택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해머스미스 역에서 숙소까지는 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호텔까지 가는 길은 신영이가 길을 찾도록 선두에 세웠다.

숙소에 치약이 없어서 바람도 쐴 겸 해머스미스 역으로 다시 나왔다. 런던을 상징하는 이슬비가 내렸다. 서울에서는 이 시간에 느끼기 힘든 시원한 바람마저 불었다. 신영이와 아내는 모자가 달린 긴팔 옷을 입고 나왔고 나만 반팔 차림으로 움직였다. 아내는 긴팔 옷을 많이 가져오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날씨가 너무 맘에 든다고 했다.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여름인데도 덥지 않아서 너무 좋다.

별안간 아내가 이곳의 지명을 나에게 물어왔다.

"이곳은 해머스미스(Hammersmith)야. 잘 안 외워지면 해머가 스미스를 때린 곳이라고 외우면 될 거야"

별안간 신영이가 웃으며 우리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빠! 스미스(smith)는 무엇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이곳에 해머(hammer) 만드는 사람들인 대장장이들이 살았다는 뜻에서 이 곳 이름이 해머스미스일거야."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학창 시절에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았던 아빠 사고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학교와 학원에서 영어공부에 힘을 다하고 있는 중학교 1학년인 딸의 교육효과가 그래도 나타나고 있었다.

런던 서부의 교통 요충지인 해머스미스. 대장장이들이 살던 이 동네에서부터 우리의 영국여행은 시작될 것이었다.

대장장이가 살던 이곳은 현재 런던 서부의 교통 요충지이다.
▲ 해머스미스. 대장장이가 살던 이곳은 현재 런던 서부의 교통 요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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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7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 #영국여행, #히드로공항, #피카딜리 라인, #해머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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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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