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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밤을 자고, 그랜드캐니언을 빠져나오는 길은 운전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랜드캐니언에 들어오던 전전날 오후와는 달리 아침 공기는 선선했고, 하늘에는 구름이 꽤나 폭넓게 드리워져 금세 대지가 달아오를 것 같지도 않았다. 아이들 셋은 자동차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맞춰, 어깨와 엉덩이를 흔들며 좁은 차 안에서 잠깐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녀석들, 그 잠깐 사이에도 쇼를 하는구먼."

차 창문을 닫고 이른 아침 한적한 길을 달리니, 6년 전쯤의 여행길이 생각났다. 혼자 차 타고 북미대륙을 마음 내키는 대로 쏘다니던 당시 10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시간이었다. 차창으로 쏜살처럼 다가 왔다가 사라지는 대륙의 풍광들은 하나같이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봐도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집을 떠나면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체질이어서, 낮 시간 대체로 몸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한없이 좋았다.

헌데 이 녀석들, '아들 셋'은 다르다. 가만히 지켜보니 제 각각의 개성이 상당한데, 이동 중에는 십중팔구 잠을 자고 어딘가에 차를 세우거나 혹은 야영을 시작하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두리번거리며 놀거리만 찾는 것이었다.

단순한 세대 차이가 아니었다. 내가 녀석들 만한 나이였을 때도 나는 지금과 똑같았다. 또 그때 내 친구 중에도 지금 '아들 셋'과 같은 유형들이 몇 있었다. 젊은 날 그 친구들과 한번은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서 강원도 홍천 어딘가로 야영을 갔는데, 차만 타면 자고, 차에서 내려 자리를 깔면 술잔과 화투를 돌리는 식이었다.

미국 서부에서 가장 풍성한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 산타페는 가톨릭을 앞세운 스페인 식민 침탈의 영향과 북미 원주민 특유의 문화가 묘하게 섞여 있는 곳이다.
▲ 산타페 성당 미국 서부에서 가장 풍성한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 산타페는 가톨릭을 앞세운 스페인 식민 침탈의 영향과 북미 원주민 특유의 문화가 묘하게 섞여 있는 곳이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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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까지 하고 왔는데, 야영장이 폐쇄됐다고?

그랜드캐니언을 출발, 목적지인 산타페까지는 차창을 닫고 달릴 수 있어 속도를 좀 냈다. 공기 저항이 없는 상태에서 적정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면, 내 경험상으론 기름을 최대 20~30%까지 아낄 수 있다. 제한속도가 시속 75마일(약 120킬로미터)이었는데, 평균 85마일(약 137킬로미터) 정도로 달렸다.

요즘 미국 경제가 좋지 않아 경찰이 안 봐준다는 얘기도 있으나, 원래 미국 고속도로에서 10마일(약 16km) 초과까지는 속도 위반 딱지를 잘 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속도를 낸 바람에 당초보다 30분 정도 빠른 6시간 남짓 만에 산타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산타페 시내에서 15km 가량 떨어진 산속에 예약해 둔 야영장이 문을 닫은 거였다. 주립공원 내의 야영장이었는데 정문에 도착해보니 직원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비상시만 찾으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직원 숙소 문을 두드렸다.

내의 비슷한 옷을 걸친 한 백인 남성이 나오더니 퉁명스럽게 "야영장이 폐쇄됐다"고 말했다. 나는 "연락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예약을 완료하고 확인을 받은 게 일주일도 안됐다"고 언성을 조금 높이며 따졌다. 그러나 직원은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양 어깨를 들어 올리며 "어쩔 수 없다. 환불이 될 것이다"는 말만 반복했다. 낭패였다. 갑자기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되자, 약간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차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이들 얼굴에도 약간의 그늘이 생겼다. 잠자리야 물론 예산만 넉넉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여름철 성수기 미국 주요 관광도시의 방값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4명이 자려면, 경험상 아끼고 아껴도 최소 200달러는 날려야 했다.

200달러는 현재 내 기준으로 우리 네 사람이 사나흘 생활할 수 있는 돈이다. 하루 방값으로 이 정도 돈을 버릴 수는 없었다. 아이들에게 "일단 시내로 가서 대책을 강구해보자"고 했다. 녀석들은 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차 안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우리 일행 넷이 졸지에 집단 홈리스로 전락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얼굴과 행색도 모두 부랑자 비슷했다. 만 이틀 동안 강렬한 사막의 햇빛에 구워진 탓에 안면과 팔뚝, 다리 등이 다들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입술은 건조하고 까칠하게 껍질 같은 게 일어난 상태였다. 빨래할 옷들은 차 속 구석구석과 틈새에 박혀 있어, 그렇잖아도 네 명의 사내들 몸에서 나는 땀냄새에 절은 좁은 차 안은 후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 홈리스 분위기를 완벽하게 연출하고 있었다.

미국 서부에서 지어진 지 가장 오래됐다는 어도비 양식의 건물. 옛날 우리 나라 초가집을 지을 때와 비슷하게 흙과 짚을 혼합해 만든 흑벽돌로 만들어진 게 특징이다.
▲ 최고의 건물 미국 서부에서 지어진 지 가장 오래됐다는 어도비 양식의 건물. 옛날 우리 나라 초가집을 지을 때와 비슷하게 흙과 짚을 혼합해 만든 흑벽돌로 만들어진 게 특징이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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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그 집, 그 방!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그때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났다. 약 6년 전 차 속에서 자면서 북미 대륙을 떠돌다 혼자 산타페를 찾았던 바로 그때였다. 당시 산타페 방문 첫날 시 남쪽의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밤을 났는데 얼어 죽을 뻔했었다. 그 넓은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에 밤새 세워진 차라고는 내 것 한 대뿐이었다.

바깥 날씨가 섭씨 영하 15도 정도였는데, 이튿날 아침 일어나 보니 차 안에 말랑말랑한 물체는 내 살 덩어리가 유일했다. 침낭의 모직조차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음 날 저녁, 동사하지 않으려고 찾은 게 값싼 유스호스텔이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결국 인터넷으로 한 유스호스텔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아낸 뒤 찾아갔다.

"맞다, 여기 맞아. 여기다. 이게 웬일이냐!"

내가 전에 묵었던 바로 그 유스호스텔이라며 반가워서 소리를 치자, 아들 셋도 마침내 안도하는 눈치였다. 선일, 윤의, 병모 모두 외국에서 유스호스텔 신세를 진 적은 없다고 했다. 나는 과거에 미국 말고도 호주 시드니에서도 유스호스텔에 묵은 적이 있었다.

그때 웃옷을 벗고 큰 가슴을 드러낸 채 잠자리에 들었던 상큼하고 씩씩한 영국 처녀와 한 방을 쓰는 바람에 밤새 몸을 뒤척이며 애를 먹은 적이 있지만, 아무튼 유스호스텔에 대해 그다지 나쁜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집도 절도 없는 주제에 나쁜 인상이니 뭐니를 들먹일 계제가 아니었다. 싸구려건 아니건 하룻밤을 온전히 날 수 있다면 유스호스텔도 감지덕지였다.

세상살이 한 치 앞 일 모른다고, 내가 과거에 묵은 그곳에 다시 올 줄이야. 배정된 방마저 같았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캠핑장 폐쇄 사태가 상상도 못한 우연을 낳은 것이다. 침대 여섯 개가 놓인 산타페의 유스호스텔 독방은 이렇게 해서 우리 넷의 차지가 됐다. 가격은 보증금 40달러를 포함해 하룻밤 총 95달러였다. 그러나 보증금은 돌려받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1박에 55달러였다.

냉장고에 보이는 음식들은 모두 공짜로 먹을 수 있다. 캠핑보다 조금 숙박비가 비싸지만, 샤워도 무료여서, 따지고 보면 우리 네명이 이용할 때 비용 지출은 캠핑 때와 엇비슷했다.
▲ 공짜 음식 가득한 유스호스텔 주방 냉장고에 보이는 음식들은 모두 공짜로 먹을 수 있다. 캠핑보다 조금 숙박비가 비싸지만, 샤워도 무료여서, 따지고 보면 우리 네명이 이용할 때 비용 지출은 캠핑 때와 엇비슷했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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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의 현주소 보여주는 듯한 유스호스텔 풍경

"아버지, 예산을 너무 쓰게 되는 거 아닌가요?"

어느새 나의 '저가 여행' 철학을 존중할 수밖에 없게 된 '아들 셋'이 조금 신경 쓰이는 듯한 말투로 물어왔다.

"아니다, 가만히 따져 보니까 어떻게 보면 약간 이득일 수도 있겠는데. 물론 횡재까지는 아니지만 말이야."

잠깐 사이에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해보니, 실제로도 큰 손해는 아니었다. 유스호스텔에 묵으면 일단 샤워 값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랜드캐니언에서는 샤워 비용으로 하루에 1인당 2달러를 지출했다. 4명 일행이니, 여기서 8달러가 절약된다. 그리고 아침 저녁을 사실상 공짜로 먹을 수 있다.

유스호스텔 직원은 부엌을 안내하던 중에 냉장고 안을 손으로 가리키며 "동네의 슈퍼마켓 등에서 기증을 받은 음식들"이라고 말했다. 냉장고에는 두유와 서너 종류의 빵, 채소, 케이크, 버터 등 갖은 음식들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었다. "이렇게 네 명이 단체로 몰려다닐 때는 캠핑보다 유스호스텔이 쌀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해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는데, 저녁 시간이어서인지 부엌은 다른 투숙자들로 꽤나 붐볐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부터 중년의 남성, 처녀로 보이는 여성, 나이가 지긋한 아줌마 등 매우 다양한 면모의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고 음식을 꺼냈다. 일부는 또 불 위에 무슨 음식인가를 올려놓고 조리했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한결같이 어두운 표정들이었다. 유스호스텔이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않은, 그래서 오갈 데가 마땅치 않은 사람들의 임시 피난처 같은 역할을 하는 게 확실했다. 6년 전 이 곳을 찾았을 때는 동부에서 대학을 마치고 은행 입사가 확정된 한 백인 청년과 같은 방을 썼다. 그 청년은 회사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미국을 두루 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투숙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경제가 곤두박질한 미국의 현주소가 유스호스텔에도 투영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그:#산타페, #유스호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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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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