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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울릉도를 방문하려던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김포공항 땅만 밟고 돌아갔다. 한 달 전인 7월 1일 삼척항에서 요트 6척이 미끄러지듯 동해로 빠져 나갔다. 1500년 전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했던 항로를 재현하는 '울릉도-독도 이사부 항로 탐사대'였다. 이들의 7일 간의 여정을 화보에 담았다. [편집자말]
울릉도에서 출발한 지 약 10시간 만에 독도에 도착했다. 서도와 동도 사이로 떠오르는 독도의 일출은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울릉도에서 출발한 지 약 10시간 만에 독도에 도착했다. 서도와 동도 사이로 떠오르는 독도의 일출은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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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중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울릉도-독도 탐사에 참가를 해보라는 것. 사진가로서 꼭 한번은 담아보고 싶은 곳이었다. 특히나 뉴스에서 독도와 관련된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마냥 감상적으로 '우리 땅'이라고 접근했을 뿐.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발을 내딛고 싶었다. 드디어 D-Day. 7월 1일. 출발지인 삼척항에 도착했다. 크루즈 요트 6척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트'.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시쳇말로 '돈 있는 사람들'이 타는 전유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들도 유명 연예인도 아니었다. 그저 바다를 좋아하고, 독도를 한번쯤 가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오후 4시 드디어 6대의 요트가 출항했다. 내가 탄 요트는 '이사부호'. 이번 탐사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요트였다.

호화로운 요트 생활, '뒤통수를 얻어맞다'

처음 요트 생활을 떠 올렸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호화로운 실내와 성스러운 만찬'을 상상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세일링이 시작되자 단번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요트 생활은 그저 '못 자고, 못 먹고, 못 씻고, 못 싸고(?)'의 4고의 연속이었다.

본격적인 세일링이 시작되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바람을 이용해 세일링을 하기 때문에 늘 풍향을 확인해야 했다. 요트의 실내 생활은 보통 2교대로 이루어졌다. 한 팀이 휴식을 취하면 나머지 한 팀은 세일링을 하는 식. 요트 내부에 들어가 보면 작은 침실이 있는 데, 사실 잠을 취하긴 힘든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바람이 없어 엔진을 이용할 때면 엔진 소음과 기름 냄새로 잠을 도통 이룰 수가 없다. 먹는 것은 또 어떤가? 버너와 코펠이 있긴 하지만 흔들리는 요트 때문에 '쏟기'가 일쑤다. 그래서 최대한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일주일 내내 먹은 것이 바로 라면, 컵라면, 3분 짜장, 3분 카레, 그리고 '초코파이'였다.

요트 생활이 힘든 것 중 하나가 개인차는 있겠지만 '생리현상'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 물론 잘 갖추어진 요트는 화장실이 따로 있긴 하지만 내가 탄 이사부호의 경우 화장실이 고장 나 이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로 '작은 것'은 흔들리는 요트 난간을 잡으며 가까스로 해결했고, '큰 것'은 육지에서 해결하기 위해 그저 '꾸~욱' 참았다.

요트 생활의 정점은 바로 '배멀미'. 태어나 육지에서 단 한번도 멀미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바다는 달랐다. 너무 만만히 봤다. 울릉도에서 독도로 향하는 뱃길. 갑자기 너울과 파도가 출렁이기 시작하자 '오바이트'가 시작되었다. 한 두 시간이 흘렀을까. 내 '배 속'에 들었던 내용물이 고스란히 '배 밖'으로 흘러 나왔다. 심지어는 '오장육부'가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광경이 안 쓰러웠는지 러시아 선장 니콜라이가 '감동의 키미테'를 직접 붙여 주었다.

하늘, 바람, 바다를 가르는 자유 그리고 세일링

요트에서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살피며 탐사대 '이사부호' 윤석덕 대원이 테이킹(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요트에서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살피며 탐사대 '이사부호' 윤석덕 대원이 테이킹(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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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트가 '못 자고, 못 먹고, 못 씻고, 못 싸고' 그저 4고의 연속이라면 누가 과연 요트를 탈 것인가? 바람이 불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요트의 향연이 시작된다. 해지는 동해의 일몰. 장관이었다. 세일 사이로 해가 지고 바다를 불게 물들이는 장면은 내가 알고 있는 단어와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면 이내 별과 달이 떠올랐다.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한 바다, 하늘과 바람을 가르며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요트. 하늘에는 북두칠성, 카시오피아 등 수 많은 별들이 하늘을 밝히고, 아름다운 달빛은 바다에 떨어져 우리를 안내했다. 처음에는 쏟아지는 별빛에 넋을 잃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별은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우리가 그 동안 보지 못했고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나... 그리고 여행의 백미는 '식도락'.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밤하늘, 밤바다에서 먹는 컵라면과 봉지 커피가 가져다주는 낭만과 자유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왜 요트를 타는 사람들에게 '바다 유목민'이라는 별칭을 붙이는 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년 365일 중 독도의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은 열흘이 안 된다고 한다. 이사부 탐사대가 장엄한 독도의 일출을 감상하고 있다.
 1년 365일 중 독도의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은 열흘이 안 된다고 한다. 이사부 탐사대가 장엄한 독도의 일출을 감상하고 있다.
ⓒ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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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새벽 5시. 울릉도를 거쳐 드디어 독도에 도착했다. 이곳을 오기 위해 그 망망대해를 넘어왔다. 밤새도록 멀미를 한 탓에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하늘이 열리고 붉은 빛과 함께 독도가 드러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온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독도의 일출은 한마디로 '장엄'했다. 비록 아주 작은 외로움 섬이었고, 작은 태양이었지만 독도가 가져다주는 일출은 특별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태양은 서도와 동도 사이에서 떠올랐고 탐사대 요트들이 그 사이로 지나갔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그 장엄한 광경을 고스란히 제대로 닮은 수 없는 내 자신이 못내 아쉬웠다.

과연 이 독도의 일출은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함께 한 탐사대원들에게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아마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 때문이었을 터. 촉촉해진 눈가에 우리 땅 독도의 실루엣이 아른 거린다. 일출을 감상하고 동안 저 멀리 5001 해경 경비함에서 '여기는 대한민국 동쪽 끝 독도입니다'라며 환영의 기적을 울려주었다.

독도항에 접안 후 이사부 장군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지냈다. 독도 마을 김성도 이장님도 나와 이사부 탐사대를 환영했다. 직접 발을 딛고 눈으로 본 독도는 새들의 고향이었다. 괭이갈매기와 가마우지 등 수 많은 새들이 독도의 하늘과 섬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독도는 때 묻지 않은 천연의 섬이었다. 최소한의 인간의 개발만 있을 뿐 460만 년 전 태어난 독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탐사대는 독도 전망대로 올라갔다. 동도와 서도를 보고 독도 경비대도 탐방했다. 한 시간 남짓 흘렀을까. 이번 항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독도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다들 조금만 더 독도를 느끼고 싶은 아쉬운 맘을 감출 수 없었지만 후일을 기약하며 다시금 요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독도 경비대의 인사를 받으며 이사부 탐사대는 그렇게 독도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리고 삼척항으로 가는 긴 향해를 다시 시작되었다.

하늘, 바람, 바다를 가르는 자유, '요트는 인생이다'

1500년 전 이사부 장군이 개척한 울릉도 앞바다에서 이사부 탐사대 요트가 해상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1500년 전 이사부 장군이 개척한 울릉도 앞바다에서 이사부 탐사대 요트가 해상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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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동안의 세일링 중 늘 떠나지 않던 생각이 바로 요트는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고생 끝에 낙이 오고. 낙이 왔다가도 다시 고생이 이어지고. 요트가 딱 그랬다. 더운 땡볕에 앉아 세일링을 해야지만 밤하늘과 밤바다의 고요함과 자유를 느낄 수 있었고 이내 또 뜨거운 햇살이 찾아왔다.

요트에서의 대원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배려하고 솔선수범해야지만 배려 받을 수 있고 신뢰와 믿음이 쌓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거꾸로 간다고 했던가. 요트 세일링의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팀원들 간의 신뢰와 단합. 대원들은 선장에게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고, 선장은 대원들에게 올바른 리더십과 헌신성으로 다가가야 했다. 우리네 생활과 관계도 마찬가지 아닌가.

7일 정오. 삼척항을 떠난 6대의 탐사대가 모두 무사히 귀환했다. 7일간의 험난한 여정. 아직도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에 대해 논리적 근거와 역사적 배경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1500년 전 이사부 장군이 개척했던 그 뱃길을 따라 내 눈과 내 발이 울릉도와 독도를 직접 경험하고 온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떠나고 싶고, 많은 이들에게 그때의 감동을 부족한 사진과 글로 나마 전하고 싶은 것이다.

동도 정상에서 바라본 서도의 모습. 서도의 정상은 약 168.5m이며 독도는 약 460만 년 전에 태어난 오묘하고 신비한 섬이다.
 동도 정상에서 바라본 서도의 모습. 서도의 정상은 약 168.5m이며 독도는 약 460만 년 전에 태어난 오묘하고 신비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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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과 사진은 해양전문레저전문미디어 인터넷 신문 <요트피아>에도 실렸다. 요트피아가 창간 기념으로 개최한 '울릉도 독도 이사부 항로 탐사' 온라인 사진전(http://yachtpia.com/gallery/)에 가면 더 많은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가 김성헌은 최근까지 월간 <민족21>, 봉은사 사보 <판전>의 사진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일상의 '나눔'과 '연대'에 관심을 갖고 여러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나누고 있다.



태그:#독도, #울릉도, #요트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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