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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수 위원장
 이창수 위원장
ⓒ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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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고향이 북청이고 이산가족 실향민이다. 부친은 문자 그대로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1951년 그 추운 겨울에 생지옥을 눈으로 직접 보시면서 월남했다. 이창수 학살규명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도 선친이 함경도 분이다. 선친이 반공포로로 석방되었기 때문에 그도 나처럼 이산가족 문제나 통일문제에 대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창수씨가 과거사 정리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개인적인 동기는 거의 없었다. 그는 다만 인권시민운동을 하면서 사회 약자들의 문제를 고민했다. 그리고 한국전쟁기 민간인 피학살자들의 문제가 바로 우리 사회 인권침해의 근원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는 늘 말한다.

"내가 아는, 내가 갖고 있는 양심에 따라 옳은 일을 추구해야 한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할 때 마음이 편하다. 이건 어떤 면에서 숙명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양심껏 옳은 일을 추구하느라 불철주야 분주한 이창수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지난 7월 28일 서울시내 한 사무실에서 이창수 위원장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난 6월 10일 콜롬비아에서는 1985년의 이른바 '무장분쟁' 시기 폭력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토지를 반환하는 법률 '피해자와 토지반환법'이 실행되었다. 이 법과 관련된 피해자는 약 400만 명, 배상액은 약 200억 달러, 반환 대상 토지는 약 700만 헥타르다. 이 법은 금년 5월 콜롬비아 상원을 통과하고 대통령이 서명해 정식 공표됐다. 서명식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참석해 유엔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콜롬비아가 우리나라 과거사 정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느낌이다.
"국가 차원의 과거사 정리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나라마다 정리할 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민주주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콜롬비아에서 주요한 무장분쟁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권피해자에 대한 배상 등의 법령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완전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올해 들어서도 토지 반환을 요구했던 인권운동가들이 살해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국회는 국민통합을 위해서 피해자 배상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다. 여야 모두 이 법을 환영했다.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서명일을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남미에서도 '역사적인 날'이라고 선언했다. 사실 이런 정치적 선언까지 우리는 도달하지 못했다. 콜롬비아는 2005년 이른바 '정의평화법'을 갖고 총체적인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과 원인 등을 규명했다. 6년 만에 배상문제까지 법적으로 매듭지었다. 의원들이 적극적이었다. 반면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런 확고한 의지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

- 지난 6월 30일 대법원이 울산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 유족에게 유리판 판결을 했다. (관련기사: "왜 조중동 보도를 안 믿고 대법원 판결을 믿느냐고?") 향후 과거사 정리 목표인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을 위해 희생자 유족과 인권단체가 뭘 준비해야 하나.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는 진실규명, 피해자의 명예회복,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는 필수적이다. 여기에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배상 및 보상도 포함된다. 이렇게 본다면 피해자와 유가족 배상은 한 과정일 수 있다. 배상 문제를 하나의 부분으로 본다면 그것은 방관자적 태도이다. 적어도 인권피해자들의 눈에서 바라봐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했지만, 진실규명은 일부에 그쳤다. 피해자의 명예회복은 국가의 잘못을 인정한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문' 밖에 없다. 결국 피해자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배움은커녕, 삶 자체가 어려웠다. 또 연좌제에 묶여 제대로 변변한 직업도 구할 수 없었다. 국가는 피학살인들의 삶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그 유가족들의 삶도 왜곡시켰다.

또 언론과 지식인들 다수가 침묵했다. 유가족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또 우리 과거사청산이 가해 책임자를 단죄한 것도 아니다. 이런 면에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배상한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모두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확실한 증표라고 생각한다. 배상은 적어도 잘못된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부분이거나 수단이 아니라 그 목적이다.

전후 세대가 대부분인 국민도 당시에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으며, 무엇이 진실인지 알 권리가 있다. 전쟁 전후의 학살 문제는 일반 형사범죄와 다르다. 국가공권력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학살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따라서 피해 유족들에게 배상하는 일은 증명조차 필요없는 사회적 공리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조치가 현실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좌우 이념의 문제로 학살문제를 접근하려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이들 수구세력이 과거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려 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이용해 과거의 정치를 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꼼수 정치이다.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연장선에서 화해가 가능하다.

학살 책임자나 가담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피해 유가족들과 국가의 화해는 이런 원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국가가 국민 앞에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진실을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국민은 이런 흐름을 만들 책임과 권리가 있다. 과거사청산 과정에서 배상문제는 피해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미래의 일이다. 시민과 지식인 그리고 인권시민단체가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문제는 우리 사회 인권침해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민간인 학살 문제... 행정부가 먼저 나서야"

 이창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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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보도연맹 사건은 국가가 스스로 '진실'을 규명해 손해배상 청구가 쉬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유사한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피해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게 어렵다. 이들을 위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재판을 통해 자기 피해구제를 받으면 개인의 문제로 간주된다. 이번 울산보도연맹 사건도 피해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미군의 폭격과 우익에 의한 학살 사건들은 소송 자체가 어렵다. 또 좌익에 의한 학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사법을 통한 배상은 한계가 있다.

또한 사법배상 방식은 피해자들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기에 국가가 정보를 독점했거나 관련 자료·정보를 폐기했다면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다행히 울산보도연맹 사건은 국가가 관련 문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본다면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접근은 달라야 한다.

우리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원리이다. 현대 국가의 기관은 모두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책무를 갖고 있다. 따라서 예산 편성 및 국정 집행 권한을 갖는 행정부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국회 입법은 차선이다."

- 민간인학살 희생자를 위한 배상특별법안을 추진 중인데, 그 경위와 법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해 달라.
"학살규명범국위원회는 지난 2008년 말부터 배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입법 연구를 위해서 법률지원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했다. 변호사, 법학교수 및 인권활동가들로 구성하여 주요한 실무 작업을 해왔다. 1년 6개월 동안 해외 사례 및 법적인 쟁점 등을 검토하고 피해 유족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법안의 초안을 확정했다. 국회 법제실에 의뢰해 검토도 했다. 민주당 유선호 의원실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보상 및 명예회복 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치하여, 사망, 행방불명 또는 부상자에 대한 배·보상, 치료비 지원에 관한 사항과 평화재단, 사료관의 설치와 유해 발굴과 처리 등 명예회복 조치와 관련된 사항을 처리하자는 게 골자다. 이 위원회는 '과거사정리기본법'에 의한 사건뿐만 아니라, 거창사건, 제주4.3사건 및 노근리 사건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배·보상을 심의 의결하는 기구로 설계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피해자로 확정된 분들뿐만 아니라 미신청한 분들도 여기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여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과거사 정리를 통한 배상문제를 극단적 이데올로기 문제로 보려는 일부 극우수구집단도 있는데 이들의 훼방과 그 한계를 극복할 방법은?
"특별한 방법이 있지는 않다. 상식을 믿고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역사를 보면 소수의 강경론자가 이끌어 가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국민이 만들어 간다. 여론을 만든다기보다는 차근차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또 지식인이나 시민사회가 배상에 대한 공론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 학살규명범국민위 설립배경과 역할에 대해 말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가 공식 명칭이다. '학살규명범국민위원회'(약칭)는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전쟁 전후의 피학살 유족들과 연대하여 2000년 9월에 결성되었다. 범국민위원회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학살문제 해결을 위해 범국민적인 여론을 만들고, 대안을 제시해 관련 입법 제정을 위한 실천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2005년 5월 과거사정리기본법 제정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학살규명범국민위원회는 민간인 피학살자 사건들의 철저한 진상 조사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국가가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또 학살규명범국민위원회는 궁극적으로 민주발전과 국민통합을 지향한다. 그리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한다."

 이창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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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과거사 청산 위해 인권 중시하는 정부 필요"

-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국가 과거사기구의 성과, 한계, 그리고 향후 과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성과는 분명하다. 그것은 과거사정리기본법의 제정의 의의와 유사하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전쟁 전후의 민간인 피학살자 문제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피학살자 문제는 국가의 공식 역사에 한국전쟁의 일부가 되었고,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2등 국민에서 보통국민이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의 한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법제도가 갖고 있는 '가해자'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가해 공권력에 대한 응징을 못했다. 두 번째는 그 가해와 피해의 전반적인 규모와 원인을 규명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 결과 공식적으로 확인된 피해 규모는 굉장히 축소되었고 가해 책임자를 밝히는 일도 명확하지 못했다.

친일조사를 했던 위원회도 이런 정치구조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미진한 진상규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명예회복,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앞으로 남은 과제다."

- 민간인학살 희생자 중 미군에 의한 사건은 노근리 사건을 제외하고는 별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향후 미군의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도 조사·분석해야 할 텐데.
"우리 사회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부인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을 은폐시킬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내용을 둘러싼 자의적인 해석들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런 현상은 너무나 일반적이 되어 사실상 진상규명을 위한 후속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극명한 차이는 과거사청산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울산보도연맹 사건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 문제에 관심 자체가 없다. 민간인 학살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의지도 중요한데, 이 정부에서 이것을 기대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인권을 중시하는 정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국민이 인권을 중시하는 정부를 만들어 낼 때만이 철저한 과거사 청산이 이뤄진다."

- 민간인 학살 문제는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동안 지나칠 정도로 이념적인 측면에서 부각됐다. 인권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지나친 탈이념화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나치게 이념에 경도되는 것도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전쟁 전후의 민간인 피학살자 문제를 군인 등 아군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뿐만 아니라 이른바 적대세력에 의해서 자행된 학살 문제도 다루었다. 물론 관련법에서 이렇게 만든 것은 정치적인 타협의 결과였지만 그 방향이 옳다고 본다."

- 2005년 박근혜 의원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안보 문제가 중요하다"며 과거사법 제정에 반대했다. 과거사 정리가 경제·안보문제와 대치된다는 박 의원에 주장에 반론이 있다면?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나라가 경제도 발전한다. 국가의 배상도 경제적으로는 소득분배 효과도 있다. 과거사법 제정을 반대한 일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본심이 아니길 바란다. 만약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반쪽을 대표하는 패권적 정치지도자로 남는다. 국민 통합을 할 역량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국민을 편 가르는 나쁜 정치인으로 남을 수 있다.

당시 유족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 관련법 제정이 절실했다. 주요한 정치지도자가 국민을 보듬지 못하고 과거사 정리 문제를 다른 문제와 결부시킨다면 굉장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창수 위원장 약력

현) 학살규명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새사회연대 대표
사법개혁 촉구 인권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전)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겸 정책기획실장
학살규명범국민위 특별법쟁취위원장, 정책실장, 운영위원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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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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