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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커피 전문점. 컴컴한 새벽에도 커피 마시는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24시간 커피 전문점. 컴컴한 새벽에도 커피 마시는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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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서울 종로에서의 음주가무에 시달린 직장인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은평구 산골마을에 하차한다. 다음날 출근까지의 수면시간 보장을 위해 잰걸음으로 귀가할 법도 하건만 알코올 기운이 가득 올라온 이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어이쿠. 몇 걸음 못 가 무고한 가로수에게 자신이 먹은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이도 등장한다.

나는 이 적나라한 광경들을 반대 차선의 버스 정류장에서 모조리 지켜본다. 왜 이 시간에 '반대 차선' 버스정류장에 서 있냐고? 모두가 잠들 시간이 나에게는 출근 시간이므로! 마침 저기 온다. 나를 종로의 잠들지 않는 커피숍으로 인도할 파란 버스.

밤 11시. 한 평 남짓의 공간에서 한숨 섞인 유니폼으로의 변신을 마친 나의 업무가 시작된다. 사실 이런 심야 시간의 업무는 오후, 저녁 나절의 영업으로 폐허(?)가 된 매장을 수습하고 다음날의 장사를 준비한다는 의미가 크기에 근무시간 내내 할 일이 '더럽게' 많다.

'해장 커피', 과연 효과 보셨습니까

하지만 한동안은 어림도 없다. 진한 회식 후 '해장 커피'를 드시러 방문하는 고객님들을 '영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커피에 알코올 분해성분이 있다거나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렇게 커피숍 올 시간에 얼른 택시 타고 집에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모두 부질 없는 노릇이다. 이미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 직장인들이 계산대 앞에 서 있으니 상냥한 미소로 주문을 받는 수밖에.

안녕하고, 주문 도와드리겠다는 사무적인 언어로 시작하는 이 과정은 취객을 상대로 할 때면 난이도가 배로 올라간다. 초면에는 존댓말을 사용한다는 기본적인 언어예절이 적용되지 않는 상태며, 자신이 시키고자 하는 음료를 표현하는 능력 또한 상실했기 때문이다.

"냉커피 두 잔. 빨리."

커피가 해장에 좋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건만, 왜 그리 '해장커피'를 사랑들하시는지... 그 시간에 집에 일찍 들어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커피가 해장에 좋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건만, 왜 그리 '해장커피'를 사랑들하시는지... 그 시간에 집에 일찍 들어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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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당신 머리 위로 보이는 메뉴판에 커피 종류가 몇 개 있는 줄 알고 냉커피 두 잔을, 그것도 빨리 달라는 거야?'라는 짜증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재빠르게 감정을 수습한다. 물이 들어 간 커피 vs. 우유가 들어 간 커피, 달달한 커피 vs. 그렇지 않은 커피로 분류된 일련의 레시피에 대한 지루한 설명 끝에 메뉴가 결정된다. 할인이나 적립카드의 소유 여부를 묻는 무의미한 질문은 덤이다(본사 지침이니 없는 거 뻔히 알아도 안 물어 볼 수는 없는 노릇). 이렇게 해장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택시비 기본요금이 2880원으로 책정되는 시각을 기점으로 커피숍의 분위기는 한결 차분해진다. 취기 오른 직장인들과 헤어지기 아쉬운 연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내가 처리해야 할 폐기물들이 밀물처럼 들어온다. 너저분한 홀을 한바탕 해치우고 나면 숨 좀 돌려야 쓰겠으나 그럴 순 없다. 다음 날(오늘?) 영업 준비 해야지.

시럽과 파우더 채우고, 음료 베이스를 만들고, 트레이(쟁반)와 블렌더(믹서기)를 포함한 온갖 잡기들을 깨끗이 닦고, 커피 머신을 청소하고, 쇼케이스에 베이커리 진열하고, 어쩌다 손님 들어오면 음료도 만들고… 누가 심야 시간대 업무의 노동강도가 낮다고 외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개소리다.

커피숍 바닥에 쏟아진 토사물...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영업 준비를 마친 새벽 2시. 폐기물 배출의 시간이 돌아왔다. 매장 곳곳에 숨겨진 쓰레기 봉투들을 한 데 모은다. 이제 갖다 버릴 거냐고? 천만에. 널부러진 담뱃재와 가래침, 먹다 남은 음료들이 뒤섞여 하수처리장을 연상시키는 폐기물을 향해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손을 쑤셔 넣는다.

일차적으로는 매장에서 유통된 테이크아웃 컵을 분류해 내는 작업이지만, 이 과정에서 일반쓰레기 봉투에 포함된 재활용은 덤으로 걸러낸다. 바 한 켠에서 우유 박스에 쪼그려 앉아 고무장갑 낀 손으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파트타이머의 모습은 참으로 볼 만하다. 세상에서 가장 고고한 음료를 파는 매장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구질구질한 비하인드랄까.

200리터 규모의 하루치 폐기물들을 몽땅 버리고 한숨 돌린 새벽 4시. 오늘의 마지막 작업이 남았으니 그 이름하야 대청소. 2층, 150석 규모의 매장을 쓸고 닦는 일에 대해서는 자세한 묘사를 생략한다.

무식한 크기의 청소기와 대걸레로 낑낑거리는 기계적인 청소는 어느 정도의 숙련도와 관성이 붙으면 별다른 몸의 무리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회식 자리에서 살해된 갈비와 소주가 위산과 섞여 매장 한 켠에 진열되어 있다거나, 과다한 배변과 휴지 사용으로 변기통이 막혀 버린 사태가 주는 정서적인 충격은 막대하다. 내가 하루종일 꼬박 일해야 섭취할 수 있을 법한 음주가무의 흔적이 바닥에 낭자된 꼴을 수습하는 기분이란. 슈퍼 마리오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뚫어뻥으로 연신 변기를 두들기며 시원하게 물이 내려가길 기도하는 심정이란.

야간 커피숍 알바 생활 끝에 결국 결핵 진단

종로로 밀려오는 만원 출근버스들에 역행해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는 시간은 오전 8시. 어영부영 4시간 정도 잠들고 나면 해가 중천이다. 창문으로 찬란한 햇살과 오후의 활기가 들어오는 와중에서 더 잠든다는 것은 참으로 난해하다. 수면부족은 만성이요, 식사를 거르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남들과 다른 시계를 가지고 살아가기에 관계는 단절되고, 지친 몸과 각성된 정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음주는 늘어간다. 심야 노동과 손을 맞잡은 지 3개월 만에 나의 심신은 쓰레기가 되었고, 결국 때려쳤다.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 걸리기 쉽다는 하지정맥류.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 걸리기 쉽다는 하지정맥류.
ⓒ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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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노동을 그만 두었지만 곧장 예전과 같은 삶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잦은 피로감과 흉부의 통증으로 시달리던 나는 우연한 계기로 CT촬영을 하게 됐고 결국 결핵 진단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결핵 약물의 부작용으로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지었으니 꼴 사납기 그지없다. 함께 일했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일을 그만 둔 매니저의 사정도 좋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매장으로 이직해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었던 그녀가 오랜만에 전해 준 소식은 참담했다.

"나 하지정맥류래. 지금 있는 매장도 일단 그만 뒀고, 다음 주에 수술 받아."

심야 시간의 값싼 전기요금과 저렴한 인건비 등을 고려한 기업 효율성 재고라든지, 야간 노동 확대를 통한 고용인원 확충이라는 사회적 고찰 따위는 책상 서랍 한 켠에 한 달치 결핵 약을 남겨 놓고 있는 내가 알 바 아니다.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다 죽어서야 쓰겠는가.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는 그곳이 편의점이든 커피숍이든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야간 노동이라는 뒤틀린 악마가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낼 고민을 나눌 시점이 아닐까.


태그:#야간노동, #커피숍,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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