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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차별을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업은행을 시작으로 고졸 행원 채용 계획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1년 동안 묵혀 왔던 '학력차별금지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학력차별금지법은 채용, 승진, 임금 지급 등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필요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여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물론 학력차별금지법이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법무부에서는 20개 차별금지조항을 묶은 '차별금지법'을 제안했지만, 성적지향과 학력 등의 차별금지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와 경총 등의 반발에 학력을 포함해 성적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 등 7개 항목을 누락시켰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7개 사유 삭제에 반발해 2007년 11월 당시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과 함께 수정법안을 마련했지만, 17대 국회의 임기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바 있다.

학력 수준에 맞지 않는 한국 고용시장 구조

과거 진보정당이 추진했던 학력차별금지법이 보수정당에서 제안된 이유는 학력차별로 인한 고용시장과 대학사회의 모순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한 일자리는 전체의 27%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 중 대졸 이상의 학력 인구는 37%에 이른다. OECD 국가의 평균 대졸 이상 학력자의 비율이 28%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더구나 1990년대 대학설립자유화 조치 이후 대학과 대학생 수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대졸자 비율은 앞으로도 급격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27%의 고학력 일자리도 비전공자가 취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적지 않은 일자리에서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는 학력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0%에 육박하는 대학진학률에도 고학력에 걸맞은 일자리가 부족한 고용시장의 현실은 '불필요한 학력요구' 풍토를 만들어낸 주범으로 꼽힌다. 고학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대졸자들이 차례차례 '눈높이'를 낮추면서 고졸자들에 대한 학력차별이 당연시된 것이다.

실제 2006년 통계에 의하면 고졸자들이 공개 시험을 통해 취업하는 비율은 5.5%에 불과하며 중졸 이하의 공채 입사는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5월 26일 충북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에서 '푸른 농촌, 농민과 함께' 모내기 행사를 가졌다. 녹색고무로 된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모내기용 긴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쓴 이명박 대통령이 농민들과 함께 모판을 나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5월 26일 충북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에서 '푸른 농촌, 농민과 함께' 모내기 행사를 가졌다. 녹색고무로 된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모내기용 긴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쓴 이명박 대통령이 농민들과 함께 모판을 나르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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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시 불필요한 학력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07년부터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을 마련해 학력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는 않고 있다.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2009년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서류전형 100점 중 '학력' 부분에 30점을 배당하고 민간 언론사의 대학평가자료를 근거로 대학을 3개 등급으로 나눈 뒤 차별적인 점수를 부여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 적발된 바 있다. 

학력에 학벌까지 차별한 캠코의 신입사원 채용 결과, 고졸 이하 학력의 지원자는 서류전형에서만 총 20점이 감점되어 120명의 지원자 전원이 불합격했고, 전문대학 졸업자는 174명의 응시자 중 단 1명만이 보훈가점(10점)을 받아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응시자 중에는 전공·어학·학점점수가 만점이면서 국어능력 2급 이상이며 국제재무위험관리사(FRM) 자격증을 갖췄으나 출신대학이 '중' 등급에 해당된 응시자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부 지침에도 준정부기관까지 공공연하게 학력과 학벌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학문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의무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는 다시 고학력자의 학력 수준에 맞는 질 좋은 일자리의 부족으로 인해 청년실업률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졸자조차 일자리 부족과 학벌차별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고졸 출신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질 낮은 고용시장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안 없어

한나라당이 학력차별금지법을 추진하는 이유에는 대학구조조정을 위한 사전포석의 의미도 결부되어 있다. 고용시장 구조와 맞지 않는 학력 인플레를 억제하고 대학 수를 축소함으로써 고등교육재정의 지나친 부담을 억제하고 고학력자의 노동력 공급과 일자리 수요를 조정하려는 것이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고졸 취업'을 장려하고 은행권 외에 금융권까지 고졸채용계획을 보고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에 발맞춰 전국 350개의 대학 중 50개 정도의 대학을 퇴출하겠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고졸 취업을 장려하는 것만으로 이런 의도가 관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대학진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고졸 학력으로 질 좋은 일자리에 취직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정부의 정책에는 한국 고용시장의 질이 지나치게 낮다는 근원적 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비교대상: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덴마크, 독일, 러시아,  룩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아일랜드, 알바니아,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캐나다, 한국, 헝가리, 호주 등 29개국(그림에서는 스웨덴, 미국, 한국만 비교). 그림에는 스웨덴, 미국, 한국만 표시함.
* 지표의 점수는 개별 항목에서의 순위를 상대 지표화 한 것. 1.0 은 1위, -1.0은 최하위, 0.0은 중간
*출처 : 방하남 , 2007, 고용의 질: 거시, 기업, 개인수준에서의 지표개발 및 평가(한국노동연구원)
▲ 고용의 질 국제비교 * 비교대상: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덴마크, 독일, 러시아, 룩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아일랜드, 알바니아,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캐나다, 한국, 헝가리, 호주 등 29개국(그림에서는 스웨덴, 미국, 한국만 비교). 그림에는 스웨덴, 미국, 한국만 표시함. * 지표의 점수는 개별 항목에서의 순위를 상대 지표화 한 것. 1.0 은 1위, -1.0은 최하위, 0.0은 중간 *출처 : 방하남 , 2007, 고용의 질: 거시, 기업, 개인수준에서의 지표개발 및 평가(한국노동연구원)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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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연구원에서 2007년 29개 국가의 고용의 질을 비교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고용의 질은 일부 지표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시 말해 고졸자만이 아니라 대졸자가 취업할 만한 좋은 일자리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실업대책이 주로 양적인 일자리 양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학력수준에 맞는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대졸자들의 고용률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 6월 취업자수의 증가를 두고 "6월 고용이 당초 기대를 뛰어넘는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즐거운 서프라이즈(surprise)라고 생각한다"며 감탄했지만, 취업자 수의 증가에도 20대의 8만3000명, 30대의 7000명의 취업자 수가 줄어든 사실에는 애써 눈을 감았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6월의 취업자 수 증가라는 장밋빛 결과는 10대의 단순 알바직(17.3% 증가)과 5~60대의 단순 근로(50대 6.3%, 60세 이상 5.1% 증가)가 확대된 결과일 뿐이다. 반면 주로 고학력자들이 많은 20·30대의 취업자수 감소는 이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질 좋은 일자리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는 고용의 질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놀라운 서프라이즈'라며 자화자찬한 2011년 취업자수 통계다. 그러나 늘어난 일자리는 주로 저임금계층에 해당하며, 2~30대의 취업자수는 오히려 줄었다.
▲ 2011년 연령계층별 취업자 통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놀라운 서프라이즈'라며 자화자찬한 2011년 취업자수 통계다. 그러나 늘어난 일자리는 주로 저임금계층에 해당하며, 2~30대의 취업자수는 오히려 줄었다.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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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등교육(대학교육) 이상 졸업자의 고용률(25세~65세 인구 중 교육수준별 고용자 비율)은 77.1%로 OECD 평균 84.5%에 한참 못미치는 최하위권(2008년 기준 30개국 중 29위)을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체고용률보다 항상 높게 나타났던 20대 고용률도 이명박정부 들어 처음으로 전체 고용률보다 낮게 나온 뒤, 그 추세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예전에는 고졸자가 수행하던 직무를 이제는 대졸자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의 이면에는 대졸자들 역시 자신의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하향 취업을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이 버티고 있다. 결국 고졸자에 대한 학력차별은 고졸자들의 일자리마저 점령한 대졸자들의 횡포라기보다, 질 좋은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에서 기인한 결과다. 

학력차별금지법의 성패, 후속조치에 달려 있다

학력차별을 금지하여 합리적인 학력수준을 유도한다는 의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후속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첫째, 여러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학력차별금지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에서 불필요한 학력을 요구하는 관행을 철폐해야만 한다.

학력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 모든 직종에 대한 학력기준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 즉 특정 직종을 수행하는 데 특정 수준의 학위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것은 차별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직무수행에 꼭 필요한 학력이 아닌데도 관행적으로 특정 수준 이상의 학력을 요구함으로써, 불필요한 학력 인플레와 사회적 낭비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한나라당 입법발의안의 학력 정의(제2조)에는 학벌 개념이 빠져 있다. 학력차별이 주로 대졸자와 고졸자의 차별에 대한 것이라면(수직적 학력), 학벌차별은 주로 대졸자들 사이의 서열화와 관계 깊다(수평적 학력). 고학력자라도 출신학교에 따라 차별이 이루어지는 형태는 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명문대가 독점함으로써 대학사회에서부터 고용시장에 이르기까지 서열화된 피라미드구조를 형성해 낸다.

학벌차별은 동일한 학력수준에도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조장하고 지나치게 과열된 입시경쟁만 불러오는 악습일 뿐이다. 8월에 발의되는 학력차별금지법에서는 학력 정의를 보완해 학벌차별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제121주년 세계 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121주년 세계 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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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학력차별금지로 만들어질 고졸출신의 일자리가 단순 저임금·불안정 노동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기업의 임금인하 명분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굳이 대학교육이 필요한 직종이 아니라면, 학력차별 없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더라도 질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않는다면 학문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존경쟁을 위해 일단 대학에 진학하고 보는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 강제적 방식으로 대학생 수를 축소한다면 입시과열과 사교육비만 증가시킬 뿐이다.

따라서 지금의 학력·학벌 차별문제와 학력 인플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인 대안은 질 좋은 일자리의 확대에 있다.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이익균형의 필요성이 여권에서도 회자되고 있는 것은, 고용 전반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비단 진보의 의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일자리에 취직할 수 있다는 확신만이 '묻지마 대학진학'의 대안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중소기업과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대기업의 입장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몇백 원 인상에도 인색한 우리 재계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무모할지는 몰라도, 열악한 고용조건을 개선하지 못하면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상과 같은 조치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정부의 이번 시도 역시 선거를 앞둔 정치쇼라는 비아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반값 등록금 시위, 청년실업의 심화, 학력 인플레 등으로 야기된 학력차별금지법은 그 의도가 무엇이었던지 간에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인 학력과 학벌차별을 일소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학력차별금지법을 계기로 고용시장과 대학사회의 합리적 재구성을 비롯해 성적지향 등 잔존해 있는 다양한 차별들도 철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세상연구소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손우정 기자는 새세상연구소 상임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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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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