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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도시인 돈황은 몹시도 건조하다. 한국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데, 여기선 건조한 공기 때문에 몇몇이 코피를 쏟았을 정도다. 바람도 강하다. 초목이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휘어져 있다. 그럼에도 꿋꿋이 태양을 향하는 해바라기 꽃밭이 사랑스럽다.

 

비가 워낙 내리지 않으니, 식수는 만년설 녹은 물에 의지한다. 뙤약볕이 만든 아지랑이 너머로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고산의 만년설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생명수나 다름 없다. 사막에서 샘솟아나는 오아시스 역시 이 만년설이 녹아 흐르다가 모여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모래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코스는 고비 사막에 있는 명사산(鳴沙山, Mingsha Mountain)과 월아천(月牙泉, Yueya Spring)이었다.

 

명사산은 직역하면 '모래가 우는 산'이다. 수만 년 동안 쌓인 사막의 고운 모래가 바람을 맞아 우는 것처럼 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어 있다. 월아천은 명사산 근처에 있는 오아시스의 이름이다. '월아'는 중국어로 초승달을 뜻한다.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로 경치가 아름다워서 한나라 때부터 돈황 8경 중 하나로 꼽혔다 한다.

 

뜨거운 한낮의 햇살을 피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 서둘러 명사산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린 직후부터 심상치 않은 공기를 감지했다. 모래가 섞인 바람이 입 속으로 날아들자 모두 마스크를 사러 몰려갔다. 사막! 개찰구 너머로 너무나 신비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사막'을 연상할 때 떠올리는 모래 사막은 사실 대부분의 사막과는 거리가 멀다. 많은 사막 지역은 거친 돌로 이루어져있다. 가까운 타클라마칸 사막만 해도 그랬다. 명사산 일대처럼 고운 모래를 자랑하는 곳은 사막 지형 중에서도 드문 편에 속한다.

 

해리 포터가 킹스 크로스 역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지나 마법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관광지 입장권을 끊고 개찰구를 지나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모래언덕은 저마다 맵시 있는 능선을 뽐내고 수백 마리의 낙타가 엎드려 관광객을 태울 자세를 갖췄다. 새삼, 내가 실크로드 위에 있음을 아득하게 실감했다.

 

낙마(落馬)도 아니고, '낙낙(落駱)'을 했네

 

낙타 투어가 예정돼 있었다. 낙타는 귀엽다. 쌍꺼풀이 짙고 눈망울이 그렁그렁한 것이 꼭 우리네 시골의 누렁소 같기도 하다. 그 등에 올라타는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천 년 전과 다름 없이 인간의 이익을 위한 노역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막상 낙타 위에 오르고 나니, 낙타 투어의 공정성이나 생태성에 대한 고민 따위는 싹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떨어질까 겁이 나서 손잡이를 부여잡기 바빴던 거다. 살아있는 동물을 타 본 것은 처음이라 긴장이 됐다. 동물이 말은 못 알아들을지라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에너지는 전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애써 무섭다는 생각을 버리고 단 몇십 분 동안이나마 내 발이 되어주고 있는 낙타와 교감해 보려고 애썼다.

 

낙타는 겁이 많은 동물이다. 그래서 사람이 등 위에서 무섭다며 호들갑을 떨면 낙타를 놀래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일행 중에서도 한 명이 낙타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낙마(落馬) 아닌 '낙낙(落駱)'이었다. 다행히 모래가 푹신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낙타에는 등의 혹이 한 개인 단봉낙타와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가 있다. 이 일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쌍봉낙타다. 이 혹 속에 지방을 저장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한 사막에서도 오래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영양 상태에 따라서 혹의 크기가 달라진다는데, 내가 탄 낙타는 혹이 겨우 주먹만 했다. 어쩐지 혹사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가여워졌다. 거친 털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쓸어주었다.

 

모래언덕 꼭대기에서 맞는 사막의 바람은 참으로 기묘했다. 나는 나이에 비해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다. 국내는 웬만해서 안 가본 곳이 없고 해외여행도 기회가 될 때마다 꾸준히 다녔다. 그래서 경관을 구경하러 다니는 여행에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게 비슷비슷하지. 남산타워나 에펠탑이나 별 차이 있나.'

 

하지만 생전 처음 눈에 담아보는 사막은... 달랐다. 너무 달랐다. 요즘은 환경 변화 때문에 명사산의 노래를 듣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아쉬운 가운데서도 그 절경은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세상이 너무나 많은 거였다.

 

이미 다닌 곳보다는 앞으로 다닐 곳이 더 많다. 이 지구상에서 내가 밟아볼 땅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신이 났다. 두 다리에서 힘이 솟는 기분이다.

 

 

고비 사막 관람 Tip

사막에선 무슨 신발을 신어야 하지? 운동화에 모래가 잔뜩 들어가면 털어내기 어려우니 차라리 조리나 샌들을 권한다. 하지만 현지에서 종아리까지 닿는 덧신을 빌려주고 있으니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듯. 덧신 대여료는 10위안.

 

낙타 위에서 사진 찍고 싶은데! 일행이 함께 낙타 투어에 참가하다보면 서로 사진을 찍어줄 수 없어 아쉬운 상황이 생긴다. 역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낙타를 타고 이동하다보면 사진사들이 나타나 사진을 찍어준다. 투어가 끝나고 출구 쪽으로 가면 인화한 사진을 액자에 넣어 판매한다. 장당 20위안인데 기념으로 간직할 만하다. 포즈를 취할 기회는 한 두번 뿐이니 타이밍을 놓치지 말 것.

덧붙이는 글 | 박솔희 기자는 2011년 7월 11일부터 21일까지 재학 중인 숙명여대와 중국 난주대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중국 서북부의 실크로드를 여행했습니다.


태그:#낙타, #고비사막, #중국여행, #명사산, #월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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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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