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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시대가 아니었다면 분명 시인이 되었을 친구가 있었다. 자신의 시만큼이나 심성도 고운 청년이었다. 어느 날 그와 함께 성남 모란시장 근처로 가두투쟁을 나가게 되었다. 호각소리와 함께 시위를 주동하는 선배의 구호가 울려 퍼지고, 골목과 도로변에서 숨죽이고 있던 우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8차선 대로 한복판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스크럼을 채 짜기도 전에 사복경찰들이 사과탄을 던지며 우리를 덮쳤다. 암사자들의 습격을 받은 영양 떼처럼 우리는 속절없이 흩어져 도망쳤다. 학교 앞에서 밤이 늦도록 기다려도 그 친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붙잡힌 사연이 참 어이없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행인 하나와 부딪혔는데, 심성 고운 그 친구는 제 코가 석 자인데도 되돌아가서 행인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던 것이다. 예의마저 발랐던 그 친구가 행인에게 말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어."

행인이 옆구리에서 수갑을 꺼내 손목에 철커덕 채우더란다.

다행히 그 친구는 며칠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제대로 걸렸다. 술집에 가방을 두고 왔는데 그 안에 '불온한 문건'과 학생증이 함께 들어 있었고, 마침 그 가방을 습득한 이가 경찰의 프락치였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 재수 없는 친구의 징역살이는 두어 번 더 이어지고서야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시를 접었다.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이 곧 감옥행을 의미하던 시절이었다. 미래는 고사하고 목숨마저 어찌될지 알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강제징집, 수배와 도피, 고문, 투신과 분신이 일상처럼 벌어지던 기괴한 시절이었다. 다들 자기 잔을 받을 순서만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와 후배, 동기들 중에 이른바 '빵잽이'는 수두룩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빵잽이들도, 빵에 가지 않은 이들도 감옥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양심수 사동 물흐리던(?) '이씨공방' 주인장

 <내 청춘의 감옥>
 <내 청춘의 감옥>
ⓒ 상상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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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와 내 친구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내 청춘의 감옥>의 저자 이건범은 그때 그 시절의 '징'그럽고 '역'하다는 징역살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지금 막 출소해서 따끈따끈한 두부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 나누면서 들려주는 것처럼 생생하다. 감옥 안의 세세한 일상들과 일화들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징역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짐작했던 것처럼 눅눅하거나 칙칙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때로는 낄낄거리게 되는 것이 나만의 이상감각은 아닌 듯하다.

내 전과는 그저 내 젊은 날의 역사일 뿐이고, 내가 세상을 헤쳐 오는 데에 가장 소중한 깨달음을 준 경험이었다. 심지어 내 청춘의 감옥은 즐겁고 유쾌하기까지 한 기억이다.

신영복 선생이 '사람'과 '사랑'을 발견했고 황대권 선생이 '생명'과 '생태'를 깨달았던 바로 그 공간에서, 이건범은 웃음과 낙관의 힘을 배운 것 같다.

이미 대학 4학년 때 한 차례 구치소 생활과 집행유예를 경험했던 이건범은 4년 만에 진정한 징역살이를 시작한다. 임시로 거처하는 구치소와는 달리, 형이 확정된 이후의 교도소는 생활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는 옹골차게 징역살이를 하리라 다짐한다.

그가 교도소에 가서 가장 먼저 장만한 도구는 칼이었다. 몇 날 며칠을 운동장 평탄화 작업을 한답시고 땅을 파헤친 끝에 '발굴'한 꺽쇠로 날을 세운 칼에 손잡이를 붙이고, 굴러다니던 인조가죽으로 멋들어진 칼집까지 만든다. 이 칼로 우유팩을 잘라 붙여 장롱과 선반, 책상을 제작함으로써 그의 한 평 남짓한 독방은 '이씨농방'이라는 명예로운 상호까지 얻게 된다.

'가벼움의 힘'을 믿는 이건범의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엄혹한 시대의 감옥이라 엄숙하고 치열하기만 했던 양심수 사동의 물도 흐려놓기 시작한다. <스포츠서울>을 시작으로 <TV가이드>에다 <우먼센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장서 목록은 나날이 화려해진다.

그가 동료들의 엄중한 질책을 받았냐고? 그런 건 잡범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의 방에 들어와 열람하더니 급기야 도서 대출에다 사진을 스크랩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것이 그 이야기의 결말이다. 이건범이 체득한 이런 가벼움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사람 사는 어딘들 감옥 같은 단절과 금지, 좌절과 고통이 우리를 구속하지 않겠냐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그 고통 속에도 웃음과 행복의 소재가 있다. 나는 고통의 무게감보다는 웃음의 가벼움이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임을 역설적이지만 감옥에서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습관처럼 가볍게 나를 발가벗겨 놓는다.

아빠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감옥에서 배웠노라

 저자 이건범
 저자 이건범
ⓒ 상상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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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낙관으로 무장하고 명랑하게 맞선다 한들, 감옥은 감옥이다. 처음 구속되어 영등포구치소에 있던 이건범은 같은 서클 동기였던 이재호(1986년 서울대 재학 중 '전방입소 결사반대 및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사망, 당시 만 21세)가 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치소 동료들과 함께 단식투쟁을 하며 끼니 때마다 화장실 창 밑에 고무 양동이를 놓고 올라가 창밖으로 구호를 외치는 그의 목이 멘다.

"구속되기 전 내 방에서 함께 컵라면을 먹던 친구 재호의 얼굴이 떠올라 목이 콱 메었다. 입에서 터져 나와야 할 구호 대신 눈물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왔다. 그때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의 짠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년 4개월 만에 두 번째 징역살이에서 석방되던 날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신 그가 다음 날 아침 깨어난 곳은 24평 아파트 화장실의 욕조 안이었다. 그것도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그 화장실이 자신이 지냈던 교도소 방 크기와 비슷했던 것 같아 거의 본능적으로 찾아들어 갔던 것이라고 회고한다. 슬픈 광경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도 너스레를 멈추지 않는다.

"일종의 직업병인지 산업재해인지, 나는 지금도 좁고 아늑한 공간을 좋아한다."

세월이 흐른 뒤의 어느 날, 다 큰 아들이 이어폰 잭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지지대를 자르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이건범은 감옥에서 배운 대로 실을 꼬아 만든 끈으로 순식간에 그것을 잘라주었다. 놀란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는 아들에게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아빠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감옥에서 배웠노라고.

그 아들과 함께 빨래를 널다가 그는 문득 깨닫는다. 자신이 젊은 시절 가졌던 슬픔과 영광은 이제 빛이 바래고 자식 세대는 또 다른 고민과 재미를 맛보며 자란다는 것을.

"그 상처와 웃음이 하나씩 널려가는 빨랫줄 사이사이에 나도 색깔이 빠지고 무릎과 팔꿈치 군데군데가 불거져 나온 우리 세대의 흔적을 넌다. 어떨 때는 아들 녀석 빤스를 내가 입을지도 모르고, 내 양말을 놈이 신을지도 모른다. 그게 서로 거북하지 않다면 나는 우리 세대의 책임 가운데 하나를 다했다고 여길 수 있으리라. 내 청춘의 징역살이를 기록함으로써 우리 세대의 흔적을 탐색할 실마리를 아들 세대에게 쥐어주고 싶은 욕심이다."

그렇다. 그는 한때 청춘이었던 세대의 이야기를 지금 청춘인 세대와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그토록 명랑하고 발랄하게 교도소 안팎을 종횡무진 넘나들었던 것이다.

'너무도 빛나던 청춘의 눈동자를 가졌기에 이제는 시각장애인이 된' 이건범은 글자의 폰트를 최대로 키워놓고도 모니터에 코가 닿도록 얼굴을 갖다 대야만 겨우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는 그런 눈으로 2010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역작 <좌우파사전>의 기획과 편집, 집필을 도맡았고, <내 청춘의 감옥>을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써내려갔다. 풀코스 마라톤도 몇 차례 완주했다고 한다. 그에게 컵 속의 물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는 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가수 송창식이 방송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달라요. 세상의 모든 나쁜 것이 사실은 다 좋은 거예요." 

덧붙이는 글 | <내 청춘의 감옥>(이건범 씀, 상상너머 펴냄, 2011년, 12000원). 이 기사는 국제앰네스티 소식지 <앰네스티인> 2011년 02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상상너머(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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