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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장애인(이하 '회원')들 솜씨로 채워진 '꼼지락 꼼지락 전(展)'이 군산 시민문화회관 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7월23일-7월27일) 회원 16명이 출품한 작품은 스티로폼을 이용한 조형물, 자화상, 동네벽화, 캐릭터제작, 커피로 그린 드로잉, 모빌, 스텐실 나무 등.

 

 

올해로 3회째인 '꼼지락 꼼지락 전'은 군산시 대야면에 자리한 정신보건센터 '회원'들이 지역 예술가(고보연, 권재희)들과 함께 다양한 시각매체를 접하며 1년 동안 갈고닦은 솜씨를 회원가족과 아동 청소년 및 일반인에게 선보이는 행사이다.

 

미술을 지도한 고보연 작가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다양한 미술 매체가 '회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주고 마음의 동무가 되어준 것 같다"면서 "연필과 켄트지가 '회원'들의 잠재된 감성을 키워주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라며 준비 과정에서 느낀 소감을 밝혔다.

 

 

정신보건센터 봉계선(49, 정신보건 간호사) 팀장은 "무더위에 지친 생활이지만, 짬을 내어 순수한 영혼들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회원'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해주는 것도 더위를 쫓는 하나의 방법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봉 팀장은 "회원들에게 잠재된 예술적 감각을 발견하고 지역주민의 편견을 없애고자 '전시회'를 준비했다"면서 "정신과 환자는 난폭하다고 알고 있는데 생각보다 순수하고 범죄율도 일반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잘못된 편견을 경계했다.

 

봉 팀장은 "지역의 젊고 열정적인 예술가들이 정신장애인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해 참여했다는 점에서 전시회 의미가 더욱 크다."는 말을 덧붙였다.

 

코가 찡할 정도로 정겨운 작품들

 

 

정신건강센터 가는 길을 표시한 그림지도가 눈길을 끌었다. 군산 입구에 자리한 대야면은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을 중심으로 오일장이 열리는 면 단위 마을이다. 회원들은 이곳을 자주 오가게 되는데 기억을 되살려 역, 교회 등 건물로 표시해놓고 있었다. 작가는 관찰력이 우수한 재미있는 동네 드로잉이라고 설명했다.

 

 

우연한 표현 기법 중 스크레치 효과를 이용해서 그린 밤하늘의 부엉이는 현재 활동 중인 중견작가의 초대작품으로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이었고 이미지도 강했다. 다양한 자세의 부엉이를 연필로 드로잉하여 색다른 재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다양한 모형의 시계도 착상이 기발하고 재미도 있었다. 개개인의 개성이 돋보였고 정성을 쏟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정확하게 그린 손목시계는 줄 마디가 실재처럼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이니 실내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커피 드로잉도 새로웠다. 물감이 아닌 커피로 그림을 그렸는데 커피도 묵향이 그윽한 먹물처럼 농도가 있음을 알았다. 지도 작가는 커피 그림을 그리는 날은 회원들과 커피 타임을 갖고 대화를 나누어서인지 특별한 드로잉이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매일 대하는 인물의 특징을 살려 스티로폼 위에 매직으로 그린 그림도 독특했다. 지도 작가는 재료 사용이 탁월하고 색감의 선택도 우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건강센터 선생님들과 회원들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자기 마음과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제목 '내 마음의 보물 상자' 역시 감동을 자아냈다. 심신이 지치고 힘들 때 보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자기가 자기에게 특별한 상장을 수여한다?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꼼꼼히 정성스레 써내려간 상장 문구들이 코가 찡할 정도로 정겨웠다.

 

 

소형 사진첩 표지에는 <흙에 살리라>, <님과 함께>를 적고, 안에는 여성 회원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과 애틋한 추억의 글을 담은 강희식(41, 남) 회원을 잠시 만났다. 그는 점심을 먹고 전시장에 나와 동료 회원들 작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 사진첩 표지에 유행가 제목을 적었던데, 그 노래들을 어떤 가수가 불렀는지 아시나요? 그리고 함께 찍은 여성은?

"그럼은요. <흙에 살리라>는 '홍세민'이고, <님과 함께>는 '남진'이죠. 제가 어려서부터 굉장히 좋아하는 가수들입니다. 그리고 사진 속 여자분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우리 회원이에요. 참 이쁘죠?"

 

- 네. 참 예쁘네요. 이렇게 예쁜 작품을 만드신 걸 보니 마음도 행복하실 것 같아요. 치료는 언제부터 받기 시작했나요?

"예, 고맙습니다. 행복해요. 어렸을 때(사춘기) 용접소에 다니면서 일하다가 마음의 병이 생겼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 부모는 모두 살아계시나요?

"저는 4남 2녀 중 막내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고,(잠시 허공을 쳐다봄) 아버지는 지금 저하고 함께 ㅇㅇ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는데 여든두 살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젤 존경하는 분이죠."

 

- 형제들도 잘 해주시나요?

"그럼요. 형님이랑 누님도 다들 잘 해주세요. 특히 작은 누님은 우리 살림을 하다시피 했어요. 지금도 김치를 담가옵니다. 형님들은 명절 때 돈도 주고 그럽니다. 제가 공사판에 나가서 돈을 버니까 아버지랑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데···." 

 

- 형제들이 잘 해주니까 좋으시겠어요. 앞으로 희망은?

"결혼하고 싶어요. 신부 될 사람이 있다면 낼이라도 하겠어요.(멋쩍은 웃음) 결혼해서 아버지랑 함께 살고 싶습니다. 천식 끼가 있는 아버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참 좋으신 분인데."

 

군산의 모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강희식 회원은 회원들과 남이섬에 다녀온 추억을 생각하면서 사진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말은 조금 어눌했고 목소리가 작았으며 이야기의 맥이 자주 끊겼다. 그래도 얼굴 사진이 언론에 공개돼도 괜찮으냐니까 꺼릴 정도로 의사 표시는 확실했다.

 

강 회원은 약을 복용하면서도 한 달에 7~8회는 공사장에 나가 막일을 해서 생활비를 번다고 했다. 일급은 7만 원 정도, 그는 시청 전용버스로 정신건강원에 오간다며 불편하지만, 현재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출품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니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또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자기 마음과 생각을 즐겁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회원의 마음을 글로 표현한 문학 작품 몇 점도 액자에 표구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그중 얼마 전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유승준 회원의 시(詩) 제목 <은파호수 물빛다리> 원문을 소개한다.

 

은파호수 물빛다리

 

유승준

 

누군가 폭죽을 터뜨린다

저녁하늘에 퍼지는 불꽃 꽃무늬가 찬연하다

소담한 계집애는 핸드폰에 그 광경을 담는다

한 무리의 애인들 끼리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도 한다.

 

저녁이 오면 은파호 물빛다리는 조명이 환했다

호수는 안데르센 동화그림처럼 환상적였다

그 난간에 서서 먼 그대를 꿈꾼다

그대는 어느 굳센 산맥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의지할 데 없는 백색 도시에서

어떻게 등시린 겨울을 이겨내는가.

 

발밑아래 수면은 어둠을 삼키고 말이 없다   

파란 수은등 빛을 안간힘으로 한 움큼 쥐며

겨울나무 마른 가지 끝 손가락들이 앙증맞다

짝사랑은 안으로만 울음 타오르며

거대한 북풍한파의 얼음 몸에 그리움의 살을 데인다.

 

곧 날이 풀린다더라

호수의 비단 잉어들은 물이 얼지않아

서럽진 않으리라

저녁구름이 유령처럼 지나간다

봄이 오면 새 싱그러운 풀이 언덕에 돋아

상큼한 풀냄새를 가득 풍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신장애우, #작품전시회, #꼼지락꼼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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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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