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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끝, 목포에 도착하니 하늘이 우중충하다.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만 같았다. 허름한 모텔을 잡고 유달산으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에서 구한 지도 한 장이 오늘 길잡이를 할 것이다. 유달산에 오르기 전 먼저 목포의 근대건축물을 둘러보기로 했다.

 

 

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등꽃이 핀 담장 너머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아주 느리고 우아하여 여행자는 걸음을 멈췄다.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고 적힌 카페였다. 일제시대 (구)나상수 가옥이었던 것을 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었으나 비가 언제 쏟아질지 몰라 내쳐 걷기로 했다.

 

나상수 가옥 맞은편으로 오래된 건물이 하나 보였다. 얼핏 보면 무슨 창고 같았으나 실은 일본인들이 다녔던 교회였다고 한다. 건물의 겉을 몇 번 살펴봐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건물 중의 하나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다.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1921년 건립된 이 건물은 1908년 일제가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설립한 전국의 9개 동척지점 가운데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둬들였던 대규모 지점이었다. 사리원지점과 함께 가장 중요했던 지점이었고 현재 동척지점건물은 부산과 목포에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내부는 목포의 근대시기와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당시 사용했던 금고가 단연 눈에 띈다. 금고 안에는 1904년 고하도에서 육지면화가 최초로 재배된 것을 기념하여 1936년에 세운 비가 있다. 원래의 비는 고하도 이충무공 비각 옆에 있다고 한다.

 

일본영사관은 유달산 산자락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는 목포 수군진의 만호 방대령과 수사 신광익의 선정비가 있다. 1900년에 건립된 영사관은 현재 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기 위해 내부공사 중이었다. 사적 제289호인 이 건물은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로 사용되다가 광복 후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문화원 등으로 사용되었다.

 

 

건립 당시의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지금 봐도 대단한 건축물이다. 붉은 벽돌의 2층 건물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지붕은 큰 규모인데도 우진각 지붕이다. 단순한 구성임에도 권위와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좌우대칭의 사각형 모양인 건물 중앙에는 현관이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벽돌의 허리 돌림띠를 두었고 창문 주위에는 흰색 벽돌로 장식하였다. 내부공사 중이여서 아쉽게도 실내는 볼 수 없었다. 벽면에 흰 벽돌로 둥근 모양을 내고 있는데 이는 일장기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영사관 건물 뒤에는 방공호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과 상륙에 대비하여 일제가 한국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파놓은 인공동굴이다. 내부 전체 길이가 82m, 높이2m, 폭은 넓은 곳이 3.3m 가량이라고 한다. 출입구는 모두 3개이다.

 

방공호 옆에는 목포부청 서고가 있다. 한눈에 봐도 아주 튼튼한 건물이다. 한편에는 봉안전 터가 있다. 일제시대 관공서나 학교 등에 일본왕의 사진이나 칙어 등을 놓고 신사참배를 하지 못할 때 참배하는 공간이다. 철근 콘크리트로 철옹성 같이 만든 한 평 남짓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영사관 옆길에서 유달산으로 가다 보면 노적봉예술공원이 나온다. 목포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각종 전시를 하고 있어 들를 만했다.

 

예술공원 아래로 이훈동 정원이 보였다. 1930년대에 일본인 우찌다니 만빼이(內谷萬平)가 만든 일본식 정원으로 약 3000평의 규모이다. 개인정원으로는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입구정원, 안뜰정원, 임천정원, 후원 등으로 이루어진 이 정원은 해방 후에는 해남 출신의 박기배씨가 소유하였던 것을 1950년대에 전남일보사를 설립한 이훈동씨가 사서 소유하고 있다. 재작년에 이곳을 들른 적이 있어 오늘은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다.

 

유달산을 곧장 오르지 않고 고갯길로 내려왔다. 일본식 가옥들이 더러 보이지만 안내문이 없어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다. 유달초등학교에도 근대 건축물이 있었다. 강당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목포공립심상소학교로 일본인들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이다. 강당건물은 1929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사실 문화재로 등록된 건물 외에는 아무런 표지판이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목포시에서 발행한 '근대도시 목포여행'이라는 지도책이 없었다면 건물의 상세내력을 알 길이 없었다. 설령 지도가 있다 하더라도 몇 번이고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구)이삼훈 가옥을 찾을 때에도 그랬다. 지도로 위치를 가늠해 보니 얼추 맞다. 사진하고 비교를 해보니 비슷하게 보였다. 마침 아주머니가 나와 물어보니 "이삼훈씨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 집으로 이사 온 지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지도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니 그제야 "우리 집이 맞네요" 한다. 2층으로 된 목조집인데 아주 예쁘다. 작은 화단이 인상 깊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구)박성준 가옥이다. 일제시기 일본인 양조장 주인이 지은 사택이라고 한다. 문이 잠겨 있고 인기척이 없어 외양만 흘깃 보고 유달산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하늘은 잔뜩 흐린데 비는 금방 내릴 것 같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목포근대유산, #목포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목포지점, #이훈동정원, #나상수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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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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